개막 시리즈에서 우세를 내준 KT에 위안은 에이스 확보다. 새 외인 투수 오드리사머 데스파이네(33)가 비로소 본색을 드러냈다. 최종 리허설과는 전혀 다른 투구를 보여줬다.
데스파이네는 지난 5일 수원 케이티위즈파크에서 열린 롯데와의 개막전에 선발 등판했다. 6이닝 동안 4피안타·1실점을 기록했다. 탈삼진은 8개, 볼넷은 1개도 없었다. 투구 수는 83개. 충분히 7이닝을 소화할 수 있는 관리 능력을 보여줬다.
가늠할 수 없는 투수였다. 애리조나(미국) 스프링캠프에서 보여준 모습은 진지하지 않았다. 투구 준비 자세에서 어깨를 들썩이거나, 포수조차 예상하지 못한 릴리스포인트에서 공이 나왔다. 좀처럼 100% 투구를 보여주지 않았다. 몸 관리를 위해 개인 트레이너의 캠프 합류를 요청하기도 했다. 현장과 프런트는 "미국 무대에서도 준비 과정이 다르지 않았다"며 선수의 개성을 존중했다.
속구의 무브먼트가 좋고, 변화구의 낙차가 큰 투수로 평가됐다. 개막 전 최종 리허설이던 4월 25일 두산과의 연습경기에서도 이러한 강점은 증명했다. 그러나 이 경기에서는 3⅔이닝 동안 4점을 내줬다. 고전한 이유는 두 가지다. 타순이 한 번 돌고 두 번째로 승부하는 타자에게 공략을 당했고, 주자가 있을 때도 흔들렸다.
미국에서 입국한 뒤 자가격리(2주) 기간을 보냈고, 컨디션을 회복하는 과정에 있던 상태였다. 1회는 속구 승부만 하기도 했다. 그러나 워낙 긴 기간 베일에 싸여있던 터라 기대감을 충족시키지 못했다.
이 등판 뒤 데스파이네는 "아직 100%가 아니다. 실전에서 보여주겠다"고 했다. 이강철 감독도 "시즌을 장기적으로 봐야한다"며 그를 개막전 선발로 낙점했다. 이 감독은 이전부터 "선발진에 젊은 투수들이 많기 때문에 데스파이네가 1선발로서 선발진을 이끌고 가야 한다. 그럴 수 있는 투수다"며 신뢰를 드러냈다.
선수와 감독 모두 이유 있는 자신감이었다.
두산전에서는 4회말 1사 뒤 앞선 타석에서는 범타를 유도한 호세 미구엘 페르난데스, 김재호, 박세혁에게 모두 출루를 허용하며 몰렸다. 두 차례 아웃카운트를 잡아낸 박건우에게도 2타점 적시타를 맞았다. 누상에 주자를 둔 상황에서 공이 몰리는 경향도 있었다.
그러나 롯데전에서는 달랐다. 멀티 출루를 내준 상대 타자는 없었다. 5회초 정훈에게 맞은 2루타를 제외하면 정타도 허용하지 않았다. 다른 피안타 3개는 모두 내야를 거쳐 외야로 향했다. 연속 피안타는 두 차례 나왔다. 3연속 출루 허용은 없었다. 4회는 안치홍을 상대로 삼진, 5회는 한동희에게 병살타를 유도했다. 두 번째 승부에서 공략당하지 않았고, 위기에서도 집중력이 좋았다.
포심 패스트볼과 투심의 조합은 롯데전 투구에서 가장 강한 인상을 남겼다. 일단 최고 구속(152㎞)이 같았다. 타이밍을 빼앗는 속구-커브 조합보다 위력이 있었다. 히팅 포인트를 완전히 흔들었다.
특히 2회초에 정훈과 딕슨 마차도를 삼진으로 잡아낼 때 모두 포심 뒤 투심을 던졌다. 투심은 중계 화면을 통해서도 확인이 어렵지 않을 만큼 홈플레이트 앞에서 휘어져 미트에 꽂혔다. 속구는 타자 허리 높이, 변화구는 무릎 아래로 형성되는 승부구의 제구력도 인상적이었다.
흥미로운 투구를 하는 투수가 KBO 리그에 등장했다. KT는 15승 이상 올려주길 바란다. 롯데전은 불펜 난조로 첫 승리를 놓쳤다. 기어(Gear)를 갈아 끼운 데스파이네의 다음 등판이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