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익히 잘 알고 있는 판소리 가락이 스크린에 펼쳐졌다. 익숙한 스토리에 새로운 이야기가 더해지면서 더 큰 울림을 선사한다.
22일 서울 건대입구 롯데시네마에서는 영화 '소리꾼(조정래 감독)' 언론시사회가 열렸다. 이날 행사에는 조정래 감독과 주연배우 이봉근, 이유리, 김동완이 참석해 영화를 처음 공개한 소감과 비하인드 스토리를 전했다.
'소리꾼'은 납치된 아내 간난(이유리)을 찾기 위해 남편 학규(이봉근)와 그의 딸 청(김하연), 그리고 장단잽이 대봉(박철민), 몰락 양반(김동완)이 조선팔도를 돌아다니며 백성들에게 이야기를 들려주는 이야기로 소리꾼들의 희로애락을 아름다운 가락으로 빚어낸 가장 한국적인 뮤지컬 영화다. 조정래 감독이 2016년 '귀향' 이후 4년만에 선보이는 신작으로, 정통 고법 이수자로서 28년 동안 마음속에 간직했던 판소리 영화 제작에 대한 소망의 결실이다.
조정래 감독은 "시나리오를 쓰면서 당연한 이야기지만 '주인공은 소리꾼이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오디션을 진행하는 과정에서 선배님들의 걱정 어린 시선이 있기도 했다. '기라성 같은 선배들이 연기를 하며 충분히 소리도 낼 수 있으니 다른 방안도 고려해보라'고 하시더라"며 "그럼에도 이 영화의 주인공은 소리 자체라는 결심이 흔들리지 않았다. 명창부터 연기하며 소리를 하는 분들도 계셨지만, 오디션 때 바들바들 떠는 이봉근이 딱 역할 속 학규 같았다"고 말했다.
'소리꾼'을 이끈 이봉근은 한국예술종합학교 전통예술원에서 음악을 전공, KBS 2TV '불후의 명곡'에서 2회 연속 우승하며 주목 받았다. 이번 영화에서 주인공 학규로 분한 이봉근은 첫 카메라 연기에 도전, 준비 기간 동안 개봉한 모든 사극영화를 관람하며 남다른 노력을 기울이기도 했다. 납치된 아내 간난(이유리)을 찾아 나서는 일편단심 지고지순한 인물이자, 동시에 노래하는 예술가로 성장해 가는 소리꾼 학규는 이봉근이라는 새 얼굴을 만나 완벽하게 꽃 피웠다.
이봉근은 "판소리를 전공하고 있는 소리꾼 입장에서 '우리 판소리의 맛이 그대로 드러나지 않았나' 싶다. 하지만 배우로서는 내가 많이 부족한 것을 느꼈고, 많은 분들의 고생과 땀이 들어간 것 같다"며 "'영화에서는 정말 편하게, 말 하듯이 연기를 하는 게 맞다'는 조언을 들었다. 이렇게 말하다가 갑자기 소리가 연결이 되려면 생활 소리처럼 해야하더라. 그 간극을 좁히기 위해 굉장히 노력했다. 최근에 무관중 공연을 했는데 영화를 찍은 후 무대가 더 많이 편해졌다"고 밝혔다.
학규의 아내 간난 역을 맡은 이유리는 독립적이고 현실에 안주하지 않는 강인한 모습과 함께 남편 학규, 딸 청이(김하연)와 따뜻한 가족애를 펼친다. 수 많은 드라마에서 쌓은 내공을 한꺼번에 쏟아낸 이유리는 헝클어진 머리, 초췌해진 낯빛, 그리고 허름한 서민의 비주얼 속에서도 강렬한 눈빛을 내뿜어 이유리만의 매력을 확인케 한다. 브라운관 속 이유리와는 전혀 다른 이유리를 만날 수 있다.
"나를 새로운 역할에 캐스팅해 주셨다는 것 만으로도 감사하다"고 진심을 표한 이유리는 "'이유리는 이럴 것이다'는 선입견이 있는데 다른 관점으로 가능성을 봐주신 것 같아 감사했고, 촬영내내 행복했다"며 "'내가 부족해서 튀면 어쩌나' 고민도 많이 했지만, 사극에 대한 애정이 남달랐다. 예쁘게 나오는 것 보다 자연스럽게 망가지는 것을 좋아하는 편이라 실제로도 매니저와 둘이 기차타고 여행하듯 조선 팔도를 다녔다. 진심으로 행복했다"고 강조했다.
이어 "솔직히 내가 지금 느낀 것보다 '다른 분들이 날 보고 어떻게 생각할까? 이유리가 사극을 찍었는데 어떻게 볼까?'라는 마음에 긴장되고 설레고 그렇다. 아주 오랜만에 영화를 찍었고, 많이 부족하지만 보는 분들마다 시선과 반응은 다를 것이라 생각한다"며 "무엇보다 영화를 통해 우리 서민들이 어떻게 살았는지 깊이있게 봐 주셨으면 좋겠다. 실제 판소리를 하다 죽임을 당한 소리꾼 분들도 많다고 하더라"고 덧붙였다.
오랜만에 스크린으로 컴백한 김동완의 활약도 눈길을 끈다. 가수 신화로 데뷔, 연예계 활동 23년 차인 김동완은 '시선 사이' '글로리데이' 등 영화에 출연하며 활동 영역을 넓혀 왔다. 김동완은 '소리꾼'에서 양반의 행색을 했지만 빈털터리 모습으로 아내를 찾으러 길을 나선 학규를 만나 함께 팔도를 유랑하게 되는 인물을 연기한다. 김동완은 영화 속 추임새 넣는 한 장면을 위해 판소리를 배우고 서신을 남기는 붓 잡는 장면을 위해 붓글씨를 배우는 등 최선의 노력을 기울였다.
김동완은 "영화를 보면서 '봉근 씨의 인생이 담겨있는 영화'라고 생각했고, 블록버스터 영화였다는 것을 다시 한번 느꼈다. '연가시' 이후 블록버스터 영화로 찾아볼 수 있어 영광이다"며 "'음악영화라 작은 기대를 하고 오실 수 있지만, 큰 기대를 하고 와도 만족스럽지 않을까' 하는 건방진 생각도 했다"고 너스레를 떨어 분위기를 훈훈하게 풀어냈다.
"사극영화가 간절했다"는 김동완은 "돌이라도 씹어 먹을 수 있을 만큼 준비가 돼 있었다. 걱정보다는 '빨리 촬영하고 싶다'는 간절함이 컸다. 나 스스로에 대해서는 불만족스러운 면이 있지만 영화는 너무 좋다. 이 영화에 참여할 수 있어 다행이다. 그리고 박철민 선배님께 정말 감사했다. 실제 연극을 준비하듯이 '동완아 한번 해보자, 일로 와라'라는 말씀을 자주 해주셨다. 마당놀이 하듯, 소리판 벌이듯 촬영하는 나날이 전국팔도를 유랑하며 노는 것 같아 즐거웠다"며 미소지었다.
이와 함께 조정래 감독은 영화의 히든카드이자 분위기의 완급 조절을 진두지휘한 청이 역의 아역배우 김하연에 대해 "정말 고맙고 사랑한다는 말을 전하고 싶다. 보배 같은, 너무 귀한 분이다. 하연 양이 우리 영화를 살려줬다"며 "오디션을 세 번 봤는데, 뛰어난 아역 배우들이 많았지만 청이 같지는 않았다. 청이가 오기를 기다리면서 마지막 오디션을 봤는데 하연 양이 뚜벅뚜벅 걸어오더라. 대사도 영화 같았다. 빚진 느낌이다. 평생 갚아야 할 것 같다"고 고마워했다.
한국 정통 소리를 감동적인 드라마로 풀어내며 따뜻한 위로를 담아낸 '소리꾼'은 내달 1일 개봉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