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 피로회복제'다. 타고난 센스에 분위기를 진두지휘하는 말 한마디, 미소 한 방이 그야말로 농익었다. 슬쩍 눈치를 보면서도 하고 싶은 말을 다 하고, 낯을 가리면서도 분위기를 이끄는 솜씨가 수준급니다. 시간이 지나면 지날 수록 오히려 피로가 싹 가시는 기분. 언제 어디에서나 친근하고, 누구에게나 '친구 같은 사람'이 되고 싶다던 이광수는 데뷔 10여 년이 지난 현재까지 스스로와의 약속을 야무지게 지켜내고 있다. 풀 장착된 겸손함 속 계산없는 너스레에 배꼽 잡기를 여러 번. '인간 이광수'에 빠져든 아시아 팬들의 마음을 백번 이해하고 인정한다.
제56회 백상예술대상 영화부문 남자조연상 수상자 자격으로 함께 한 취중토크 자리다. 이름 석자가 각인된 트로피를 손에 쥔 이광수는 그 날의 감동이 새삼 떠오르는 듯 트로피를 만지작 만지작 쓰다듬으며 "지금도 잘 실감이 안 난다"고 미소 지었다. 영화로, '연기'상을 수상한건 이번 백상예술대상이 처음이다. 긴장한 모습이 역력했고, "죄송합니다"라는, 어쩌면 지극히 이광수다운 소감을 남겼던 시상식 당일을 회상한 이광수는 "수상 영상을 여러 번 돌려봤어요. 울컥하는걸 꾹 참아내는게 보이더라고요. 다른 배우 분들처럼 멋진 말을 하지는 못했지만, 가장 솔직한 제 모습이 담긴 것 같아 좋아요."라는 진심을 또 한번 내비쳤다.
이광수에게 백상 트로피를 안긴 '나의 특별한 형제(육상효 감독)'를 직접 관람했다면, 누구도 이견을 내비치지 못할 결과다. 배우 이광수에 온전히 집중한다면, 그는 늘 연기를 잘하는 배우였고, 놀라울 정도로 다양한 시도와 도전에 두려움을 내비치지 않는 배우였다. "대중적으로 깊이 각인된 '런닝맨'과 예능인 이미지가 때론 독이 되는 것 같다'는 아쉬움을 토로하는 이들도 많은 것이 사실이지만, 뚝심있게 밀고 나간 행보와 노력은 보석같은 배우 이광수로서도 온전히 빛날 수 있는 기회를 선물했다. 평가절하를 뛰어넘은 화룡점정. 그 어려운걸 기어이 해낸 이광수다.
사람 좋은 이광수도 양보 못하는(?) 것이 있었으니 바로 원샷. 빤히 바라보는 눈초리가 늘어나는 술병보다 무섭다. "만드는걸 좋아하기도 하고, 제가 말아야 마음이 편해요"라며 딱 한 모금 분량으로 쉼없이 제조한 소맥은 성동일·조인성 등 선배들의 극찬을 한 몸에 받은 결과물이기도 하다. 보기 드물게 편안했던 분위기 속에서 무려 5시간 넘는 시간동안 이광수와 나눈 속 깊은 대화들은 꽤 오랜시간 취재진들에게 잊지못할 추억으로 남을 전망. "제가 인터뷰 트라우마가 있는데, 오늘은 좀 잘한 것 같아요"라며 내심 흡족해 하던 이광수는 신바람나는 듯 한남동 골목 어귀에서 자신을 알아보는 팬들에게 반갑게 인사하고 손하트까지 날리며 떠났다. 그에게도 소소하게나마 기분 좋은 시간으로 기억되길 희망한다.
※취중토크②에서 이어집니다.
-많은 아시아 프린스 중에서도 오랜시간 굳건히 제 자리를 지키고 있어요. "하…. '런닝맨' 촬영 때 형들이 저 놀리려고 만든 말이었는데. (현실이 됐죠?) 여전히 민망해 죽겠어요. 저는 제 입으로 그런 이야기를 해본 적이 없거든요. 어울리지도 않고요. 애정을 보내 주시는건 당연히 감사한데. 아휴."
-최근 장근석 씨는 전역 후 기자회견을 하면서 'AP Universe(Asia Prince Universe)'에 대해 언급했어요. '아시아 프린스 세계관'이요. 아시아 프린스 서열 몇 위 정도를 예상하나요. "서열이 어디 있어요! 하하. (장)근석 씨는 제가 데뷔하기 전부터 이미 아시아 프린스였던 분이고, 또 그런 걸 잘 즐기는 것 같아요. 근석 씨를 좋아하는 팬 분들도 자신감 넘치는 매력을 좋아하는 것 같고요. 제가 봐도 멋있어요. 저는 절대 그렇게 못하는 성격이에요."
-아시아 프린스의 시작은 '런닝맨'이었지만 알면 알 수록 '사람 이광수' 본연의 매력에 빠져 들었다는 팬들이 많아요. 인맥도 좋고요. 사랑받는 비결이 뭔가요. "제가 인맥이 넓지는 않은 것 같아요. 저도 그런 생각을 해본 적이 있는데, 주변에 정말 친한 사람들을 떠올려 보면 '생각보다 많지는 않네?' 싶거든요. 깊이있게 알고 지내는 사람들이 있어 더 좋은 것 같기는 해요. 애써서 주변에 잘 하려고 노력하긴 하는데, 그걸 아는 분들은 알아봐 주시는 것 아닐까요. 사실 제가 받는게 더 많아요. 좋은 사람들 만나면서 좋은 이야기 듣는게 에너지의 원동력이자 힘의 원천이 되거든요."
-원초적으로 궁금한 질문인데, 지금의 키는 언제 완성된 건가요. "네? 으하하하. 저 데뷔하고 이런 질문 처음 받아봐요.(웃음) 고등학생 때부터 이 정도였던 것 같아요. 정확히 192cm예요. 어머니가 163cm, 아버지가 178cm, 동생이 165cm인데 제가 조금 더 훌쩍 컸어요. 학창시절에 아주 자연스럽게 농구·배구 선수 제안도 많이 받았는데 안타깝게도 키만 컸지 운동신경이 영….(웃음) 제가 원래는 되게 통통했는데 살이 빠지면서 키로 확 올라간 것 같아요."
-콤플렉스는 아니죠. "지금은 아니에요. 예전에는 아무래도 지금 하고 일에 지장이 있을 정도의 키로 보이니까 저도 난감했죠. '일하기 힘들 것 같다'는 말도 많이 들었고요. 자세가 좀 구부정해진게 그 영향도 있는 것 같아요."
-'모태' 마름 체질인 줄 알았어요. "전혀 아니에요. 먹으면 바로 찌는 스타일이라 꾸준히 관리를 하고 있어요. 뭐 헬스 운동을 하는게 전부이긴 하지만요."
-모든 직업이 그렇지만 배우들에게는 '성장·발전' 같은 평이 더 뒤따르기 마련이에요. 의식을 하거나 압박감을 느낄 때도 있나요. "전 그런게 많이 없는 편이에요. 압박감 보다는 새로운 모습을 보이고 싶은 욕심은 있어요. 이건 누군가의 시선보다는 제 개인적인 희망인거죠. 자극도 잘 받지 않아요. 예를 들면 동료들의 작품을 보면서 '나도 저런 연기, 저런 작품 해야 하는데' 오기가 생긴다거나 경쟁하고자 하는 마음이 크게 없어요."
-'배우하기 잘했다' 보람된 순간은 언제였나요. "새로운 작품 제안을 받을 때 가장 기분이 좋아요. '잘 하고 있구나. 잘 살고 있구나. 나쁘지 않게 연기하고 있구나' 새삼 느껴요. 드라마도 영화도 혼자 완성하는게 아니잖아요. 많은 돈도 들어가고요. 그 안에서 제가 필요하다는걸 확인 받는게 러브콜 아닐까 싶어요. 늘 감사하고, '이 일 하기 잘했다' 생각 되더라고요."
-스스로에게 칭찬해주고 싶은 순간은요. "제가 저한테 좀 관대한 편이라.(웃음) 하나를 꼽자면 어느 작품이든 마지막 촬영이 끝났을 때. 스스로에게 칭찬을 많이 해줘요. 선물도 하고 싶고요. 한 작품 한 작품 끝날 때마다, 필모그래피가 쌓일 때마다 대견하고 뿌듯해요."
-최근 나를 자유롭게 하는 아이템이 있나요. "종종 산책을 나가요. 예전에는 혼자 있는 것을 어려워하고 불편해 했어요. 혼자 걷고 생각하는 것 역시 쉽지 않았는데 요즘엔 그 재미를 느끼고 있어요. 혼자만의 시간이 저를 자유롭게 만드는 것 같아요."
-다사다난한 연예계, 스타들의 영향력이 조금씩 더 강조되고 있어요. 꼭 해야 할 것, 하지 말아야 할 것에 대해 다짐한 것이 있을까요. "개인적으로 인사하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했어요. '인사를 잘하자' 예전부터 '인사 잘한다'고 칭찬을 많이 들어서 강박관념처럼 하기도 해요.(웃음) 그리고 절대 하지 않으려는건 지각. 시간 약속에 늦는게 싫어요. 아주 기본적일 수 있는 것들인데 기본이라서 가장 신경써야 하지 않을까 싶어요."
-이광수가 생각하는 최고의 가치는 무엇인가요. "전 하루 하루 행복한 것이 좋아요. 술 마시고 다음 날 가만히 누워있는 것 보다는 힘들어도 나가서 뭔가 하려고 노력하거든요. 계획도 장황하게 세우지 않고 당장 눈 앞에 놓인 것들을 차분히 해결해 나가는 것이 조금 더 현실적이지 않나 생각하고요. 별 것 아닌 소소한 것들이 저를 살아가게 하는 것 같아요. 모두 행복하셨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