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7년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의 취임 일성이다. 국내에서 TV·냉장고 등 가전제품 사업으로 자리잡았지만 글로벌 시장에서는 존재감이 미미했던 삼성이었기에 당시 메아리 없는 외침에 불과했다. 하지만 지금 삼성은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글로벌 초일류 기업으로 성장했다. 이 회장의 약속이 현실이 된 것이다.
25일 업계에 따르면 삼성은 첨단산업에서 글로벌 리더로 확실히 자리매김했다.
이 회장은 모두가 실패할 것이라고 한 반도체에 과감히 투자해 세계 1위에 올랐다. 1975년 전자손목시계용 집적회로 칩을 개발했고 이듬해 국내 최초로 트랜지스터 생산에 성공했다. 당시 최첨단이던 3인치 웨이퍼(반도체 원판) 설비도 부천공장에 갖췄다.
삼성은 1982년에 미국과 일본에 이어 세계 3번째로 64K D램을 개발했고, 10년 뒤인 1992년에는 세계 최초로 64M D램 개발에 성공하며 반도체 시장의 강자로 떠올랐다. 이후 메모리 반도체 시장에서 단 한 번도 세계 1위 자리를 내주지 않았다.
D램뿐 아니라 스마트폰을 비롯한 각종 디지털 휴대용 기기에 많이 쓰이는 플래시메모리, 시스템메모리 분야에서도 투자와 개발을 계속하며 반도체 글로벌 리더를 지키고 있다.
반도체를 성공시킨 이 회장은 신수종(새로이 수익을 올리기 위해 개발해 육성하는 업종) 사업으로 휴대폰을 지목, 삼성을 애플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세계적인 휴대폰 제조사로 키웠다.
이 회장은 당시 “반드시 1명당 1대의 무선 단말기를 가지는 시대가 온다. 전화기를 중시해야 한다”고 예견했다.
애니콜은 1995년 8월 전 세계 휴대폰 시장 1위인 모토로라를 제치고 51.5%의 점유율로 국내 정상에 올랐다. ‘갤럭시S2’를 본격적으로 시장에 선보인 2011년 3분기에는 마침내 애플을 제치고 세계 스마트폰 시장에서 1위를 탈환했다.
반도체·휴대폰 등의 성공 신화는 ‘한국의 삼성’을 ‘글로벌 삼성’으로 우뚝 서게 했다.
브랜드 컨설팅 업체 인터브랜드가 2013년 발표한 세계 100대 브랜드 순위에서 삼성그룹은 8위에 올랐다.
인터브랜드가 집계한 삼성그룹의 브랜드 자산가치는 당시 396달러(약 40조4712억원)였다.
이 회장 취임 후 주력 계열사인 삼성전자가 배출한 역대 '월드 베스트' 제품은 총 9개이다.
점유율 기준 스마트폰(2012년·SA), 스마트카드 IC(2006년·ABI), 모바일 CMOS 이미지센서(2010년·TSR)와 매출액 기준 TV(2006년·디스플레이서치), 모니터(2007년·IDC), D램(1992년·아이서플라이), 낸드플래시(2002년·아이서플라이), 모바일AP(2006년·SA) 등이다.
글로벌 삼성의 경영성과 또한 눈부시다.
이건희 회장이 삼성그룹을 이끈 27년간 시가총액은 350배 가까이 늘어났다.
금융정보업체 에프앤가이드가 집계한 자료에 따르면 이 회장이 취임한 1987년 9000억원이던 삼성그룹 시가총액은 이 회장이 쓰러진 해인 2014년에 318조7634억원을 기록, 348배로 증가했다.
매출도 9조9000억원에서 338조6천억원으로 34배로 많아졌다.
자산은 8조원에서 575조1000억원으로 70배 넘게 늘어나 재계 1위를 차지했다.
임직원 규모도 10만여 명에서 국내외 총합 42만명 수준으로 급증했다.
수출 규모는 63억 달러에서 1567억 달러(2012년 기준)로 25배로 성장했다.
우리나라 전체 수출액 가운데 삼성그룹이 차지하는 비중은 13.3%에서 28.2%로 배 이상 늘어났다.
삼성은 세계적인 초일류 기업으로의 성장은 이 회장의 꿈과 약속이 있어서 가능했다고 평가했다.
삼성 측은 “역사를 돌이켜보면 묵묵히 꿈을 현실로 변화시킨 이건희 회장의 약속을 만나게 된다”며 “1987년 회장 취임과 더불어 선언된 그 약속은 당시 사람들에게 메아리 없는 외침에 불과했지만, 세월 속에 하나씩 하나씩 실현됐고 세계를 놀라게 했다”고 말했다.
또 “이 회장이 취임한 1987년 10조원이 채 못 되던 삼성그룹의 매출은 2018년 현재 386조원을 넘기면서 39배 늘어났고 시가총액은 1조원에서 396조원으로 396배나 커졌다”며 “세계가 놀란 이런 변화의 중심에는 이 회장의 꿈과 약속이 있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