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일 안양체육관에서 만난 프로농구 안양 KGC인삼공사 김승기(48) 감독이 껄껄 웃으며 말했다. 김 감독과 허재(55) 전 농구대표팀 감독은 절친한 선후배다. 농구 명문 용산고 동문으로, 2002~03시즌 TG 삼보(현 DB)에서 우승을 합작했다. 김 감독은 “허재 형에게 ‘형 아들(부산 KT 가드 허훈)이 우리 팀만 만나면 펄펄 난다. 아무래도 삼촌을 만만히 보는 것 같다’며 투정을 부렸다”고 했다.
올 시즌 KGC인삼공사는 강하다. 프로농구 공동 1위(10승7패·9일 기준)다. 팀 컬러는 ‘스틸 농구’다. 개막 전 김 감독이 밝힌 다섯글자 출사표 또한 “뺏고 또 뺏고”였다. 8일 서울 SK전에서 스틸을 12개나 기록한 것을 비롯해 경기당 평균 9번 상대 볼을 낚아챘다. 10개 구단 중 1위. 김 감독은 “공을 뺏으면 확률 높은 득점 찬스를 만들 수 있고, 상대 기도 꺾을 수 있다. 뿐만 아니라 가로채기에 이은 속공은 화려한 플레이로 이어진다”며 ‘스틸 예찬론’을 폈다.
스틸 1위 비법에 대해 김 감독은 “훈련할 때 디펜스 연습을 상황별, 지역별로 세분화해서 한 게 주효했다. 스텝 연습도 많이 한다. 공격만 잘 하던 가드 변준형도 한 경기에서 스틸을 6개나 했다. 아들들에게도 스틸 노하우를 가르칠 생각”이라고 말했다. 김 감독의 두 아들(중앙대 김진모·용산고 김동현)도 농구 선수다.
현역 때 ‘터보가드’라 불린 김 감독은 “중학생 때 ‘제2의 허재가 나왔다’는 찬사를 들었다. 힘 좋고 저돌적인 플레이 스타일 때문에 붙은 별명이다. 그 시절부터 효과적인 스틸 방법을 연구했다”고 말했다. 그는 중앙대와 상무에서 전성기를 누렸고, 삼성·나래·모비스를 거쳤다.
김 감독은 “97년 아시아농구선수권 우승 과정에서 무릎이 망가졌다. 수술이 필요했지만, 숨기고 뛰었다. 이후 내리막이었다. 그 때 좌절을 겪어봐서 아픈 선수들의 마음을 안다”고 했다. 김 감독은 고질적인 무릎 부상에 시달리는 센터 오세근(33)을 종종 연습에서 빼준다. 손가락과 어깨를 다친 양희종(36)에게도 재활 기간을 충분히 줬다. 김 감독은 “세근이와 희종이가 복귀해 더블 포스트가 가능해졌다. 쓸 수 있는 작전이 많아져 자신감이 생겼다”고 했다.
김 감독은 97년 출범한 프로농구에서 유일하게 선수-코치-감독으로 모두 우승트로피를 들어 올린 인물이다. 현역 은퇴 후 2006년부터 9년 반동안 KT, 동부, 인삼공사를 거치며 코치로 지도자 수업을 받았다. 김 감독은 “코치 때부터 고칠 점을 열심히 메모했다. 김병철(오리온 코치)과 전희철(SK 코치)이 코치 생활을 길게 하는데, 사령탑이 되면 지금 경험이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했다. 김 감독은 “올 시즌 초반 7승7패(6위)에 그쳤다. 3주 휴식기에 되돌아보니 내 잘못이었다. 작전타임 때 나도 모르게 선수들에게 짜증을 내곤 했다. 복싱 선수도 경기 막판엔 정신을 못 차리지 않나. ‘4쿼터엔 딱 짚을 것만 짚자’고 생각을 고쳤다”고 했다.
김 감독은 2015년 KGC인삼공사 지휘봉(감독대행 포함)을 잡은 이후 6시즌 중 4시즌동안 4강에 들었다. 2016~17시즌엔 통합우승을 이뤄냈다. 플레이오프 승률은 0.583(14승10패). 최인선(34승20패, 0.630)에 이어 역대 감독 중 2위다.
김 감독은 지난해 관상동맥 확장 시술을 받았다. 모든 감독들의 고질병, 스트레스 때문이다. 김 감독은 “홍삼 많이 먹고 건강을 되찾았다. 효과가 정말 좋다. ‘홍삼의 힘’으로 스틸도 하고 승리도 하는 것 같다. 재미있는 농구로 우승트로피도 뺏어 오고 싶다”며 손가락 세 개를 펴 보였다. 2012년과 2017년에 이어 세번째 우승을 거두겠다는 각오의 표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