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 위반 혐의로 집행유예 처분을 받은 원기찬(62) 삼성 라이온즈 대표이사가 KBO(한국야구위원회) 이사회 참석 자격을 잃은 것으로 확인됐다. 삼성 야구단은 전례를 찾기 힘든 '각자 대표이사' 체제로 전환됐다.
일간스포츠 취재 결과, 삼성은 원기찬 대표이사가 KBO 이사회에 참석할 수 없는 상태다. KBO 정관에 따라 각 구단 대표이사는 당연직으로 KBO 이사가 된다. KBO 이사회에선 단장 모임인 실행위원회에서 합의된 사안을 최종적으로 결정한다. 원기찬 대표이사는 '금고 이상의 형을 받고 집행이 종료되거나 집행을 받지 아니하기로 확정한 뒤 3년이 지나지 아니한 사람'은 총회 의결을 거쳐 해임할 수 있다고 정한 정관 13조(임원의 해임 등)에 저촉된다.
이는 지난달 4일 나온 대법원 판결 영향이다. 당시 원기찬 대표이사는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 위반 혐의로 기소돼 대법원 상고심에서 징역 1년 6개월에 집행유예 2년이 확정됐다. 원기찬 대표이사는 2013년 자회사인 삼성전자서비스에 노조가 설립되자 삼성그룹 미래전략실 차원에서 노조 와해 전략을 수립·시행했다는 혐의로 정금용 삼성물산 대표, 박용기 삼성전자 부사장, 목장균 삼성전자 전무를 비롯한 전·현직 임원 30여명과 함께 재판을 받아왔다.
KBO 고위 관계자는 "(대법원 판결이 나온 뒤) 법률 검토를 했다. 구단이 대표이사를 선임하는 건 구단 고유의 권한이다. KBO가 어떻게 하라고 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다만 KBO 이사회의 이사로는 안 된다"며 "대법원 결과가 나온 뒤 삼성도 '다른 대표이사가 이사회에 참석한다'고 KBO에 통보했다"고 밝혔다. 집행유예 판결 이후 구단 대표이사 자리를 유지하는 건 KBO가 관여할 순 없지만, 정관에 따라 이사회 참석은 불가하다는 의미다.
홍준학 삼성 단장은 일간스포츠와 통화에서 "정홍구 실장(제일기획)이 KBO 이사회에 들어간다. 공동 대표가 아니라 각자 대표이사"라며 "(원기찬 대표이사와 정홍구 실장이) 업무를 분장하고 역할을 나눈 것 같다"고 말했다. 각자 대표이사는 말 그대로 여러 명의 대표이사가 각각 대표이사 권한을 갖는다. 집행유예 판결 이후 원기찬 대표이사 자리에서 물러나는 게 아니라 일종의 대리인을 이사회에 참석시키는 차선책을 선택한 셈이다. 정홍구 실장은 아직 KBO 이사회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삼성은 지난 2일 신세계의 구단 회원자격 양수도 승인 신청을 심의한 이사회에 불참을 통보하고 총재에게 권한을 위임했다.
야구계 안팎에선 각자 대표이사로 구단을 운영하는 게 "전례를 찾기 힘든 방법"이라는 얘기가 나온다. A 구단 고위 관계자는 "옛날 LG가 정학모 사장과 권혁철 대표이사 체제로 운영했던 기억이 있다. 하지만 각자 대표이사는 처음 보는 것 같다"고 말했다. B 구단 관계자도 "구단 내부 사정이 있겠지만 생소한 방법"이라고 말했다. 삼성은 각자 대표이사 체제 전환 뒤 관련 내용을 외부로 알리지 않았다. 홍준학 단장은 "보도자료를 낼 문제는 아니었던 것 같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