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심 창업주 신춘호 회장(91)이 지난 27일 노환으로 별세했다. 신춘호 회장은 영면에 들기 전 유족에게 '가족 간 우애하라'는 당부의 말을 남겼다. 형 신격호 롯데그룹 명예회장에 이어 동생 신춘호 회장의 별세를 계기로, '형제의 난'을 치렀던 농심과 롯데에 '화해 무드'가 형성될지 주목된다.
28일 재계에 따르면 고 신춘호 회장은 형 신격호 회장과는 '앙숙'이었다. 1960년대 초 일본에서 활동하던 형을 대신해 국내 롯데를 이끌었던 고인은 라면 사업 추진을 놓고 형과 갈등을 빚었다.
고인은 당시 일본에서 큰 인기를 얻던 라면에 주목했지만, 신격호 회장은 '시기상조'라며 반대했다. 그런데도 고인은 롯데공업을 차려 라면 사업에 뛰어들었다.
이를 계기로 형제간 갈등의 골이 깊어졌다. 신격호 회장은 동생에게 '롯데'라는 명칭을 사용하지 말라고 요구했다. 결국 1978년 고인은 사명을 '농심'으로 바꾼 뒤 완전히 갈라섰다.
두 사람은 끝내 화해하지 못했다. 지난해 1월 신격호 회장이 별세했을 때 신춘호 회장은 끝내 형의 빈소를 방문하지 않았다. 대신 장남인 신동원 농심 부회장이 조문했다.
그런데도 재계에서는 신춘호 회장의 별세를 계기로 반세기 넘게 이어져 온 농심가와 롯데가의 앙금이 해소될 것이라는 추측이 조심스럽게 나온다.
신춘호 회장이 마지막 유언으로 유족들에게 '가족 간에 우애하라'는 당부 말을 남겼기 때문이다.
신춘호 회장은 신격호 회장 별세 당시에도 장례식장에는 직접 찾지 못했지만, 가족들을 모두 불러 모아 가족 간의 우애와 화합을 강조한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27일 서울대병원에 마련된 신춘호 회장의 빈소에는 범롯데가 일원이 집결하면서 롯데와 농심이 화해에 나서는 것이 아니냐는 전망에 힘이 실리고 있다.
신춘호 회장의 조카인 신동빈 롯데 회장과 신동주 SDJ코퍼레이션 회장은 나란히 빈소에 조화를 보내 애도의 마음을 전했다. 특히 신동빈 회장의 화환은 고인의 영정사진 가장 가까운 위치에 놓여 눈길을 끌었다.
'롯데 임직원 일동' 명의의 조화도 도착해 빈소 외부 한편에 놓였다. 오너가 일원은 아니지만 '롯데그룹 2인자'를 지낸 황각규 전 롯데지주 부회장도 전날 빈소를 찾아 고인을 추도했다.
롯데와 농심 모두 2세 경영이 본격화한 점 역시 두 가문이 화해에 나설 것이라는 전망에 힘을 싣고 있다.
롯데그룹은 2015년 '왕자의 난'에서 승리한 신동빈 회장이 그룹을 이끌고 있다. 신동빈 회장은 당시 그룹 경영권을 두고 형 신동주 회장과 경쟁한 끝에 한일 경영권을 모두 장악했다.
농심은 롯데와 달리 일찍이 장남인 신동원 부회장이 후계자로 점찍어 둔 상태다. 신동원 부회장은 1997년 농심 대표이사 사장에 오른 뒤 2000년에는 부회장으로 승진하며 사실상 농심 경영을 맡고 있다.
특히 신동원 부회장은 롯데그룹을 이어받은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과 친목 모임을 만들 정도로 허물없는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창업 1세대와 달리 2세대는 관계를 회복하자는 취지에서 만든 것으로 전해진다.
재계에서는 식품과 유통업계 1위인 두 그룹이 협업에 나서 시너지 효과를 발휘할 가능성도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
신춘호 회장이 생전 우애가 두터웠던 형제와 경영 협업에 나선 바 있기 때문이다. 동생 신준호 푸르밀 회장과 협업해 농심·푸르밀 자매 제품을 출시한 게 대표적이다.
재계 관계자는 "오너 2세들의 관계는 1세와는 달리 좋은 것으로 알고 있다"며 "농심과 롯데 계열사 간 협력이 본격화될 경우 글로벌 시장을 겨냥한 제품 출시 등 많은 사업에서 시너지를 낼 수 있을 것이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