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온라인 플랫폼 갑질'로 뭇매를 맞은 카카오가 연초부터 경영진 리스크에 직면했다. 지난해 말께 류영준 카카오 신임 공동대표 내정자가 스톡옵션(주식매수선택권)을 행사해 400억원이 넘는 이득을 취하면서 불거진 모럴해저드(도덕적 해이) 논란이 수면 아래로 내려가는 듯하다가 다시 불붙고 있다. 노조가 최근 류영준 대표 내정자가 사퇴하지 않으면 설립 이후 첫 쟁의 행위도 불사하겠다고 했다. 노조는 그래도 해결되지 않으면 창업자인 김범수 이사회 의장의 문제가 될 것이라며 경고했다.
카카오 대표 내정자, 자사주 팔아 469억원 차익
9일 업계에 따르면 카카오는 최근 노조가 요구한 류영준(현 카카오페이 대표) 신임 공동대표 내정 철회와 관련해 대응안을 모색 중이다. 이날 카카오 관계자는 본지에 "(아직) 공식입장은 따로 없다"고 말했다. 다만 소통은 지속하고 있다고 전했다.
이번 논란은 류영준 대표를 비롯한 카카오페이 경영진 8명이 지난달 10일 44만993주를 블록딜(시간 외 대량매매) 방식으로 매각하면서 불거졌다.
약 900억원에 달하는 주식이 한꺼번에 매물로 풀리면서 증시에 악영향을 줬다. 이중 류 대표는 469억원의 차익을 거둔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지난해 11월 카카오 공동대표로 내정됐으며, 오는 3월로 예정된 주주총회와 이사회를 거쳐 선임될 예정이다.
한때 상장일 대비 약 24%까지 오르며 승승장구하던 카카오페이 주가는 경영진 주식 매각 소식이 전해진 날부터 지난 7일까지 약 22% 주저앉았다. 모회사 카카오의 주가도 같은 기간 약 18% 하락했다.
일반적으로 경영진이 책임경영 의지를 피력하기 위해 자사주를 매입하는 사례를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자신의 사업전략이 고스란히 주가에 반영되기 때문이다.
이와 반대로 카카오페이 경영진은 저렴한 가격에 회사 주식을 쓸어모은 뒤 주가가 안정적 흐름을 보일 때 팔아 막대한 이득을 챙겼다. 법적 문제는 없지만 이와 같은 경영진의 대규모 스톡옵션 행사는 기업 신뢰도에 타격을 줄 수밖에 없다.
카카오페이 종목 토론실에는 "경영진이 주가 조작 세력과 다를 바가 없다" "무슨 생각으로 상장하고 이런 상황을 만드나" 등 부정적 의견이 대부분이다.
노조 "윤리의식 결여…쟁의도 불사"
상황이 이렇게 되자 조만간 상장을 앞둔 카카오 계열사를 향한 시선이 곱지 않다.
모빌리티 자회사 카카오모빌리티는 올해 상장을 목표로 주관사 선정을 진행하고 있다. 콘텐트 사업을 영위하는 카카오엔터테인먼트도 KB증권을 주관사로 선정해 상장을 준비하고 있는데 시점은 정해지지 않았다.
일부에서는 '혁신'의 이름으로 진행되는 이런 계열사 상장이 혁신을 위장해 경영진 배 불리기에 악용하는 것 아니냐고 비판하고 있다.
이에 카카오페이는 별도 자리를 마련해 임직원과 주주 달래기에 나섰다.
지난 4일 사내 간담회에서 류영준 대표는 "저를 비롯한 경영진들의 스톡옵션 행사와 매도로 인해 불편한 감정을 느끼셨을 모든 분께 송구하다"며 "상장사 경영진으로서 가져야 할 무게와 책임감에 대해 다시 한번 고민해보는 계기가 됐으며, 앞으로 주주가치 제고를 위해 최선의 노력을 기울일 것"이라고 약속했다.
회사 경영진의 해명에도 여론은 계속 악화해 카카오 노조까지 행동에 나섰다. 전국화학섬유식품산업노동조합 카카오 지회는 지난 5일 성명을 내고 "카카오는 이번 사태의 핵심인 류영준 카카오페이 대표의 신임 카카오 대표 내정을 철회하라"고 요구했다.
노조는 또 "직원들은 지금까지 충분히 고통을 감내하고 회사 성장을 위해 참아왔지만, 그 결과로 경영진은 수백억원의 차익을 얻었다"며 "주요 경영진의 집단적 매도는 시장에 부정적 영향을 미치는 사안임을 알고 있음에도 주요 경영진들이 동시에 지분을 매각한 것은 유가증권시장 개장 이후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일로 경영자로서 윤리의식이 결여됐다"고 꼬집었다.
그러면서 류 대표의 사퇴 외에는 타협안이 없다며 응답이 없을 경우 회사 창립 이래 지금까지 없었던 쟁의 단계에 돌입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개발자 파업까지 이어질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다.
서승욱 카카오 노조지회장은 이날 본지에 "현재 추가로 전할 말은 없다. 10일 입장을 공유할 계획이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