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현(35·1m91㎝)은 ‘꾸준함의 대명사’다. 연세대를 졸업한 그는 2010년 신인 드래프트 전체 2순위로 안양 KGC에 입단했다. 데뷔 시즌부터 54경기에 모두 출전하는 등 11시즌 동안 평균 48경기에 나섰다. 데뷔 경기부터 528경기 연속 출전으로 프로농구 최다 연속 경기 출전 기록도 이어나가고 있다. 그래서 얻은 별명이 ‘금강불괴’다.
전천후 슈팅 가드 이정현은 정규리그 MVP(최우수선수) 한 차례, 베스트5에 네 차례 선발된 경력이 있다. 2021~22시즌 전주 KCC에서 54경기에 출전, 평균 13.1득점을 올리며 녹슬지 않은 기량을 보였다. 두 번째 FA(자유계약선수) 자격을 얻은 그는 서울 삼성으로 이적했다. 계약 기간 3년에 보수총액 7억원(연봉 4억9000만원·인센티브 2억1000만원)의 조건이었다.
최근 경기도 용인의 삼성 클럽하우스에서 일간스포츠와 만난 이정현은 “삼성이 가장 적극적으로 다가왔다. 은희석 삼성 감독님께서도 ‘네가 꼭 필요하다’며 진심을 담아 말씀하셨다”며 “원주 DB로부터 연락이 왔고, KCC 잔류에 무게를 많이 실었던 것도 사실이지만, 감독님 영향으로 삼성을 택했다. 수원 KT에서는 삼성 이적을 마음먹은 후 연락이 왔다”고 말했다.
이정현이 삼성으로 이적하자 팬들은 이관희(34·창원 LG)와 맞대결에 큰 관심을 보였다. 둘은 프로농구 최고의 앙숙이다. 연세대 1년 선·후배 사이인 데다 상무에서 복무 기간도 비슷하지만 별로 친하지 않다. 코트 위에서 신경전은 물론 몸싸움도 마다치 않는다. 둘 사이가 왜 틀어졌는지 명확하게 드러난 바 없다.
이정현은 “LG는 삼성과 프로농구 ‘전자 라이벌’이다. 또한 (나와) 그런 이슈를 가진 선수가 있는 팀이기도 하다. LG와의 경기는 내가 더 준비하고, 더 집중하는 계기가 될 것”이라며 “이제는 내가 모범을 보여야 하는 나이다. 개인 감정으로 경기를 그르치는 것보다 좋은 경기력을 보여드리는 게 팬들을 위한 것이지 않겠나”라고 했다.
이정현은 팀 주장으로 선임됐다. 이적한 선수가 곧바로 주장을 맡는 건 파격적인 일이다. 은희석 감독이 이정현을 콕 집었다고 한다. 이정현은 “감독님께서 선수들과 지도자들 간 소통을 위한 다리 역할을 할 인물이 나라고 생각하신 것 같다. 선수단이 하나로 되기 위한 역할을 하라는 뜻”이라고 말했다.
지난 시즌 갖은 내홍을 겪으며 단 9승(45패)에 그친 삼성의 분위기를 바로잡아야 하는 책임이 이정현에게 있다. KGC 시절 두 번이나 챔피언결정전 우승을 이뤄낸 경력이 있는 그는 “외부에서 봤을 때 삼성은 하나로 뭉치지 못한다는 느낌을 많이 받았다. 쉽게 봤던 상대”라며 “내 경험으로 팀 분위기를 바꾸는 게 필요하다”고 말했다.
신진급 선수들을 이끄는 것도 베테랑 이정현의 몫이다. 이정현은 “삼성에 어린 선수들이 많다. 아직 많은 경기에 출전하지 못한 선수들도 있다. 그들에게 내 노하우를 알려줘야 한다. 선배로서 내가 가진 경험을 공유하는 게 내가 해야 할 일”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국내 정상급 포인트 가드 김시래와의 호흡도 기대를 받는다. 이정현의 최대 강점은 동료와 2대2 플레이를 통한 득점이다. 이정현은 “시즌이 빨리 개막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할 정도로 기대하고 있다. 좋은 가드인 김시래와 뛴다는 게 커다란 복”이라며 “좋은 성적을 내는 팀에는 좋은 가드가 있는 법이다. 호흡을 잘 맞춰서 공격 중심 농구를 할 것”이라고 했다.
연속 경기 출전 기록은 삼성에서도 이어간다. 이정현은 “프로 선수의 가치는 54경기에 출전하는 데서 생긴다”면서도 “(연속 경기 출전 기록이) 어느 순간 부담으로 다가오더라. 꾸준히 몸을 관리하며 해왔던 대로 할 것이다. 욕심을 내지 않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