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22~23시즌 유럽 축구 왕좌에 오른 건 펩 과르디올라(52) 감독이 이끄는 맨체스터 시티(잉글랜드)였다. 과르디올라 감독은 개인 세 번째이자, 구단 통산 첫 유럽축구연맹(UEFA) 챔피언스리그(UCL) 트로피를 품었다. 하지만 그런 과르디올라 감독도 사우디아라비아의 ‘돈’ 앞에서는 두 손을 들었다.
과르디올라 감독은 지난달 29일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쿠팡플레이 시리즈’ 2차전 아틀레티코 마드리드와의 친선경기 사전 기자회견에 참석했다. 그는 현장에서 한국 취재진은 물론, 외신 기자와 마주했다.
이날 주요 관심사는 아틀레티코와의 친선경기였지만, 외신의 시선은 다른 곳을 향했다. 바로 이번 이적시장 기간 스타급 선수들의 사우디행이었다.
같은 날 맨시티는 공식 홈페이지를 통해 윙어 리야드 마레즈와의 결별 소식을 전했다. 1991년생인 마레즈는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EPL)에서만 9시즌 동안 활약한 윙어다. 특히 맨시티에서 236경기 78골 59도움을 올렸고, 11개의 주요 트로피를 들어 올린 핵심 선수 중 한 명이었다. 그는 맨시티를 떠나 알 아흘리(사우디) 유니폼을 입었다. 추정 연봉은 무려 4500만 파운드(740억원)에 달한다. 이는 알 아흘리가 맨시티에 지불한 이적료(2500만 파운드·420억원)보다 높다. 선수 입장에선 거절하기 힘든 제안이었던 셈이다.
지난 1월 크리스티아누 호날두(알 나스르)를 시작으로 스타 선수들의 사우디행이 끊이지 않고 있다. 막대한 연봉이 유럽에서 뛴다는 자부심을 뛰어넘은 모양새다. 외신 기자는 과르디올라 감독에게 “지금까지 EPL과 레알 마드리드·바르셀로나(이상 스페인)는 유럽에서 최고 선수들과 함께했다. 최근의 사우디 프로 리그가 이를 위협할 것이라 보는가”라고 물었다.
과르디올라 감독은 “사우디가 시장을 바꾸고 있다”고 운을 뗀 뒤 “이렇게 많은 선수가 사우디에서 뛸 것이라 생각하지 못했다. 과거 중국보다 더 거대한 움직임이다. 마레즈는 믿기 힘든 제안을 받았다. 그에게 남아달라고 할 수 없었다”고 설명했다.
2010년대 디디에 드로그바(코트디부아르) 니콜라 아넬카(프랑스) 뎀바 바(세네갈) 등의 스타급 선수들의 중국행이 이어졌을 때, 일각에선 ‘나이 든 베테랑이 돈을 벌기 위해 하는 선택’이란 시선이 강했다. 실제로 대부분 선수가 짧은 기간만 뛰고 중국을 떠나거나 은퇴했다. 스타들의 합류가 중국 리그의 발전으로 이어지지도 않았다. 자연스럽게 중국행 소식이 뜸해졌다.
올여름 사우디가 주도하는 이적시장 분위기는 심상치 않다. 오히려 호날두가 예외로 보일 만큼, 한창 전성기인 20대 중반부터 30대 초반 선수들의 사우디행이 이어지고 있다. 유럽 최고 명장조차도 이런 흐름을 막지 못하고 있다. 사우디의 돈이 유럽을 삼킬 수 있을지 시선이 가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