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이브와의 법적 분쟁에서 승소한 민희진 전 어도어 대표가 25일 오후 서울 종로구 모처에서 1심 소송 결과 및 오케이 레코즈 향후 계획 관련해 기자회견을 개최했다. 민 전 대표가 입장을 밝히고 있다. 서병수 기자 qudtn@edaily.co.kr /2026.02.25/
한국의 대중음악 산업은 1인 프로듀서 중심의 중소 기획사 모델을 넘어, 거대 자본과 인프라를 결합한 글로벌 기업 모델로 비약적인 성장을 이뤘다. 단일 아티스트에게 집중되는 리스크를 분산하고 지속 가능한 성장을 도모하기 위해 대형 기획사들이 ‘레이블’ 체제를 도입한 것은 K팝을 글로벌하게 자리잡는데 지대한 공헌을 하고 있다.
하지만 현재 K팝 산업의 거버넌스는 최근 하이브와 민희진 어도어 전 대표(현 오케이 레코즈 대표) 간의 갈등을 통해 그 문제점을 드러냈다. 이 사태는 단순한 배임 여부를 다투는 일회성 법정 공방이 아니라, 한국 특유의 ‘재벌식 경영 문화’가 엔터테인먼트 산업과 만났을 때 발생할 수 있었던 필연적 명암의 부분이다.
한국의 대형 엔터테인먼트 기업들은 전통적인 재벌 스타일의 수직 계열화 구조를 음악 산업에 이식했다. 모기업은 플랫폼, 글로벌 유통망, 회계, 법무 등 중앙 집중화된 후선 업무를 통제하고, 산하 레이블은 콘텐츠 생산에 집중한다. 이는 품질 관리와 효율성 극대화에 탁월한 장점을 보이며 K팝 산업의 폭발적인 성장의 밑거름이 됐다. 사실 한국형 재벌 스타일의 구조는 산업화 시대에 특유의 효율성과 추진력을 바탕으로 고도성장의 밑거름이 됐다.
문제는 막대한 자본이 투입되는 모기업 입장에선 리스크를 줄이기 위해 ‘이미 성공한 공식’을 다른 산하 레이블의 시스템에 이식하려는 유혹에 빠지기 쉽다는 점이다. 이는 독립성을 본질로 하는 레이블 간의 경계를 무너뜨리고, 시스템과 수치를 앞세우는 전문 경영인의 ‘관리의 논리’가 아티스트의 고유성과 팬덤의 정서를 우선하는 크리에이터의 ‘창조의 논리’와 충돌하는 리스크가 충분히 발생할 수 있는 토양이 조성되게 한다.
그렇다면 이미 수십 년 전부터 거대 레이블 체제를 구축해 온 미국과 유럽은 이 자본과 창작의 관계를 어떻게 규율하고 있을까.
미국 상법과 판례법은 레이블과 아티스트(또는 모기업과 자회사)의 관계를 단순한 갑을 관계가 아닌 엄격한 ‘신뢰 관계(Fiduciary Duty)’로 규정한다. 모기업이 자신의 이익을 위해 특정 레이블의 가치를 훼손하는 결정을 내리면 이는 신뢰 의무 위반이 된다. 특히 캘리포니아 노동법의 ‘7년 법칙(Seven Year Rule)’은 고용 계약을 최대 7년으로 제한하여, 거대 자본이 창작자를 영구적인 족쇄로 묶어두는 것을 방지하고 대등한 재협상의 기회를 보장한다.
지배구조 측면에서도 글로벌 스탠다드는 한국과는 다소 다른 양상이다. 미국 기업법의 표준인 델라웨어 상법은 설령 모기업이 자회사의 지분을 절대적으로 소유하더라도, 다수 주주인 모기업이 소수 주주에 대해 엄격한 신뢰 의무를 진다고 본다. 모기업이 지배력을 남용해 자회사의 기업 기회를 박탈하거나 창의적 리더십을 부당하게 훼손하면 법원은 이를 ‘주주 억압(Shareholder Oppression)’으로 규정하고 가혹한 책임을 묻는다. “지분율이 압도적이니 이사회를 장악하고 마음대로 할 수 있다”는 한국식 회사법의 구조는 해외에서는 쉽게 용인되지 않는 것이다.
최근 K팝 산업 전반에서 벌어지는 경영권 분쟁은, 한국 엔터 산업이 이러한 ‘성숙한 거버넌스’를 돌아볼 수 있게 하는 계기이기도 하다.
K팝이 진정한 글로벌 산업으로 영속하려면 법적·제도적 프레임워크의 혁신이 필요하다. 모기업의 부당한 인사 조치로부터 레이블의 핵심 창작자를 보호할 수 있는 ‘키맨 조항(Key-man Clause)’ 역시 지속적 발전을 위해 필요하다. 그리고 모기업 인사가 이사회를 독점하는 구조를 타파해 독립적인 감시 체계를 갖춰야 한다.
K팝이 전 세계인의 사랑을 받는 이유는 획일화된 시스템에 가둬진 공산품이라서가 아니라, 그 안에서 뿜어져 나오는 고유의 독창성과 사람의 열정 덕분이다. 최근 K팝 산업 전반에서 벌어지는 경영권 분쟁은, 한국 엔터 산업이 이러한 ‘성숙한 거버넌스’를 돌아볼 수 있게 하는 계기이기도 하다.
노종언 변호사 (법무법인 존재) 노종언 변호사 ▶저자 소개=노종언 변호사는 서울대학교 법과대학을 졸업하고 사법시험 합격 후 현재 법무법인 존재의 대표변호사로 재직 중입니다. 구하라,박수홍, 오메가엑스, 선우은숙 사건 등 굵직한 연예계 분쟁을 수행한 엔터테인먼트 분쟁 전문가입니다. 다수의 사건을 수행하며 얻은 현장의 경험을 바탕으로, 엔터테인먼트 법률 이슈에 대한 심도 있는 통찰을 제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