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열했던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선수위원 한국 대표 선발 경쟁의 승자는 ‘골프 여제’ 박인비(35)였다.
대한체육회는 지난 14일 제2차 원로회의를 열고 2024 파리 올림픽 기간 중 열리는 새 IOC 선수위원 선출 투표에 출마할 한국 후보자로 박인비를 추천했다고 밝혔다. 기존에 선수위원으로 활동하던 유승민 위원의 임기가 내년에 끝나면서 한국은 새 IOC 선수위원 출마 후보를 낼 수 있다.
이 자리에 지원한 지원자는 박인비를 비롯해 김소영(배드민턴), 김연경(배구), 이대훈(태권도), 진종오(사격)까지 총 다섯 명이었다. 모두 한국 스포츠를 대표하는 쟁쟁한 스타들이며, IOC 선수위원을 향한 열정도 대단해서 유력 후보 한 명을 꼽기가 쉽지 않았다.
이처럼 치열한 경쟁 속에서 박인비가 평가위원회 만장일치로 가장 높은 점수를 받은 건 유창한 영어 실력을 갖췄고, 면접 평가를 누구보다 꼼꼼하게 준비했기 때문이다.
박인비는 2016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 여자 골프 금메달리스트다. 여자 골프가 112년 만에 올림픽 정식 종목으로 다시 채택된 대회에서 금메달을 따내 역사적인 의미가 컸다. 박인비는 미국여자프로골프(LPGA)투어에서 커리어 그랜드슬램을 일궜고, 명예의 전당에도 입회하는 등 프로에서 이룰 수 있는 거의 모든 것을 이루고도 2020 도쿄 올림픽에 또 한 번 출전했다.
이미 이때부터 박인비는 IOC 선수위원을 염두에 두고 있었다. IOC 선수위원에 출마하려면 선거가 열리는 대회의 직전 대회에 출전한 경력이 있어야 한다.
박인비는 IOC 선수위원을 포함해 ‘선수 은퇴 이후의 단계’에 대해 구체적이고 진지한 고민이 있었고, 이 부분이 면접에서도 잘 나타난 것으로 보인다.
박인비의 매니지먼트사 관계자는 “박인비는 IOC 선수위원을 목표로 했지만, 그 목표가 달성되지 않는다 해도 향후 행정, 외교 측면에서 할 수 있는 영역을 넓히겠다는 목표가 뚜렷했다. 장미란 문체부 차관도 IOC 선수위원은 하지 않았지만 다양한 은퇴 후 활동을 하지 않았나”라며 “선수위원에 도전하는 걸 골프 선수 후배들이 보면, 은퇴 후 더 다양한 꿈을 꾸는데 도움이 될거라는 생각도 컸다”고 설명했다.
지난 10일 진행된 선수위원 후보 평가위원회는 후보별로 영어 자기소개, 영어 면접, 그리고 한국어 면접 순으로 평가가 진행됐다. 박인비는 중학생일 때 미국으로 건너갔고, 선수 생활도 주로 미국에서 했기에 영어가 유창하다.
박인비는 직접 면접 예상 질문을 꼼꼼하게 뽑아서 챙겼다. 매니지먼트사 관계자의 설명에 따르면, IOC의 역사와 활동에 관한 공부를 공들여서 한 것은 물론이고 올림픽 정신과 최근 IOC가 강조하는 올림픽 무브먼트(올림픽 운동)에 관한 스피치도 준비했다. 이 관계자는 “혹시 모를 질문 가능성에 대비해 최근 시사 이슈, 이를테면 잼버리 대회와 관련된 예상 질문과 의견까지 미리 준비해갔다”고 설명했다.
박인비는 ‘침묵의 암살자’라는 별명처럼 골프 경기를 할 때는 냉정하고 조용한 이미지다. 그러나 인터뷰를 할 때 한국어, 영어 모두 막힘 없는 달변에 능한 것으로 유명하다. 이번 평가위원회 당시 취재진과의 인터뷰 때도 “유승민 위원이 선거 때 450㎞를 걷고 체중이 6㎏ 빠졌다는 얘기를 들었는데, 저는 500㎞를 걸어서 10㎏ 감량하는 걸 목표로 해보겠다”고 농담을 섞어 진지한 각오를 말해 취재진을 웃겼다.
열정적인 선거 활동이 선수위원 투표에서 결정적인 역할을 하는데, 박인비가 플레이할 때의 조용한 이미지와 달리 대외 활동을 하거나 인터뷰를 할 때는 스마트하면서도 능숙한 적극성이 충분하다는 뜻이다.
박인비는 꼼꼼한 준비와 공부, 달변에 영어 실력까지 갖춰 면접이라는 평가 방식에서 단연 돋보였던 것으로 분석된다. 박인비는 면접을 마친 후 ‘영어 면접은 완벽하게 본 것 같다’며 자신감을 가졌다는 후문이다.
박인비는 16∼17일 열릴 예정인 대한체육회 선수위원회의 의결 절차를 거치면 IOC 선수위원 한국 후보로 확정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