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세트 내준 한국 (항저우=연합뉴스) 김인철 기자 = 22일 중국 항저우 사오싱 차이나 텍스타일 시티 스포츠센터에서 열린 19회 항저우 아시안게임 남자배구 12강 토너먼트 한국과 파키스탄의 경기. 1세트(19-25)를 내준 한국 선수들이 아쉬워하고 있다. 2023.9.22 yatoya@yna.co.kr/2023-09-22 20:39:41/ <저작권자 ⓒ 1980-2023 ㈜연합뉴스. 무단 전재 재배포 금지.>
가장 큰 대회(아시안게임·AG)에서 한국 배구의 민낯을 확인했다. 현실을 직시해야 하는 상황. 배구인으로서 참담한 마음이다.
한국 여자 배구 대표팀은 지난 4일 열린 2022 항저우 AG 8강 라운드 E조 1차전에서 중국에 세트 스코어 0-3으로 완패하며 4강 진출에 실패했다. 한국 여자 배구가 AG에서 메달을 획득하지 못한 건 2006년 도하 대회 이후 17년 만이자, 역대 두 번째다.
남자 대표팀은 지난달 22일 파키스탄과의 12강 토너먼트에서 0-3으로 패하며 이번 대회가 공식 개회하기도 전에 탈락했다. 1962년 자카르타 대회(5위) 이후 무려 61년 만에 빈손으로 돌아섰다. 남녀 대표팀이 AG 무대에서 동반 ‘노메달’에 그친 건 역대 최초라고 한다.
남녀 대표팀 모두 최근 국제대회에서 거듭 부진한 탓에 위기의식을 갖고 항저우 AG에 임했다. 현실은 우리가 생각했던 것보다 나빴다.
여자 대표팀은 지난 1일 열린 조별리그 첫 경기에서 베트남에 2-3으로 역전패를 당했다. 현장에서 베트남의 경기를 보니, 한국 대표팀에 밀리는 포지션이 없더라. 특히 이 경기에서 최다 득점(24점)을 올린 트란 티 탄 투이는 일본 리그에서 3시즌을 뛰며 경쟁력을 갖춘 선수였다. 한국은 이전까지 중국·일본·태국만 아시아권 경쟁 상대로 삼았다. 이젠 다른 나라들의 전력도 크게 향상됐다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여자 대표팀이 세대교체를 단행하며 과도기에 처했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V리그에서 탁월한 선수가 등장해 대표팀에 합류하거나, 세계적인 명장이 지휘봉을 잡아도 현재 상황에서 드라마틱한 변화를 기대하기 어려워 보인다.
이런 시점에서 AG에서의 전력·전술을 논하는 게 의미가 있을까.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모두 노력해야 한다. 우선 대표팀 운영 시스템을 바꿔야 한다고 본다.
중국·일본·태국은 유소년·청소년, 그리고 성인 대표팀 운영을 일원화하고 있다. 일부 동남아 국가도 마찬가지다. 한국도 이를 참고할 필요가 있다. 현실적인 문제를 고려하면서도, 연령별 대표팀이 유기적으로 연계할 수 있는 시스템을 갖춰야 한다는 얘기다. 어린 선수들은 동경하던 선배와 함께 호흡하는 것만으로도 값진 경험을 얻는다.
성인 대표팀을 맡고 있는 감독이나 코치가 어린 선수들을 직접 보고, 성장을 유도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것도 중요하다. 특히 선수와 직접 호흡하는 코치, 전력 분석·트레인이 전문가가 연령별 대표팀 전반에 영향을 미칠 수 있어야 한다. 그래야 감독이 바뀌어도, 기존 운영 방침이 이어질 수 있을 것이다.
대회마다 방향성을 명확히 설정하는 건 필수다. 일본 여자 대표팀의 경우, 성인 대표팀도 A·B팀으로 나누어져 있다. 2024 파리 올림픽 예선전은 A팀, 아시아선수권과 이번 항저우 AG는 B팀이 출전했다. 한국은 지난여름 발리볼네이션스리그(VNL)부터 아시아선수권·올림픽 예선·AG까지 강행군을 소화했다. 전력 외적인 요소도 이번 AG 메달 획득 실패에 영향이 미쳤다고 본다.
선수들의 의식 변화도 필요하다. 더 이상 동남아 국가를 상대로 우세하다는 의식을 버릴 필요가 있다. 일부 선수는 국제대회를 치르며 자신의 위치를 자각한 것으로 안다. 국내 무대(V리그)에서의 성과에 만족하지 말고, 더 높은 위치로 갈 수 있도록 실력 향상에 욕심을 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