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효 광주FC 감독은 2023년 K리그의 가장 뜨거운 스타다. 광주의 매력적인 공격 축구를 이끌면서 거침없는 언변으로 축구 팬들을 사로잡았다.
지난해 광주(K리그2)에서 프로 사령탑으로 첫발을 뗀 이정효 감독은 2부리그에서도 자신감이 충만했다. ‘초보 감독’ 타이틀을 달고도 기어이 광주의 조기 우승을 확정, K리그 대상 시상식에서 레스터 시티를 언급하며 “우리도 언젠가는 못 할 게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당차게 말했다. 레스터는 2015~16시즌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EPL) 우승팀인데, 영국 매체 데일리 메일은 레스터가 5000분의 1 확률의 동화를 완성했다고 표현했다.
올해 광주가 1부리그에서 레스터 시티를 떠올릴 만한 동화를 써내려갈 것이라고 예상한 이는 거의 없었다. 광주는 K리그1의 12개 팀 중 정규 라운드(33라운드)를 3위로 마쳤고, 2위 등극도 목전에 뒀다. 파이널 라운드 돌입 전에는 “(남은 기간) 시끄럽게 하겠다”고 했는데, 첫판부터 ‘선두’ 울산 현대를 꺾으면서 약속을 지켰다.
이정효 감독은 여전히 한편의 동화를 꿈꾼다. 그는 본지와 인터뷰에서 “레스터가 (우승 확률이) 0.001%라고 했는데, (내년에) 투자가 더 된다면 우리도 레스터 못지않게 도전할 것이다. 지금 선수들을 지키고, 스쿼드가 더 강해지면 정말 도전해 봐야 한다. 적당히 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그의 목소리에는 언제나 그랬듯 자신이 넘쳤다. 그도 그럴 것이 K리그2에서 최단기간 우승 확정 등 새 역사를 쓴 광주는 K리그1에서도 전 구단을 상대로 승리하는 등 뚜렷한 성과를 냈다. 경쟁 팀보다 선수단 규모가 작아 더욱 빛난다.
이정효 감독은 “K리그2에서도 (전 구단 상대 승리를) 했는데, K리그1에서도 정말 해보고 싶었다. 특정 팀을 상대로 먹이사슬처럼, 징크스처럼 지는 게 가장 싫다. 실력이 있는데 왜 굳이 징크스에 연연할까라는 생각을 했다. 우리가 전 구단 상대 승리를 해냈으니 이 팀(광주)은 이길 방법을 찾기 힘들다는 게 증명된 것 아닌가. 그런 뜻에서 전 구단 승리가 의미 있다”고 자부했다. 이 감독은 이기기 힘들었던 팀으로 울산, 포항 스틸러스, 전북 현대 등을 꼽았다.
이정효 감독의 인터뷰와 리액션은 늘 화제였다. 특히 이 감독은 지난 3월 FC서울에 패한 후 ‘저렇게 축구하는 팀에 졌다’는 수위 높은 발언으로 K리그를 발칵 뒤집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사과했지만, 그의 코멘트는 한참이나 회자했다.
선수들이 득점해도 만족하지 않고 그라운드 내에서 불같이 화내는 모습이 여러 차례 중계 화면에 잡힌 것은 팬들에게 흥미 요소가 됐다. 그 덕에 이 감독은 ‘K-모리뉴(조제 모리뉴)’란 별명을 얻었고, 광주 팬들이 그의 리액션을 가까이서 보기 위해 벤치 뒤 자리를 선점하는 일이 벌어지고 있다.
이정효 감독은 “그 자리가 그렇게 빨리 나간다는 것은 그만큼 광주FC에 관심이 많아진 거로 생각한다. 긍정적으로 본다. 의식해서 리액션 하는 건 아닌데, 그 시간에 약간 축구에 미쳐 있다. 나도 보면서 저러지 말아야지 하고 들어가는데, 안 되더라”라며 “(K-모리뉴보단) 자상한 면이 있어서 효버지(이정효+아버지)가 나은 것 같다. 내 이름에 효도 효(孝)자를 쓴다. (효버지란 별명이) 내게 더 맞는 것 같다”며 웃었다.
축구 외골수로 통하는 이정효 감독의 MBTI(성격 유형 검사)는 뭘까. 그는 “INTJ다. 현실주의자라고 하더라. 나는 지나간 것은 금방 잊는다. 우리가 골을 먹히면 앞으로 골을 어떻게 넣을지 밖에 생각하지 않는다. 내가 잘하는 거에 시간을 투자하는 스타일”이라고 했다.
‘용의주도한 전략가’로 불리는 INTJ의 특성은 이정효 감독을 대변한다. 매사에 자신감이 넘치고 직설적인 편이다. 남들이 보기엔 터무니없다고 느낄 수 있는 이상을 꿈꾸지만, 가능성을 믿고 도전하는 스타일이다. 단 현실은 냉정히 짚는다. 평소에 치밀하기도 한 성격 유형이다.
축구계를 달군 이정효 감독의 다소 과한 언사도 어느 정도 계획된 것이었다. 이 감독은 “(2023시즌이) 처음 시작될 때, 광주 선수들을 어떻게 하면 미디어, 팬들에게 어필할 수 있을까 생각을 많이 했다. 내가 욕을 먹더라도 총대 메고 이슈를 만들어 보자고 생각했다. 본의 아니게 서울전에 선을 넘었는데, 나중에는 노이즈 효과라고 생각했다”고 했다.
레스터처럼 기적을 만들려면, 당연히 투자가 따라와야 한다고 짚었다. 이정효 감독은 구단에 “투자를 해주셨으면 좋겠다. 만약 성적이 안 좋으면 내가 책임질 것이다. 먼저 투자해야 한다. 결과가 좋아야 투자한다는 기조는 이제 바뀌었으면 좋겠다. 셀링 클럽(유망주를 육성한 뒤 다른 팀에 팔아 이적료를 받는 팀)도 좋지만, 기본적인 투자는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감독은 구단 상징색인 노란색과 연관된 기업의 이름을 열거하며 투자를 갈망했다.
프로팀 감독 2년 차에 경쟁력을 증명한 이정효 감독은 빅클럽에 갈 사령탑으로 꼽힌다. 몇몇 팬은 이 감독이 국가대표 감독도 맡아야 한다는 목소리도 낸다. 그러나 이 감독은 “나는 클럽팀 감독이 가장 좋다. 매일매일 선수들이 성장하는 거 보고 싶다. 전술적으로 계속 부딪히고 선수들과 매일 매일 같이 지내는 등 현장감 있게 하고 싶다”고 속내를 전했다.
“우리는 볼을 소유하는 게 아니라 공간을 소유한다”고 광주 축구를 정의한 이정효 감독은 시즌 전 목표였던 ‘33라운드 15승’을 이루며 팀을 파이널A(K리그1 상위 6개 팀)로 이끌었다. 현재는 K리그1의 최종 2위까지 나갈 수 있는 2024~25시즌 아시아축구연맹(AFC) 챔피언스리그(ACL) 엘리트 출전 티켓을 두고 포항과 치열하게 경쟁 중이다. 지난해 2부리그에서도 의심받던 광주를 가장 뜨거운 팀으로 변모시켰지만, 그는 여전히 배고프다.
이정효 감독은 “광주 구단, 선수들, 내 이름을 축구계에 조금 소란스럽고 야단스럽게 알렸다”며 “(올 시즌을 정리하면) ‘이 정도 했으니 관심 좀 가져 주세요’ ‘직관해 주세요’ 이 정도”라고 표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