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트넘의 손흥민(31), 파리 생제르맹의 이강인(22), 바이에른 뮌헨의 김민재(27)와 울버햄프턴의 황희찬(27). 유럽 명문 구단에서 활약하는 선수들이 축구 대표팀에 대거 포진한 건 한국 축구 역사상 처음 있는 일이다. 이들 '판타스틱 4'는 A매치 때마다 ‘한 수 위’ 경기력을 자랑하고 있다.
위르겐 클린스만 감독이 이끄는 한국은 지난 21일 중국 광둥성 선전 유니버시아드 스포츠 센터에서 열린 중국과의 2026 국제축구연맹(FIFA) 북중미 월드컵 아시아 2차 예선 C조 2차전에서 3-0으로 완승했다. 월드컵 2차 예선 2연승이다.
‘주장’ 손흥민이 2골 1도움, ‘신성’ 이강인이 1도움을 보탰다. 황희찬은 시작 10분 만에 페널티킥(PK)을 유도했고, 김민재는 인터셉트 8회를 뽐내며 중국 4만 관중의 야유를 침묵시켰다.
최근 대표팀 ‘판타스틱 4’는 파죽지세다. 한국은 중국전 승리로 공식전 5연승을 질주했다. 해당 기간 19득점 0실점의 완벽한 기록이다. 9월 웨일스전(0-0 무)까지 포함하면 6경기 연속 무실점이다.
이들의 활약이 반가운 이유가 있다. 한국은 내년 1월 카타르에서 열리는 2023 아시아축구연맹(AFC) 아시안컵 우승을 노린다. 판타스틱4의 활약에 한국은 64년 만의 우승 꿈을 부풀리고 있다.
한국은 '아시아의 맹주'라는 말이 무색하게 아시안컵에서 힘을 쓰지 못했다. 1956년과 1960년 우승 이후 우승이 없고, 결승 무대를 밟은 건 1988년과 2015년 두 차례에 불과하다. 직전 2019년 아랍에미리트(UAE) 대회에선 8강에서 카타르에 0-1로 패하며 자존심을 구겼다.
한국은 아시안컵 때마다 상대 밀집수비에 고전했다. 월드컵 아시아 예선에서도 비슷한 양상이 나올 때가 많았고, 가까스로 월드컵 본선행 티켓을 따낸 기억도 있다.
하지만 현재 대표팀은 완전히 다르다. 최근 보여주는 시원한 골 잔치가 이를 증명한다. 지난 16일 열린 아시아 2차 예선 싱가포르전에서 상대는 필드 플레이어 10명이 하프라인 뒤에 머물면서 이른바 '텐 백 수비'를 펼쳤다.
전반까지만 해도 답답한 흐름이 이어졌는데, 이걸 이강인이 개인 기량으로 깨버렸다. 자로 잰 듯한 로빙 패스를 조규성(미트윌란)에게 건넸고, 선제골이 터지면서 분위기가 바뀌었다.
한국은 후반전이 시작하자마자 황희찬의 헤더 골, 손흥민 특유의 왼발 감아차기 골이 터져 싱가포르 수비를 무력화했다. 경기 막바지엔 이강인이 벼락 같은 왼발 쐐기 골을 책임지며 5-0 대승을 완성했다.
중국전은 상대의 거친 플레이가 우려된 한판이었다. 중국 홈 관중은 경기 전 애국가가 연주될 때 야유를 하는 비매너 응원을 했고, 한국 선수들을 향해 초록색 레이저를 쐈다.
그러나 한국은 세트피스로 중국의 거친 플레이를 넘어섰다. 상대의 거친 플레이를 이용해 페널티킥을 얻어내며 손흥민이 첫 골을 넣었고, 두 번째 득점은 이강인의 코너킥에 이은 손흥민의 헤더로 만들었다.
경기 후 손흥민은 “여러 세트피스 공격을 연습하고 있다. 운이 좋은 득점이었지만, 박용우(알 아인)의 스크린, 이강인의 패스가 좋았다”라고 미소지었다.
수비를 책임진 김민재의 활약도 빼놓을 수 없다. 중국이 역습에 나서거나 슈팅 기회를 잡았을 때, 김민재가 그들의 앞을 막았다. 김민재는 이날 인터셉트 8회를 기록하는 등 중국의 공격을 원천 차단했다. 김민재는 지난 6월 기초군사훈련 일정 탓에 A매치를 소화하지 못했는데, 그가 돌아온 뒤 한국은 6경기에서 모두 무실점을 기록했다.
한 수 아래 전력의 팀을 상대할 때 이 기회를 놓치지 않고 승점 3점을 확실하게 따내는 게 강팀의 조건이다. 그런 점에서 최근 한국은 다양한 공격 옵션을 선보이며 아시아 국가들을 제압했다. 여기에 세트피스 득점까지 터지면서 클린스만 감독의 ‘공격 축구’가 자리 잡고 있는 모양새다.
아시안컵 한국의 조별리그 상대인 바레인(FIFA랭킹 83위), 요르단(82위), 말레이시아(137위)는 모두 한 수 아래 전력으로 평가받는다. 한국의 화려한 경기력이 기대되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