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르겐 클린스만(독일)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이 2023 아시아축구연맹(AFC) 아시안컵 졸전의 이유로 손흥민(토트넘)과 이강인(파리 생제르맹)의 선수단 내 불화를 지목한 것으로 전해졌다. 국가대표 전력강화위원들의 전술적인 문제 지적에 대해서는 동의하지 않았다.
황보관 대한축구협회 기술본부장은 15일 서울 신문로 축구회관에서 열린 전력강화위원회 브리핑에서 ‘아시안컵 실패의 원인으로 손흥민과 이강인을 지적했다는 이야기가 있다’는 취재진 질문에 “그 내용도 클린스만 감독이 이야기를 했다. 선수단 내에 불화가 있었고, 그 부분이 경기력에 영향이 있었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황보 본부장은 “(클린스만 감독이) 선수단 핑계를 댔다기보다는, 그것 때문에 경기력이 안 좋았다고 했다”고 덧붙였다. 아시안컵 실패의 원인으로까지 지목한 건 아니었으나, 손흥민과 이강인의 다툼 사건이 4강 경기력에 영향을 끼쳤다는 게 클린스만 감독의 설명으로 풀이된다.
앞서 영국 더선은 손흥민과 이강인이 아시안컵 4강 요르단전을 앞두고 충돌을 빚었고, 이 과정에서 손흥민의 손가락이 탈구됐다고 전했다. 손흥민은 식사 자리가 팀 단합의 장이라고 본 반면, 이강인 등 막내급 선수들은 식사 자리를 떠나 탁구를 쳐 언쟁이 있었다는 보도다. 대한축구협회는 이같은 갈등 소식을 곧바로 인정했고, 이후 후속 보도들을 통해 이강인이 손흥민의 얼굴에 주먹을 날렸다는 소식까지 전해져 논란이 됐다. 이강인은 개인 소셜 미디어(SNS)를 통해 손흥민과 갈등에 대해 사과하면서도 대리인을 통해 "손흥민의 얼굴에 주먹을 날린 건 아니"라고 선을 그었다.
문제는 손흥민과 이강인의 이같은 논란은 아시안컵 4강 요르단전을 앞두고 발생했고, 클린스만호의 아시안컵 부진은 대회 전체에 걸쳐 지속됐다는 점이다. 설령 손흥민과 이강인의 불화가 대표팀 경기력에 악영향을 끼쳐 4강 경기력이 좋지 않았을지언정, 아시안컵 전반에 걸친 부진을 설명하진 못한다. 손흥민과 이강인의 불화가 생긴 것 역시 클린스만 감독이 그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는 문제다.
더구나 클린스만 감독은 자신의 전술적인 문제에 대해서는 조금도 인정하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황보관 본부장은 ‘클린스만 감독이 아시안컵 실패의 원인으로 자신의 전술 부재 등에 대해서는 인정을 안 했는지’에 대한 질문에 “전력강화위원들은 그 부분을 중점적으로 이야기했다”면서도 “클린스만 감독은 그 부분에 대해서는 인정하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실제 황보 위원장에 따르면 전력강화위원들은 요르단과 4강전 전술적인 문제 등을 지적한 것으로 전해졌다. 앞서 조별리그에서 한 차례 만나 2-2로 비긴 뒤 재대결을 펼쳤는데도 이렇다 할 상대 대응 등 맞춤 전술이 없었다는 지적이었다. 뿐만 아니라 대회 내내 클린스만 감독의 전술적인 역량은 조금도 두드러지지 못했다. 선수 개개인의 역량에만 의존하는 이른바 ‘해줘 축구’라는 비아냥이 돌았던 것 역시 같은 맥락이었다.
역대 최고 전력을 이끌고도 우승에 실패한 결과뿐만 아니라, 아시안컵 전반에 걸친 부진에 대해 자신의 책임을 통감하고 반성이나 사과를 해도 모자란 상황. 더구나 대표팀 감독으로서 자신의 거취가 도마 위에 올라 있는 상황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팬들 입장에선 황당할 수밖에 없는 해명이기도 했다.
결국 전력강화위원들에겐 클린스만 감독을 해임해야 하는 사유들로 꼽혔다. 황보관 본부장에 따르면 이날 전력강화위원들은 부족했던 전술 준비, 팀 분위기나 내부 갈등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팀의 규율과 기준을 제시하지 못한 점 등을 비판했다. 여기에 선수 발굴을 적극적으로 하지 않았고, 국민들을 무시하는 듯한 근무 태도에 대해서도 지적했다.
이날 전력강화위원회도 대표팀 감독 교체가 필요하다는 의견으로 정리해 정몽규 대한축구협회장에게 건의하기로 했다. 전력강화위원회는 의결권 없이 조언·자문만 하는 역할이라 클린스만 감독의 해임을 직접 결정할 수는 없다. 정몽규 회장 등 집행부 차원에서 전력강화위원회의 의견을 거부할 수는 있다.
다만 클린스만 감독을 향한 여론이 워낙 들끓고 있는 데다, 이날 전력강화위원회에서조차 경질 의견이 나오면서 사실상 경질에 임박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클린스만 감독의 선임에 가장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게 바로 정몽규 회장이었으니, 그에 대한 책임 차원에서라도 경질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전망이다. 만에 하나 여론과 전력강화위원회 의견을 무시한 채 동행을 결정하면 그야말로 엄청난 후폭풍이 정 회장과 대한축구협회에 몰아치는 건 당연한 수순이다.
전력강화위원회는 최대한 빨리 정몽규 회장에게 이같은 의견을 정리해 보고할 예정이다. 정몽규 회장은 이르면 다음 주쯤 최종 결단을 내릴 것으로 보인다. 이번 경질로 대한축구협회가 부담해야 하는 위약금은 클린스만 감독과 코치진을 포함해 100억원대에 달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선임 당시부터 의구심이 컸던 감독을 독단적으로 선임한 것에 대한 대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