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가 새로운 수장을 중심으로 다시 기지개를 켜고 있다. 삼성전자는 반도체 업황 회복으로 TSMC를 따돌리고 다시 ‘글로벌 반도체 매출 1위’ 자리를 탈환했다. 여기에 전영현 삼성전자 부회장은 고대역폭 메모리(HBM) 시장에서의 열세를 극복하기 위해 근원적인 경쟁력 회복을 선언하며 새로운 전략을 제시했다.
‘HBM 참사’ 막을 CORE 워크 승부수
4일 업계에 따르면 삼성전자가 반도체 사업을 담당하는 디바이스솔루션(DS) 부문에서 반등하며 분기 영업이익 10조원대를 회복했다.
삼성전자는 올해 2분기 매출 74조683억원, 영업이익 10조4439억원을 기록했다. 영업이익이 10조원을 넘어선 건 2022년 3분기(10조8520억원) 이후 처음이다.
무엇보다 지난해 15조원에 가까운 대규모 적자를 기록했던 DS 부문이 살아난 게 고무적이다. DS 부문의 2분기 매출은 28조5600억원, 영업이익은 6조4500억원을 기록했다. 범용 D램의 공급 증가와 가격 상승이 호실적을 견인했다.
글로벌 반도체 사이클이 다시 상승 국면에 접어들었고, D램의 수요가 증가하고 있어 삼성전자에 우호적인 분위기가 연출되고 있다. 인공지능(AI) 시대로 접어들면서 서버 투자가 확대되고 있고 덩달아 고성능·고용량 D램과 낸드 수요가 급증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이로 인해 범용 D램 공급자가 다시 주목받고 있다.
김동원 KB증권 연구원은 “범용 D램 매출 비중은 올해 1분기 52%까지 증가했고, 4분기에는 66%까지 확대될 것으로 보인다. 현재 반도체 사이클에서 '나무(HBM)보다 숲(범용 D램)'을 보는 전략이 필요하다”고 분석했다.
삼성전자의 반도체 수장인 전영현 부회장은 반등하는 업황에 기대지 않고 새로운 전략으로 이 기세를 이어나갈 계획이다. 우선 전 부회장은 DS 부문장에 오른 후 처음으로 직원들에게 공식적인 메시지를 내는 등 근원적인 경쟁력 회복을 선언했다.
그는 지난 1일 사내 게시판에 “2분기 실적 개선은 근본적인 경쟁력 회복보다는 시황이 좋아진 데 따른 것이다. 근원적 경쟁력 회복 없이 시황에 의존하다 보면 또다시 작년 같은 상황이 되풀이되는 악순환에 빠질 수밖에 없다”고 밝혔다.
이에 그는 반도체 신 조직문화 ‘C.O.R.E. 워크’를 제시했다. 반도체 고유의 치열한 토론 문화 재건을 통해 ‘HBM 참사’를 되풀이하지 않겠다는 의지다. CORE 워크는 문제 해결·조직간 시너지를 위해 소통하고(Communicate), 직급·직책과 무관한 치열한 토론으로 결론을 도출하며(Openly Discuss), 문제를 솔직하게 드러내(Reveal) 데이터를 기반으로 의사 결정하고 철저하게 실행한다는(Execute) 의미다.
업계 관계자는 “삼성전자가 경영진의 잘못된 판단으로 HBM 분야에서 경쟁사 대비 시장 대응이 부족했다는 지적이 나왔다”며 “‘민첩하게 움직이고 철저하게 실행한다’는 의미를 함축하고 있는 신 조직문화 전략은 이런 과오를 반복하지 않겠다는 경영진의 의지로 풀이된다”고 해석했다.
2년 만에 글로벌 반도체 매출 1위 탈환
삼성전자는 DS 부문에서 경쟁사 TSMC에 빼앗겼던 ‘왕좌’를 되찾았다. 올해 2분기 매출 28조5600억원의 삼성전자는 TSMC의 매출 28조5000억원을 근소하게 추월하며 2022년 2분기 이후 2년 만에 글로벌 반도체 매출 1위 자리를 탈환했다.
범용 D램의 공급이 증가하고 있는 가운데 삼성전자는 이제 HBM 공급만 계획대로 이뤄진다면 완연한 궤도에 오를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아직 5세대 HBM인 HBM3E 제품에 대한 엔디비아의 품질 테스트를 통과하지 못했지만 자신감을 드러내고 있다.
김재준 삼성전자 메모리사업부 전략마케팅실장(부사장)은 "HBM3E 8단 제품은 고객사 평가를 정상적으로 진행 중이며 3분기 중 양산 공급이 본격화될 예정"이라며 "HBM3E 12단 제품 역시 복수의 고객사 요청 일정에 맞춰 하반기에 공급을 확대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삼성전자가 HBM 공급 시점까지 구체적으로 언급한 만큼 기대감은 높아지고 있다. HBM은 통상 사전에 고객사와 맺은 계약을 토대로 공급 물량을 결정하기 때문에 삼성전자가 고객사를 이미 확보했다는 의미로 해석되고 있다. 삼성전자는 하반기 HBM 매출 비중이 상반기 대비 3.5배 늘어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다만 김재준 부사장은 엔비디아 품질 테스트 통과 여부에 대해서 “고객사와의 비밀유지계약 준수를 위해 언급할 수 없다”고 했다.
노동조합의 압박에서도 벗어나 한숨을 돌리게 됐다. 전국삼성전자노동조합(이하 전삼노)는 총파업 25일 차인 지난 1일 현업 복귀를 결정했다. 삼성전자 창사 이후 첫 파업이라는 변수는 다행히 생산에 큰 차질을 끼치지 않았다.
임금 교섭이 타결되지 않아 ‘노조 리스크’는 여전하지만 삼성전자는 반등의 동력 강화를 위해 원만한 해결에 최선을 다한다는 입장이다. DS 부문 영업이익이 상반기에만 8조3600억원으로 좋은 분위기가 이어지고 있다.
전 부회장은 “당초 경영계획 목표 영업이익 11조5000억원을 달성할 경우 초과이익성과급(OPI) 지급률이 0~3%다. 하지만 현재 반도체 시황이 회복되고 있어 모든 임직원이 함께 노력한다면 OPI 지급률은 당초 예상보다 상당히 높을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