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말 대단한 판이었잖아요. 그런 판에 낄 수 있었다는 자체가, 대사처럼 ‘지은이 크게 한번 놀았다’ 싶어요. 감사할 따름이죠.”
어느덧 배우로서도 14년 차, 아이유가 ‘폭싹 속았수다’를 통해 70년 세월을 아우른 시간여행을 마쳤다. 시대를 주름잡은 ‘국민 여동생’ 가수는 언젠가는 소녀였던 엄마를, 그리고 이 시대를 살아가는 여성의 면면을 고스란히 보여주며 온전히 배우로서 또 한 계단 올랐다.
‘폭싹 속았수다’는 제주에서 태어난 애순과 관식의 모험 가득한 일생을 사계절로 풀어낸 작품이다. 탄탄한 극본과 배우들의 열연으로 호평 받으며 공개 3주차엔 글로벌 톱10 시리즈(비영어) 부문 1위를 기록하기도 했다. 극중 아이유는 주인공 애순의 청년 시절과 그의 딸 금명 역을 소화했다.
아이유는 최근 일간스포츠와 인터뷰에서 “많은 분들과 공감대가 형성됐다는 게 보람있고 행복하다”며 “넷플릭스 시리즈는 처음이라 흥행 기준은 잘 모르지만, 홍보 스케줄에서 뵙는 관계자들 표정이 매주 좋아져서 잘 되고 있구나 싶었다”고 뿌듯한 소감을 전했다.
“작가님을 만나 대략적인 설명을 듣는데 너무 가슴이 뛰었어요. 얼른 대본을 읽고 싶어 대화에 집중이 안 될 정도였죠. 그 정도로 심장을 때리는 소재와 이야기라 곧장 집에서 대본을 호로록 읽고 출연하겠다고 말씀드렸어요.”
아이유는 극본을 쓴 임상춘 작가가 드라마 제작이 확정되기 전부터 낙점해 둔 애순이자 금명이었다. 그는 “첫 미팅에서 2인 1역이자 1인 2역이라는 설명을 해주셨다. 그 부분이 제 심장을 뛰게 했다”며 “걱정도 있었지만 대본을 굳건히 믿고 있었고 김원석 감독님이 연출하신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더더욱 ‘나 혼자만의 외로운 작업이 되지 않겠다’고 믿는 구석이 많았다”고 출연 계기를 말했다. 아이유는 전작 ‘나의 아저씨’에서 김원석 감독과 호흡을 맞췄다.
당시 삶에 시든 얼굴을 보여주며 연기폭을 넓힌 아이유는 이번 작품에선 문학소녀 애순이 꿈을 뒤로하고 엄마가 되는 과정부터, 그의 딸 금명이 기대 속 흔들리면서 꿈을 이루는 모습까지 10대부터 중년의 모습을 폭넓게 소화했다.
자신이 지내보지 않은 세월, 애순은 먼저 그 길을 간 이들을 참고했다. 아이유는 “저희 어머니 역시 애순처럼 소녀스러우면서도 강인한 분”이라며 “세상을 아름답게 대하는 자세에서 알게 모르게 어머니를 떠올리며 연기한 것 같다”고 말했다. 또한 젊은 엄마의 임신, 출산, 육아 연기를 위해 주변 경험자들의 조언을 구했다면서도 “가장 길잡이가 되어준 건 대본 그 자체였다. 마치 이미 완성된 드라마를 보는 듯 묘사가 상세했기에 떠오르는 대로 구현하는 게 1순위였다”고 부연했다.
애순의 남편인 관식에 대해선 ‘팬’이라면서 “현실적이면서도 판타지스러운 인물인데 애순도 관식을 공평하게 사랑한 것 같다”며 “실제로 어진 성정의 박보검이 관식이를 맡아줘서 시너지가 나올 수 있었다”고 치켜세웠다.
그런가 하면 금명은 스스로에게서 발견했다. 아이유는 “어릴 땐 금명이 같은 구석이 있었다. 애교스럽지 못했던 딸인데 20대 중반을 넘어서면서는 부모님을 자주 뵙고 사랑한다는 말도 습관처럼 하게 됐다”며 “서른 넘은 지금은 금명의 심경을 알면서도 ‘후회할 텐데’ 싶은 언니의 마음으로 보게 됐다. 철든 시점 금명이 가시 돋친 말을 후회하는 내레이션도 나오기에 입체적으로 표현하고자 했다”고 설명했다.
“나의 성공에 따라서 우리 식구의 가세가 달려있다는 부담이 느껴졌던 순간이 제게도 있었어요. ‘애순이는 그런 걸 네게 기대하고 지원한 게 아니야’ 싶어도 ‘무조건 성공을 보여줘야해’ 하는 금명의 심정에 이입이 됐죠.”
열여섯에 데뷔해 산전수전 겪으며 정상에 오른 아이유다. 왕관의 무게만큼 우여곡절이 매 순간 따랐다. 아이유는 “데뷔할 때는 오랫동안 큰 사랑을 받을 수 있을 거라고 예상하지 못했다”며 “‘그건 오해인데’ 싶은 일이 없던 건 아니지만 실제보다 더 저를 좋게 봐주시는 분들이 더 많다고 생각한다. 공연이든 작품이든 정신 못 차릴 정도로 사랑을 보내주시는 게 더 크다”고 웃었다.
‘폭싹 속았수다’를 통해 또 한 번 성장했다고 자평했다. 아이유는 “이 정도 긴 호흡의 촬영은 처음이라 돌아오면 지쳐 쓰러져 잠들 때가 많았지만 아쉽고 힘든 적은 없었다. 매일을 꼬박 잘하자는 마음으로 현장에 임해 보람있었다”고 말했다.
“스스로 끈기를 테스트하고 싶어서 ‘이게 힘들어?’하며 몰아붙이곤 했어요. 그 하루하루가 제겐 좋은 훈련이 됐고 제 자신과 약속을 지켜 자기애도 생길 수 있던 시간이었습니다.”
이주인 기자 juin27@edaily.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