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작 ‘휴민트’로 돌아온 류승완 감독은 자신과 작품을 향한 대중의 높은 기대감에 대한 생각을 묻자 이렇게 답했다. 그는 최근 진행한 일간스포츠와 인터뷰에서 “기대가 낮은 것보단 (높은 게) 낫지 않느냐”며 “한 대도 안 맞고 세계 챔피언이 되는 경우는 없다. 내가 지금까지 올 수 있었던 건 돌이켜 보면 비판적인 시선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지난 11일 개봉한 ‘휴민트’는 블라디보스토크에서 만난 국정원 요원 조 과장(조인성)과 북한 보위성 조장 박건(박정민)이 각기 다른 목적을 품고 채선화(신세경)을 구하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첩보 액션물이다. 블라디보스토크라는 이국적 배경과 남북한의 대립을 그린다는 점에서 2013년 개봉한 류 감독의 전작 ‘베를린’이 얼핏 떠오르지만, ‘휴민트’는 의외의 멜로 감성을 더해 전혀 다른 색채를 가진 작품으로 완성됐다. 류 감독은 “멜로 서사에 이렇게 반응이 올 줄은 몰랐다”며 웃었다.
“이번 영화는 찍으면서 특별했던 게 박건과 채선화 말고도 모든 인물에 집중했어요. 특히 이별에 대해 많이 생각했죠. ‘베를린’도 이별하는 얘기인데 그때와 지금은 다른 거 같아요. 관계의 이별, 사람이 떠나갈 때 어떻게 헤어져야 하는가 그런 생각을 많이 했어요. 아마 감정적인 선이 다르게 느껴지지 않았나 싶어요.”
사진=NEW 제공사진=NEW 제공 ‘모가디슈’, ‘밀수’에 이어 세 번째로 호흡한 조인성에게는 각별한 애정과 신뢰를 드러냈다. 류 감독은 “공교롭게도 조인성과 몇 년간 일하면서 같은 성장의 궤를 그리고 있다”며 “점점 더 단단하게 발전하는 모습을 보면서 뺄셈의 연기를 할 수 있는 내공 있는 배우란 생각이 든다. 보면 볼수록 ‘참 나이를 잘 먹는구나’, ‘품위 있게 시간을 쌓아 가는구나’ 싶다”고 극찬했다.
류 감독은 2000년 장편 영화 ‘죽거나 혹은 나쁘거나’를 시작으로 ‘아라한 장풍대작전’, ‘주먹이 운다’, ‘부당거래’ 등 다수의 액션 영화를 만들었고, 2015년에는 ‘베테랑’으로 천만 감독에 등극하며 한국 영화계에 굵직한 족적을 남겼다. ‘액션의 대가’라고 불리는 그지만 “어떤 작품이든 매번 쉬운 건 없었다”고 솔직히 털어놨다. ‘휴민트’ 역시 ‘베를린’과 비슷한 배경과 소재를 다루면서 어떻게 차별화를 만들어낼지 고민했다는 류 감독.
“현란한 기교보다는 본질에 충실했어요. 속도는 조금 느리지만 인물과 감정선에 집중했고 후반부는 정신없이 몰아붙이는, 고전적이지만 현대적인 패턴으로 만들고 싶었어요. 익숙한 것과 새로운 것의 균형을 맞추는 게 굉장히 큰 숙제였죠.”
류 감독은 충무로를 대표하는 감독으로서 침체기를 겪고 있는 한국 영화계에 대한 걱정을 내비치면서도 여전히 극장을 찾는 관객들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했다.
“코로나 이후 서울 시내 목욕탕이 50%가 사라졌다는 말을 들었어요. 목욕탕을 다녀본 세대가 아니면 ‘안 가도 사는데 왜 가’ 하겠죠. 시대의 흐름이 바뀌는 걸 어쩌겠어요? 극장도 비슷한 것 같아요. 그럼에도 영화를 보러 와 주시는 분들이 만드는 사람 입장에선 너무 감사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