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박지훈이 19일 오전 서울 용산구 CGV 용산아이파크몰에서 열린 영화 '왕과 사는 남자' 제작보고회에 참석해 포토타임을 갖고 있다. 서병수 기자 qudtn@edaily.co.kr /2025.12.19/
“혹시 꿈에서라도 단종을 뵙게 된다면, 넙죽 엎드려 영화를 보셨는지 묻고 싶어요. 절 보고 웃어주신다면 정말 행복할 것 같아요.”
이쯤 되면 단종도 수긍할 만한 성취다. 배우 박지훈이 견고한 스타성과 축적된 연기 내공을 바탕으로 극장가 ‘단종 열풍’을 일으키고 있다. 그의 활약 속 ‘왕과 사는 남자’ 흥행에는 가속도가 붙었고, 박지훈은 배우 커리어 최고점을 경신했다.
3일 영진위 영화관입장권 통합전산망에 따르면 영화 ‘왕과 사는 남자’(이하 ‘왕사남’)는 3.1절 연휴(2월 27일~3월 2일) 나흘간 247만 9933명의 관객을 추가, 누적관객수 921만 3368만명을 기록하며 1000만 달성 초읽기에 들어갔다.
◇단종 이홍위, ‘왕사남’ 흥행 일등 공신
여느 영화가 그렇듯 ‘왕사남’의 흥행에도 복합적 요인이 작용했다. 하지만 핵심 추동력을 하나 꼽으라면, 단연 서사의 시작이자 끝, 그리고 중심으로 활약한 박지훈이다. 지난달 4일 개봉한 ‘왕사남’은 ‘강물에 버려진 단종의 시신을 영월호장 엄흥도가 수습했다’는 사료의 단편적 기록에서 출발한 작품으로, 단종의 마지막 순간을 재구성했다. 극중 박지훈은 단종 이홍위 역을 맡았다.
개봉 전 남다른 스타성으로 작품의 화제성을 견인했던 박지훈은 영화 개봉 후 입소문의 진원지가 됐다. 노력의 결과였다. 박지훈은 어린 군주의 고통과 피폐함을 체현하기 위해 두 달간 사과로 버티며 15kg을 감량했고, 촬영 중에는 수분 섭취까지 제한했다. 그는 인물의 결핍을 형상화한 일련의 과정을 통해 관객이 이홍위의 고통을 직관적으로 체감하도록 만들었다.
물론 박지훈의 연기가 외형적 재현에만 머문 것은 아니다. 역사의 공백이 상상적 서사로 확장되며 ‘왕사남’ 속 단종은 수동적 희생자에서 능동적 주체로 재해석됐다. 박지훈은 깊이 있는 시선과 절제된 발성으로 단종을 연약한 군주에서 역사를 바로잡고자 하는 강인한 리더로, 백성들과 함께 걷는 평등한 지도자로 설득력 있게 그려냈다. 또 왕의 위엄에 소년의 천진성을 유기적으로 교차시키며 관객의 보호본능을 자극하고, 서사의 밀도를 높였다.
김성수 대중문화 평론가는 “박지훈은 유약한 자로서 단종의 투정부터 정의로운 군주로서 신념까지 모두 보였다. 엔딩 장면이 설득력 있게 다가온 이유도 모두 박지훈의 연기 덕”이라며 “박지훈이 그동안 액션을 잘하는 배우였다면 ‘왕사남’을 통해서는 깊이 있는 리액션의 연기를 보여줬다. 자신의 감정을 단순히 주는 게 아니라 상대의 감정, 행동을 느낀 후 자기 정체성 안에서 반응했다”고 평했다.
사진=엠넷·웨이브·쇼박스 제공◇저장남→단종오빠, ‘소년 3대장’ 완성
박지훈은 이번 작품으로 커리어 최고점을 경신하며, 필모그래피 속 ‘소년의 성장’을 성공적으로 완주했다. 대중이 기억하는 그의 첫 번째 얼굴은 엠넷 오디션 프로그램 ‘프로듀스 101’ 시즌2(2017)의 ‘저장남’이었다. 당시 박지훈은 앳되고 해말간 얼굴로 “내 마음속에 저장”이란 상징적 유행어를 남겼다. 이후 파생 그룹 워너원의 주축 멤버로 팀을 이끄는 동안에도 그의 셀링 포인트는 소년의 순수함과 해사함이었다.
이미지가 전환된 건 2022년 공개된 웨이브 시리즈 ‘약한영웅 클래스1’을 통해서였다. 박지훈은 서열 다툼과 암묵적 룰이 공존하는 교실에, 왜소하고 어두운 전교 1등 연시은으로 던져졌다. 그는 연시은의 집요함과 전투력을 오롯이 눈빛에 담아내며 작품 흥행을 이끌었다. 이어진 시즌2에서는 삶의 단층이 여러 겹으로 덧씌워진 복잡다단한 소년의 내면을 섬세하게 그리며 또 한 번 언론과 평단, 대중의 찬사를 받았다.
다채롭게 변주되어 온 박지훈의 소년미는 ‘왕사남’을 통해 정점에 이르렀다. 박지훈은 잠재된 에너지를 이홍위란 인물에 맞게 재조율하며, 이전과 다른 결의 처연함을 구축했다. 이는 연기 스펙트럼은 물론, 팬덤의 외연까지 확장하는 계기가 됐다. 실제 ‘단종 오빠’, ‘단종통’ 같은 유행어가 파생됐고, 과거 출연작들도 역으로 재조명되고 있다. ‘프로듀스101’은 ‘단종 버전’으로 재해석·재생산되고 있으며, ‘약한영웅’은 넷플릭스 ‘오늘 대한민국의 톱10 시리즈’에 재진입해 3위까지 오르는 성과를 냈다. 단순 대표작 추가를 넘어, 배우로서 역량과 영향력을 각인시킨 셈이다.
김성수 평론가는 “연기는 액션보다 리액션이 더 힘든데, 박지훈은 ‘왕사남’으로 그것을 훈련했고 또 해냈다. ‘약한영웅’에서 또 한발 더 나아간 연기적 성장이다. 이제 박지훈은 외모나 자신의 에너지로만 말하는 게 아닌, 다른 사람의 마음을 자기 안에 들어오게 하는 진짜 배우가 됐다”며 “‘왕사남’은 박지훈의 커리어 전환점이 될 것이고, 그의 연기는 앞으로 훨씬 더 좋아질 것”이라고 내다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