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30일 첫 방송한 KBS1 드라마 ‘기쁜 우리 좋은 날’의 포문을 연 대사다. 노인용 AI 친구 ‘조이’를 개발하는 스타트업 개발자 조은애(엄현경)가 투자 발표회 당일 아침, 부모님이 로봇으로 변하는 악몽에서 깨어나는 장면은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드라마 1회 오프닝부터 AI라는 소재를 전면에 내세운 것이다. 사진=KBS1 드라마 ‘기쁜 우리 좋은 날’ 방송 캡처 이 드라마는 AI를 단순한 연출 장치나 일회성 소품으로 활용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주인공의 직업을 AI 개발자로 설정하고, 서비스 고도화 과정에서 겪는 동업자의 배신이나 인연의 시작 등 극의 모든 주요 사건을 AI와 밀접하게 맞물려 놓았다. 이는 AI가 이제 장르물을 넘어 지상파 가족극과 안방극장 깊숙이 침투했음을 시사한다.
EBS 역시 지상파 최초로 100% AI 기술을 활용해 제작한 드라마 ‘부활수업’을 선보이며 파격적인 행보에 나섰다. 지난 5일 첫 방송된 ‘안중근 편’은 안중근 의사의 생애와 사상, 뤼순 감옥에서의 기록을 8분이라는 짧은 시간 안에 밀도 있게 고증해내며 AI 기술의 순기능을 입증했다. 사진=EBS 제공 연출을 맡은 민성원 PD는 “되살아난 인물들이 던지는 질문을 통해 AI 시대를 살아가는 시청자들이 스스로 답을 찾아가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고 기획 의도를 전했다. 이러한 시도는 단순한 일회성 이벤트에 그치지 않는다. EBS는 AI 기반의 공신력 있는 콘텐츠 생태계를 조성하기 위해 지난 7일 네이버와 전략적 파트너십을 체결하며 기술적 토대 마련에 속도를 내고 있다.
이외에도 SBS ‘동물농장’은 AI와 실제 동물을 구분하는 퀴즈쇼를 선보이며 동시간대 시청률 1위 자리를 굳건히 지켰고, MBC ‘놀면 뭐하니?’ 또한 AI와 함께하는 하루를 담은 콘텐츠로 유튜브 조회수 100만 회를 돌파하는 등 긍정적인 시너지를 내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한 방송 관계자는 “과거에는 AI에 대한 거부감이 컸지만, 최근 챗GPT나 제미나이 등 생성형 AI가 대중화되면서 시청자들의 인식도 크게 변화했다”며 “실생활과 접목된 AI 콘텐츠에 대한 수요가 늘어난 만큼, 드라마와 예능 전반에서 AI를 활용하려는 시도가 빈번해지고 있다”고 짚었다.
드라마와 예능이 AI로 상상력의 영토를 넓히고 있다면, 실시간 중계 영역에선 기술적 한계라는 ‘복병’이 여전하다. 실제로 지난 2일 KBS가 생중계한 나사(NASA) 유인 우주선 ‘아르테미스 2호’ 발사 현장에선 황당한 자막 사고가 터졌다. 관제소 교신 중 “지시 확인(Roger), 기체의 롤(Roll) 및 피치(Pitch) 자세 조정”이라는 전문 용어를 AI가 발음이 유사한 비속어로 인식해 “로저, 굴러, 이X아”로 내보낸 것이다.
이처럼 방송가에 불어닥친 AI 열풍은 제작 효율을 높이는 엔진인 동시에 예상치 못한 사고를 부르는 ‘양날의 검’이다. 안방극장 깊숙이 침투한 AI가 단순한 볼거리를 넘어 시청자의 신뢰를 얻기까지는 기술적 고도화와 철저한 검증이라는 과제가 남을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