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넷플릭스 투둠 제공
류승완 감독의 신작 ‘휴민트’가 극장 개봉 두 달도 지나지 않아 넷플릭스에 상륙했다. 대작 영화조차 두 달을 버티지 못하고 OTT로 직행하면서 영화 산업의 전통적 유통 질서가 붕괴됐다는 위기감이 고조된다.
20일 넷플릭스 투둠 웹사이트에 따르면 ‘휴민트’는 지난 1일 공개 후 닷새 만에 1100만 시청수(시청시간을 작품의 총 러닝타임으로 나눈 값)를 기록하며 4월 첫째 주 글로벌 톱10 영화(비영어) 부문 1위에 올랐다. 개봉 당시 대진운 등에 밀려 고전하던 영화가 재평가받는 건 고무적인 일이지만, OTT 공개 시점이 지나치게 빠르다는 점에서 여러 우려가 나왔다.
지난 2월 11일 개봉한 이 영화는 IPTV와 VOD 등 2차 시장을 거치지 않고 49일 만에 3차 시장인 OTT로 직행했다. 올 초 영화진흥위원회가 발간한 ‘한국영화 수익극대화를 위한 홀드백 분석 연구’에 따르면 전통적 홀드백 기간은 180일 이후로, 공개 텀이 70% 가까이 줄어든 것이다.
업계에 따르면 넷플릭스는 ‘휴민트’를 파격적인 조건으로 매입했다. 기존 극장 개봉에서 발생한 적자를 사실상 전액 보전해 줬다는 이야기도 들린다. 투자배급사 주머니 사정을 고려한다면 손실 리스크를 단번에 해소시켜준 셈이다.
다만 영화 시장 전체를 봤을 때는 우려 섞인 시선도 적지 않다. 홀드백(극장 개봉 이후 일정 기간 타 플랫폼 공개 유예)이 붕괴하고 있는 신호인 탓이다. 홀드백은 영화산업의 오랜 쟁점으로, 더불어민주당 임오경 의원 등은 지난해 해당 내용이 담긴 ‘영화 및 비디오물의 진흥에 관한 법률’(영비법) 개정안까지 발의했다. 골자는 극장 상영 종료 후 최대 6개월이 지난 후 IPTV·OTT 등에서 공개하도록 규정하는 것으로, 해당 법안은 현재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에 계류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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홀드백 명문화를 지지하는 이들은 ‘지금이 아니면 볼 수 없다’는 콘텐츠 희소성을 회복해 관객을 극장으로 유도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 아울러 △상영 기간 확보를 통한 장기 흥행 또는 역주행의 기회 제공 △IPTV·VOD 등 2차 시장 활성화에 따른 수익 구조 다변화 △예측 가능한 수익 모델 정립을 통한 투자 안정성 확보 등 실질적인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고 전망한다.
이와 달리 일부 투자배급사, 제작사가 불편한 기색을 내비치는 이유는 실익 때문이다. 작품을 개봉 직후 OTT로 넘기면, 극장 흥행 여부와 관계없이 투자비 회수 및 단기 손실 보전이 가능하다. 실제 OTT사에서 영화를 매입할 때 특정 작품에 한해서는 오리지널 콘텐츠보다 더 나은 조건을 제시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다 보니 극장 개봉 6주 후 OTT 판권을 넘기는 것을 비즈니스 기조로 삼는 신생 투자배급사까지 등장했다.
창작자들도 반대에 뜻을 같이하고 있다. 지난 9일 봉준호 감독을 포함한 영화인 581명은 홀드백 법안 철회를 촉구하는 성명을 발표했다. 이들은 “영화가 바로 IPTV나 OTT로 넘어가면서 관객이 개봉관을 찾을 필요가 없어졌다”면서도 홀드백 법안은 투자비 회수를 어렵게 하고 관객의 볼 기회를 제한하는 “잘못된 처방”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반발이 이어지자 최휘영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은 14일 ‘한국 영화산업 회복을 위한 소통 간담회’를 열고 아직 확정된 사안은 없다며 한발 물러섰다.
찬반 양론이 오가지만, 전문가들은 자국 영화 보호를 위해서는 거시적으로 봐야 한다고 조언한다. 조급한 자금 회수 방식은 투자배급사 및 제작사들의 단기적인 재무 지표 개선에는 도움이 될 수 있으나, 장기적으로는 영화의 극장 개봉 가치 자체를 소멸시켜 산업 전체의 경쟁력을 약화시킨다는 지적이다. 당장의 실익이나 편의성보다 영화산업의 뿌리를 지키는 것이 궁극적으로 창작 생태계에 이롭다는 설명이다.
한 업계 관계자는 “단순 자금 회수와 소비자 편의성을 이유로 극장을 포기할 경우 한국영화 산업은 거대 해외 플랫폼의 하청 기지로 전락할 위험이 크다. 홀드백 법제화는 단순 규제가 아니라 영화가 극장에서 가치를 증명할 시간을 충분히 부여하는 최소한의 보호막이자, 산업 지속 가능성을 위한 해법”이라면서 “다만 기간에 대한 충분한 논의는 필요할 것”이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