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뮤. (사진=영감의샘터 제공) 2026년 봄, 한 달 내내 앓고 있는 병이 있는데 진지한 자가 진단을 통해 ‘악뮤 차원달라병’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악뮤의 ‘소문의 낙원’에는 불치병이 없다고 했는데, 어째 이 병은 차원이 다르다. 지난달 7일 발매된 정규 4집 ‘개화’를 한 달 내내 전체재생하며 듣고 있는 스스로를 보건데 좀처럼 쉽사리 낫진 않을 거 같단 예감이 든다. 그런데 이 좋지 않은 예후에도 불구, 음원 차트를 보면 기자 같은 사람도 적지 않은 것 같아 위안(?)이 된다.
4일 오후 1시 기준 멜론 일간차트 1, 2위는 악뮤의 ‘소문의 낙원’과 ‘기쁨, 슬픔, 아름다운 마음’이 각각 차지했다. ‘기쁨, 슬픔, 아름다운 마음’이 발매 하루 만인 지난달 8일 일간차트 1위에 오른 뒤 총 17일 동안 1위를 달렸는데, 지난달 25일 ‘소문의 낙원’이 챌린지 열풍을 타고 처음으로 1위에 올랐고 이후 일주일 넘게 정상을 유지하고 있다.
악뮤 대 악뮤의 경쟁 구도가 한달째 이어지고 있는 셈인데, 앨범에 달린 댓글 리뷰에 수없이 많은 자기 고백과 함께 “고맙다”는 반응이 이토록 많은 앨범을 지금껏 본 적이 없어 이 병증(!) 자체를 연구 대상으로 삼고 싶을 정도다.
이번 앨범은 YG엔터테인먼트를 떠나 영감의 샘터라는 독립 레이블에서 처음 선보이는 악뮤의 신보라는 점, 특히 무려 7년 만의 정규 앨범이라는 점에서 기대를 모았는데 뚜껑을 연 뒤에는 음악 그 자체는 물론, 그 속에 담긴 치유의 메시지로 큰 반향을 일으키고 있다. 특히 멤버 이수현이 음악 활동 중 슬럼프를 겪었지만 다시 일어나 온전히 바로 서고 회복하기까지의 스토리, 여기에 오빠 이찬혁이 보여준 적극적이면서도 헌신적인 도움이라는 감동 스토리가 더해지며 완벽한 ‘서사’가 됐다.
그러나 그 어떤 서사가 더해졌다 해도 결국 가수가 대중의 마음을 움직이는 건 음악과 그 속에 담긴 메시지인데, 결정적으로 이번 악뮤의 ‘개화’는 5점 만점에 5점을 주기도 아까울 정도의 수작이라는 데서 반갑다.
악뮤의 ‘개화’는 마치 ‘유기농 10첩 반상’ 같다. 화려하진 않지만 다채롭고 정갈하다. ‘소문의 낙원’, ‘기쁨, 슬픔, 아름다운 마음’ 등 메인요리 뿐만 아니라 밑반찬(수록곡) 하나하나에 담긴 손맛도 예사롭지 않다.
전반적으로 어쿠스틱, 컨트리 사운드가 두드러지는 가운데 구석구석 적재적소에 사용된 악기 활용이나 디테일에서의 승부수는 흥미롭다. 예를 들어 ‘텐트’의 감성을 배가하는 독특한 레코딩 변주, ‘옳은 사람’과 ‘우아한 아침 식사’ 연결부에서 드러난 실험성, ‘난민들의 축제’ 속 일부러 바람 세는 소리 가득하게 분 휘파람 구간 등 말이다. 또 ‘벌레를 내고’ 가사 속 ‘벌레’는 영어 표현에서 ‘벌레(bugs)’와 ‘돈(bucks)’의 발음이 비슷한 데서 착안해 쓴 일종의 언어유희다.
‘어린 부부’와 ‘난민들의 축제’를 이찬혁이 솔로로 소화한 것도 신의 한 수다. 언젠가 이수현 버전의 이 두 곡을 만나는 날이 올 수도 있겠지만, 곡을 통해 표현하고자 하는 감성을 이찬혁의 감수성으로 200% 담아낸 절묘함이 남다르다.
담담한, 하지만 대담한 소재 선택도 돋보인다. ‘어린 부부’ 속 “둘만 알고 있는 비밀은 지키고 모두가 알게 사랑하셔요”라는 가사에선 이 편견의 시선을 극복하고 가족이 된 어린 부부에 대한 존중과 애정 어린 시선이 고스란히 느껴지며, ‘난민들의 축제’는 난민이라는 단어만으로도 경기를 일으키는 온라인상 일부 사람들을 머쓱하게 하는 온정적·평화주의적 시선이 인상적이다.
한 차원 업그레이드 된 이수현의 보컬에 대해서도 얘기 안 할 수 없겠다. 모든 곡의 분위기에 맞게 옷을 갈아입는, 카멜레온 같은 매력의 이수현 보컬의 다채로운 매력은 말할 것도 없다. 목소리가 지닌 선명한 힘은 여전하고, 그 음성의 표현력은 딴딴해졌다. 여기에 ‘기쁨, 슬픔, 아름다운 마음’을 알아버리고야 만 ‘삶’의 내공으로 담담하게 빚어내는 깊이는 과연 남다르다.
트랙별로 분석해 보자면, 전 곡이 그러하지만 일단 ‘소문의 낙원’은 그 누가 커버한다 해도 원곡의 감성을 뛰어넘기 어렵겠다 싶을 정도로 산뜻하다. ‘봄 색깔’에선 봄을 닮은 목소리로 듣는 이의 기분을 좋아지게 하더니 ‘벌레를 내고’에서는 경쾌한 여정을 고스란히 표현한 것을 넘어, ‘시간은 짧고 누릴 것은 많구나’ 마지막 파트를 소화할 땐 마치 끝나지 않는 모험이 가득한 애니메이션 속 주인공의 넘버를 듣는듯한 느낌을 준다.
‘햇빛 블레스 유’는 프로듀서 이찬혁의 의도에 걸맞게, 그 자신의 극복을 넘어 타인에게도 곡의 에너지를 고스란히 전하는 듯한 보컬이 인상적이며, ‘텐트’는 가사 속 장면이 눈앞에 그려지는 듯 명랑하고 경쾌한 분위기로, ‘옳은 사람’과 ‘우아한 아침 식사’는 전지적 시점으로, ‘얼룩’에선 악뮤 특유의 건강한 에너지가 돋보이게 소화했다. ‘기쁨, 슬픔 아름다운 마음’은 무슨 말이 더 필요할까 싶어 첨언하지 않겠다.
이 팔색조 보컬이 아니었다면, 이수현 이 대체불가한 목소리가 없었다면, 이찬혁에겐 미안한 얘기지만 악뮤는 불가능했을 프로젝트가 아니었을까 싶을 정도로 이수현의 존재감은 뚜렷하다. 특히 ‘개화’ 앨범 프로모션 과정에서 ‘어둠 속에 있던 동생을 살린 오빠 이찬혁’에 대한 찬사가 유독 많았는데, 그 스스로 아픔을 딛고 선 건 다름 아닌 이수현이라는 점에서 그에게 또한 박수를 보낸다.
‘누나 가슴에 삼천원 쯤은 있는 것’이라는, 과거 한 드라마 대사에서 파생된 밈처럼 누구나 저마다의 상처를 간직한 채 내면의 외로움 속에 살아가는 사회에서, 옳고 그름을 재단하지 않고 “괜찮다”는 말 한 마디의 힘과도 같은 치유의 음악이다. 아니, 어쩌면 그 이상으로 좋고 나쁨 모든 게 하나의 퍼즐이 되어 아름다운 마음이 된다는, 차원이 다른 삶의 울림을 주는 음악이 바로 이번 악뮤의 ‘개화’다.
‘항해’ 이후 거친 파도에 삼켜지지 않고 ‘개화’에 다다라 다행이다. 이찬혁이라는 세상 둘도 없을 파트너가 함께여서 다행이고, 스스로 이겨낸 이수현이라 고맙다. 명창 이수현 선생과 명의 이찬혁 원장이 함께 하는 악뮤의 음악 덕분에 올 봄 많은 이들의 마음 속에 꽃이 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