뚜렷한 대표작을 가진 배우에게 과거의 호평은 때론 현재의 발목을 잡는다. ‘자신의 적은 자신’이라는 말처럼 인생작을 뛰어넘을 연기를 보여주는 건 온전히 본인의 몫이기 때문이다. 이런 면에서 박은빈은 스펙트럼이 넓고 변화를 두려워하지 않는 대범한 배우다.
‘박은빈’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작품은 ENA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다. 천재적인 두뇌와 자폐스펙트럼을 지닌 신입 변호사를 연기하며 ENA에서 이례적인 시청률과 글로벌 흥행을 기록했고, 다음해 백상예술대상 TV부문 대상까지 품에 안았다.
이후 박은빈의 행보는 더욱 과감해졌다. ‘연모’에서는 남장여자 왕으로 비극적 서사를 이끌었고, ‘무인도의 디바’에선 15년 만에 세상 밖으로 나온 가수를, ‘하이퍼나이프’에선 사이코패스 의사를, ‘원더풀스’에서는 사랑스러운 초능력자를 그려냈다.
매번 다른 옷을 입어온 그가 이번에 선택한 무대는 복합장르다. 지난 18일 첫 방송한 tvN 토일 드라마 ‘오싹한 연애’에서 귀신을 보는 재벌 천여리로 변신했다. 드라마는 천여리와 귀신을 무서워하는 검사 마강욱(양세종)의 오컬트 로맨스를 그린다. 박은빈의 로맨스 복귀는 tvN ‘무인도의 디바’ 이후 3년 만이다.
다만 ‘무인도의 디바’가 주인공의 성장 서사에 초점을 뒀다면 ‘오싹한 연애’는 로맨스 50%에 오컬트·공조 수사·액션이 조화롭게 결합됐다. 다양한 장르를 다뤄온 박은빈에게 최적의 판이 깔린 셈이다.
박은빈은 귀신을 보는 능력을 단순한 공포 장치나 수동적인 핸디캡으로 두지 않았다. 검사 마강욱과 손잡고 미제 사건을 해결하는 능동적 파트너로 활용한다. 손이 닿으면 귀신 보는 능력이 전이된다는 설정 때문에 장갑을 필수로 착용하는 디테일도 살렸다.
호텔에서는 빈틈없는 최고경영자(CEO)의 모습을 보이면서도, 사적인 공간에선 주체적이고 인간적인 반전 매력을 선사한다. 그 간극을 섬세한 표정과 톤 변화로 메웠다. 다소 클리셰 일 수 있는 캐릭터지만 특유의 정확한 발음과 단단한 딕션 덕분에 시청자들의 호평이 이어지고 있다.
특히 데뷔 후 첫 재벌 캐릭터인 만큼 화려한 스타일링도 시선을 사로잡는다. 감각적인 오피스 룩부터 레드 빛 머리스타일까지 호텔 대표로서의 매력을 극대화하기 위해 의상 팀과 매번 변주를 주며 각별히 신경 썼다는 후문이다.
배우의 열연에 수치적 지표도 즉각 반응했다. ‘오싹한 연애’는 1회 3.8%(닐슨코리아 전국 유료 가구)로 출발해 2회 만에 5.3%로 껑충 뛰었다.
한 방송 관계자는 “보통 드라마가 초반 1~2회에 서사 밑밥을 깔고 3~4회부터 반등하는 게 정석적 흐름이다. 반면 ‘오싹한 연애’는 빠른 전개와 여름철 겨냥 오컬트 요소가 맞물려 시청자를 재빠르게 사로잡았다”며 “방송 전부터 축적된 ‘믿고 보는 박은빈’이라는 기대감을 연기력으로 입증해 낸 것 같다”라고 말했다.
화제성과 글로벌 지표도 상승세다. 지난 23일 기준 굿데이터코퍼레이션 펀덱스 TV 드라마 화제성 순위 2위에 올랐고, 박은빈과 양세종 역시 출연자 화제성 톱10에 나란히 이름을 올렸다. OTT 플랫폼 플릭스패트롤에서도 넷플릭스 TV쇼 부문 2위에 안착, 브라질·파라과이·베네수엘라 등 8개 국가 및 지역에서 1위를 싹쓸이하며 공개 첫 주부터 국경을 뛰어넘었다.
오는 25일 방송되는 3회에서도 박은빈의 활약은 이어진다. 제주도 출신 디자이너 다미(김민주)를 중심으로 미스터리를 풀어가는 한편, 서브 남주 옹성우의 등판과 함께 양세종과의 묘한 삼각관계까지 본격화된다. 한계 없는 연기 스펙트럼으로 또 한 번 판을 흔든 박은빈. 복합장르라는 까다로운 판 위에서도 단단한 내공을 보여주는 그가 얼마나 ‘오싹하게’ 시청률 그래프를 끌어올릴지 관심이 집중된다.
김지혜 기자 jahye2@edaily.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