객관성은 잠시 내려놓고, 오직 주관적인 ‘덕심’과 ‘사심’을 꾹꾹 눌러 담아 전하는 스타 입덕 안내서입니다. 자꾸만 손이 가는 달콤 짭짤한 라면땅처럼, 보면 볼수록 헤어 나올 수 없는 매력을 가진 스타들을 소개합니다. <편집자 주> 사진=유튜브 채널 ‘엄지렐라’ 캡처 코미디언 엄지윤은 그야말로 ‘볼매’다. 보면 볼수록 매력도 넘치지만, 사실 보면 볼수록 ‘볼 게 매우 많은’ 인물이기도 하다. 현재 자체적으로 탄생시킨 부캐릭터만 5개가 훌쩍 넘는다. 캐릭터마다 성격과 특징, 심지어 외관까지 싹 달라져서 “실제로 어딘가에 살고 있는 사람 아니야?” 하고 혼동이 올 정도다.
엄지윤의 ‘부캐 공장’이라 불리는 개인 유튜브 채널 ‘엄지렐라’는 오로지 부캐들로만 움직이는 작고 알찬 소극장 같다. 쇼호스트로 물건을 파는 엄선혜부터 인디가수 엄설기, 부자 공주 엄지렐라, 꺼드럭거리는 남자 엄지훈, 연기 지망생 엄채아까지. 여기에 최근에는 SK하이닉스에 도전하는 취준생 엄나경과 오버스러운 여배우 엄지련이 후발주자로 나서며 인기를 얻고 있다. 사진=유튜브 채널 ‘엄지렐라’ 캡처 개인적으로 최애 부캐는 엄지훈이었는데, 요즘은 자꾸 엄나경에게 마음이 기운다. 엄나경 캐릭터가 유독 재미있는 건 사회적 이슈를 기가 막히게 재해석해 반영하기 때문이다. 한창 월드컵 열기로 세상이 뜨거울 땐 ‘노르웨이 축구 국가대표 면접 탈락 영상’을 올렸고, 이외에도 대전 성심당, 스페이스X, 믿음사, SK하이닉스 등을 성지로 만들었다.
엄지윤은 면접에 ‘합격’하는 게 아니라 ‘탈락’한다는 설정 하나로 미친 듯한 웃음을 뽑아낸다. 문장 구사력은 완벽한데 어딘가 초점이 나간 듯한 눈빛, 목에 빵이라도 낀 듯 답답한 목소리, 그리고 말도 안 되는 정보들의 향연. 특히 노르웨이 국대 면접 영상에서는 실제 대한민국 국가대표 미드필더 백승호가 면접관으로 등판해 큰 화제를 모았다.
최근 공개된 작품 메이킹 비하인드 콘셉트의 영상도 레전드다. 배우 소속사 공식 채널에 올라온 영상인 줄 착각할 만큼 퀄리티가 고퀄이다. 여기서 엄지윤은 여배우 엄지련으로, 같은 메타코미디 식구 김민수는 남주인공 허남수로 출연한다.
대본에도 없는 키스신을 감독에게 요구하는 남자 배우와 수줍게 이를 받아주는 엄지련, 그리고 ‘컷’ 소리가 나자마자 자연스럽게 스킨십을 나누는 두 사람. 이상할 정도로 익숙한 이 묘한 구조에 누리꾼들은 “기획력 살벌하다”, “연예인 메이킹 특유의 효과음을 엄청 잘 살렸다”라며 열광적인 반응을 보였다.
이쯤 되면 부캐를 제조하는 과정이 궁금해지는데, 그에게 돌아온 답변은 의외로 단순했다. “이름부터 먼저 정해놓고 그에 맞춰 인물을 만들어 간다.” 였다. 때로는 ‘이거 웃기겠는데?’ 하는 직관적인 생각이 번쩍 떠올라 만들어지기도 한단다.
단, 그가 지키는 철칙은 하나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공감할 만한 상황이나 인물을 바탕으로 출발한다”는 것. 이어 “특정 인물을 그대로 흉내 내기보다는 여러 요소를 조합하고 재해석해 새로운 인물을 창조한다”고 설명했다. 그 흔한 아이디어 수첩조차 없다고 한다. 오직 재미 하나로 직진하는 모습에서 독보적인 내공이 느껴진다.
엄지윤의 단단하고 직관적인 심지는 개그 판에서 늘 강력한 무기가 된다. 개그는 흔히 ‘기세’라고 하는데 엄지윤은 드립을 치기 전 망설임이 없다. 그냥 ‘재미있겠다’ 싶으면 툭 던지고, 그게 매번 맹점을 타격한다. 사진=유튜브 채널 ‘엄지렐라’ 캡처 이 기세를 제대로 콘텐츠화한 게 바로 ‘관상만 보고 직업 정해주기’다. 길거리에 접이식 의자 두 개만 달랑 가져다 놓고 지나가는 사람이나 인스타그램 추첨으로 모인 사람들의 관상을 본 뒤 어울리는 직업을 툭 정해준다. ‘귀뚜라미 양식업자’, ‘파주 레터링 케이크 사장’, ‘홈메이드 말랑이 제조사’, ‘국내 3등 발레리나’ 등 디테일이 살아있는 구체적인 직업명에 무릎을 치게 된다.
들어보면 묘하게 그 사람의 이미지와 찰떡같이 겹쳐 웃음이 터진다. 팬들이 ‘유튜브판 유퀴즈’라 부르며 정규 편성 요구를 쏟아내는 이유다.
대중에게 엄지윤이라는 이름을 각인시킨 건 ‘숏박스’였지만, 개인적으로 그를 알게 된 건 2016년이었다. 그가 KBS 공채 개그우먼으로 데뷔하기 2년 전, 동아방송예술대학교 방송연예계열 예능 전공에 관심이 생겨 블로그에 댓글을 남겼는데 당시 재학생이던 엄지윤이 아주 정성스레 답변을 달아줬다. ‘참 아는 것도 많고 다정한 선배’라는 첫인상이었다.
이후 ‘개그콘서트’ 무대에서 그를 다시 봤을 때 역시나 잘할 줄 알았다. 막내 기수임에도 표정 연기, 딕션, 대사 전달력까지 흠잡을 데가 없었다.
‘개그콘서트’가 폐지되는 시련을 겪었지만 엄지윤은 주저앉지 않고 무대를 유튜브로 옮겼다. 위기는 기회가 됐고 코미디언 김원훈·조진세와 함께 ‘숏박스’를 터뜨리며 수백만 구독자를 품은 스타가 됐다.
인생은 롤러코스터 같아서 올라갈 때가 있으면 내려갈 때도 있다지만, 엄지윤은 정점에 오른 후에도 자잘한 논란 하나 없이 특유의 기세와 부지런함으로 자신만의 궤도를 넓혀가는 중이다. 아니, 어쩌면 아직 오를 정점이 남아있다는 표현이 더 정확할지도 모르겠다. 코미디언 엄지윤 /사진=서병수 기자 qudtn@edaily.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