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미조 감독이 첫 상업영화 연출작 ‘경주기행’ 개봉을 앞둔 소감을 전했다. 김 감독은 최근 진행된 일간스포츠와 인터뷰에서 “‘경주기행’은 처음으로 내가 아닌 다른 사람도 궁금해할 만한 걸 만든 작품”이라며 “조금 다른 가족 이야기, 비극적인 여정을 함께 하면서 마음의 불덩이를 꺼트리고 진짜 이별하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오는 26일 개봉하는 ‘경주기행’은 수학여행에서 돌아오지 못한 막내딸 경주를 위해, 8년의 기다림 끝에 ‘죽이는’ 여행을 떠난 네 모녀의 가족 복수극이다. 앞서 장편영화 데뷔작 ‘갈매기’(2021)로 한 여성에 가해진 폭력 이후 사회의 시선을 응시했던 김 감독은 ‘경주기행’을 통해 폭력 이후에도 끝나지 않는 가족의 시간을 바라본다.
“우리 영화를 보면 한 가족이 한마음 한뜻처럼 복수하는구나 싶지만 아니에요. 그 안에 상처를 꺼내면서 집단으로 보였던 가족은 붕괴되죠. 그렇게 한 집단이 해체되는 이야기를 필연으로 만들고 싶었어요. 물론 여기서 붕괴는 나쁜 의미가 아니에요. 제가 봐왔던 가족, 회사에 소속된 이들은 같은 마음일 거 같지만, 하나하나 들여다보면 다른 생각과 우주가 있었죠.”
‘경주기행’ 스틸 / 사진=롯데엔터테인먼트 제공
연출하면서 주안점을 둔 건 옥실(이정은), 장주(공효진), 박소담(영주), 이연(동주) 네 모녀를 중심으로 한 캐릭터 구축이다. 김 감독은 “캐스팅이 거의 어벤져스급었다. ‘이런 배우들 데리고 이렇게 했어?’라는 이야기를 듣고 싶지 않았다. 최대한 앙상블을 돋보이게 하려고 했다”며 “자매가 없는 분, 특히 남성 스태프들의 의견도 많이 들었다”고 짚었다.
‘경주기행’은 잔혹한 살인과 사적 제재, 모성애를 동력으로 움직이지만, 가족의 복수극을 마냥 비극적이거나 무겁게만 풀어내지 않는다. 김 감독은 블랙코미디라는 장르적 특성을 바탕으로 상황의 아이러니를 포착하고, 때때로 그 안에서 웃음을 끌어낸다.
“저라는 사람이 세상을 보는 시각, 성향이 반영됐다고 봐요. 저희 아버지는 아무리 심각한 상황에서도 좋은 점을 찾는 분이시죠. 제가 아버지께 받은 가장 큰 유산이 바로 비극을 비극으로만 보지 않는 거예요. 또 평소 제가 할 법한 상상들, ‘복수할 때 배는 고프지 않을까’, ‘저렇게 사람이 많으면 비효율적인 싸움이 발생하겠지’ 등이 얹어지면서 블랙코미디가 된 거죠.”
‘경주기행’ 스틸 / 사진=롯데엔터테인먼트 제공
영화의 배경으로 경주를 선택한 데에도 개인적인 경험이 녹아 있다. 김 감독은 영화를 시작했을 무렵인 2014년 경주로 가족 여행을 떠났다. 당시 갑작스러운 폭우가 내렸고, 가족들은 2000원짜리 우비를 사 입고 대릉원을 걸었다. 김 감독은 “그 모습이 마치 사람을 죽이고 내려오는 비주얼 같았다”며 “내가 언젠가 장편영화를 찍게 되면 이걸 찍겠다고 다짐했다”고 떠올렸다.
“경주라는 지역이 너무 매력적이라고 느꼈어요. 보통 경주는 수학여행지로 많이 가잖아요. 유적지와 능이 되게 많죠. 근데 가족여행을 가서 보니 무덤 옆에 가정집이 있고 차가 다니는 거죠. 산 자와 죽은 자의 공존이라고 생각했어요. 또 경주를 떠올렸을 때 활짝 핀 벚꽃을 생각했는데 생각보다 비도 너무 많이 오더라고요. 밝은 면 이면에 음습함이 있었죠.”
스포일러상 자세히 말할 수는 없지만, ‘경주기행’은 비슷한 서사의 작품들이 선택하는 통상적인 결말을 비껴간다. 김 감독은 “‘용서’라는 한 단어로 옥실을 위로할 수는 없다고 생각했다. 옥실의 불덩이를 꺼주고 싶었다. 마지막 비도 그런 의미”라며 “극 말미 옥실이 백상현(변요한)을 독대했을 때 하는 말이 핵심”이라고 설명했다.
김미조 감독 / 사진=롯데엔터테인먼트 제공
김 감독은 이날 인터뷰에서 처음 영화를 시작한 계기도 들려줬다. 자신을 ‘한국영화 키즈’라고 소개한 그는 “부모님이 맞벌이라 혼자 집을 볼 때가 많았는데, 그때마다 비디오 가게에서 영화를 보면서 점차 꿈이 커졌다”고 회상했다. 그리고 그 꿈에 불을 붙인 건 이준익 감독의 ‘왕의 남자’다.
“고3 때 ‘왕의 남자’를 봤는데, 처연한 정서가 열아홉 소녀의 가슴을 뜯었죠. 그걸 보면서 ‘감독이 되어야겠다’고 결심했어요. 수능을 앞두고 그 영화만 다섯 번 봤어요. 그러고 이후에 (대학 입시) 사수를 하게 되면서(웃음) 인생을 돌아보게 됐죠. 1~2년도 아니고 확 늦었는데 하고 싶은 거 하자 싶었고, 그때 때마침 경주로 가족여행을 가게 된 거죠.”
차기작은 아직 구체적으로 정해지지 않았다. 다만 김 감독은 매 작품 당시의 관심사와 천착하고 싶은 주제를 이야기로 풀어왔다며 “내 안에 있는 작은 걸 극대화하는 듯하다. 시간과 세월이 흐르면서 관심사는 바뀌고 있지만, 결국 내 시나리오가 곧 나”라고 말했다.
“저는 이야기함으로써 느끼는 해소감이 크죠. ‘갈매기’ 때는 시스템 안에서 저항하는 인물이 목소리를 내는 과정을 그리고 싶었고, 작품을 만듦으로써 해소감이 들었어요. ‘경주기행’도 마찬가지고요. 그래서 이제 다음 화두로 넘어갈 준비를 하려고 하죠. 아마 제가 계속 영화를 만드는 한, 계속 해서 화두는 옮겨갈 거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