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쿼터 도중 하현승의 쐐기 3점포가 림을 갈랐다. 대표팀 동료들이 일제히 환호성을 질렀지만, 중계 화면에 잡힌 에이스 이현중의 표정은 침착했다. 덤덤한 표정으로 양팔을 아래로 천천히 내리며 동료들에게 평정심을 유지하라는 손짓을 건넸다. 이 모습은 승리가 굳어진 4쿼터 종료 직전까지 이어졌다. 마침내 우승이 확정되고 일본 선수단과 악수를 나눈 뒤에야, 이현중은 참아왔던 뜨거운 눈물을 쏟아냈다.
한국 남자농구 대표팀은 20일 일본 나고야의 아이치 인터내셔널 아레나에서 열린 2026 아이치·나고야 아시안게임(AG) 결승전에서 개최국 일본을 67-57로 꺾었다. 27점 18리바운드로 코트를 지배한 이현중의 맹활약에 힘입어 한국은 2014년 인천 대회 이후 12년 만에 아시아 정상 탈환에 성공했다.
대표팀은 경기 전부터 어처구니없는 악재를 맞닥뜨렸다. 결승전 당일 오전 훈련장으로 이동할 셔틀버스가 아무런 설명도 없이 나타나지 않는 이른바 '노쇼' 사태가 발생한 것이다. 결국 대표팀은 오전 코트 적응 훈련을 거른 채 결승에 임해야 했다. 홈팀 일본과의 맞대결을 앞두고 일어난 석연치 않은 변수였다.
하지만 선수단은 동요하지 않았다. 겉으로는 침착함을 유지하되, 속으로는 승부욕과 독기를 품었다.
20일 일본 나고야 아이치 인터내셔널 아레나에서 열린 2026 아이치·나고야 아시안게임 남자 농구 결승전 대한민국 대 일본의 경기. 한국 이현중이 골밑에서 파울을 얻어내고 있다. 연합뉴스
연합뉴스에 따르면, 경기 후 이현중은 "버스가 오지 않은 것은 우리가 통제할 수 없는 변수다. 오전 훈련을 못 했다고 경기력이 흔들린다면 프로 선수가 아니다"라며 "니콜라이스 마줄스 감독님도 '냉정함을 잃지 않되 마음속 투지의 불씨는 꺼뜨리지 말자. 감정적으로 휘둘리지 말자'고 강조하셨다"고 전했다.
냉정을 지키려 애썼지만 마음 한편에는 강한 투지가 끓어올랐다. 이현중은 "중요한 경기를 앞두고 이런 황당한 일이 벌어지니 솔직히 '코트에서 죽을 각오로 뛰자'는 독기가 바짝 올랐다"고 털어놓았다.
경기 후엔 뜨거운 눈물로 그동안의 고생을 훌훌 털어냈다. 이현중은 "벤치의 동료 11명과 코치진이 없었다면 나 역시 이 자리에 없었을 것"이라며 "원래 우승하면 눈물이 잘 나지 않는데, 팬들과 동료들, 코칭스태프의 얼굴이 떠오르며 만감이 교차했다"고 말했다.
20일 일본 나고야 아이치 인터내셔널 아레나에서 열린 2026 아이치·나고야 아시안게임 남자 농구 결승전 대한민국 대 일본의 경기. 승리를 거둔 대한민국 대표팀 이승현이 맹활약한 이현중을 안아주고 있다. 연합뉴스
우승의 감격을 뒤로한 채 이현중은 다시 차분한 태도로 다음 도전을 응시했다. 그는 이날 자신의 플레이에 대해 "리바운드를 뺏기거나 자유투를 놓치는 등 더 침착하게 풀었어야 할 장면들이 있었다. 더 발전해야 한다는 의미로 70~80점을 주고 싶다"고 냉정하게 자평했다.
아시안게임 일정을 마친 이현중은 이제 미국으로 건너가 미국프로농구(NBA) 진입을 향한 본격적인 생존 경쟁에 나선다. 이달 초 포틀랜드 트레일블레이저스와 1년 비보장 계약인 '이그지빗 10(Exhibit 10)'을 체결한 이현중은 "꿈을 향해 나아가는 과정이기에 후회 없는 길을 택했다. 지금 도전하지 않으면 평생 후회할 것 같았다"며 각오를 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