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간스포츠는 곽재선 문화재단과 함께하는 제1회 하이니티 작가상 최우수상 수상작인 금알음 작가의 「세계에서」와 김재인 작가의 「반항의 향」을 매주 1회씩 순차 연재했습니다. 이번 연재는 청소년 문학의 새로운 가능성을 발굴하고, 신진 작가들의 작품을 보다 많은 독자들과 나누기 위해 마련됐습니다. 독창적인 상상력과 깊이 있는 시선이 담긴 두 작품의 연재를 마무리하며, 독자 여러분의 지속적인 관심을 바랍니다. <편집자주>
제1회 하이니티 청소년 작가상 최우수상 수상작, 김재인 작가의「반항의 향」 9. 반항의 향
‘클록터의 획기적 이모션 사이클, 의문의 폭로에 흔들리나….’ ‘대기업의 성공, 그 뒤에는 강제성과 무고한 희생….’
나도 모르게 입에서 기쁨의 감탄사가 튀어나왔다. 여러 뉴스 기사가 클록터를 다루고 있었다. 이런 성과에는 이담의 정보력과 실행력이 한몫했다.
“이모션 사이클의 어두운 진실로 사회가 떠들썩한 가운데 클록터에서는 아무런 뜻을 밝히지 않고 있습니다. 시민들의 의심이 확신으로 바뀌고 급기야 전국 곳곳에서 이모션 사이클을 중단하는 행위까지 벌어지고 있습니다. 지난달 갑작스레 등장한 폭로 기사로 인한 사태입니다. 제보자 A 씨는 이모션 사이클의 개발 당시 강제로 임상 시험을 당한 피해자들이 속출하고 있으며, 부작용으로 인해 삶이 망가진 이들을 클록터가 은폐하려 한 전적까지 찾아냈다고 밝혔습니다.”
시작은 센터 아이들이었다. 우리들의 평판이 그리 좋지 않은 탓인지 처음에는 말을 섞기 어려웠다. 겁도 없이 제 발로 호랑이굴에 들어가 깽판 치고 나온 녀석들 정도로 기억되는 모양이었다. 포기하지 않았다. 세상을 바꾸기 위해서는 더 많은 입이 필요했다. 간절함이 통했던 것일까, 제1센터에서는 뒷말로 소문이 퍼지기 시작했다. 나와 서화가 직접 겪은 이모션 사이클의 진실, 부작용과 클록터의 회장이 어떤 사람인지 까지 모조리 퍼트렸다. 애초에 센터에는 이모션 사이클을 좋아하는 사람이 드물었기에 여론은 쉽게 휘청였다. 그 후에는 이모션 사이클에 대한 의심과 불신이 이어졌고, 비로소 클록터의 부적절한 행보가 수면 위로 드러나게 되었다.
“듣고 있냐? 한이류?” 이담의 부름에 졸음이 달아났다. 창가에 걸터앉은 채 이담과 통화를 계속했다. “뭐라고요?” “한 번만 말한다고 했잖아. 기자들이랑 연락 중이야. 뉴스에도 나오고 예상보다 빨리 알려졌네.” “잘됐네요.” “반응이 그게 다야? 몸싸움까지 하면서 고생했잖아. 정말 불량 학생으로 거듭난 기분이 들지는 않고?” “떠 보는 거예요? 나보고 신경 쓰지 말라고 하더니. 그런 수식어 필요 없거든요. 저랑 서화도 나름대로 움직이고 있으니까 같이 힘내야죠.” 이담이 웃음을 터트렸다. 오늘따라 통화 음질이 좋았다. 이담의 목소리가 물방울 소리처럼 투명했다. 실없는 이야기를 나누다가 자연스레 통화가 종료되었다.
나는 그동안 일상으로 복귀하려 애썼다. 내가 클록터에서 겁 없이 삼켰던 알약 탓인지 무감각이 한층 더 심해져 버렸기 때문이다. 웃기게도 과거에 이모션 사이클을 한 번 당했다는 사실이 나를 안심시켜 주었다. 처음이 아니라서 그리 겁나지 않았다. 하지만 잃어버린 감정을 찾는 과정은 고역이었다. 홀로 여러 장소도 둘러보고 숨겨두었던 시집도 간간이 읽어보았지만, 효과는 없었다. 아마 이 상태는 한 달 정도 지속될 것 같았다. 그러던 중 서화의 도움을 받았다. 원래라면 자신이 삼켰을 시술 알약을 내가 대신 감당했다는 사실에 죄책감을 느낀 모양이었다. 혼자서는 효과가 미미했던 사소한 행동에 서화가 함께하니 한결 나았다. 밤마다 산책도 해보고, 해바라기밭에도 다시 방문했다. 덕분에 회복 기간이 많이 단축되었다. 서화는 아등바등했던 나를 구해준 은인이었다. 복도 건너편에서 익숙한 인영이 걸어오고 있었다. 그 옆얼굴에 한 줄기 햇빛이 드리웠다.
“왜 여기 있어?” “방 안에만 있기 답답하니까. 넌 어디 가는 길인데?” “수영장. 구경하고 왔어. 여전히 마음에 안 들긴 해.” 서화의 손에는 군데군데 검은 칠이 되어 있었다. 그리고 약간 젖은 머리카락이 눈에 들어왔다. 서화가 수영장에 대한 불만을 늘어트리며 물방울이 흐르는 턱을 벅벅 문질렀다. 그 탓에 손가락의 검은 칠이 피부에 번졌다. 아마도 흑연 같았다. 내 시선을 알아차렸는지 다시 입이 벙긋거렸다. “나, 작곡 다시 해보려고. 포기가 잘 안되네.” 서화가 가방에서 무언가를 꺼냈다. 꽃이었다. 꽃 한 송이와 함께 악보 여러 장이 바닥에 흩뿌려졌다. “열심이네. 너는 무슨 꽃을 가방에 넣고 다니냐.” “맞다, 그거 네 거야. 받아.” 어색하게 주황빛의 꽃 한 송이를 건네받았다. 퍼석퍼석한 꽃잎이 조화라는 사실을 알리고 있었다. “만수국이야. 조화라서 맘에 안 드나.” “예쁜데. 조화는 시들지 않잖아.” “대신 향이 없지. 너 생각하면 향이 먼저 떠올라서 조화는 안 어울린다고 생각했는데.” “그런가. 애초에 내가 향수를 만들기 시작한 건 감정을 보관할 방법이 필요했기 때문이잖아. 이제 모든 게 해결되고 난 다음에는 상관없지 않을까. 여태껏 만든 향은 감정 대신 추억으로 취급하면 될 일이야.”
서화가 미소를 띠며 쪽지 하나를 내밀었다. 소중하게 눌러 접은 듯 꼬깃꼬깃 구겨져 있었다. 꼼지락거리며 쪽지를 펼쳤다. ‘미안해. 둘 다 보고 싶었어.’ 감정 단어 수첩, 그 속의 글씨체가 보였다. 수첩에 비해 정갈하게 정리된 글씨였지만 알아볼 수 있었다. “사원증 뒤에 붙여져 있었어. 보여주긴 해야 할 것 같아서.” 서화가 말끝을 흐렸다. 내 얼굴을 마주 볼 수 없는지 고개를 휙 돌려버렸다. 후련한 느낌이 들었다. 나도 보고 싶었나 봐, 휘연아.
서화도 나를 따라 은근슬쩍 눈물을 훔쳤다. 한동안 복도에는 훌쩍이는 소리만이 맴돌았다. 먼저 입을 뗀 사람은 민망함을 감추려고 장난을 건 나였다. “울어? 첫사랑이 그리워?” “너는 왜 우는데? 울보야.” “웃기지 마.” 정의할 수 없는 기억으로부터 산뜻한 웃음이 뿜어져 나왔다.
반드시 오고야 말 행복, 그 감정이 뚜렷해지는 순간이었다.
[제1회 하이니티 X 곽재선 문화재단 최우수 당선작] <반항의 향>은 이번 화를 마지막으로 연재를 마칩니다. 그동안 매주 금요일 <반항의 향>과 함께해 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