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마돈나(신수원 감독)'에서 힘겨운 삶을 살아냈던 장미나였을 때에도, 영화 '암수살인(김태균 감독)'에서 살인사건의 희생자 주미경이었을 때에도, MBC 드라마 '내 사랑 치유기'에서 귀여운 임주아였을 때에도 권소현은 각기 다른 얼굴로 보는 이의 마음을 파고들었다. 가랑비처럼 조용하지만 명확하게 존재감을 각인시켰다. 특히 영화 '미쓰백(이지원 감독)'으로 권소현이라는 연기 경력 12년차 배우의 내공을 여실히 드러냈다. 생애 첫 악역이었으나 이보다 더 미울 순 없었다. 작은 체구로 악행을 저지를 때마다 객석에선 원망 어린 탄성이 터져나왔다.
'미쓰백'을 통해 보여준 연기를 빛나는 트로피로 돌려받았다. 권소현은 제55회 백상예술대상 영화 부문 여자 조연상을 수상했다. 쟁쟁한 후보자들을 모두 제치고 황금빛 트로피를 품에 안은 그는 자신을 "낯선 배우"라고 소개했다. 그리고 "인간미가 느껴지는 좋은 배우가 되도록 노력하겠다"는 소감을 남겼다.
권소현의 눈물을 목격하고 한 달 뒤 그와 재회했다. "그땐 내가 왜 그렇게 많이 울었을까"라며 수줍은 미소를 보이며 "계속 연기해도 된다는 희망을 허락받은 것 같다"고 말했다.
-지금은 이렇게 발랄한 권소현씨가 '미쓰백'에서는 정말 얄밉더라고요. "'미쓰백'은 낯선 사람이 낯설게 연기하니까 관객 분들이 그 역할을 미워하시는 것 같아요. 악역은 처음이었어요. '내가 저렇게 연기하면 무섭게 느껴질까? 같잖게 느껴지지 않을까?'라는 걱정이 있었어요. 나쁘게 봐주신다니 정말 다행이고 기쁘죠. 한지민 언니가 정말 천사처럼 생겼잖아요. 약할 것 같은 외모인데 사실 힘은 좋은 거 아시나요. 하하하. 캐릭터에 맞게 언니에게 질척거리며 싸움을 거는 장면이 있었는데, 일부러 흙을 뿌리기도 하며 싸웠어요. 아마 그 장면에서 엄청 얄밉게 보였을 거예요. 욕을 많이 먹었는데, 기분이 좋더라고요."
-첫 악역 연기부터 파격적인 캐릭터를 택했네요. "'미쓰백'은 1차부터 오디션을 봐서 출연하게 됐어요. 해보지 않은 연기에 대해 두려워하는 성격은 아니에요. 오히려 더 재미있어 해요. 악역을 해보지 않았기 때문에 더 신나게 연기했던 것 같아요. 대학로에서 연기할 때부터 무서워서 어떤 역할을 선택하지 않은 적은 없었어요. 도전하는 일에 재미를 느껴요."
-'미쓰백'은 권소현이라는 배우에게 어떤 의미로 남았나요. "쉽게 답하기 어려운 질문이네요. 감사한 작품이에요. 이 역할을 맡게 되기까지의 과정이 힘들었어요. 그래서 애증의 작품이기도 해요. 또 다른 저의 모습을 발견하기도 해서 흥미로웠던 작품이고요. 연극에서 영화로 넘어오면서 매번 새로운 역할을 연기하고 있어요. '다음 작품에서 또 어떤 모습을 보여줄 수 있을까'라는 설레는 생각을 해요. 도장깨기 같달까요. 재미있어요. 새로운 것을 맡을 수 있는 기회가 생긴다는 것 자체가 복 받은 것이죠. 제 주변에는 그런 기회를 잡기 힘든 배우들도 많아요."
-좋은 사람들과 만든 작품이라 더욱 뜻 깊겠어요. "그렇죠. 다들 정말 좋은 사람들이에요. 우리 지민 언니, 쓸데없이 너무 성격 좋고요.(웃음) 예쁘게 생기면 좀 못되고 그래야 하는데. 제가 언니한테 '너무 인간미 없다'고 했어요."
-'마돈나'에 이어 '미쓰백'까지 우리 사회 밑바닥에 있는 인물들을 주로 연기했네요. "제가 그런 역할에 끌리나봐요. 물론 제가 끌린다해도 시켜주지 않으시면 할 수 없고요. 그런 역할을 재미있어 하긴 해요. 어떤 페이소스가 느껴지는 역할을 연기할 때 더 재미를 느끼나봐요."
-연기하면서 어떤 고생까지 해봤나요. "'마돈나'를 찍을 때 서울역 앞에서 노숙하는 장면이 있었어요. 한여름이었는데, 옷을 껴입고 비닐봉투를 팔에 걸고 걸어가는 장면이었죠. 분장을 한 것이니 냄새가 날리가 없잖아요. 그런데 지나가던 일반 시민 분들이 냄새 난다고 저를 피하시더라고요. 그게 카메라에 찍혔어요. 슈퍼 아주머니가 '미친 여자가 다닌다'고도 했대요.(웃음)"
-모두 캐릭터 연구가 쉽지 않은 인물들이에요. "'마돈나' 때는 카메라 앞에서 연기하는 것이 처음이라서 카메라 안에 제가 어떻게 담기는지 상상도 하지 못했어요. 모든 것이 처음이었죠. '욕을 먹지 않고 이 역할을 어떻게 해결해나갈까'를 고민하다보니 다른 방법이 없더라고요. 그 역할이 온전히 저에게 오도록 하는 것이죠. 쉽게 말해 그냥 몰라서 열심히 하는 것 같아요. 뒤 돌아있을 때도 계속 연기를 해요."
-그럼에도 힘들다기보단 재미있다고 이야기하네요. "배우들은 다 똑같을 거예요. 연기를 하지 않을 때가 더 힘들어요. 기약 없이 다음 작품이 들어올 때까지 기다리는 시간이요. 모두 공감할 거예요."
-작품 속 캐릭터 때문에 여러 차례 체중 관리를 해야했죠. "원래 대학로에서 연극할 때부터 날씬한 배우가 아니었어요. 통통한 몸매라서 주인공을 할 수 있는 작품도 있으니까요. '마돈나' 때는 더 찌웠어야 했고, '미쓰백'은 빼야 했죠. 힘들지만, 그게 배우의 일이니까요."
-2007년 21살 어린 나이에 뮤지컬 무대로 데뷔했어요. "대학교 2학년까지 다니고 바로 데뷔했어요. 어렸을 땐 더 겁이 없었어요. 오디션에 가서 하고 싶은대로 막 하고 오곤 했어요. 뮤지컬은 몸의 움직임도 중요하잖아요. 그렇지 않아 보이는데 의외로 제가 날렵하거든요.(웃음) 오디션 심사위원들이 절 신기하게 봤을 거예요. 지금은 겁이 많은데, 그때는 정말 겁없이 했었던 것 같아요."
-어렸을 때부터 연기자가 되겠다는 확신이 있었나봐요. "글쎄요. 그냥 복잡하지 않아요. 연기가 하고 싶어서 연기를 전공했고, 그러다 여기까지 왔어요."
-연극과 뮤지컬만 하다가 영화판으로 넘어오게 된 계기가 있나요. "'마돈나' 신수원 감독님이 러브콜을 하셨어요. 그보다 앞서 단편영화를 찍었고요.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에서 딱 이틀 촬영한 작품이었죠. 그 영화가 IPTV에서 서비스가 됐나봐요. 신수원 감독님이 그렇게 저를 보시고 러브콜을 주셨죠. 당시엔 정말 카메라 앞에 서는 법을 전혀 모르는 연극배우였어요. 막말로 '생'이었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