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마돈나(신수원 감독)'에서 힘겨운 삶을 살아 냈던 장미나였을 때에도, 영화 '암수살인(김태균 감독)'에서 살인사건의 희생자 주미경이었을 때에도, MBC 드라마 '내사랑 치유기'에서 귀여운 임주아였을 때에도 권소현은 각기 다른 얼굴로 보는 이의 마음을 파고들었다. 가랑비처럼 조용하지만 명확하게 존재감을 각인시켰다. 특히 영화 '미쓰백(이지원 감독)'으로 권소현이라는 연기 경력 12년 차 배우의 내공을 여실히 드러냈다. 생애 첫 악역이었으나 이보다 더 미울 순 없었다. 작은 체구로 악행을 저지를 때마다 객석에선 원망 어린 탄성이 터져 나왔다.
'미쓰백'을 통해 보여 준 연기를 빛나는 트로피로 돌려받았다. 권소현은 제55회 백상예술대상 영화 부문 여자 조연상을 수상했다. 쟁쟁한 후보자들을 모두 제치고 황금빛 트로피를 품에 안은 그는 자신을 "낯선 배우"라고 소개했다. 그리고 "인간미가 느껴지는 좋은 배우가 되도록 노력하겠다"는 소감을 남겼다.
권소현의 눈물을 목격하고 한 달 뒤 그와 재회했다. "그땐 내가 왜 그렇게 많이 울었을까"라며 수줍은 미소를 보이며 "계속 연기해도 된다는 희망을 허락받은 것 같다"고 말했다.
-취중토크 공식 질문입니다. 주량이 어떻게 되나요. "소주 한 병이요. 공식적으로는요.(웃음) 사실 몇 병 마시는지 세면서 먹지는 않죠. 하하하. 어렸을 때는 자기 주량도 모르고 마시잖아요. 지금은 다음날 힘들어서 그렇게는 못 마시겠더라고요. 그리고 다음날 일할 때는 워낙 잘 부어서 음주는 자제하려고 해요."
-백상 이후 술을 자주 마셨겠어요. "상을 받고난 다음엔 축하받는다고 조금 많이 마셨어요. 한달 내내 축하를 받은 셈이네요."
-이번 백상 뿐 아니라 상을 탈 때마다 눈물을 펑펑 흘리더라고요. "내가 왜 그랬을까. 하하하. (한지민) 언니와 '그만 좀 울자'고 서로 말했는데 또 울고야 말았네요. 작품을 하면서 서로에 대한 감정이 켜켜이 쌓였나봐요. 저절로 눈물이 나와서 어쩔 수가 없어요. 백상 때는 감독님과 저, 지민 언니가 많은 부분에 노미네이트 된 것만으로도 기뻤는데, 상까지 타게 됐어요. 그래서 더 기뻤나봐요. 매니저들은 '분명히 쟤 운다'고 예상하고 있었대요. 저보다 훨씬 연기를 잘하시고, 오래 하신 선배님들이 있는 곳에서 그 상을 받는 것이잖아요. 누가 잘하고 못하고를 떠나서 수상은 운이 따라줘야 하는 것이고요. 오랫동안 쉬지 않고 연기를 하고 싶다는 꿈이 있는데, 정말 그럴 수 있겠다라는 희망이 보였어요."
-감독님부터 한지민씨와 권소현씨까지 '미쓰백' 3인방이 모두 울었죠. "울 때마다 '우리가 왜 울까'에 대한 이야기를 나눠요.(웃음) 찍는 과정도 그렇고 개봉을 기다리는 과정도 그렇고 '미쓰백'은 정말 쉽지 않았거든요. 감독님이 상을 받아서 정말 좋았기 때문에 더 운 것 같아요. 정말 많이 노미네이트 됐기에 '그것만으로 진짜 대단하다'고 이야기 나눴는데, 이렇게 상까지 받았네요."
-'미쓰백'은 눈물이 많은 여성 셋의 호흡이 돋보이는 작품이네요. "같은 성이기 때문에 이야기를 더 나눌 수 있는 부분도 분명히 있었어요. 촬영하고 준비하는 기간도 꽤 길었는데, 개봉하기까지의 과정도 길었어요. 생각했던 것보다 개봉이 더 미뤄지게 됐었어요. 그 사이 출연진이 자주 만나서 이야기도 나눴어요. 그 시간이 주는, 어떤 애틋한 마음이 있었어요."
-수상 소감은 충분히 말했나요. "처음에 부모님 이야기를 쏙 빼놓은 것 있죠.(웃음) 생각이 나서 바로 부모님에 대한 감사의 마음을 말씀드렸죠. 저를 응원해주신 선배들의 이름을 말하지 못한 게 아쉽긴 해요. 작품을 기다리는 것이 배우가 하는 일이에요. 그럴 때마다 '잘 견디고 있다. 잘 했다'고 응원해주시고, '뭐 먹고 사니?'라는 질문도 해주시는 선배들이 있어요. 시상식이 끝난 후 찾아 뵙고 '감사하다'는 말씀을 드렸죠. 제가 연극을 10년 하다가 영화와 방송에서 다시 처음부터 시작하는 거잖아요. 연극을 하면서 알게된 선배들이 다들 응원해줘요."
-뿌듯한 요즘이겠네요. "저보다는 저를 아껴주는 주변분들이 더 신나해요. 저는 그냥 '감사한 일이다'라고 담백하게 생각하려고요."
-선배들에게 어떤 축하를 받았나요. "진경 선배는 오래 전 연극하면서부터 알던 사이인데, '고생 많았다. 이제부터 연기 쭉 하면 된다'고 해주시더라고요. 제가 어떻게 살아왔는지를 알고 계시는 분들이니까 다들 격려해주세요. 제가 맛있는 것도 많이 사고요, 술값도 많이 썼어요. 하하하." -영화 부문 여자 조연상은 가장 쟁쟁한 후보들이 모였었죠. "모르겠어요. 하하하. 정말 기대를 하나도 하지 않았어요. 상이란 건 받으면 행복하지만, 인간인지라 못 받으면 속이 쓰리기도 하잖아요. 그래서 전혀 기대를 하지 않고 시상식장에 갔어요. 근데, 받으니까 좋더라고요."
-여배우들의 드레스 사이에서 슈트를 입고 등장했어요. "저다운 옷을 입고 싶었어요. 제가 입으면 편안한 옷이요. 편안하게 슈트를 입고 가보자고 생각했어요. 몸이 편하니 마음도 편해지더라고요."
-여러 과정과 시간을 거치며 '미쓰백'은 충무로 여성 영화의 대표작이 됐죠. "'미쓰백'이라는 영화가 단순히 여성 영화인 것은 아니에요. 여성이 주축이 돼 만든 것이죠. 어찌됐건, 작은 예산으로 시작한 영화가 손익분기점을 넘고, '많은 분들이 더 봐주셨으면 좋겠다'는 운동이 만들어졌잖아요. 저희는 응원을 받는 입장이기 때문에 감사한 마음 뿐이죠. 관객 분들이 소외될 수 있는 작은 영화에 대한 관심을 가져주신다면, 보다 다양한 취향의 영화들이 만들어질 수 있을 거예요. 그런 관심이 정말 감사하죠."
-고생이 많았던 작품이니 보상받는 느낌이 더욱 크겠네요. "보상받는 느낌은 생각해본 적 없어요. 그냥 개봉만 기다렸는데 개봉을 했고, 그러다 손익분기점까지 넘겼어요. 차근차근 일들이 이뤄져 온 거예요. 어떤 결과를 바라거나 보상을 바랄 생각은 들지 않았어요. 당장의 일들에 기뻐할 뿐이었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