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박민영(31)이 올여름 큰 산을 넘었다. 연일 폭염주의보가 내린 여름, 몇 겹의 한복을 갖춰 입고 매 회 펑펑 눈물을 흘렸다. 5년 전 MBC '닥터 진'을 찍고 난 후 "너무 힘들어 다시는 사극을 하지 않겠다"고 했지만 결국 고생을 자처했다. 그만큼 KBS 2TV 수목극 '7일의 왕비'는 박민영에게 둘도 없이 매력적인 작품이었다.
고생길은 예상한 그대로였다. 더위를 먹고 스트레스를 받아 마지막 장면을 찍을 때까지 며칠간 물만 마셨다. 하루에 한 시간 남짓 자며 대본을 외우고 연구했다. 시청률이 높지 않아 사기가 떨어질 수 있었지만, 마지막까지 대본을 손에서 놓지 않았다.
- 유독 더운 날씨에 한복을 입고 사극을 찍었다. "우리나라가 이렇게 습도가 높은지 처음 알았다. 유난히 더워서 각오를 단단히 했는데도 덥더라. 감정의 텐션이 굉장히 높은 장면들이 많은 드라마여서 쉬운 도전은 아니있다. 좋은 사람들의 도움으로 만족도가 큰 작품으로 남았다. 연기적으로는 의미 있는 작품이 된 것 같아 행복하다."
- 사극엔 다시 출연하지 않겠다고 이야기한 뒤 또 찍게 된 사극이다. "종영 기념 파티에서도 다들 '다신 사극으로 만나지 맙시다'라고 외치더라. 나도 다신 만나지 말자고 했다. 하지만 또 내가 지키지 못할 약속일 것 같아서 단언은 안 하겠다.(웃음) 물론 당분간은 정말 사극에 안 나올 거다. 막바지엔 더위를 먹어서 밥을 아예 못 먹었다. 다행히도 얼굴살이 빠져 화면엔 잘 나왔다.(웃음)"
- 어떤 장면이 가장 힘들었나. "이역이 반정을 시작한 뒤 찾아오는데 갑자기 이융이 들이닥치는 대목이었다. 신채경(박민영)이 시간을 끌어야 하는데, 혼자서 8페이지 분량의 대사를 읊는다. 혼자서 계속 이야기하는 거다. 거짓말을 보여서도 안 되고 진심을 보여서도 안 된다. 복잡한 신을 어떻게 찍어야 하지 고민하면서 촬영장인 부여까지 내려가며 한 숨도 못 잤다. 차에서 멀미를 참아 가며 대본을 봤다. 다행히 NG 없이 한 번에 촬영했고, 끝낸 후 다리에 힘이 풀려 주저앉을 뻔했다. 스트레스를 받은 신인데, 설득력 있게 표현됐다 하니 성취감을 떠나 확 풀어지더라."
- 감정이 극한으로 치달아야 할 때는 어떤 생각을 하며 몰입하나. "어렸을 때부터 특징이 촬영에 들어가면 아예 다른 생각을 안 한다는 것이다. 오로지 이 장면과 이 캐릭터를 생각한다. 평소엔 눈물도 없다. 감정이 극한으로 치달을 때 다른 생각을 하면 오히려 건조해진다. 신채경만 생각해야 감정이 올라왔다. 모든 신을 그렇게 찍었다."
- 드라마는 슬프지만 촬영 현장 분위기는 화기애애했다던데. "다들 캐릭터가 분명하다. 서로 자기가 정상이라고 하고 다닌다.(웃음) 엄청 화기애애했다. 연우진은 배려의 '끝판왕'이다. 함께 찍는 장면이 유난히 많았는데, 찍을 때마다 내 의견을 많이 물어본다. 정말 편하게 배려받으면서 연기한다는 느낌이 들었다."
- 연우진이 분위기 메이커인 것 같더라. "몰이까지는 아니지만, 자꾸 지켜보게 되는 캐릭터다. 남들이 보면 놀리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겠다.(웃음) 착하고 웃기고, 순수함이 있다. 특유의 순수함과 엉뚱함이 매력 포인트다. 턱 괴고 신기하게 지켜보게 된다. 처음엔 코드가 안 맞을 거라고 생각했다. 시간이 지나니까 아니더라. 처음엔 이 오빠가 무슨 말을 하는 건지 잘 못 알아들었다.(웃음) 나중엔 특유의 화법을 알게 돼 이해했다."
- 이동건과 호흡은 어땠나. "좋았다. 왕다운 당당함과 세련함을 항상 가진 오빠다. 첫 촬영부터 어려움 없이 호흡이 잘 맞았다. 서로 더 잘해 주려고 하고, 좋은 에너지를 주고받았다."
- 극 중 이동건과 연우진 두 스타일 중 누구를 더 선호하나. "둘 다 싫다.(웃음) 둘 다 나쁜 남자다. 캐릭터에 몰입해 상대가 미우면 그 사람도 미워진다. 둘 다 이기적이다. 신채경에게 몰입하다 보니 다 싫어졌다. (신)채경이만 불쌍하다. 얘만 생각하면 눈물이 난다. 실제로 연기할 때 눈물 신이 많았는데 하나도 안 힘들었다. 억지로 흘린 게 하나도 없다. 감정 소모가 많이 되지도 않았다. 이 친구의 상황에서 안 울면 이상한 거다. 납득이 되니까 눈물을 흘려도 안 힘들더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