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①] '브아이아이피' 현실과 타협한 장동건

배우 장동건(44)이 3년만에 스크린 나들이에 나섰다. 유행하는 멀티캐스팅에 느와르 장르를 택했다. 어느 정도 현실과 타협한 행보다. 묵직한 강렬함은 여전하지만 처음으로 내가 돋보이는 것이 아닌 덜어내는 작업을 진행했다. 본인의 만족도는 최상. 관객들의 선택만 남았다.

"아직도 제 대표작은 '태극기 휘날리며' '친구'에서 멈춰있어요." 몇 편째 지속되고 있는 흥행 부진에 데뷔 이래 처음으로 깊은 슬럼프에도 빠졌다. 이제는 "갱년기였던 것 같기도 해요"라며 웃음으로 넘기지만 꽤 심각했던 시기. 연기 때문에 힘들었지만 돌고 돌아 얻은 답은 결국 연기였다.

뻔뻔하게 잘생김을 인정하고, 아재개그를 쏟아내는 것은 물론, 묻지 않아도 아내 고소영에 대한 애정, 두 자녀의 아빠로서 고충을 토로하고 조언을 구하기까지 25년이 걸렸다. 기자나 배우나 같이 늙어가는 처지다. 영화인이라는 큰 카테고리 안에서 장동건은 취재진 앞 너스레와 여유를 뽐낼 줄 아는 '선배' 배우가 됐다.
 

- 강렬한 느와르 영화를 택했다.
"작품을 선택하는 기준이 예전에 비해 좀 달라졌다. '브이아이피'는 이전의 기준으로 봤어도 선택했을 영화다. 시나리오를 딱 한 번 읽고 '하고싶다'는 마음이 들었다."

- 어떤 점이 가장 매력적이었나.
"스토리가 재미있었고, 네 명의 남자 중 내가 연기한 캐릭터만 두 가지 모습을 보인다는 지점이었다. 초반과 후반, 필드에서의 모습과 사무직을 소화할 때의 분위기가 굉장히 다르다. 유일하게 변화 한다는 설정이 끌렸다. 그리고 그 영화를 박훈정 감독이 만든다는 것도 선택의 기준이 됐다."

- 박훈정 감독의 전작 '신세계'의 영향일까.
"'신세계'도 그렇지만 감독님이 작가로 활동했던 시절 작품도 재미있게 봤다. '부당거래' '악마를 보았다' 모두 좋았다."

- '시나리오 보다 영화가 잘 나왔다'는 말을 모든 배우들이 언급했다.
"타 영화들과 달리 현장에 있었던 시간이 적었다. 개개인의 시퀀스가 있기 때문에 모든 배우들이 같은 입장이었다. 때문에 다른 장면이 어떻게 완성 됐는지 서로 몰랐다. 멀티캐스팅 영화가 모두 그런 것은 아니겠지만 '브이아이피'는 400m 계주를 뛰는 느낌이었다. 한 배우가 끌고 가면 또 다른 배우가 나가서 끌면서 경기가 완성되는. 그런 의미에서 결승선을 잘 넘지 않았나 싶다. 만족한다."

- 캐릭터는 어떻게 준비했나.
"국정원 요원하면 첩보원 이미지가 강하다. 날렵하다. '브이아이피'에서도 적지만 굉장히 중요한 장면에서 그런 모습을 보였다. 때문에 일반 사무직을 소화할 땐 오히려 평범하고 싶었다. 욕심을 덜 부리면서 연기할 수 있었던 것 같다. 냉정하게 절제했다."

- 멋을 뺐는데 더 멋있다는 반응이 많다.
"다행이다. 감사하다. 솔직히 그렇게 보이고 싶었다.(웃음) 사실 박재혁은 심적인 딜레마를 계속 묻는 사람이다. 채이도(김명민)은 목적이 분명하고, 김광일(이종석) 역시 마찬가지다. 그들 앞에서 상황에 대해 반응해야 하는 것 아닌가 싶었는데 그것조차 선입견이더라. 감독님이 최대한 절제해야 반전이 크게 다가올 수 있을 것 같다고 했다. 처음으로 덜어내는 작업을 했다."

- 재혁의 변화 시점은 언제라고 보나.
"박재혁은 정의감이 없는게 아니라 애써 누르는 인물이다. 현실적이다. 임무에 충실하고 출세하기 위해 그 만큼 노력하니까 회사에서는 굉장히 좋은 회사원이기도 하다. 필드에서 뛰는 것이 더 잘 어울리는데 본인은 편하게 사무직에서 일하고 싶어 하기도 하고.(웃음) 김광일 사건을 처리하면서 잠재적으로 묵혀뒀던 감정이 폭발한 것 아닐까 싶다."

- 브로맨스가 있는 듯 없다.
"맞다. 서로에게 아무런 감정이 없다. 철저한 비즈니스 관계다. 사연에 이입하기 보다는 오히려 대립한다. 그 과정에서 동질감 정도는 느꼈을 것이다. 시나리오에는 브로맨스가 있었다. 촬영도 했는데 감독님이 최종적으로 넣지 않으셨더라. 옳은 선택이었다고 본다."

- 엔딩 분위기도 남다르다.
"3년이라는 시간이 흐른 후다. 판단하니 응징해도 될 때가 온 것이다. 박재혁은 탁 벗어나서 폭발하는 것이 아니라 끝까지 범위 안에서 움직이는 사람이다. 엔딩도 통쾌하거나 만족스러운 것이 아니라 고된 업무를 마치고 퇴근하는 회사원의 감정 정도였으면 싶었다"
 

- 배우에게 직접 설명을 들으니 이해가 가는데 영화만 봤을 때는 개연성이 부족하다고 느껴
진다.
"해석은 관객마다 다를 것이다. '친구' 때 사람들 사이에서 회자됐던 것이 '그래서 동수를 죽인 것이냐, 안 죽인 것이냐'였다. 죽인 것이 맞지만 안 죽였다고 믿고 싶은 것이다. 영화에서는 다 설명을 해 줬다. '지시에 의해 죽였다' 근데 관객 입장에서 받아들이고 해석하는 지점이 다르다. '브이아이피'도 그런 차이가 있지 않을까."

- 입체적인 부분에 대한 개인적인 아쉬움은 없나.
"'브이아이피'는 개개인의 사연에 초점을 맞추는 영화가 아니라 사건이 중심이 되는 영화다. 이야기 자체가 강렬하고 세기 때문에 선택과 집중이 필요했다. 개인적인 아쉬움은 초반에 연기하면서 잊었다. 최종 버전이 최선이었다고 생각한다."

>>②에서 계속

조연경 기자 [e-mail]
사진= 워너브러더스코리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