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장동건(44)이 3년만에 스크린 나들이에 나섰다. 유행하는 멀티캐스팅에 느와르 장르를 택했다. 어느 정도 현실과 타협한 행보다. 묵직한 강렬함은 여전하지만 처음으로 내가 돋보이는 것이 아닌 덜어내는 작업을 진행했다. 본인의 만족도는 최상. 관객들의 선택만 남았다.
"아직도 제 대표작은 '태극기 휘날리며' '친구'에서 멈춰있어요." 몇 편째 지속되고 있는 흥행 부진에 데뷔 이래 처음으로 깊은 슬럼프에도 빠졌다. 이제는 "갱년기였던 것 같기도 해요"라며 웃음으로 넘기지만 꽤 심각했던 시기. 연기 때문에 힘들었지만 돌고 돌아 얻은 답은 결국 연기였다.
뻔뻔하게 잘생김을 인정하고, 아재개그를 쏟아내는 것은 물론, 묻지 않아도 아내 고소영에 대한 애정, 두 자녀의 아빠로서 고충을 토로하고 조언을 구하기까지 25년이 걸렸다. 기자나 배우나 같이 늙어가는 처지다. 영화인이라는 큰 카테고리 안에서 장동건은 취재진 앞 너스레와 여유를 뽐낼 줄 아는 '선배' 배우가 됐다.
※인터뷰①에서 이어집니다. - 외국어 연기에 심혈을 기울였을 것 같은데 "짧게나마 영어 연기를 해 본 적이 있어서 아주 낯설지는 않았다. 그리고 이번에는 심적 부담감이 덜했던 것이 이 사람은 필요에 의해 공부한 만큼만 말하면 됐다. 때문에 딱 내 실력 정도로만 표현하는 것이 캐릭터에도 더 잘 맞는다고 생각했다. 오히려 종석 씨가 고생을 많이 했다."
- 영어와 욕설 연기 중 무엇이 더 어려웠나. "욕 연기는 재미있었다. 그게 또 하다 보니까 재미있더라.(웃음) 다만 평소 욕을 잘 안 쓰는 편인데 촬영을 하다 보니까 그게 입에 익어 일상에서도 갑자기 튀어 나오고 그러더라. 나도 놀랐다."
- '우는남자' 이후 3년 만이다. '7년의 밤' 촬영을 먼저 하기는 했지만 컴백 텀이 길다. "어떤 기준은 없다. 텀 없이 할 때도 있고, 부족하다고 느낄 땐 안 할 때도 있고. 결국 작품따라 흘러가는 것 같다. 요즘 작품 선택의 기준이 좀 달라지기는 했다. 25년 활동했는데 기간에 비해 작품 수가 적다. 아쉽기도 하고 후회스럽기도 하고 그렇다."
- 다작에 대한 욕심이 있나. "솔직히 많이 하고 싶다. 예전이나 지금이나 시나리오와 감독님이 중요한 것은 똑같다. 하지만 70%가 좋은 점이고 30%가 걸리는 점이라고 했을 때 옛날엔 30%를 더 크게 생각했다. 그래서 고사한 작품이 많다. 지금은 70% 좋은 점이 있으면 그 좋은 점만 보고 택한다. 신중하게 결정했다고 해서 작품이 다 잘 되는건 아니더라.(웃음)"- '브이아이피' 시나리오를 고소영 씨에게도 보여줬나. "내가 중국에 있을 때 시나리오를 받아 직접 보여주지는 못했다. 다만 이야기는 했다. '이런 스토리의 이런 작품이 들어왔다'고 했더니 '재미있겠네. 잘 해봐~'라고 하더라.(웃음) 사실 우리가 서로의 연기 모니터를 잘 안 한다. 어색하기도 하고. 소영 씨 드라마가 본 방송이 나갈 때도 같이 안 봤다. 보려고 해도 쫓아낸다. 거실에서 몰래 따로 보고 그랬다."
- 스스로 어떤 옷이 가장 잘 어울린다고 생각하나. "진짜 옷? 하하하. 패션을 물어보는 줄 알았다.(웃음) 캐릭터로 어울리는 것은…. 시기와도 상관있고 마음 상태와도 상관있는 것 같다. 풍족할 때와 결핍이 있을 때 떠오르는 지점은 분명 다를테니까. 어렸을 땐 자꾸 센 것을 하고 싶었다. 사람들이 착하게 생겼다고 하니까 '나 이런 모습도 있어!'라고 보여주고 싶어 했던 것 같다."
- 일종의 강박관념일 수도 있겠다. 지금은 좀 다른가. "내 또래 배우들이나 남자들이 공통적으로 좋아하는 영화들이 있다. 홍콩 느와르 세대 아닌가. 그렇게 자라왔기 땜누에 그런 영향을 받은 것 같기도 하다. 그 때는 그런 욕구가 있었는데 지금은 매력에 더 이끌린다. 어떤 큰 에너지를 쏟기 보다는 평범한 연기를 하지만 잔잔하게 흘러 나오는 매력있는 캐릭터들이 많지 않나. 디테일을 갖고 선택하는 재미가 있다."- 코미디 연기를 하는 장동건도 기대된다. "줘야 하지. 내가 만들어 볼까? 하하. 코미디 작품은 전혀 안 들어온다. 유일했던 작품이 장진 감독님의 '굿모닝 프레지던트' 정도였다. 연기를 하는 것도, 내 연기를 보는 것도 정말 재미있었다. 내 몸에 맞는 코미디가 있다면 기꺼이 할 생각이다. '신사의 품격'도 지금하면 더 잘 할 수 있을 것 같다."
- 아쉬움이 남는 것인가. "마음의 준비가 덜 된 상태였다. 연기를 하면서도 쭈뼛거렸다. 지금은 그런 것 없이 정말 재미있게 놀면서 할 수 있을 것 같다. 내가 재미있어야 보는 사람도 재미있어 한다는 것을 알았다."
- 최근 위트있는 멘트로 화제를 모았다. 잘생김도 받아들인던데 콘셉트를 바꾼 것인가. "이제 이 콘셉트대로 쭉 갈 생각이다.(웃음) 예전에는 겸손하게 이야기 하는 것이 정답이라 생각했고 그게 진심이기도 했다. 하지만 어디를 가나 외모와 관련된 질문을 받다 보니까 똑같은 대답을 하는 나에게 질리더라. 그리고 질문하는 분들도 진짜 내가 어떻게 생각하는지가 아니라 어떻게 대답하는지 궁금해 하신다는 것을 알았다. 제작보고회 때 무심코 한 번 했는데 다들 재미있어 하셔서 계속 하게 됐다."
- 특별한 계기가 있나. "그냥. 더 이상 내가 나를 못 참겠더라. 하하. 20~30대 때 나는 좀 경직돼 있었다. 성격 탓도 있겠지만 무거운 작품을 많이 하다 보니 '진지하게 찍은 영화를 농담하며 홍보하는 것이 결례가 되지 않을까' 하는 소심한 마음도 있었다." - 시간과 경험이 주는 변화일 수도 있겠다. "대중과 함께 세월이 벌써 25년이다. 기간을 무시 못하는 것이 나라는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일부러 감추고 살아도 25년 정도면 고유의 이미지라는 것이 생길 수 밖에 없다. 내가 어떤 이야기를 하든 오해의 여지는 줄어들지 않을까 싶어서 뭐든 편하게 하고 또 받아들이려고 한다."
- 지난 25년은 만족스러운가. "사실 작품으로만 보면 세고 험악한 것들이 많다. 하지만 대중들은 나를 그런 이미지로 생각하지 않는다. 중간 중간 보여준 실제 내 모습의 영향력이 분명 있는 것 같다. 최근 박중훈 선배님 라디오에 나갔는데 요즘에는 앞에 모니터가 있어 댓글들이 막 올라오더라. '우리들의 천국' 부터 '우는 남자'에 대한 이야기까지 쏟아지는 것을 보면서 '분발해야겠다'는 생각도 들었지만 '그래도 이야기거리가 많은 사람이구나. 지금까지 이렇게 쌓고 살았구나' 싶기도 했다. 좋더라."
- '분발해야겠다'는 것은 어떤 의미인가. "아직까지 대표작 하면 '친구'와 '태극기 휘날리며'가 전부니까.(웃음) 10년도 더 넘은 작품들 아닌가. 분발해야지. 하하." >>③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