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 욱일기가 명확하게 금지된 상황에서, 굳이 위험 부담을 안고 사용할 필요가 있을까?"
일본의 모든 사람들이 욱일기(전범기)에 대해 왜곡된 시선만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다. 어디나 그렇듯 일본 내에도 욱일기 문제를 냉정하게 바라보고 사용해선 안 된다고 주장하는 '양심 세력'이 있다. 이번 월드컵 기간, 세네갈전에서 일본 응원단이 들고나온 욱일기 문제를 지적한 스포츠 저널리스트, 세이 요시아키(51) 작가 같은 사람들이 그렇다.
다양한 방면에서 활동 중인 세이 작가는 '풋볼채널' 등에 칼럼을 기고하고 있으며 최근 국내에도 번역·출간된 '축구와 내셔널리즘'을 통해 욱일기 문제는 물론이고 축구가 불러일으키는 나쁜 민족주의를 다뤘다. 그는 이 책으로 2016년 일본 스포츠 기자상 '미즈노 스포츠 라이터 상' 우수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욱일기에 관해 옹호적인 대부분의 일본 내 여론과 달리, 세이 작가는 우선 "욱일기가 문제없다는 일본의 주장과 관계없다. 대회를 주관하는 국제축구연맹(FIFA)이나 아시아축구연맹(AFC)의 규율에 따라 욱일기를 사용하지 말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이번 2018 러시아월드컵에서 일본 대표팀이 거둔 16강 진출의 쾌거에 먹칠할 수 있다"며 "욱일기는 FIFA의 하위 조직이자 일본축구협회(JFA)가 소속돼 있는 AFC 측에서 '국가의 기원이나 정치적인 의견을 나타내는 차별적인 상징'으로 사용을 금지한 바 있다"고 설명했다.
세이 작가가 말하는 AFC의 '욱일기 사용 금지'는 바로 작년 4월 25일 열린 AFC 챔피언스리그 조별리그 수원 삼성-가와사키 프론탈레전 얘기다. 당시 가와사키 원정팬들은 수원월드컵경기장에 욱일기를 내걸었고 이에 대해 AFC는 "가와사키 팬들의 행동은 상대팀에 모욕감을 주거나 정치적으로 인식되는 슬로건을 금지하는 규정을 어겼다. 이를 막지 못한 팀의 책임을 물었다"면서 가와사키 구단에 벌금 1만5000달러(약 1700만원)를 부과했다. 가와사키 구단은 물론이고 스가 요시히데 일본 관방장관까지 나서 "(욱일기는) 일본에서 폭넓게 사용되고 있다"고 옹호했지만 AFC는 결정을 바꾸지 않았다. 이때도 세이 작가는 '풋볼채널'에 기고한 칼럼을 통해 "욱일기를 국제 대회에 내거는 것은 향후 일본 축구계에 마이너스가 될 뿐이고, 중대한 사태로 직결될 가능성이 있다"며 욱일기 사용 금지를 주장한 바 있다.
하지만 이런 일본 내 지적에도 일본 서포터즈들은 여전히 욱일기 사용에 거리낌이 없다. 대부분의 일본 매체 역시, 세네갈전에서 등장한 욱일기에 대해 한국이 거세게 반발하자 지난 사례들을 덧붙여 "욱일기로 트집하는 건 한국뿐"이라고 호도하기도 했다. 하지만 세이 작가는 "욱일기를 문제로 삼는 게 한국뿐이라는 주장은 큰 착각"이라며 "AFC의 본부가 있는 말레이시아를 비롯해 영향력이 큰 동남아시아 여러 나라는 영국·네덜란드 등 현재 축구 대국들의 식민지였던 경험이 있다. 또 욱일기 사용에 징계를 내렸던 당시 AFC 윤리위원회에 한국인 이사는 없었으며 위원장은 싱가포르, 부위원장은 예멘과 중국 위원이었다"고 설명해 욱일기를 문제로 삼는 나라가 한국만이 아님을 강조했다.
또한 "축구팬 중에 욱일기가 무엇이 나쁘냐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다. 가와사키 건을 통해 많은 서포터즈들이 욱일기 문제를 알게 됐지만 오히려 월드컵 땐 그런 사건이 벌어졌단 걸 아는 팬이 적었을 것"이라고 말을 이었다. 리그에서 일어난 사건이기 때문에 월드컵에서 대표팀을 응원하는 사람들 중엔 욱일기가 징계받은 일을 모르는 사람도 많았으리란 설명이다.
하지만 세이 작가는 "이런 무지가 계속되면 위험해진다"며 "역사적 견원지간인 스위스-세르비아전에서 일부 스위스 선수들이 손으로 알바니아 국기를 표시해 징계받은 예처럼, 국가의 기원에 관한 정치적 상징은 징계받을 수 있다"고 경고했다. 이어 "욱일기가 얼마나 큰 문제가 될지는 예측할 수 없지만 모든 건 FIFA의 판단이다. 그러나 이미 (AFC가) 금지한 상황에서 위험 부담을 안고 사용할 필요가 있을까"라며 욱일기를 사용하지 말아야 한다고 주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