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여자프로골프(KLPGA)는 실력과 개성을 겸비한 스타플레이어들의 잇따른 출현으로 해마다 판이 커진다. 올 시즌 KLPGA 투어는 29개 대회에 총상금 226억원이 걸린 역대 최대 규모의 판으로 성장했다. 지난해에 비해 1개 대회, 총상금 20억원이 늘어난 규모다. 양적인 면에서 미국과 일본에 이어 세계 3대 투어로 자리매김했다.
그렇다면 KLPGA는 행정적인 면에서도 세계 3대 투어로 손색없을까? KLPGA는 3월 김상열 회장 주도로 수석 부회장을 비롯해 부회장과 전무이사 등을 대의원 선거제에서 회장 임명제로 바꾸는 정관 개정안을 전격 통과시켰다. 김 회장은 그 배경을 “독재와 파벌을 막고 협회 체질을 개선하기 위한 것”이라고 밝혔다.
협회 수장이 반발을 무릅쓰고 임원진 선출 시스템을 바꾼 이유는 무엇일까. ‘독재와 파벌’이라는 난맥상은 어느 정도이길래 고육지책을 단행했을까. 일간스포츠는 21일부터 25일까지 나흘간, 1978년 네 명의 프로로 설립된 KLPGA가 무소불위 이익 단체로 성장하기까지 그 지리멸렬한 난맥상을 짚어 본다.
KLPGA는 최근 2500여 회원 전체를 대상으로 창립 41주년 기념 선물로 화장품 세트를 발송했다. 셀트리온이라는 회사에서 만든 화장품이다. 시중에서 15만원 정도에 판매되는 제품이다. 한 관계자에 따르면, 41주년 기념 선물에 사용된 예산은 3억원 정도였다. 소비자가격 15만원인 화장품을 9만9000원의 할인된 금액에 구매해 회원들에게 돌렸다.
전후 사정을 알고 있는 KLPGA의 C프로는 “셀트리온 화장품 세트를 창립 기념일 선물로 준 건 대회 개최에 따른 감사의 의미가 있었다”고 설명했다. 셀트리온은 4월 창설된 KLPGA 투어 셀트리온 퀸즈 마스터스의 스폰서를 맡은 기업이다. C프로는 “화장품은 각자가 선호하는 제품이 있는데, 왜 이런 선물을 했는지 이해할 수 없다. 지난해는 40주년 기념 선물로 여행용 가방 세트를 받았다. 그러나 협회가 하는 일을 보면 회원을 위한 복지는 없고, 실생활에는 큰 도움이 안 되는 선심성 선물을 남발하는 게 전부”라고 꼬집었다.
회원들의 불만이 작지 않은 데는 이유가 있다. KLPGA 회원은 정회원·준회원·티칭 회원 구분 없이 연간 18만원의 회비를 낸다. 회원을 위한 단체로 영리 활동을 할 수 없는 사단법인인 KLPGA는 지난해 수입(24억9233만원) 중 대부분인 20억6847만원이 입회비·일반 회비·특별 회비 등 명목으로 회원들로부터 거둬들인 것이다.
2018년 감사 자료에 따르면, KLPGA는 지난해에 회원들로부터 24억9233만원(수입)을 거둬들여 27억916만원(지출)을 썼다. 이 중 행사비(14억5307만원)와 홍보·광고 선전비(1억5689만원)가 큰 부분을 차지했고, 지급임차료(1억475만원) 접대비(8778만원) 회의비(4048만원) 통신비(2931만원) 등으로 사용됐다.
협회 회원들이 낸 회비 가운데 회원을 위해 쓴 비용은 20% 정도인 4억원 선에 불과했다. 협회는 4억원 중 1억8662만원을 장례지도사 파견, 생일 쿠폰 지급, 보험금, 제휴사 할인 혜택 등 회원 복지비로 썼다. 회원을 위한 교육사업비로는 2억4152만원이 지출됐다. 회원 맞춤형 교육 프로그램의 일환인 리더스 모닝 포럼 개최, 외국어 교육 과정 개설(월평균 20명 수강) 취업 역량 강화 프로그램(MS 오피스 과정·스피치·심리 교육) 취미 활동(와인 소믈리에·오븐 베이킹·한식 밥상 차리기) 등이 시행됐다. 그러나 실제 교육받은 인원은 엑셀 MS 오피스 과정(4명) 상대를 사로잡는 심리 과정(5명) 하루 완성 스피치 과정(5명) 회원 진로 지원 서비스(22명) 등 흉내만 내는 수준이었다. 한 회원은 “일부 프로그램이 개설됐다고는 하나 아는 회원들이 많지 않을 뿐 아니라 참여하는 과정도 쉽지 않다. 정말로 회원들을 위한 교육 프로그램이라고 볼 수 있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KLPGA는 3월 총회에서 5대 공약 중 하나로 ‘선수 복지 확대’를 내세우면서 투어 프로로 활동하는 회원들은 물론이고 일반 회원들을 위한 복지를 확대하겠다고 했다. 그러나 대의원·이사 선출 등 선거 때만 활발히 논의될 뿐 실제로 회원들을 위한 복지 사업이 제대로 시행된 적은 없다. 전임 이사를 지낸 D프로는 “협회 돈이 400억원 가까이 쌓이면서 건물을 사자, 연습장을 운영하자 등 사업하자는 이야기가 끊임없이 나왔지만 그때마다 이견이 너무 많았다. 자본은 쌓여 가는데 정작 회원들을 위해서는 쓸 생각이 없는 듯하다”고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