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예일반
[오동진 영화만사] 왜 지금, 다시, 백남준인가
극장은 넓고 (볼 만한 그리고 봐야 할) 예술영화는 많다. 부산영화제가 거의 끝나갈 무렵인 지난 9일 저녁 서울에서는 주목할 만한 행사가 하나 열렸다. ‘백남준 : 달은 가장 오래된TV’ 시사회이다. 감독인 아만다 킴과 특히 제작자인 배우 스티븐 연이 참석해 눈길을 모았다. 현재 할리우드에서 배우 파업에 동참하고 있는 그는 일절 공식 행동을 삼가는 모습이어서 더 주목을 받았다. 스티븐 연은 영화 ‘미나리’와 ‘놉’, 넷플릭스 드라마 ‘성난 사람들’, 미국 AMC 배급인 드라마 ‘워킹 데드’ 등으로 할리우드 최고 스타 배우 반열에 올라 선 인물이다. 이번 시사회는 이례적으로 매우 조용하게 지나갔다. 일절 인터뷰나 그 흔한 무대인사조차 진행되지 않았다. 이번 다큐에서 스티븐 연은 중간중간 이어지는 내레이션을 맡았다. 이날 시사회에는 배우 유태오 예지원 방은진 등과 함께 김한민 감독 등 다수의 영화인과 문화예술인 약 2백명이 참석했다. ‘백남준 : 달은 가장 오래된TV’는 특이한 다큐멘터리다. 전체 구성이 순수하게 푸티지(자료화면)로만 돼있다. 스티븐 연의 내레이션 분량도 그리 많지 않다. 어디서 저런 자료를 구했을까 싶을 만큼 중요한 영상이 쏟아지듯 보인다. 아만다 킴 감독은 자신의 주관은 일절 배제하려는 듯, 백남준과 그의 예술에 대한 객관적 연대기만으로 영화를 이어간다. 어쩌면 가장 ‘정통스럽지 않았던’ 인물에 대해 가장 정통의 방법으로 애기하고 기록하겠다는 식이다. 그런 의도의 화법이 느껴진다. 영화는 백남준의 비디오 아트가 어떻게 시작됐고, 무엇보다 어떤 시대적 배경에서 시작됐으며, 그게 또 어떤 이유로 세계적 예술이 됐는지를 추적한다. 모두들 백남준을 안다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잘 모르고 있거나, 아니면 전혀 알지 못하는, 그래서 그의 깊은 내면에 자리하고 있었던, 전위예술가로서의 시대적 스피릿이 무엇이었는가를 새삼 생각하고 깨닫게 만든다. 그는 왜 TV와 미디어에 집착했을까. 백남준은 어쩌면 지금의 인터넷 네트워크 세상을 예견했던 것은 아닌가. 세상이 첨단화를 거듭해 나갈 때 미술과 예술은 과연 무엇을 할 수 있고 또 무엇을 해야 하는가. 그건 백남준 시대만의 고민인 것인가. 아니면 쳇GPT와 같은 인공지능이 판치고 OTT가 넘쳐나는 지금의 시대에 있어서도 과거 백남준이 던졌던 예술적 화두는 여전히 유효한 것인가. 그 모든 것이야 말로 ‘백남준 : 달은 가장 오래된 TV’가 던지고 있는 질문으로 보인다.가장 궁금한 것은 이 다큐멘터리가 세상에 나오면 (12월 개봉 예정) 과연 젊은 세대들이 얼마나 호응할 것인가 여부다. 아마도, 그리고 비교적, 젊은 세대 관객들에게는 철저하게 외면 받을 공산이 크다. 요즘 이런 작품, 젊은 관객들이 거의 찾지 않는다. 대중들은 백남준을 모른다. 알면 기적이다,라는 소리까지 나올 정도다. 보다 정확하게는 관심이 없다. 세상과 문화가 점점 하향평준화 되고 있다는 얘기다. 많은 관객들은 세상의 여러 이슈에 대해 고민하는 영화나 작품에 대해 꽤나 지루해 하는 경향성을 보인다. 심지어 어떤 경우에는 아주 ‘재수없어’ 한다. 잘난 척 하는 게 싫다는 것이다. 세대간 계층간 불일치의 화법이 난무한다. 이런 영화를 만명, 2만명, 3만명이 보게 할 수는 없을까. 없을 것이다. 모든 것을 자본주의 이윤 동기만이 지배하는 지금과 같은 세상에서는 문화와 예술이 숨 쉴 공간은 점점 좁아 들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술과 영화는 어떻게든 살아 남을 것이라는 점이다. 극장이 급격하게 쪼그라들고 있고 언젠가는 ‘오래 전에 세상엔 극장이라는 것이 있었단다’란 구전이 돌아 다닐 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 팽배해 있지만 그럼에도 영화는 사망하지 않을 것이며 예술은 그 생을 지속해 나갈 것이다. 할리우드 영화 ‘크리에이터’에서 가렛 에드워즈 감독은 극중 주인공인 마야의 입을 통해 이렇게 말한다. “이제 정말 이 전쟁을 끝내야 해.” 이상하게도 마야가 여기서 얘기하는 전쟁은 러시아-우크라이나 간의 것만도, 이스라엘-팔레스타인 간의 것만도 아닌 것으로 보인다. 인간사 모든 곳에서 벌어지고 있는 진영 간 싸움, 계급계층간 싸움, 젠더 간, 세대 간 갈등 그 전부를 얘기하는 것처럼 느껴진다. 그 인간주의, 휴머니티를 이어 가는 한, 영화는 루이제 린저의 말마따나 생의 한 가운데에서 게속 이어져 나갈 것이다. 절대적 수치는 줄어들지라도 극장 역시 우리 삶의 한 편에서 존재해 나갈 것이다. 그렇게 영화는 계속해서 세상의 만사가 될 것이다. 그것이야 말로 백남준 다큐, ‘백남준 : 달은 가장 오래된TV’가 던진 궁극의 질문이다. 왜 지금, 다시, 백남준인가.오동진 영화평론가
2023.10.12 06: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