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예
‘니 부모 얼굴이 보고 싶다’ 김지훈 감독 “영화가 낡지 않은 것은 학폭의 현재성 때문”[일문일답]
27일 개봉하는 ‘니 부모의 얼굴이 보고 싶다’는 무려 5년 만에 햇빛을 보는 영화다. 투자사가 5번이나 바뀌고 오달수의 미투 사건, 코로나 팬데믹 등등으로 개봉이 6번이나 연기됐다 마침내 관객들과 만난다. 영화는 학폭(학교 폭력)으로 학생이 죽자 가해자로 지목된 부모들의 추악한 민낯을 그린다. 개봉 전 시사한 영화는 시간의 묵은 때가 거의 묻어있지 않았다. 바로 어제 찍었다 해도 믿어질 만큼 말짱했다. 김지훈 감독은 2018년 후반부 작업을 마치고 다시 한 것은 없다면서 그것은 학교폭력이 여전히 현재성을 띄고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5년 만의 개봉인데 소감이 남다를 것 같다. “개봉이 6번 연기되면서 걱정되는 시간을 보냈다. 그럼에도 희망의 불씨를 끄지 않은 마음은 극 중 학폭 피해자 건우가 아파하는 마음이 관객에게 전달되기를 바랐다. 이때까지 버틸 수 있었던 것 그 때문이다. 건우의 아픔이 온전히 전해지기를 지금도 바란다.” -5년의 시간 간격을 지우기 위한 고민이나 노력을 했나. “2018년 후반 작업을 완료하고 개봉까지 따로 작업한 것 없이 그대로 개봉을 준비했다. 보통 시간이 지나면 발효하고 부패하지 않나. 내 연출 방식의 만듦새가 부패했으면 어쩌나 걱정을 했다. 그런데 무서운 게 학폭이 여전히 발생하고 있어 현재성을 띄어 영화의 발효나 부패가 없다. 이게 낡은 이야기가 되어야 하는데 여전한 현재성에 연출자로서 불편하다.” -동명의 일본 원작과 학폭을 두고 차별화를 둔게 있는지. “워낙 원작이 탄탄하다. 질투 날 정도로 완벽해서 뭘 고치고 바꾸려 하지 않았다. 영화 대본의 작가님도 누가 되지 않게 (원작에) 충실하려고 고민했다. 차이점이라면 한국화시키면서 캐릭터, 공간의 확장성, 사건의 치밀함, 관객에게 줄다리기하는 텐션을 유지하는 것 정도였다. 작품의 정신을 온전히 옮기는데 고민을 더 많이 했던 것 같다.” -연극 원작을 영화로 만들고자 결심한 이유는. “‘타워’를 끝내고 내적으로 고민을 많이 했다. 예전에는 내가 보여주고 싶고 자랑하고 싶은 것만 했던 것 같다. 나이가 들면서 그 고민을 할 때 연극을 접하고 갈증이 채워졌다. 온전히 아이의 아픔을 내가 잘 만들어서 관객과 만나면 영화적으로 나도 발전하지 않을까 싶었다. 우리 영화의 핵심 키워드는 건우의 아픔과 영혼이 파괴되는 것이다. 관객들도 함께 고민해볼 문제다.” -가해 학생을 연기한 배우들의 트라우마에도 신경을 썼는지. “당시에 심리치료와 같은 제도적 장치가 없어 아쉬웠다. 아이들이 기댈 수 있는 사람이 부모님이라 촬영에 앞서 얘기를 같이했다. 엄마들이 와서 촬영을 보게 했고. 폭력 상황을 자극적이고 재미로 보여주기보다 건우의 영혼이 파괴되는 것을 보여줘야 하는 것임을 주지시켰다. ‘이건 꿈 같은 이야기야’ 라면서 직접 이입하지 않도록 노력했다. 영화를 촬영하며 나도, 아이들도 많이 아파했다.” -완성된 작품을 보며 감회가 남달랐을 것 같다. 가장 기억에 남는 장면이 있나. “남다른 감회라… 촬영 때와 똑같은데 건우의 영혼이 파괴되는 것을 보면서 고통스러웠다. 기억에 남는 장면은 설경구 선배의 마지막 얼굴이다. 답을 내리지 않은 상태에서 찍었다. 배우한테 디렉션을 주지 않고 내가 (설경구에게) 의존해 미안했다. 당시에는 그게 맞다고 생각했는데 5년 후에 다시 보니 내가 원하는 장면을 설경구 배우가 잘해줬다.” -시사 후 인상적인 평가가 있나. “‘김지훈 많이 반성했네?’ 디스이기도 하고 기대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많아서 감사했다. ‘반성을 많이 했다’, ‘정신 차렸구나’, ‘영화를 잘 찍었다기’ 보다 내 진심이 어디로 향해있는지의 기대치가 여전히 유효하게 작동하고 있음에 감사하다.” -전작 ‘7광구’, ‘타워’, ‘싱크홀’과 이번 작품 이후 스스로 달라진 점이 있다면. “연출적인 고민을 많이 했다. ‘김지훈이 반성했네’라는 평가도 내게 기대치가 있어 그런 말을 했을 거다. 영화의 묵직함, 메타포(은유), 의미, 메시지를 표현하는 데 있어 영화적으로 고민을 많이 했구나에 격려와 안도라고 생각한다.” -촬영하면서 가장 분노한 지점은 어디었나. “오달수의 연기였다. 눈빛, 동작 하나하나가 나를 분노케 했다. 가해자의 민낯이 나올 때마다 계속 분노하고 짜증이 났다. 배우들이 연기를 잘해서 감정 이입이 많이 됐고 극의 현실에 대해 몰입했던 것 같다.” -기존에 학폭 작품들과 차별점이 있는지. “피해자의 시선이냐, 가해자의 시선이냐인데 연출자는 피해자의 시선으로 가고 싶은 게 인지상정이다. 그런데 가해자의 시선으로 쭉 바라봐야 하는 점이 고통스러웠다.” -극 중 건우가 괴로워 엘리베이터에서 쭈그리고 우는 장면은 2011년 대구 중학생 자살사건을 연상케 한다. 의도한 장면이었나. “연상보다 똑같이 하려 했다. CCTV에 녹화된 집단괴롭힘 피해학생의 마지막 모습은 충격적이었다. 우리에게 모티브가 되는 장면이었다. 미안하고 아픈 장면인데 그 아픔을 가져가려고 했다.” -배우들이 연기하면 다 같이 분노한 장면이 있었나. “특히 분노했다기보다 처음에는 불편해했다. 누가 가해자, 피해자가 될지 어떤 방식으로 올지 예측할 수 없이 상황에 충실하려 다들 노력했다. 서로 연기에 섬뜩해 했다. 아이들이 가해하는 장면은 비공개로 촬영했다. 아마 부모 역의 배우들이 가해 장면을 봤다면 가해자 연기가 더 불편했을 거다. 물리적인 외상보다 영혼이 파괴되는 장면이라 부모의 마음으로 용납이 안 됐을 거다.” -오달수 배우의 상황과 맞물려 불편한 관객들도 있을텐데. “오달수가 가해자의 핵심인물, 관객에게 분노유발을 할 수 있는 적임자임은 추호의 의심이 없었다. 오달수는 지금도 여전히 죄송해한다. 관객이 영화적 판단과 배우에 대해 판단을 하는 것이지 내가 판단할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본의 아니게 설경구, 천우의 작품이 연달아 개봉(공개)되는데 우려는 없나. “배우는 영화적 인격체로 다시 태어나는 생명체다. 영향이 없다고 말할 수 없다. 전작의 후광이 우리 영화에게 미칠 거란 생각은 안 했다. 설경구와 천우희가 우리 영화의 강호창, 송정욱이라 생각하니 마음은 편하다.” -가해 학생의 부모 얼굴을 통해 전하고 싶은게 무엇인가. “삐뚤어진 사랑이 큰 고통을 준다. 누가 가해자가 될지, 피해자가 될지 알 수 없다. 이게 아이들만의 문제로 치부할 수 없다. 아이에게서 문제를 해결하자가 아니라 사회가 아이에 대한 욕망을 바로잡지 않으면 해결되지 않는다. 영화 제목처럼 우리의 문제이지 아이들의 문제를 아니라고 생각한다. 대사에도 나오는데 문제 있는 아이는 문제 있는 가정에서 나온다. 부모들, 기성세대가 반성해야 한다.” -무거운 주제와는 달리 배경은 초록의 녹음이 화창했다. 따로 의도했나. “영화를 찍을 때 모든 공간이 가능한 한 초록이어야 했다. 가장 생명력이 활발한 순간에 아이들을 놓고 싶었다. 잘난 척 하는 게 아니라 초록 속 아이들이 정상적 환경이 생각해서였다. 5명의 가해 아이들에게 초록의 공간이 정상이길 바랐다.” 이현아 기자 lee.hyunah1@joongang.co.kr
2022.04.25 08: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