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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LB 진출 축하해' 응원 받은 이정후, 모교 휘문중고에 2000만원 기부장학금 전달

새 시즌 미국 메이저리그(MLB) 무대를 누빌 이정후(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가 모교 서울 휘문중고를 찾아 기부 장학금을 전달했다. 이정후는 지난 9일 키움투자자산운용과 함께 휘문중학교와 휘문고등학교를 방문해 기부장학금 전달식을 가졌다. 이날 전달된 기부금은 2000만원으로, 제2의 이정후를 꿈꾸는 후배 야구선수들을 위해 사용될 예정이다. 지난 12월 키움투자자산운용 공식 SNS에서는 이정후의 MLB 진출을 축하하는 응원 및 축하하는 댓글을 작성하면 기부금이 쌓이는 방식으로 이벤트를 진행한 바 있다.이날 행사에서 이정후는 “재능 있는 후배들이 많기 때문에 큰 목표를 가지고 최선을 다한다면, 원하는 목표를 성취할 수 있을 것”이라고 후배들에게 조언했다. 그러면서 “저뿐만 아니라 후배들에게도 도움이 될 수 있는 의미 있는 행사를 마련해 준 키움투자자산운용과 기부 이벤트에 참여해 주신 많은 분들에게 감사드린다. 앞으로도 많은 응원과 관심을 부탁드린다”라고 소감을 전했다.윤진웅 키움투자자산운용 마케팅 본부장은 “이정후의 해외 진출을 진심으로 축하하고 응원하는 마음들이 모여 만들어 낸 기부금이기에 더욱 의미가 있다”라며 “이번 기부를 통해 제2의 이정후 선수를 꿈꾸는 후배 유소년 야구 선수들에게 작은 보탬이 되길 바란다”고 밝혔다.윤승재 기자 2024.01.10 10: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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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민희의 Law&Rule] 매뉴얼을 지킵시다

지난 17일 잠실야구장에서 열린 LG 트윈스와 두산 베어스의 경기 중 응급상황이 발생했다. 3회 초 두산 공격 중 LG 포수 허도환(39)이 바운드 된 공에 목을 맞은 뒤 쓰러졌다. 주심과 타자가 바로 선수를 살폈고, 응급 전문인력이 그라운드로 들어와 응급조치를 했다. 허도환이 곧 정신을 차리고 일어났고 경기가 재개됐다. 운동경기는 사고와 부상의 위험을 내재하고 있는 만큼, 이를 대비하고 예방하는 것의 필요성과 중요성은 여러 번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문화체육관광부와 스포츠안전재단은 지난 3월 「스포츠행사 안전점검 매뉴얼」을 발행했다. 위 매뉴얼은 안전한 스포츠행사 운영을 위해 '장소, 계획, 인력, 물자’'등 네 가지 안전점검지표에 따라 각 행사 별 자체적인 안전관리시스템을 마련할 수 있도록 제작한 것인데, 행사 규모와 종목 특성 등을 고려하여 실질적으로 시행하도록 하고 있다. 매뉴얼에 의하면, 스포츠행사 중에 발생하는 부상 등에 대비하기 위해 의료행위 및 처치가 가능한 응급전문인력(의사, 간호사, 응급구조사)을 반드시 1명 이상 함께 편성하여 행사를 운영하도록 정하고 있다(「스포츠행사 안전점검 매뉴얼」 28쪽 참조). 최근 이러한 매뉴얼이 제대로 지켜지지 않은 사건이 발생했었다. 지난 11일 경기도 성남시 탄천 야구장에서 고교야구 주말리그 경기가 열렸다. 진영고등학교와 부천고등학교가 경기에 참여했는데, 6회 말 진영고의 좌익수와 유격수가 외야 뜬공을 잡으려던 중 서로 충돌해 쓰러지는 사고가 발생했고, 대기 중이던 구급차가 경기장 안으로 들어왔다. 그런데 문제가 발생했다. 보도에 의하면, 당시 구급차에는 운전기사 외에 응급전문인력이 단 한 명도 없었고, 부상 선수들은 약 40분가량 응급조치를 받지 못한 채 고통을 호소했고, 119 신고를 통해 병원으로 이송됐다고 한다. 당시 부상자 중 한 명은 얼굴의 일곱 부위가 골절되고 치아 다섯 개가 부러지는 매우 심각한 부상을 입었고, 회복까지 2년 정도 걸린다는 진단을 받았다고 알려졌다. 고교야구 주말리그는 대한야구소프트볼협회가 교육부 및 문화체육관광부와 공동으로 주최하고, 주말리그 각 권역별 순위에 따라 전국대회 참가팀이 결정되는 등 고교 야구선수들의 프로지명 및 대학진학에 중요한 스포츠 행사다. 위 매뉴얼이 제대로 적용되어야 하는 대상이다.실제로 대한야구소프트볼협회는 고교야구 주말리그의 응급전문인력 운영을 위한 비용을 지원하고 있다. 이달 초 발생한 다른 경기에서 발생한 부상자의 경우 현장에 있던 응급구조사가 현장 조치 후 병원에 이송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번 사건을 보며 가장 안타까웠던 건 위 매뉴얼이 현장에서 제대로 실행됐는지 확인조차 어려웠다는 점이다. 대한야구소프트볼협회의 관계자가 한 매체와 인터뷰에서 '협회가 모든 경기를 다 확인할 수 없지 않나. 보고 후 필요하면 전수 조사도 하겠다'라는 발언이 그 점을 보여준다.매뉴얼은 만들었다고 끝이 아니다. 현장에서 매뉴얼을 제대로 실천해야 하고, 이에 대한 피드백을 확인하고 보완하는 것까지 실현되어야 매뉴얼을 지크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번 사건을 계기로 고교야구 주말리그는 물론 다른 스포츠 행사와 관련한 응급전문인력에 대한 조사 및 보완이 이뤄지길 바란다. 그리고 부상당한 진영고 학생들이 하루빨리 쾌차하기를 기원한다.변호사 한민희 법률사무소 (사법연수원 44기) 2023.06.20 16: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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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O, 유소년 야구장학금 지급…166명 대상·총액 2억4000만원

KBO가 유소년 야구장학금을 지급한다. KBO는 18일 오후 '소외계층 초·중·고등학교 야구선수들이 야구에 대한 꿈과 희망을 잃지 않고 운동에 전념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유소년 야구장학금 수혜자를 선정했다'고 밝혔다. 유소년 야구장학금 지원은 KBO 리그가 팬들로부터 받은 사랑을 사회에 환원하고 나눔을 실천하기 위해 2018년부터 시행하고 있는 사회공헌사업이다. 초·중·고등학교 야구 꿈나무들이 유망주로 성장해 야구선수의 꿈을 이룰 수 있도록 지원하고 있다. 올해 166명의 학생이 야구장학금을 신청했다. 이들을 대상으로 사회복지 및 장학재단 관계자, 장학사 등으로 구성된 장학금 선정위원회 심사를 통해 초·중·고등학생 각각 20명씩 총 60명을 선정했다. KBO는 선정된 수혜 학생에게 1년간 매월 초등학생 20만원, 중학생 30만원, 고등학생 50만원씩 총 2억4000만원의 장학금을 지원할 계획이다. 정운찬 KBO 총재는 "코로나19로 모든 국민이힘들어하는 상황에서 어려운 환경의 학생들이 야구장학금을 통해 좋아하는 야구를 포기하지 않고 학업과 운동에만 매진하는 데 도움이 되었으면 한다"며 "KBO 리그는 앞으로도 국민스포츠로서 사회적 책임을 다하고, 야구를 통한 동반성장과 함께 사회 공헌사업에도 앞장설 계획이다"고 밝혔다. 이번 장학금 선정 결과는 5월 18일 오후 신청자들을 대상으로 개별 통보할 예정이다. 배중현 기자 bae.junghyune@joongang.co.kr 2020.05.18 16: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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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O, 2020년 유소년 야구장학금 지원…총 2억4000만원

KBO가 유소년 야구장학금 신청을 접수한다. KBO는 31일 '소외계층에 속한 초·중·고등학교 야구선수들이 야구에 대한 꿈과 희망을 잃지 않고 운동에 전념할 수 있도록 'KBO 유소년 야구 장학금'을 지원한다'고 밝혔다. KBO의 유소년 야구 장학금 지원 사업은 2018년부터 시행되고 있다. KBO는 올해 이 사업을 통해 초·중·고등학생 각각 20명씩 최대 60명을 선정해 매월 1인당 초등학생 20만원, 중학생 30만원, 고등학생 50만원씩 1년간 총 2억 4000만원 상당의 장학금을 지원할 계획이다. 신청 대상은 올해 대한야구소프트볼협회(KBSA)에 등록된 전문선수 육성을 위해 초·중·고등학교에서 관리, 운영하는 야구부 선수 중 지난해부터 KBSA 또는 한국리틀야구연맹에 선수로 등록돼 활동을 이어오고 있는 선수라면 신청이 가능하다. 초등학교의 경우는 4학년 이상부터 신청할 수 있다. 야구장학금 수혜자 선정은 학교장의 추천을 받은 학생 중 기초생활수급자(생계, 의료, 주거급여 순), 기초생활수급자 중 교육급여수급자와 차상위 계층, 한부모 가정, 장애의 정도가 심한 장애인(종전 1~3급) 가정, 다자녀(18세 이하의 3자녀 이상)가정 순으로 순위를 정하고, 기타 생활형편, 야구성적, 학업성취도, 인성 및 교우 관계 등을 종합적으로 판단하여 선정하게 된다. 장학금 신청 기간은 4월 29일까지이며, KBO 육성팀으로 우편 접수만 가능하다. 신청 양식 및 기타 자세한 내용은 KBO 홈페이지에서 확인할 수 있다. 배중현 기자 bae.junghyune@joongang.co.kr 2020.03.31 14: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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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간 단독인터뷰] '금메달 아버지' 이종범·여홍철 "정후·서정 아빠 듣기 좋다"

'금메달 아빠'가 만났다.야구와 체조 종목에서 최고의 스타플레이어였던 이종범(48)과 여홍철(47). 이번에는 그들의 자녀들이 '아버지 명성'의 부담감을 극복하고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최고의 정상에 올랐던 아버지들의 마음은 같다. "더 미안하고 고맙다"고 했다.이종범 국가대표 코치와 여홍철 경기대 교수는 아시안게임 금메달리스트 출신이다. 이 코치는 2002 부산아시안게임 5경기에서 타율 0.353(17타수 6안타) 4득점 2도루로 대표팀의 우승을 이끌었다. 여 교수는 자신의 이름을 딴 '여1' '여2' 기술을 선보이며 1994 히로시마·1998 방콕아시안게임 남자 체조 도마 경기에서 대회 2연패를 차지했다.이제는 자녀 덕에 '금메달 아빠'가 됐다. 2018 자카르타-팔렘방아시안게임에서 이종범 코치의 큰아들 이정후(20·넥센)는 야구대표팀의 일원으로, 여홍철 교수의 둘째 딸 여서정(16·경기체고)은 여자 체조 개인 도마에서 각각 우승했다.아버지들은 자녀들의 야구, 체조 입문을 반대했다. 하지만 피는 못 속였다. 아버지의 DNA를 고스란히 물려받아 같은 길을 걷고 있다. '바람의 손자'는 만 스무 살, '도마공주'는 열 여섯 살. 그들의 아버지보다 훨씬 이른 시기에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특히 그들의 아버지는 현지에서 자녀들의 금메달 획득의 영광을 함께했다. 이종범은 대표팀 코치로 합류했다. '아들' 이정후가 출루하면 '아버지' 이종범과 1루에서 만나는 진풍경을 연출했다. 여홍철 교수는 방송 해설위원으로 관중석에서 딸의 경기 장면을 지켜봤다. 그래서 기쁨이 두 배였다.선수로서 최고였던 둘은 자녀의 선전 속에 또 하나의 진기록을 작성했다. 이종범-이정후는 한국 야구 사상 최초로 '부자(父子) 금메달리스트'가 됐다. 여홍철-여서정 역시 체조 사상 최초로 '부녀(父女) 금메달리스트'에 이름을 올렸다. 특히 여서정은 1986 서울아시안게임 이후 32년 만에 여자 체조 금메달의 주인공이 됐다.사실 두 사람의 인연은 35년여 전 초등학교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구슬땀을 흘리던 그땐, 여러모로 이런 날이 올 줄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일간스포츠 창간 49주년을 맞아 동반 인터뷰를 요청하자 이종범 코치는 "(여)홍철이와 함께하는 인터뷰라면 꼭 하겠다"고 했다. 여홍철 교수도 "함께하는 인터뷰는 처음이다"며 반겼다. 2시간여의 인터뷰가 진행되는 동안 두 사람은 옛 추억을 더듬고, 앞으로를 축복하며 뜨거운 우정을 자랑했다. - 첫 만남을 기억하는지.여홍철(이하 여)= "초등학생 때 이종범 형이 다니던 서림초에 체육관 시설이 갖춰져 있어 우리 학교 체조부가 항상 오후에 훈련하러 갔다. 당시 (선생님께서 체벌을 위한 지시로) 방망이를 빌리러 종범이 형을 많이 찾았다."이종범(이하 이)= "(웃음)체조부는 엄청 많이 맞더라. 야구부도 많이 맞았지만 유니폼을 입은 상태였고, 체조부는 맨살에 많이 맞아 무섭더라. 체조를 안 하길 잘한 것 같다." - 왜 유독 이종범만 찾아 방망이를 빌렸을까.여= "글쎄. 처음 (방망이를) 빌릴 때 종범이 형에게 갔다. 그다음부터는 아는 사람이 형밖에 없어서 계속 찾았다. 인연이 되려니까 그랬던 거지."이= '(웃음)' - 첫인상은 어땠나.이= "조그마한 친구가 도마, 평행봉을 훈련하는 모습을 봤다. 체조도 도움닫기를 위해 빨리 뛰지 않나. 스피드를 보고 깜짝 놀랐다. 그 정도면 야구를 했어도 될 것 같더라."여= "농담으로 밖에서 '내가 야구를 했으면 해태 유격수를 했을 거다'라고 말하고 다닌다. 정말 야구를 좋아했다." - 해태 유격수라면 이종범과 같은 포지션에서 경쟁이 불가피한데.여= "농담이다. 이 사람(이종범)을 어떻게 이기겠나. 정말 야구를 좋아했다. 초등학교 클럽 시간에 야구 수업을 신청했는데 야구부가 없어졌다. 이후 야구부가 다시 생겼고, 양현종(KIA)이 학강초를 나왔더라. 요즘도 사회인야구(여 교수는 여러 종목 국가대표 출신 선수들로 구성된 사회인리그 챔피언스의 단장을 맡고 있다)를 하면서 유격수를 보고 있다. 예전에 2루수를 볼 땐 심판이 내게 '사회인리그 소속 동호인 중 2루를 가장 잘 보는 것 같다'고 하더라."이= "그렇다면 수준급 실력이다. 나도 사회인 야구를 해 봤는데 많이 다치고, 불안불안한 모습을 보이더라. 사회인 야구에선 안정된 수비 능력이 가장 중요하다. 안 그래도 이번에 아시안게임 중계를 다녀온 뒤 네가 바로 사회인리그에서 뛰는 뉴스를 보고 깜짝 놀랐다. 곧 시간을 내서 경기장을 찾아가 실력을 점검하고, 한번 평가해야겠다." 여홍철/연합뉴스- 반대로 이종범 코치가 체조를 했다면 어땠을 것 같나.여= "한 종목에 어느 정도까지 올라간 선수는 다른 종목을 해도 잘한다고 생각한다."이= "(여)홍철이를 알고선 '그때 텀블링을 배웠어야 한다'는 아쉬움 속에 훈련했다. '조금만 연습하면 되겠다' 싶었지만 원리를 모르니까. 메이저리그에선 아지 스미스가 홈런 치고 나서 텀블링을 했다. 수비 때나 베이스러닝 때 요령 있게 하면 유용하게 써먹을 수 있다. 포수가 태그할 때도 텀블링을 해서 피하면 세이프가 되는 상황이 있다. 내가 가진 베이스러닝 기술과 (체조 기술을) 접목했으면 더 재미있는 상황을 연출했을 것 같은데. 완전 획기적이었을 텐데 후회된다. 나만의 생각이다." 잠시 끊겼던 두 사람의 인연은 10여 년 뒤 우연히 다시 이어졌다. 여= "우리가 어렸을 땐 통신망이 잘 갖춰지지 않았다. 서로 각자의 길을 걷다 보니 한동안 연락이 안 됐다. 1996년 군 복무 중인 친구에게 면회를 갔다가 정문에서 (이)종범이 형을 만났다. 당시 31사단에서 (방위) 복무 중이었는데 퇴근한다고 하더라."이= "깜짝 놀랐다. 홍철이가 1996 애틀랜타올림픽에서 은메달을 딴 뒤여서 '얘는 군대에 안 들어오는데, 왜 왔지?'라는 생각에…."여= "당시 정말 반가웠고 고마웠다. 나는 언론을 통해 (이)종범이 형의 활약과 소식을 알고 있었다. '과연 날 기억하고 있을까' '날 알아봐 줄까' 싶었다. 그래서 기쁨과 반가움이 두 배였다."이= "그렇게 다시 인연이 됐다. 1996년 10월 17일 광주에서 열린 해태-현대의 한국시리즈 2차전 시구자로 구단에 홍철이를 추천했다. 오래됐네."여= "맞다. 당시 시구자로 나섰다."이= "학창 시절 때는 인생이 이렇게 화려해질지 몰랐다. 어렸을 땐 빈곤했다. '국가대표가 되고 싶다'는 목표 속에 '헝그리 정신'을 앞세워 열심히 땀을 흘렸다. 홍철이는 올림픽에서 메달을 땄고, 나는 프로에서 열심히 뛰었고." - 서로의 선수 시절 모습을 유심히 지켜봤겠다.여= "야구를 좋아해서 종범이 형, 해태와 관련된 뉴스를 많이 봤다."이= "비록 몸과 마음은 떨어져 있었지만 1996 올림픽에서 은메달을 목에 걸 때 굉장히 아쉬웠다. 좋아하는 후배였으니까…. 올림픽 체조 사상 첫 금메달을 염원하며 착지 순간에 마음속으로 응원했다." 요즘도 두 사람은 자주 통화하고, 가끔씩 골프 치는 것도 함께한다. 이야기 주제는 잠시 골프로 흘러갔다. 여홍철 교수가 "야구는 오른쪽에 중심을 두고 때리고, 골프는 좌측에 중심을 놓고 친다. 완전히 다르다. 야구선수들이 (골프 칠 때) 슬라이스가 나오는 이유는 중심을 뒤쪽에 두고 때려서 어퍼스윙이 되는 거다"며 야구와 골프 이론에 대해 한참 동안 얘기를 늘어놓았다. 이종범 코치는 "역시 여 교수, 완전 야구 코치들이 하는 얘기 같아. 야구 이론까지 다 섭렵했네"라며 웃었다. - 이정후와 여서정이 아시안게임에서 금메달을 땄다. 연락을 많이 받았을 텐데.여= "지금까지 연락 한 번 안 온 친구한테 갑자기 메시지가 오더라. 와~ '이 친구 살아 있네' 싶었다. 약 300통의 연락을 받았다. 나흘에 걸쳐 답장했다."이= "메달 획득 소식을 접한 뒤 홍철이와 (여)서정이가 함께 나온 사진을 캡처해 축하 인사를 전했다. 정말 기쁘더라. 인도네시아 선수촌에서 임도헌 국가대표 배구팀 코치를 만났는데 '서정이 몸은 남다르다. 남자 선수 근육 같다. 무조건 메달을 딸 것 같다'라는 얘기를 하더라."여= "예전에는 여자 체조의 경우 마른 체형의 선수가 많았는데, 최근에는 남자 선수 못지않은 기술이 유리하다. 그래서 2016 리우데자네이루올림픽 체조에서 4연패를 차지한 미국의 시몬 바일스처럼 파워풀한 몸매의 선수가 많다. 아시아권 체조가 고전하는 이유도 힘이 부족해서다. 그런데 서정이가 최근 '아빠, 나도 여자고 싶어'라고 하더라." 이= "한창 (외모에) 관심 있는 나이인데. 운동을 안 하면 체중과 근육량은 2~3주면 금방 빠진다고 말해 줘." 여= "네. 만약 아들이 있었다면 야구를 시켰을 거다. 그랬다면 같이 캐치볼도 하고 그랬겠지. 부모가 관심 있는 종목을 시키기 마련이니까." - 자녀의 운동선수 생활을 말리진 않았나.이="사실 여기까지 오는 과정이 굉장히 힘들었다. 게다가 아빠가 화려한 선수 생활을 했기에 (이)정후가 멘틀적으로 흔들리지 않을까 많이 걱정했다. 차라리 다른 종목을 했다면 내가 문외한이니까 (크게 걱정하지 않았겠지만)…. 그래서 축구, 골프, 쇼트트랙 등 다른 종목을 많이 시켜 봤다. 그런데 정후가 어릴 적부터 두드러진 게 공으로 하는 종목을 잘하더라. 야구공, 테니스공, 축구공을 원했고 장남감을 사 달라고 한 적이 없다. 심지어 책상 아래로 슬라이딩을 하더라. '나중에 뭐 하려고 그러지' 싶었다. 마음속으로는 '야구는 하면 안 될 텐데'라고 생각했다. 나 때와 환경도 다르고, '헝그리 정신'도 부족한 것 같고. 고등학교에 진학하거나 프로에 진출하면 많이 힘드니까 '야구 말고 다른 종목을 해 보라'고 권유도 했다. 엄마의 선택이 가장 큰 영향을 끼쳤다. (정후의 야구 입문과 관련해) 두려움이 앞섰다. 프로에서 성공하기 전까지 엄청 불안하고 초조했다."여= "역시나 (여)서정이가 체조를 하려고 할 때 나도 말렸다. 아내가 2009년 국가대표 체조 코치를 역임할 때 자연스럽게 서정이가 체조장에서 놀곤 했다. 체조를 따라 하는데 곧잘 하더라. 큰딸보다 (여)서정이가 훨씬 잘하더라. 어느 날 (여)서정이가 '체조를 하고 싶다'고 해서 당황했다. 그래서 용인대 체조 영재센터에 보냈다. 20명 정도 있었는데 눈에 확 띄었다. 계속 체조를 하고 싶다고 하더라. 서정이가 어렸을 때 서울과 광주에 있는 학교를 다녀서 떨어져 지냈는데, 주말에 학교에 데려다주면 닭똥 같은 눈물을 흘리더라. 또 몇몇 부모들은 서정이의 체조부 생활을 반대했다. 담당 코치가 내 제자뻘이니까 '본인 자식이 불이익을 당할 것 같다'는 인식이 있는 것 같더라. 그래서 지금도 죄인 아닌 죄인으로 살고 있다."이= "나도 (이)정후 학창 시절 때 일부러 학교를 한 번도 안 찾아갔다." - 아버지의 DNA를 물려받은 것 같나.이= "당연하다. 어떤 플레이를 하면 '나도 그랬는데 비슷하네'라고 가끔 생각하기도 한다. 그런데 DNA는 물려받더라도 가르침은 엄마의 영향력이 크다. 100을 놓고 보면 엄마의 몫이 90%라고 본다. 아빠는 길잡이 역할을 한다면, 엄마가 인성을 비롯해 그외 많은 교육을 맡는다. 별로 (이)정후에게 많은 말을 하진 않는다. 올봄에 좋은 활약을 펼치다 여름에 나태해지기에 식사 자리에서 한 번 엄청 질책했다."여= "나도 엄마의 역할에 동의한다. 기량은 나보다 나은 것 같다."이= "제수씨도 체조선수 출신이니까."여= "(웃음) 서정이에게 '체조를 하려면 제대로 하라'고 얘기한다. 예를 들어 국가대표 5명을 뽑는데 실력이 엇비슷해 5등으로 겨우 선발되면 '부모의 영향력 때문에 뽑혔다'는 이야기가 나돌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이= "그렇지."- 이번에 메달 획득을 각각 그라운드와 중계 부스에서 봤다.여= "내가 더 긴장되더라."이= "말 안 해도 알 것 같다. 속으로 얼마나 '넘어지지 마라'고 (기도를) 했는지…." 여서정과 여홍철 부녀/연합뉴스여= "아버지의 마음으로 응원하는 게 아니라 해설위원으로서 전달해야 되는 입장이니 속마음과 달리 (흥분과 긴장감을) 자제하려고 노력했다."이= "나 역시 억누르게 되더라. 금메달을 획득하면 울 줄 알았는데 (그렇지 않았다). '이제 됐다' 싶었다. 정후한테 고맙더라. 이제 갓 스무 살 된 선수가 1번 타자를 맡으니 내가 더 부담스럽더라. 아무리 약팀과 승부라 해도 잘 헤쳐 나가야 했다. 농담이지만 김재현 코치한테 '(이)정후를 9번 타순에 넣어 줘. 타선이 적게 돌아가도록'이라고 한 적도 있다. 판단력과 선수 보는 안목이 좋은 김 코치가 '정후는 충분히 1번을 맡겨도 잘할 겁니다'라고 하더라. 사실 1루 베이스코치와 주자로 만나도 공과 사는 구분해야 되니 감정 표현을 거의 안 했다. 또 일본과 대만전은 투수 견제력을 알려 주고 대표팀 아웃 카운트도 다시 한 번 주지시켜 줘야 한다. '리드 폭과 주저하면 다치니까 슬라이딩을 거칠고 빠르게 하라' 등 기술적 조언을 처음 해 줬다."여= "당시 예정된 TV 중계가 태풍 북상으로 취소됐다. 당시 KBS2 채널에선 여자 배구 (가장 관심을 모은) 한국-중국전 예선 중계가 잡혀 있었다. 그래서 중계 직전까지 편성 여부가 확정되지 않았다. 결국 서정이가 출전한 체조 종목 중계로 대신했다. 그날 서정이가 금메달을 못 땄으면 큰일 날 뻔했다고 하더라." - 자식 자랑을 한다면.이= "칭찬할 게 없다. 아들이라 그런지 대화도 많이 하지 않는다. 엄마가 바라는 아들의 역할도 못 하는 것 같다. 그런데 이해한다. 선수 시절을 떠올리면 습성이 나와 비슷하다. 야구선수는 하루에 10시간을 잠자고, 10시간은 그라운드에서 생활한다. 남자들은 집안에서 인터넷, 게임, 친구들과 연락하며 시간을 대부분 보내지 않나. 엄마가 잔소리하면 PC방 혹은 카페에 가더라. 사실 나도 그렇게 해 왔다. 그래도 아빠처럼 좀 더 엄마에게 살갑게 대하는 아들이 됐으면 한다." - 그래도 칭찬한다면. 이= "칭찬할 만한 게 없다. 딱 한 가지, 지금까지 사고를 안 치고 무난하게 선수 생활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여= "운동 외적으로 보면 주변 사람들을 챙기는 스타일이다. 퍼 주기도 하고. 나와 엇비슷한 것 같다. 쉬는 날엔 친구나 선후배들과 나가서 같이 놀고, 성격이 모나지 않아 좋은 것 같다." 이종범과 이정후 부자/연합뉴스- 자녀에게 기술적인 조언도 하나.여= "내가 지도하고 싶어도 한창 배워 가는 단계에서 서정이가 헷갈려 할 수 있다. 어릴 때 집에서 체조에 관해 얘기하면 '아빠, 나 쉬면 안 돼'라고 하더라. 그래서 될 수 있으면 특별히 얘기하지 않는다. 본인이 답답하면 먼저 연락해서 물어 온다. 그러면 동영상을 찍어서 보내 달라고 한 뒤 조금씩 조언해 주지만 될 수 있으면 안 한다. 대개 일주일에 한 번 정도 서정이한테 연락이 올까 말까 한데 이번 아시안게임 기간에는 연락을 정말 많이 해 오더라. 아무래도 국제 종합대회는 처음이어서 그랬나 보다. 그만큼 긴장했다는 의미다."이= "절대 물어 온 적이 없다. 눈빛만 봐도 알기 때문에 '무조건 쉬라'고 한다. 정타가 안 나오면 체력이 떨어졌다는 의미다. 그럴 땐 '밖에 나가지 마라'고 할 뿐이다." - 이종범 코치는 올해 이정후를 보기 위해 잠실구장 외야에서 관전하는 모습이 TV 중계 화면에 잡힌 적이 있다. 자녀 몰래 가끔씩 경기장에 방문하나.이= "그때가 처음이었다. 너는?"여= "심판위원도 역임하고 있어 경기장에서 서정이의 모습을 항상 본다."이= "맞다. 사실 당시 에피소드가 있다. 아내가 '잠실구장을 한 번 가 보고 싶다'고 하더라. 그래서 일부러 외야석으로 가자고 했다. 괜히 중앙에서 보면 '(선수 출신이라) 대접받는다'는 이야기가 나올까 봐, 또 팬들이 몰릴 수 있어서였다. 아내가 '모자를 쓰고 가는데 어떻게 당신을 알아보냐'고 하더라. 그래서 장난으로 50만원 내기를 했다. 티켓을 끊고 외야석에 들어선 지 1분 만에 내가 이겼다. 아내가 '이제는 당신하고 함께 야구장에 못 오겠다'고 하더라." - 그동안 '이종범의 아들' '여홍철의 딸'이 아닌 이젠 'OOO의 아버지'로 많이 불릴 것 같다.이= "그렇다. 또 그게 맞다고 본다. 솔직히 '이종범'보다 '정후 아빠'라는 이야기가 훨씬 더 듣기 좋고 대접받는 것 같다. 아들(이정후)이 실력으로 이겨 냈고."여= "'서정이 아빠'라는 수식어가 좋지도 나쁘지도 않다. 사실 여홍철, 여서정 각자로 불렸으면 좋겠다. 그렇다면 서로 부담이 더 없을 것 같다. 그래도 (한 가지 고른다면) '서정이 아빠'가 낫다. 나는 이제 가는 세월이고.(웃음)"이= "차범근 감독의 아들 차두리 선수가 정후를 만나 '네 마음을 잘 알 것 같다'고 했다고 한다. 2세 선수들은 얼마나 부담감이 크겠나. 오히려 우리들이 얘들한테 미안하다. 아빠보다 뛰어나면 더 좋다."여= "마찬가지다. 나보다 더 높은 곳까지 올라갔으면 하는 바람이다. 그게 부모 마음이다." - 서로에게 응원 메시지를 전한다면. 이= "홍철이는 대학교수를 역임하고 있고 체조계에서 큰 역할을 하는 만큼 앞으로 건강하고 생각대로 다 이뤘으면 한다." 여= "어릴 적부터 해태팬이었지만 형이 한화에서 코치 생활을 할 땐 한화팬이 되기도 하더라."이= '(웃음)'여= "팬으로서 후배로서 형이 앞으로 감독까지 맡았으면 한다. 그래야 주변에 또 자랑할 수 있다.(웃음)" 이형석 기자 lee.hyeongseok@jtbc.co.kr 2018.09.21 06:00
야구

SK, 제7회 야구 꿈나무 장학금 전달식 진행

SK가 아마야구 활성화를 위해 장학금을 전달했다. SK 지난 15일 오후 2시 인천SK행복드림구장 내 위치한 대회의실에서 ‘제 7회 SK 야구 꿈나무 장학금 전달식’을 실시했다. ‘SK 야구 꿈나무 장학금’은 지난 2009년 KBO 제6차 이사회에서 ‘현대구단 연고지 분할 보상금 재정산’을 통해 SK와이번스가 확보한 16억원 가운데 11억원을 대한야구소프트볼협회에 기탁해 조성한 기금에서 발생되는 이자수익으로 매년 초·중·고 야구선수들에게 장학금을 전달하여 야구 꿈나무들에게 꿈과 희망을 심어주는 프로그램으로, 지난 2010년부터 7회에 걸쳐 지속적으로 진행되어 왔다. 수상자는 올 시즌 대한야구소프트볼협회 주최 전국대회 성적과 16개의 각 시·도 지부의 추천을 근거로 SK와이번스와 대한야구소프트볼협회가 공동으로 선정하였으며 초·중·고등부로 나누어 대상(200만원,대전 신흥초 김동환/광주 동성중 정해영/서울 덕수고 양창섭) 3명, 우수상(100만원) 7명 총 10명에게 1,300만원의 상금을 전달했다. 이번 행사는 장학금 전달식의 취지 설명을 시작으로 내빈소개, 인사말, 축사, 초·중·고교 우수선수상(7명) 및 대상(3명) 시상, 기념촬영 순으로 진행됐다.고등학교 부문 대상을 차지한 서울 덕수고등학교 양창섭 선수는 “뜻하지 않게 큰 상을 받게 되어 기쁘다. 오늘 수상을 새로운 자극으로 삼아 제게 상을 주신 여러분들의 기대에 보답할 수 있는 뛰어난 선수가 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소감을 밝혔다. SK제공 2016.12.16 09: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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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획⑩]일본 고교야구 현장에서 배우다

학생 야구는 프로야구의 거울이다.한국 프로야구는 올해 승부 조작 사건으로 홍역을 치렀다. 문제를 일으킨 선수들은 사법 처리됐고, KBO와 구단은 죄인의 심정으로 재발 방지를 약속하고 있다. 여기서 눈여겨봐야 할 점이 있다. 2014년 KBO 리그 최초의 승부 조작 사건 유형은 '고의 볼넷'이었다. 금전적인 대가를 받고 고의로 경기 내용을 조작했다.그런데 '고의로 경기 내용을 조작'하는 일은 한국 학생 야구에서 간혹 일어난다. 지난해 고교 야구 서울시 주말리그 두 경기에선 한 타자가 안타 5개 중 4개를 번트 안타로 만들었다. 상대팀 야수들은 제대로 수비를 하지 않았다. 대학 입학을 위해 상대팀이 의도적으로 해당 선수의 타율을 높여 주려 한 게 아닌가라는 의혹이 일었다. 학창 시절부터 야구가 '존중'이 아닌 '조작'의 대상이 된다. 이 선수들이 야구를 직업으로 삼았을 때 '클린 베이스볼'이라는 단어를 들으면 어떤 생각을 할까.일간스포츠 특별취재팀은 이런 문제의식을 갖고 일본의 학생 야구 현장을 찾았다. 일본 동북부에 위치한 미야기현은 야구 명문 고등학교가 많은 지역이다. ‘대마신’ 사사키 가즈히로, 메이저리그와 일본 프로야구에서 22시즌을 뛴 사이토 다카시가 이 지역 출신이다. 퍼시픽리그 라쿠텐 골든이글스의 홈구장인 코보스타디움미야기(구 미야기구장)에서 지난 17일부터 제69회 추계동북지역 고교야구 미야기대회가 열렸다."학생 야구에서의 경험이 뒷날 사회생활을 할 때 힘이 되길 바랍니다."스기야마 츠토무 미야기현 고교야구연맹 이사가 말문을 열었다. 학생 선수들이 야구에서 배움의 경험을 얻어 가길 바란다고 했다. 의례적인 말이 아니었다.연맹은 현 내 고등학교 연식·경식 야구부 감독 모임을 주기적으로 개최한다. 주장 선수들도 비슷한 미팅을 한다. 이 자리에서 훈련 방법, 야구부 생활과 지도 등 경험을 공유한다. 감독 모임에선 번갈아 가며 감명 깊게 읽은 책을 소개하는 시간도 있다.현 내에서 청소년 야구 국가대표를 배출하거나 고시엔 및 메이지진구 대회에 출전하는 팀 주장에겐 특별한 요청을 한다. 다른 팀 감독과 주장들이 참석하는 세미나에서 훈련과 합숙 방법, 분위기 등을 주제로 발표를 해 달라는 것.왜 이런 행사를 할까. 스기야마 이사는 "고시엔에 나갈 후보군은 정해져 있는 게 사실이다. 고시엔에 나가기 어려운 학교들도 조금 더 야구에 집중하고 열의를 갖게 하기 위해서다”고 취지를 설명했다. 그는 “우리 현에서 고시엔 우승팀이 나오고, 유명 프로 선수도 나오는 건 좋은 일이다. 하지만 학생 야구선수들이 보다 진지하고 즐겁게 야구를 하게 도와줘야 한다. 그게 연맹이 할 일"이라고 말했다. 미야기연맹의 중점 목표 중 하나는 '규범의식 향상'과 '불상사 근절'이다. 스기야마 이사는 “야구는 팀 스포츠다. 팀의 승리는 중요하다. 하지만 이기기 위해 폭력이나 승부를 '만지는' 일이 일어나선 안 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승패를 우선해 야구부에서 폭력이 일어나거나 상대를 배려한다는 명목으로 고의로 느슨한 플레이를 하는 건 있어선 안 될 일이다. 그런 분위기에선 야구부를 이탈하는 학생 선수가 늘어날 수밖에 없다"고 했다.일본 고교 야구 명문인 오사카의 PL학원고는 올해 야구부원 모집을 하지 않았다. 야구부에서 폭행과 이지메 등 사건이 끊임없이 발생했기 때문이다. 스기야마 이사는 "야구부 운영과 교육의 주체는 학교다. 연맹은 이를 지원하는 역할을 한다"며 "연맹 내 6개 부서 중에서 교육관계부와 안전관계부가 선수 육성 및 정신건강 관리 업무를 담당한다"고 설명했다.연맹 이사진 6명 중 2명은 미야기현 경찰위원회에 소속돼 있다. 매월 열리는 위원회에 참석해 현 내 치안 및 범죄 교육에 대한 자문을 받는다. 지역사회 공헌이라는 의미도 있다. 스기야마 이사는 “2011년 동일본 대지진 때 야구는 지역 주민들로부터 많은 사랑을 받았다. 우리 연맹은 이를 저버릴 수 없다"고 말했다. 한국 학생 야구의 가장 큰 문제는 학부모들의 돈으로 야구부가 운영된다는 점이다. 일본은 어떨까.“확실히 야구부 예산과 지원금으로는 부족합니다.” 미야기연맹의 조사에 따르면 연간 소요되는 부활동비, 부모회비, 개인비용을 합산하면 공립고등학교 부원들은 연간 230만원을 부담한다. 사립학교는 천차만별이다.부활동비는 공립학교가 10만~15만원, 사립학교는 기본이 30만원이다. 학부모가 부담하는 회비 차이는 '심각한' 수준이라는 게 스기야마 이사의 의견이다. 기본이 월 30만원이다. 학교에서는 지구·지역 대회 참가 시 일정 지원금이 나온다. 대개 교통비 수준이다. 미야기연맹에서는 심판 파견 비용, 연맹이 섭외할 수 있는 현영구장을 저가에 임대하는 정책을 펼치고 있다.하지만 야구부 감독과 코치는 학교 교사로서 급여를 받는다. 연맹과 현 교육청은 급여 외 일정액의 수당을 지급한다. 학부모와 금전 관계는 없다. 미야기현 고교 교사로 재직하다 은퇴한 모모이 슈우지씨는 “일단 부모로부터 돈을 받을 일은 없게끔 돼 있다. 돈을 받는다면 교사로서, 야구인으로서 자격이 없다”고 말했다. 연맹 차원에서는 이런 일이 발생하면 근신 및 야구부 대회 출전 정지 등 징계를 내린다.일본 고교 야구의 인기는 프로야구 못지않다. 지역사회에 야구가 깊게 뿌리내리고 있다. 유대 관계는 끈끈하다. 미야기현을 연고로 하는 라쿠텐도 지역 연맹과 발을 맞추고 있다. 라쿠텐은 코보스타디움미야기 증축 당시 미야기현 소재 야구협회, 고교연맹, 리틀연맹 등과 협의를 거쳐 아마추어 야구를 위해 연간 80일 이상 구장을 비워 주기로 했다. 대회 기간엔 그라운드 정비와 관리 인력 파견도 부담한다.추계 대회 지원을 위해 구장에 출근한 한 라쿠텐 직원은 “라쿠텐 선수들이 뛰는 구장에서 학생 선수들이 긍정적인 자극을 받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라쿠텐은 미야기현 소재 야구 단체들과 협의해 지역 공헌 프로젝트를 진행한다. 현직 선수, 코치들이 리틀 야구팀, 중학 야구팀을 찾아 기술 지도도 한다. 시즌 중에 열리는 행사도 있다.라쿠텐 구단 마케팅부 직원인 스즈키 유카씨는 “프런트와 선수단이 협의해 계약 갱신 때 구단의 지역 공헌 활동 참가를 준의무화했다”고 밝혔다. 피치 못할 사정이 아니면 반드시 참가해야 한다. 스즈키씨는 "활동에 참가하면서 선수들은 연고 지역에 대한 이해도를 높이고 프로 선수로서 몸과 마음가짐을 자각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미야기연맹은 지역 유명 사회인 야구팀을 통째로 초빙해 소속 고교 야구부를 한자리에 모아 기술 지도를 받는 행사를 열고 있다. 스기야마 이사는 “학생 선수에겐 동경의 대상이 필요하고, 성인 선수들은 책임감을 가진다. 서로에게 배우는 행사"라고 말했다. 서영원(프리랜서라이터·특별취재팀) [특별기획⑧]日구단 관계자, "사건의 출발은 다 똑같다" [특별기획⑨] 일본프로야구 유해 행위 방지 교육 자료 살펴봤더니… 2016.09.21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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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전 한화 투수 허유강, 독립구단에서 '야구'를 찾다

2015년 11월. 결혼을 준비하던 한화 언더핸드 투수 허유강(30)은 청천벽력같은 전화 한 통을 받았다.소속팀 한화가 곧 웨이버 공시를 한다는 통보였다. 눈앞이 캄캄했다. 곧 결혼식을 앞두고 있었다. 온 가족이 놀라고, 모두가 걱정했다. '야구와의 인연은 이렇게 끝이구나.' 먼 일이라고만 여겼던 '은퇴'라는 단어가 머릿속에 떠올랐다.5개월이 흘렀다. 투수 허유강은 여전히 야구장에 있다. 소속 팀은 국내 유일의 독립구단 연천 미라클. 경기도 연천군 신서면 고대산로에 위치한 연천 베이스볼 파크에서 30명 남짓한 동료들과 매일 땀을 흘린다. 화려한 프로 야구단의 유니폼을 벗고, 처음 야구를 시작하던 그 날의 초심을 입었다.현실의 냉혹함에 한 번 직면했다. 그 안에서 야구라는 답을 찾았다. 2009년 한화에 입단한 뒤 통산 75경기에서 78이닝을 던져 2승 2패 4홀드를 기록한 투수. 내세울 게 별로 없는 성적이다.그러나 허유강의 야구인생 '시즌 2'는 이제 비로소 첫 회를 시작했다. 29일 연천 미라클 훈련장에서 만난 그는 인터뷰의 시작부터 끝까지 "내 얘기도 좋지만, 우리 팀 선수들이 얼마나 절박하게 야구하고 있는지 모두가 더 많이 알아줬으면 좋겠다"고 힘주어 말했다. -연천 미라클에 어떻게 입단하게 됐나."인터넷을 통해 연천 미라클이라는 팀이 있다는 건 알고 있었다. 지난해 한화 소속으로 서산 육성군에 있을 때 연습 경기를 치른 상대기도 하다. 올해 2월 선수 공개 트라이아웃에 참가해서 합격했고, 3월 7일에 합류해 함께 훈련을 시작했다."-프로 1군에서 뛰던 선수가 독립구단 입단을 결심하기가 쉽지는 않았을 듯하다."어려운 결정이긴 했다. 야구를 그만 둬야 하나, 말아야 하나 기로에서 고민을 많이 했다. 주변 사람들이 다잡아줘 마음이 야구 쪽으로 돌아섰다. 프로에 있을 때는 '독립구단에서 야구할 바에야 그만 두겠다' 하는 생각도 했다. 솔직히 말하면 내심 무시하는 마음도 있었다. 그런데 와 보니까 아니었다. 결심은 쉽지 않았지만, 지금은 오길 정말 잘 했다는 생각이다."-하필이면 결혼 직전에 시련을 겪었다."전화는 미리 받았지만, 웨이버 공시된다는 기사는 결혼하기 3일 전에 나왔다. 아내도 힘들어 하고, 주변 사람들도 속상해 했다. 주위에서 나 때문에 힘들어 하는 게 더 못 견디겠더라. 더 이상 야구를 하기가 싫었다. 아르바이트든 뭐든 다른 걸 하면서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가장이 됐으니 어떻게든 돈을 벌어야한다는 마음이었다."-그런데 어떻게 다시 야구로 돌아왔나."아내가 적극적으로 추천했다. 야구를 한 번 더 해보라고 권했다. 고민 끝에 입단 테스트를 했다. 구단에서 방출하면 야구를 그만두겠다는 생각은 전부터 했다. 그런데 막상 세상에 나와보니, 야구가 아니면 내가 하고 싶은 것도, 할 수 있는 것도 없었다. 그런 시기에 아내가 힘을 불어 넣어줬다. 지금은 마음이 훨씬 차분해졌다. '다시 이 악물고 한 번 해보자'는 다짐을 하고 있다. 여기 선수 대다수가 그렇다. 할 수 있을 때까지 최대한 오래, 끝까지 도전해보자는 각오다." -지난 프로 생활에서 어떤 부분이 가장 후회되나."방출된 선수라면 다 같을 것이다. 좀 더 야구에 집중했다면 좋았을텐데…. 지나고 보니 알겠다. 열심히 하는 선수가 눈에 띄지만, 열심히 하는 게 전부는 아니다. 그냥 야구를 '잘' 하는 게 최고다. 야구를 잘 하려면 더 몰입을 했어야 했는데, 왜 그때 더 집중하지 못했을까라는 아쉬움이 든다."-왜 야구에 집중하지 못했나."대학(성균관대) 때까지 갑갑한 환경에서 야구를 했다. 중·고등학교 때나 다름 없이 규율이 엄격했다. 그런데 프로에 오니까 너무 좋았다. 돈은 예전보다 많이 벌고, 생활도 자유스럽고, 누가 뭐라는 사람도 없고. 그런데 결국 그 모든 게 스스로 책임질 수 있어야 가능한 거였다. 그렇게 1년, 2년, 3년이 가고 군대에 다녀왔다. 나이는 먹었고 후배 선수들이 치고 올라왔다. 점점 내 현실을 느끼게 된 것 같다."-그래서 한화에서 퇴단할 때는 많이 아쉬웠을 것 같다."다른 것보다 정든 동료들과 이별한다는 게 힘들었다. 그 좋은 선수들과 더이상 함께 뛸 수 없었다."-연천 미라클 입단 뒤에 변화가 생겼나."'간절함'이다. 우리 팀 선수들을 보면 정말 대단하다. 정말 열심히 하는 선수들은 새벽 1시까지 스윙을 하고 야간 훈련을 한다. '저렇게 간절한 선수들도 있구나' 하고 놀라기도 했다. 연천 미라클에 입단한 덕분에 내가 야구를 바라보는 시선이 많이 바뀐 것 같다. 내게도 간절한 마음이 생겼다."-구단 후원금이 모자라 힘들다고 들었다."그렇다. 프로에서는 월급을 받았지만, 우리는 한 달에 70만원 씩 회비를 내야 팀이 운영이 된다. 형편이 어려운 선수들이 대부분이다. 월화수목금에 운동하고 주말에 아르바이트를 하는 친구가 많다. 나는 아내가 회사를 다니고 있어서 상황이 나은 편이지만, 주말에도 쉬지 못하는 선수들을 보면 마음이 짠하다. 야구 장비도 사비로 사야 한다. 글러브도 헌 것을 쓰고, 방망이가 하나 부러지면 너무 마음 아파한다."-다들 가족과 떨어져 숙소 생활을 하나."숙소에 큰 방이 두 개 있다. 여기에서 다같이 잔다. 연천은 경기도지만 강원도 경계선 쪽이다. 매일 출퇴근이 어렵다. 대중교통을 이용했더니 출근에 5시간 넘게 걸렸다. 빨래는 세탁기 세 대로 모두 직접 한다. 혼자만의 공간이 없는 게 조금 아쉽지만, 끈끈한 맛이 있어서 재미있기도 하다."-결국은 모두가 프로에서 함께 뛰는 게 목표인가."모든 야구선수들의 목표가 아닐까(연천 미라클은 지난해 삼성 이케빈, NC 이강혁, 한화 김원석까지 세 명의 프로 선수를 배출했다). 이곳에 와보니 그동안 내가 얼마나 풍족한 환경에서 야구를 했는지 알 것 같다. 어느 팀이든, 어떤 조건이든, 다시 프로 마운드에 설 수 있는 기회를 기다리고 있다. 육성 선수로 입단할 수 있는 기회도 적극적으로 찾아볼 생각이다."-다시 프로 마운드에 서게 될 때 어떤 기분이 들까."상상이 안 간다. 생각만으로도 마음이 짠하다. 이전보다 훨씬 더 열심히, 훨씬 더 집중해서 훈련하고 있다. 꼭 기회가 왔으면 좋겠다." 연천=배영은 기자사진제공= 한화 이글스 2016.04.27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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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희 빅리그] TEX 윌리엄스, 급성장하는 ‘미래의 추신수 경쟁자’

텍사스는 올 시즌 초반만 해도 아메리칸리그 우승 후보로 거론됐다. 지난겨울 FA(프리 에이전트) 추신수(32)와 계약하고, 트레이드를 통해 강타자 프린스 필더(30)를 영입하는 등 전력보강에 성공했기 때문이다. 추신수는 지난 5월 초까지 총 29경기에 출전해 타율 0.354, 3홈런 10타점 3도루를 기록하며 구단의 기대에 제대로 부응했다. 출루율(0.484)도 좋아 당시 타격과 출루율 모두 아메리칸리그 1위였다. 하지만 이후 발목과 팔꿈치 부상을 겪으며 제 실력을 발휘하지 못했다. 추신수는 결국 타율 0.242, 13홈런 40타점의 초라한 성적으로 시즌을 마쳤다.필더는 더 부진했다. 그는 목 부상으로 올 시즌 고작 42경기 출장에 그쳤고, 타율 0.247, 3홈런 16타점으로 성적도 저조했다.텍사스는 올 시즌 추신수와 필더 외에도 맷 해리슨(목), 마틴 페레스(팔꿈치), 주릭슨 프로파(어깨), 미치 모어랜드(발목) 등 주축 선수들 대다수가 부상에 신음하며 최악의 시즌을 보냈다. 결국 67승 95패, 승률 0.414로 아메리칸리그 서부지구 최하위로 추락했다.하지만 ESPN 등 미국 현지 언론은 벌써부터 “추신수와 필더 등 올 해 부상으로 고전한 선수들이 회복하고 이들이 다르빗슈 유(28), 아드리안 벨트레(35) 등 기존의 선수들과 힘을 합하면 내년에는 분명 좋은 성적을 거둘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텍사스 산하 마이너리그 더블 A 선수인 닉 윌리엄스(21)의 생각도 같았다. 그는 최근 기자와의 인터뷰에서 “올 시즌 텍사스의 부진은 주전선수들의 부상 때문이었다”며 안타까워했다. 윌리엄스는 이어 “주전선수들이 부상에서 회복하는 내년에는 분명 올해와는 다를 것”이라고 말했다. 미국 텍사스주 출신의 외야수인 윌리엄스는 2012년 메이저리그 신인지명 2라운드(전체 93)에서 텍사스의 지명을 받아 프로에 진출했다. 그 해 루키리그에서 뛴 윌리엄스는 타율 0.313, 2홈런 27타점 15도루를 기록하며 두각을 나타냈다. 싱글 A에서 뛴 지난해 성적도 좋았다. 타율 0.293, 17홈런 60타점을 기록했다. 홈런 수에서 보듯 파워가 돋보인 시즌이었다. 올 해 더블 A로 승격한 윌리엄스는 타율 0.283, 13홈런 74타점 6도루를 기록했고, 정규시즌이 끝난 지금은 마이너리그 최고 유망주들만 참가할 수 있다는 ‘애리조나 가을리그(AFL)’에서 뛰고 있다. 파워와 주루 능력이 뛰어난 윌리엄스는 ‘내년 또는 늦어도 2016년 상반기에는 메이저리그 데뷔가 가능할 것’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다음은 프로 진출 2년 만에 텍사스의 '차세대 외야수’로 떠오른 윌리엄스와의 일문일답이다. - 정규시즌을 마치고 쉬어야 하는데 AFL에서 뛰고 있다. 피곤하지 않나.“AFL 시즌이 긴 것도 아니고 아직 젊기 때문에 괜찮다. 그리고 AFL은 팀 내 최고 유망주들만 참가할 수 있는 특별한 무대 아닌가. 이런 무대에서 뛸 수 있도록 배려해준 구단에 고맙고 개인적으로도 매우 영광스럽게 생각한다. 또한 다양한 선수들을 만나고 그들의 플레이를 보면서 배울 게 많아 좋다.” - 어렸을 때 야구를 시작한 걸로 안다. 롤모델은 누구였나. “켄 그리피 주니어(은퇴)이다. 현역 시절 보여준 폭넓은 외야 수비와 호쾌한 타격 등 켄 그리피 주니어의 모든 것을 좋아했다. 그는 나의 유일한 롤모델이었다.” - 텍사스 출신이다. 어렸을 때 가장 좋아했던 팀은. “(자신의 유니폼을 가리키며) 텍사스 레인저스를 제일 좋아했고 지금도 좋아한다. 어렸을 때부터 형제들과 함께 TV 중계를 통해 텍사스의 경기를 보면서 자랐다. 당시 텍사스의 주역이었던 알렉스 로드리게스(39·뉴욕 양키스)와 마이클 영(은퇴)의 플레이는 최고였다.” - 가장 좋아했던 팀의 선수가 돼 감회가 남다르겠다.“그렇다. 프로에 지명 받은 것도 축복이지만 내가 어렸을 때부터 가장 좋아했던 팀의 유니폼을 입게 돼 더 기쁘고 행복하다.” - 야구를 시작하고 가장 행복했던 순간은 언제였나.“(잠시 생각하더니) 한 가지를 콕 집어서 말하기 힘들 만큼 행복했던 순간이 너무 많다. 특히 나 같은 경우는 야구를 항상 즐기면서 하려고 하기 때문에 유니폼을 입고 경기를 할 때는 항상 행복하다. 굳이 한 가지를 꼽아야 한다면 프로에 지명 받았을 때라고 말하고 싶다. 특히 상위 라운드에서 뛰어난 선수들과 함께 지명을 받았고, 그 중 다수는 고교 시절부터 알고 지냈던 선수들이었기 때문에 더 좋았던 것 같다.” - 올 해 텍사스의 메이저리그 성적이 안 좋았다. 원인이 어디에 있다고 보나.“잘 알겠지만 텍사스의 전력은 최고라고 본다. 특히 마이너리그 선수들을 육성하는 팜 시스템(Farm system)은 타 구단과는 비교가 되지 않을 만큼 좋다. 그럼에도 올 해 텍사스가 부진했던 것은 주전들의 부상이 너무 많았기 때문이다. 그 선수들을 대체하기 위해 콜업한 마이너리그 선수들마저 부상을 당했다. 좋은 성적은커녕 정상적인 선수 기용도 힘든 상황이었다. 정말 안타까웠다. 하지만 주전 선수들이 부상에서 회복하는 내년에는 분명 올 해와는 다를 것이다.”- 텍사스에는 현재 추신수를 비롯해 뛰어난 외야수가 많다. 그 중 본인이 가장 좋아하는 선수는 누구인가. “아, 어려운 질문이다. (웃으며) 추신수도 좋아한다. 하지만 그 중에서 누구 한 명을 콕 집어 말하기는 곤란하다.” - 텍사스 유니폼을 입고 있기 때문인가.“(웃으며) 그렇다. 그리고 내가 특정 선수를 좋아한다고 하면 거론되지 않은 다른 선수들이 섭섭해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하하.” - 알겠다. 다음 질문으로 넘어가자. 야구선수들은 징크스가 많다. 당신도 그런가.“나는 미신을 믿지 않기 때문에 징크스가 전혀 없다. 정해진 시간에 운동장에 나와 그날 일정에 따라 운동하고 경기를 준비하는 것 외에는 징크스라고 할 만한 게 없다.” - 시즌 중 연습이나 경기가 없는 날은 주로 무엇을 하는지 궁금하다.“혈기왕성한 나이이다 보니 집에서 휴식만 하기 보다는 동료들과 함께 어울리는 것을 좋아한다. 그래서 쉬는 날은 동료들과 함께 낚시를 하거나 볼링을 치는 등 야외활동을 즐긴다. 그리고 승부근성이 있다 보니 볼링이나 낚시도 그냥 하는 것보다 내기를 하는 것을 좋아한다. 참, 비디오 게임도 그런 식으로 한다. 하하.” - 별명이 있을 것 같다.“그렇다. 동료들이 나를 로코(Loco)라고 부른다.”- 무슨 뜻인가.“(웃으며) 스페인어로 ‘미친 사람’이란 뜻이다.”- 왜 그런 별명이 생겼나. “내가 가끔 클럽하우스 내에서 엉뚱한 행동을 해서 그런 것 같다. 하하.”- 만약 야구를 하지 않았다면 지금쯤 무엇을 하고 있을까. “고등학교 때 미식축구도 했다. 그래서 야구를 하지 않았다면 지금쯤 대학에 진학해 미식축구선수로 뛰고 있을 확률이 높다.”- 미식축구에서 포지션은 무엇이었나. “주력이 좋아 주로 리시버(Receiver)로 뛰었다.” - 야구선수로서 본인의 장단점을 꼽는다면.“우선 장점으로는 타격에서의 파워와 빠른 발을 이용한 주력을 꼽을 수 있다. 하지만 외야 수비는 아직 내세울 게 못 된다. 배우고 다듬어야할 게 많다. 그래서 AFL에서도 수비훈련을 많이 하고 있다.” - 윌리엄스에게 ‘야구’란 어떤 의미인지 궁금하다. “아버지의 손에 이끌려 초등학교 1학년 때 처음 야구를 시작했다. 하지만 그 후로는 내 스스로 야구하는 것을 즐기고 좋아했다. 물론 미식축구도 병행했지만 야구가 더 좋았고, 지금껏 평생 야구만 한 나에게 ‘야구’는 내 삶의 전부이자 내 인생의 모든 것이라고 할 수 있다.” - 프로야구 선수를 꿈꾸는 어린 선수들에게 조언을 한다면.“야구를 즐기면서 하라는 말을 해주고 싶고, 내 경우를 보면 그게 가장 중요한 것 같다. 물론 프로야구 선수가 되기까지는 힘든 과정이 분명히 있다. 하지만 항상 얼굴에 미소를 머금고 긍정적인 생각과 함께 야구를 즐기면서 하면 그 힘든 과정도 이겨낼 수 있기 때문이다.”- 내년에는 어떤 리그에서 시즌을 맞게 될 것 같은가. “큰 이변이 없는 한 내년에도 더블 A에서 시작할 것 같다.”- 메이저리그 데뷔가 머지 않았다. 향후 빅리그에서 어떤 선수가 되고 싶나.“내 장점을 최대한 극대화해 켄 그리피 주니어처럼 홈런을 잘 칠 수 있는 파워히터가 되고 싶다. 아울러 빠른 발을 이용한 폭넓은 외야수비는 물론 도루도 많이 할 수 있는 선수가 되고 싶다.” 이상희 메이저리그 인터뷰 전문 기자·베이스볼긱 위원 2014.11.11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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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재훈 “야구보다 더 힘든 최고참 스트레스”

정재훈(34·두산)은 팀 불펜진의 든든한 기둥이다. 입단 2년차인 2004년부터 두각을 나타낸 그는 2005년 이후 팀의 마무리 투수로서 4년간 111세이브를 올리며 뒷문을 책임졌다. 이후에도 불펜의 필승조로 활약했다. 2005년 30세이브로 구원왕에 오른 그는 중간계투로 보직이 바뀐 뒤인 2010년에는 23개의 홀드를 기록해 타이틀을 차지했다. 전성기만큼 화려하진 않지만 묵묵히 자신의 역할을 해내며 두산의 허리를 지켜온 그에게 2012년 팀은 4년간 28억 원의 FA(프리 에이전트) 계약을 선사했다. 올 시즌 마무리 투수 이용찬(25)이 도핑테스트 양성 반응으로 10경기 출장 정지 징계를 받고 이탈했을 때도 정재훈이 있어 든든했다. 그런 정재훈에게 숙제 하나가 생겼다. 그는 어느덧 데뷔 12년 차 베테랑이자 현재 두산 투수들 가운데 최고참이다. 마운드에서 잘 던지는 것만 고민했던 그에게 책임감이 생겼다. 그만큼 부담도 커졌다. 이제 자신이 선배들에게 배운 것을 후배들에게 전해주려 한다. 윤석환 베이스볼긱 위원이 정재훈을 만났다. 두 사람은 윤 위원이 2004년 두산의 투수코치로 부임하면서 사제지간의 인연을 맺었다. 최고참 투수의 책임감과 불펜 투수 정재훈에 대해 허심탄회한 대화를 나눴다. 윤석환 베이스볼긱 위원(이하 윤)="벌써 (우리 나이로) 35살이 됐어. 처음 야구를 시작할 때 정재훈은 어떤 선수였어."정재훈(이하 정)=“역삼초등학교에서 야구를 시작했는데 그 전부터 야구를 정말 좋아했어요. 의정부 쪽에 살았는데 중학교 형들하고도 많이 했죠." 윤="아버지도 좋아하신 걸로 아는데."정=""저도 좋아하고 아버지도 좋아하셨죠. 어느 날 야구를 해볼 생각이 있느냐고 물어보시더라고요. 그래서 역삼초등학교로 전학을 갔죠. 그때까지만 해도 프로야구처럼 매일 경기만 하는 줄 알고 좋아했는데 그게 아니었더라고요." 윤="처음부터 잘하는 선수였어?"정="제 입으로 이런 말 하긴 민망하지만 센스는 좀 있었던 것 같아요. 소질도 좀 있었고요." 윤="(김)승회랑 같은 학교였잖아. 승회는 어땠어?"정="당시에 (김)승회랑 저랑 원투펀치였죠. (웃음) 학교 전력이 좋지 않아서 큰 성적을 내지는 못했지만 재미있게 야구를 했던 것 같아요." 윤="보통 초등학교 때도 야구를 그만두고 싶은 생각들을 하던데. 힘들잖아. 기대했던 것과도 많이 다르고."정="저도 첫날부터 후회했죠. 제가 너무 뭘 몰랐어요. 경기만 많이 할 줄 알았는데 훈련이 더 많으니까요. 생각하고 너무 달라서 힘들기도 했죠. 그런데 감독님께서 소질이 있는 것 같다고 설득해주셔서 지금까지도 하고 있네요." 윤="마음을 다잡은 계기가 있었어?"정="며칠 동안은 정말 하기 싫었어요. 그런데 제가 입단하고 며칠 뒤에 성동초등학교랑 연습경기를 했는데 선배 한 명이 학교 유리창을 깨뜨리는 우월 홈런을 친 거에요. 정말 멋있더라고요. 사실 경기는 1-10으로 졌는데 그 모습이 너무 인상적이어서 야구를 계속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죠."윤="초등학교 시절에도 유격수와 투수를 모두 했었나?" 정="초등학교 때는 한 투수가 3회 이상 못 던졌으니까요. 당연히 야수도 했고요. 중학교 때도 유격수와 투수를 번갈아 가면서 했죠. 어떤 분들께서 저를 야수 출신 투수라고 알고 계시는데 그건 고3 때 팀 사정상 야수로 나설 수밖에 없어서 그런 말이 나온 것 같아요." 윤="고등학교(휘문고) 때부터 본격적으로 투수였다고 보면 되는 거네?"정="그렇죠. 제가 고1 때는 3학년 선배들 중에 좋은 선수들이 많아서 크게 주목받지 못했고요. 2학년 때부터 본격적으로 공 던지는 데 눈을 떴죠. 투수가 하고 싶었어요. 성균관대로 간 것도 투수가 하고 싶어서였어요. 다른 대학에서는 모두 야수로 와주길 바랬죠." 윤="나도 당시에 신입생이었던 너를 본 기억이 나네. 당시에 성대에 좋은 투수가 많지 않았어. 그래서 감독도 고민은 했던 모양이야. 너를 유격수로 쓸지 투수로 쓸지를 말이야. 그래서 내가 반드시 투수로 키워야 한다고 말했어. 그런데 당시 그 좋던 커브는 어디로 간 거니?”정="그 커브가 남아 있는 게 없네요.(웃음)" 윤="주무기인 포크볼은 언제부터 던진 거야?"정="대학교 1학년 때부터 던지긴 던졌어요. 위원님도 아시다시피 제가 폼이 지금과 달랐죠. 당시엔 많이 와일드했어요." 윤="팔 스윙이 컸다고 할까? 내가 평가했을 때는 부상 위험이 있는 폼이었어."정="그저 세게만 던지려고 했어요. 결국 1학년, 2학년 때 부상도 당했죠. 그래서 3학년 때부터 스스로 폼을 바꾸려 했어요. 간결하게 던지면서 타점은 높였죠. 그 전에 포크볼을 던졌을 때는 공 놓는 타점이 낮다 보니까 투구수도 많아지고 타자에게 맞기도 많이 맞았죠. 그런데 폼을 바꾸고 난 이후엔 포크볼이 원하는 대로 잘 들어갔어요."윤="당시에 네가 크지 않은 체구에 콤플렉스가 있어서 내리찍으려고만 했던 것 같아. 세게 던지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닌데 말이야."정="저도 처음에는 구속은 잘 나왔다고 만족했는데 공 빠르기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죠. 한 번은 경희대와 경기에서 9이닝 동안 180개의 공을 던졌어요. 그 다음에 팔꿈치 인대가 손상돼서 또 쉬었죠. 그때 폼을 바꿔야겠다는 생각이 커졌고 이후 직구 스피드는 이전만큼 안 나왔지만 제구력은 좋아질 수 있었던 것 같아요."윤="그렇게 한 번 성장한 뒤 프로에 들어왔는데 첫 해 성적이 좋지 않았어. 부상이라도 있었나?"정="사실 당시에 저는 (김)성배, (노)경은이, (전)병두 같은 입단 동기들에 비해 크게 주목받는 선수가 아니었어요. 그런데 연습경기와 시범경기에서 정말 잘해서 동기 중에 유일하게 개막 엔트리에 들어갔죠. 그런데 삼성과의 개막전 전날 발목을 접질린 거에요. 퉁퉁 부은 발목을 코치님께 보이고 혼도 많이 났죠. 그러곤 결국 2군에 내려갔어요." 윤="1군엔 언제 다시 올라왔어?"정="부상도 있었지만 욕심도 과했던 것 같아요. 사실 2군에 내려가서 7~8일은 걷지도 못했어요. 그만큼 상태가 안 좋았는데 열흘 지나고 다시 콜업 지시를 받은 거에요. 어린 마음에 ‘지금 못 올라가면 기회가 없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죠. 당시 2군에 손혁 형이 같이 있었는데 ‘지금 올라갔다가 부진하면 다신 기회가 없을 수도 있어’라며 말렸어요. 맞는 말이죠. 그런데 그 말이 제 귀엔 안 들렸던 거에요. 결국 2~3경기 형편 없이 던지고 다시 내려왔죠." 윤="다시 2군에 내려가서는 어땠어? 부상 여파는 없었어?”정="아무래도 무리가 있었죠. 내려온 다음날 바로 선발로 등판했는데 팔이 안 올라가는 거에요. 결국 9월까지 계속 쉬게 됐죠. 9월에 엔트리가 확대되면서 다시 등판 기회가 왔지만 이번엔 또 팔꿈치에 부상이 왔어요. 아시죠? 팔꿈치에서 종이 울리는 느낌? 그래서 다음해 막 부임하셨던 김경문 감독님과 코치님이셨던 (윤석환) 위원님께 패기 있는 모습을 보여드리지 못하고 휴식이 필요하다고 했었죠. 이전 경험으로 무리하면 안 된다는 것을 알았는데 보여드린 것도 없이 아프다고 해서 죄송했어요." 윤="당시에 김 감독님과 나도 무리시킬 생각은 없었어. 네 이미지가 똑 부러지는 게 있었거든. 술을 즐겨 마시는 선수도 아니었기에 네 다짐을 믿었지. 당시에 손혁, 이경필, 구자운 같은 좋은 선수들이 버텨주고 있었고…."정="그래도 패기 있는 모습을 못 보여드린 것 같아 죄송했죠."윤="2005년 마무리 투수로 보직 전환을 했어. 혹시 그 전에 마무리 투수를 해보고 싶다는 생각은 해봤어?"정=“전혀 생각하지 못했어요. 당시에 마무리는 구위가 좋은 투수들이 많았어요. 그런 선수들의 전유물이라고 생각했죠. 당시에 저는 추격조로 나서거나 선발진에 공백이 생기면 그 자리를 메우는 경우가 많았죠. 그래서 열심히 해서 '선발 투수를 노려봐야겠다'라는 생각은 했었지, 마무리 투수는 전혀….” 윤="정작 잘 해냈잖아"정="야구가 정말 재미있었죠. 저랑 전혀 안 어울린다고 생각했는데 막상 마지막 타자를 잡고 첫 세이브를 올렸을 때는 처음 느껴보는 기분이었어요. 경기도 기억해요. 잠실 KIA전이었죠." 윤="세이브를 해보지 않으면 모르는 기분이지."정="2005년에는 위기 상황에서 마운드에 올라가는 일이 많았어요. 그런 경기를 마무리하고 승리를 지켜내면 마치 제가 1회부터 9회까지 다 던진 기분이었어요. 물론 실패했을 때는 타격이 컸지만 성공했을 때는 '정말 좋다'고 생각했죠."윤="힘들거나 부담을 느껴본 적은 없어?"정="2005년과 2006년에는 그런 경우가 많지 않았는데 2007년부터는 아웃카운트 하나만을 남겨둔 상황에서 나갈 때가 있었어요. 이전만큼 좋은 모습을 보이지 못했기 때문이겠죠. 당시에 세이브를 챙겨 자신감을 심어 주시려는 배려였던 건 알아요. 그래도 마무리 투수라면 1이닝을 안정감 있게 막아줘야 하는데 코칭스태프에게 믿음을 주지 못한 것 같아서 마음이 힘든 시기를 겪었죠." 윤="그래도 그간의 노력을 인정받아서 2011년 말에 두산과 4년간 FA(프리에이전트) 계약을 했어. 중간 계투 요원으로 FA 요건을 채우는 것이 쉽지 않잖아. 부상 없이 꾸준히 잘해왔다는 증거지. 야구 인생에 큰 영향이 있었을 것 같아."정=“그런 점이 장기계약의 장점이라고 생각해요. 자신을 제외한 주변 환경에 큰 영향을 받지 않는 부분이 좋았죠. 그런데 이듬해 부상을 당해서 통으로 한 해를 쉬어서 정말 죄송했죠." 윤="정확하게 부상당한 부분이 어디였지?"정="'극상근'이라고 어깨 회전근 중 하나에요. 야구선수들은 조금씩은 극상근이 손상돼 있는데 저는 한 번에 손상이 컸었다고 하더라고요. 최소한 1년 정도는 재활이 필요하다고 했었죠."윤="마음 고생을 많이 했었네."정="저한텐 작년과 올해 야구를 하는 것이 너무 고맙고 행복해요. 저는 정말 다시 재기하기 힘들 거라고 생각했어요. 말이 1년이지 재활하는 기간은 정말 길잖아요. 다친 곳이 나아도 과연 '내가 마운드에 오를 수 있을까'하는 의구심이 들었죠. 경기 하는 선수들도 부러웠고요. 당시에 TV 중계화면으로 부진한 투수들을 보면 '나는 저런 아쉬운 감정이라도 느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윤="그렇게 부상과 재활, 재기를 반복했더니 어느덧 두산 투수진에서 최고참이 됐어. 후배들뿐 아니라 코칭스태프와의 관계에서도 쉽지 않지?"정="본의 아니게 최고참이 됐네요. 어려운 부분들도 좀 있죠. 저는 계속 중간 위치에 있었는데 갑자기 최고참이 되다 보니 부담이 생겼어요. 팀이 부진하면 저의 책임인 것 같고 어떤 제스처라도 해야할 것 같은 거죠." 윤="'같은 게' 아니라 실제로 팀을 이끌어야 해."정="요즘엔 성적에 크게 영향을 미치지 않을 시도라도 해야할 거 같아요. 압박이 생겼어요." 윤="나도 밖에서 보면 (정)재훈이가 비슷한 연차도 없고 나서는 성격도 아니어서 걱정은 되더라고. 바로 밑에는 누구지?"정="3살 아래 (이)현승이가 있죠. 그래도 성격이 좋아서 중간에서 가교 역할을 잘해주고 있어요." 윤="최고참으로서의 역할도 따로 있지. 그래서 어떤 점에 중점을 두고 있어?"정="위원님 말씀대로 제가 나서는 성격은 아니죠. 그래서 '최고참이면 일단 나부터 잘하자'는 생각을 하고 있어요. 연습도 열심히 하고 마운드 위에서 결과도 좋게 내는 거죠. 그랬을 때 후배들에게 조언을 해도 효과가 클 거라고 생각해요."윤="코치가 못하는 역할도 네가 해야한다고 봐. 원래 두산이 선배들이 후배들을 잘 아우르는 팀이잖아. 이제부터라도 그 역할을 잘해서 두산의 색깔을 찾아야겠지. 그것이 권명철 코치를 도와주는 길이기도 하고."정="(이)재우형이 자리를 비우면서 그 전까지 최고참을 통해서만 듣던 이야기를 제일 먼저 받고 직접 후배들에게 전달해줘야 하는데, 이제껏 야구를 하면서 처음으로 야구 외적으로 스트레스를 받고 있어요. 야구보다 더 힘든 것이 있다는 생각이 들게 됐죠. 아직은 최고참으로서 해야할 일들을 올해 처음 접하고 있기 때문에 시행착오도 있을 거에요. 그래도 그 과정에서 배우는 부분이 있다고 생각해요. 팀이 좋은 성적을 낼 수 있도록 제가 할 수 있는 일에 최선을 다해야죠." 윤="내년에 한 시즌 더 치르면 FA 계약도 끝나. FA도 한 번 더 해야지. 컨디션은 어때? 내가 봤을 때는 점차 나아지는 것 같은데?"정="이제는 예전처럼 한 번에 좋아지진 않아요. 그래도 제 생각엔 큰 틀에서는 나아지고 있는 것 같아요. 재작년보다는 작년이 나았고 작년보다는 올해가 더 좋다고 생각해요." 윤="2007년 시즌을 앞두고 공인구가 국제 규격에 맞춰 커지면서 네가 잘 던지던 포크볼 컨트롤에도 어려움을 겪은 것으로 알고 있어. 좋았을 때는 떨어뜨리는 위치까지 마음먹은 대로 컨트롤이 잘 됐잖아. 그런 포크볼을 던지는 투수도 많지 않았는데 강점이 흔들렸어. 지금은 어때?”정=”제가 원하는 위치에 공을 떨어뜨리는 것은 여전히 쉽지 않아요. 그런데 마음가짐을 바꿨어요. 처음에는 ‘왜 잘 안되지?’하고 고민했는데 지금은 계속 하나만 고집하면서 안되는 것에 파고 들기보다는 변화를 끊임없이 추구하려고 해요. 이제 나이도 먹었고 몸 상태도 예전과는 다르잖아요. 그래서 다른 구종도 던져봐요. 슬라이더도 던지고 커브도 던지죠. 물론 포크볼이 좋을 때도 마찬가지고요. 사고의 유연함을 가지려고 하는 거죠. 변화를 주는 것이 스스로 스트레스를 안 받으면서 경쟁력도 생기는 것 같아요.” 윤="중간 투수간에 경쟁이 더 필요하다고 생각하지 않아? 그러면 서로 좋은 효과가 있을 텐데."정="저도 항상 후배들한테 '중간 투수는 혼자 잘해도 소용없다. 여러 명이 함께 잘하는 게 필요하다'고 말해주죠. 필승조가 흔들렸을 때 다른 선수들이 잘해서 치고 올라오면 팀도 강해지고 경쟁심 때문에 개개인도 분발할 수 있으니까요." 윤="‘나는 마무리 투수였다’는 자부심이 있나? 나중에 아들이 어떤 투수였냐고 묻는다면?"정="앞으로는 어떻게 될지 모르지만 지금까지는 가장 화려했던 시기는 마무리 투수였으니까. 당시에 제 모습을 잊지 않아야겠죠." 윤="2005년부터 2008년까지 4년 동안 111세이브를 올렸어. 이제는 중간 투수로 나서고 있으니까 홀드도 많이 해야지?"정="이제 100홀드(11일 현재 58홀드)를 목표로 해야죠. 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윤="어떤 야구선수로 기억되고 싶어?" 정="야구 선수로서는 계속 경쟁력이 있는 선수로 남고 싶어요. 투수는 경력이나 나이보다는 경쟁력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자신만이 갖고 있는 변화구, 또는 직구, 특이한 투구폼 등 어떤 것이든 상관없죠. '이 상황에는 정재훈을 내보내야 한다'는 인식을 주고 싶어요. 그렇게 최대한 오래 야구하는 것이 목표에요." 정리=안희수 기자 2014.08.14 1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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