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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

‘박성광 아내’ 이솔이 “암투병 고백 후 정말 많은 위로에 감동…오래 살 것” [전문]

암 투병 사실을 고백한 개그맨 박성광의 아내 이솔이가 응원을 보내준 이들에게 감사 인사를 전했다.이솔이는 2일 자신의 SNS에 장문의 글을 게재했다. 이솔이는 “감사하게도 정말 많은 분들께서 위로와 응원의 메시지를 보내주셨다. 문득, 제가 제 감정에만 몰두했던 건 아닐까 싶기도 하고, 남편과 가족들에게 미안한 마음이 든다”고 말문을 열었다.이어 “저는 3년 전쯤 가족들의 보호 속에서 수술과 항암치료를 마쳤고, 현재는 몸속에 암세포가 없다는 진단을 받고 정기검진 중”이라며 “‘몇 년 살지 모른다’는 식으로 잘못 보도된 기사도 있었지만, 사실이 아니다. 저는 오래오래 건강하게 살 것”이라고 말했다.그러면서 암 투병 사실을 고백한 이유에 대해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을 누군가에게, 저처럼 다시 일상으로 회복할 수 있다는 희망을 전하고 싶었다”고 말했다.다음은 이솔이 글 전문.감사하게도 정말 많은 분들께서위로와 응원의 메시지를 보내주셨어요.일일이 답하지 못해 죄송할 만큼요..문득, 제가 제 감정에만 몰두했던 건 아닐까 싶기도 하고,남편과 가족들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어요.국민들께 웃음을 전하는 것이 행복이자 업인 남편에게제 그림자가 드리워질까 걱정도 되고요.참고로,, 저는 3년전쯤 가족들의 보호 속에서수술과 항암치료를 마쳤고,현재는 몸속에 암세포가 없다는 진단을 받고정기검진 중이에요.건강하다고 믿고있지만,아직은 항암약을 복용 중이라 교수님들께서늘 경계하고 주의해야 한다고 하세요.‘몇 년 살지 모른다’는 식으로 잘못 보도된 기사도 있었지만,사실이 아닙니다.저는 오래오래, 건강하게 살 거예요!진단받았던 그날은 잊을 수가 없네요.그 후 죽을 만큼 아파보니,죽음은 생각보다 가까이 있고,결코 남의 일이 아니더라고요.그만큼 삶은 축복이고, 선물이고,찰나 같다는 걸 절실히 느꼈어요.그래서 지금은보고 싶은 사람이 있다면 보고,전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전하고,표현하고 싶은 것이 있다면 표현하며 살아야후회가 없겠다는 마음으로 살고 있어요.그 이후로 제 삶의 모토는“후회를 덜어내는 삶”이 되었답니다.그러다보니 예전보다 더 아끼지 않고,더 밝고, 더 자유롭고,더 많이 즐기며 지내고 있는 것도 사실이에요 :)많은 말들이 오가고 있지만,수많은 분들께서 “힘내세요”라고 해주신 만큼저는 ‘행복한 사람’이라는 사실만 기억하며,이 이야기를 여기서 마무리하고 싶어요.많이 궁금하실 수도 있지만,앞으로는 자주 언급하지 않으려 해요.(도움이 될 만한 정보는 잘 정리해 전할게요.)정말 무섭고 두려운 경험이었고,이후 병원에 다닐 만큼 정신적으로도 힘들었던 시간이라그 기억을 자꾸 되새기기보다는천천히 묻어두고 싶어요.이해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그리고 투병에 대한 내용은글로 쉽게 써내려갈 만큼가볍게 여길 수 있는 일이 절대 아니기도 하니까요.그럼에도 사적인 사정을 털어놓은 것은여러 의미가 있어요.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을 누군가에게,저처럼 다시 일상으로 회복할 수 있다는 희망을 전하고 싶었고,SNS 속 이미지 뒤에 눈치채지못하는 아픔과간절함과 치열함이 공존할 수 있다는 걸알아주셨으면 하는 마음도 있었어요.살다 보면,각자 감당하게 되는 어려움이 생기기 마련이잖아요.다들 그렇게 절실하고 애처롭게자신의 삶을 살아내고 있는 거라고 믿어요.서로가 그런 나약한 존재라는 걸 받아들이면막연히 미워할 이유도,부정적으로 바라볼 이유도 없을텐데 말이죠..제겐 오늘 과거처럼 스트레스에 지지 않고다시 삶에 집중할 수 있는 용기와 온기가 필요했어요.그만큼 용기 내 솔직하게 써내려 간 글에공감해주셔서 더더욱 감사했고 큰 감동을 받았답니다.제 SNS는저의 소망과 희망,그리고 밝고 긍정적인 기운을 담고 싶은 공간이에요.어둡고 슬픈 내면보다는행복한 일상들을 나누고 싶어요.앞으로도 이전처럼 시시콜콜 수다 떨고, 사진 올리고,유튜브 하고, 마켓도 하고, 공부도 하고,운동도 하고, 하고싶은 것을 하면서완치의 그날까지 저의 일상을 가꿔가려 해요.그게 제가 다시 되찾은, 소중한 삶이니까요.다시 한번이 작은 공간에 찾아와마음을 나눠주시고, 힘을 주셔서정말 감사합니다.모두 건강하세요!강주희 기자 kjh818@edaily.co.kr 2025.04.02 20:47
프로야구

‘152㎞’ 강속구에 스위퍼도…진화한 김유성의 5선발 재도전 [IS 피플]

강속구 투수 김유성(23·두산 베어스)이 새 무기를 장착하고 선발 투수 보직에 재도전한다.김유성은 이승엽 두산 감독이 예고한 2025년 5선발 후보 중 하나다. 잠재력은 팀 내 으뜸이다. 고려대 재학 중인 2023 신인 드래프트에서 2라운드로 지명된 그는 김해고 시절부터 최고 150㎞/h 이상의 강속구를 던졌다. 2021 신인 드래프트 때 NC 다이노스에 1차 지명됐다가 내동중 시절 학교폭력 문제가 밝혀져 무산됐지만, 2년 만에 프로 유니폼을 다시 입은 것도 결국 뛰어난 구위 때문이다.하지만 지난 2년 동안 김유성은 자신의 잠재력을 폭발하지 못했다. 2023년 학교폭력 피해자에게 사과하고 합의한 뒤 1군에 데뷔했다. 그러나 7경기에서 평균자책점(ERA) 9.95에 그쳤다. 시즌 후 교육리그에 다녀온 그는 지난해 선발 등판 기회도 받았으나, 17경기 1승 2패 ERA 6.43으로 부진했다. 김유성은 프로 3년 차인 올해 다시 한번 선발에 도전한다. 현재까지 컨디션이 좋다. 겨우내 열심히 훈련한 그는 호주 시드니 1차 스프링캠프 시작 1주일 만에 투구 수를 80구까지 늘렸다. 첫 라이브 피칭에서 최고 152㎞/h를 기록할 정도로 페이스가 빠르다.김유성은 지난 21일 일본 미야자키 2차 캠프에서 열린 실업팀 세가사미와 경기에서도 2이닝 무피안타 2탈삼진 호투했다.1차 캠프를 마치고 취재진과 만난 김유성은 "캠프에 앞서 열심히 준비한 게 성과로 나와 기쁘다"며 "지난해는 아무래도 첫 캠프여서 적응하는 데 시간이 걸렸다. 올해는 편하게 적응했고, 재밌게 운동하고 왔다"고 소감을 전했다.김유성은 "2024년 마무리 캠프 때부터 훈련량을 늘렸고, 이후 비시즌 내내 훈련량을 줄이지 않았다. 캠프에 올 때까지 꾸준히 같은 강도로 운동했다"고 했다. 구위도 한층 나아졌다. 직구의 힘이 떨어지거나 일관성이 부족해 커터(컷패스트볼)처럼 꺾이는 경우가 줄었다고 했다. 김유성은 "훈련하면서 트래킹 데이터를 살펴보니 직구가 휘는 일이 줄었다. 그 덕분에 (스트라이크존에 들어가는) 포인트가 일정해졌다"고 설명했다. 패스트볼의 회전력이 살아있다면, 수직 무브먼트를 바탕으로 타자의 헛스윙을 유도할 수 있다.또 하나 장착 중인 게 스위퍼다. 지난해 김유성은 주 변화구로 슬라이더를 던졌지만, 올해는 슬라이더보다 횡 변화가 큰 스위퍼로 이를 대신하려 한다. 그는 "슬라이더를 던질 때 팔 각도가 내려가는 경향이 있었는데, (팔 각도 차이와 제구 등을 이유로) 타자가 잘 속지 않았다. 차라리 (횡 변화가 큰) 스위퍼를 던져보는 게 낫다고 판단했는데, 잘 통하는 것 같다. 스위퍼를 던지는 최종인 형, 최승용 형에게도 계속 물어보면서 공부 중"이라고 설명했다. 김유성에게 필요한 건 정신적 성장이다. 지난해 그는 9이닝당 탈삼진 9.32개를 기록하고도 제구 난조(9이닝당 볼넷 7.71개)를 해결하지 못했다. 김유성은 "사실 그 부분이 가장 걱정인데, 고쳐보려고 (지나치게) 의식하면 (문제가) 더 안 풀리는 것 같다. 운명은 정해져 있다고 생각하기로 했다. 결과는 결정됐다고 여기고, (그 결과까지 가는) 과정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겠다"고 다짐했다.차승윤 기자 chasy99@edaily.co.kr 2025.02.24 05:01
드라마

김민주X박세현X신준항, ‘언더커버 하이스쿨’ 고등학생 라인업 공개

배우 김민주와 박세현, 신준항이 ‘언더커버 하이스쿨’을 통해 파란만장한 학교생활을 시작한다.오는 2월 첫 방송 예정인 MBC 새 금토드라마 ‘언더커버 하이스쿨’은 고종 황제의 사라진 금괴의 행방을 쫓기 위해 고등학생으로 위장 잠입한 국정원 요원의 좌충우돌 활약기를 담은 드라마다.김민주와 박세현, 신준항은 각각 명문 사립 병문고등학교 재학생인 이예나, 안유정, 이동민으로 분한다. 성격은 물론 성장배경까지 다른 세 사람은 학교 내에서 일어나는 사건과 갈등을 담은 스토리를 바탕으로 다채로운 이야기를 그려낼 예정이다.김민주가 연기하는 이예나는 병문고 학생회장이자 이사장 서명주(김신록)의 외동딸이다. 도도하고 대접받기를 좋아하는 그는 공부는 물론 인기투표까지 단 한 번도 1등을 놓쳐본 적 없는 완성형 인물이다. 그러나 그 뒤에는 남모를 아픔을 지니고 있다고. 그러던 어느 날 그의 앞에 정해성(서강준)이 나타나면서 인생이 송두리째 흔들리게 된다.박세현이 맡은 안유정은 야무지고 똘똘한 해성의 조력자다. 예나와 친한 친구 사이로 알려져 있지만 실상은 그와 갑을관계다. 그러나 예나가 이사장 명주에게 정신적 학대를 당하고 있다는 걸 아는 유정은 자청해서 그와 친구가 되었고 부탁이라면 뭐든지 들어주며 함께 한다.마지막으로 신준항은 이동민으로 분한다. 이동민은 병문고 사회배려자 전형 입학생으로 별명은 기초생활수급자의 줄임말인 기생수이다. 지하 단칸방에서 할머니와 생활하며 알바로 생계를 연명하고 있는 그는 웹소설 작가가 꿈이다. 동민은 학교 폭력을 당하던 중 해성이 옆에서 도와준 걸 계기로 친하게 지내게 된다. 또한 해성이 고종 황제의 금괴를 찾는 데 일조하며 둘도 없는 친구 사이가 된다.김민주와 박세현, 신준항은 각 각의 개성있는 캐릭터로 극의 활력을 더할 전망이다. 이들은 해성이 위장 잠입하며 벌어지는 다양한 사건사고들에 휘말리게 되면서 극의 재미를 책임질 예정이다.한편 ‘언더커버 하이스쿨’은 ‘스케치’, ‘진검승부’ 등을 집필한 임영빈 작가와 ‘미치지 않고서야’, ‘밤에 피는 꽃’ 연출을 맡은 최정인 PD가 의기투합했다.MBC 금토드라마 ‘언더커버 하이스쿨’은 오는 2월 첫 방송된다.강주희 기자 kjh818@edaily.co.kr 2025.01.08 08:35
스포츠일반

'당구 여제' 김가영 "3쿠션 선수의 길, 이제 시작일 뿐…조금씩 더 성장하고 있다" [IS 인터뷰]

“제 나이에 ‘시작’이라는 말, 너무 재미있지 않아요?”‘당구 여제’ 김가영(41·하나카드)은 자신의 3쿠션 커리어를 ‘시작’이라는 단어로 표현했다. 프로당구 남·여 최초의 4회 연속 우승에 최다 우승(11회), 그리고 최다 연승(24연승) 신기록까지. 2019년 프로당구 출범 이후 그야말로 새 역사를 거듭 써 내려가고 있는데도, 3쿠션 선수로는 스스로 갈 길이 멀다는 의미다.최근 경기도 고양시의 개인 연습실에서 만난 김가영은 “3쿠션 선수로는 이제 시작일 뿐”이라며 “3쿠션을 제대로 친 지 이제 3~4년 정도밖에 안 됐다. 그래서 사실 아직 목표도 없다. 포켓볼은 너무 잘 아는 종목이니까 계획이 그려졌다면, 3쿠션은 아직 청사진을 못 그리겠다. 그저 선수로서 올인할 뿐”이라고 말했다.그러면서 김가영은 “이 나이에 성장이라는 단어를 쓰기는 좀 그렇지만, 3쿠션 선수로 조금씩, 또 한 스텝씩 잘 성장해 나가고 있는 것 같다”고 웃어 보였다. ‘김가영 천하’라는 표현이 나올 정도의 프로당구 3쿠션 무대에서 눈부신 존재감을 보여주고 있지만 최정점에 오른 건 아니라는 뜻이다. 그가 써 내려가고 있는 프로당구 3쿠션 대기록들은 그래서 더 대단하다. 앞으로의 행보에 대한 기대감 역시 더 커질 수밖에 없다. '4구 2000점' 목표로 시작된 김가영의 당구 인생실제 30년 가까운 김가영의 당구 인생에 3쿠션이 차지하는 비중은 극히 일부다. 그는 어린 시절 아버지가 운영하던 당구장에서 자연스럽게 당구를 접했다. 처음 접한 건 4구였다. 김가영은 “처음에는 재미로 시작했다. 아버지께 매일 1~2시간씩 레슨을 받았다. 400~500점을 치면서 2000점을 목표로 삼았다. 특기 정도로 만들어놓으려 했는데, 중학교 1학년 때 목표가 바뀌었다”고 했다.당시 한국계 미국인 포켓볼 선수 자넷 리(미국)의 방한이 화제가 되고, TV 광고도 찍는 걸 보면서 자연스레 김가영의 시선이 쏠렸다. 공부보다 당구에 더 흥미를 느끼며 당구 선수의 길을 고심하던 그는 4구로는 먹고살 수 없다는 걸 깨닫고는 포켓볼 선수로 전향을 결심했다. 그리고는 포켓볼 선수로 정식 등록해 본격적으로 당구 선수의 길을 걸었다. 중학교 2학년 때였다.김가영은 “사실 당구 재능이 있었는지는 모르겠다. 비교대상이 없었기 때문이다. (중학생 때) 처음 선수로 등록했을 때 바로 윗 선배도 20대 중반이었다”며 “자넷 리를 보면서 미국에서 프로 하면 되게 좋은가 보다라는 막연한 생각만 들었다. 그래서 4구 2000점에서 포켓볼 세계 챔피언으로 목표가 바뀌었다”고 했다.본격적으로 당구 선수의 길을 걸으면서 혹독한 훈련도 받았다. 유도선수 출신 아버지의 가르침을 받아 일반 남자 운동부처럼 매일 훈련했다. 오전에는 유산소 운동을 하고 낮에는 수업을 받았다. 오후에 당구 훈련을 하다 훈련이 끝나면 웨이트 트레이닝을 했다. 여중생인 김가영에게는 특히나 힘든 시간들이었다.김가영은 “제 인생에서 제일 고통스러웠던 5년이었다. 훈련을 혼자 다 버텨내야 하니까 기댈 곳도 없었다”며 “남자 선수들도 그렇게 안 하는데, 매일 아침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뛰거나 사이클을 타야 했다. 꾀를 부리거나 성실하지 않으면 혼도 났다. 당시엔 내가 뭘 하는지도 모르고 매일이 괴로웠다”고 돌아봤다.그러면서 김가영은 “다들 10대로 돌아가고 싶다고, 학창 시절로 돌아가고 싶다고 하는데 나는 절대 아니다. 절대 돌아가고 싶지 않다”면서도 “다만 결과적으로 당시 경험들은 뒤에 있었던 모든 어려움을 이겨낼 수 있는 발판이자 밑거름이 됐다. 어떤 일을 겪더라도 그때보다는 고통스럽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했다. 포켓볼 세계 챔피언에게 찾아온 첫 번째 시련혹독한 훈련 속 김가영은 각종 대회를 휩쓸며 세계의 주목을 받았다. 당시 대만 국적이던 아시아당구연맹 회장의 권유로 고교 졸업과 동시에 대만 무대로 향했다. 고교 졸업과 동시에 대만행을 택한 이유는 두 가지였다.김가영은 “(처음 제안을 받고) 무조건 가겠다고 했다. 고된 훈련에서 벗어나고 싶은 마음 하나, 그리고 또 하나는 류신메이(대만)라는 선수의 존재였다”며 “유일하게 테크닉에 반했던 선수이자 우상이었다. 고등학교 1학년 때쯤 만났을 때, 단 한 번의 실수로 역전패를 당했던 적이 있다. 한국에 있으면 1년에 한 번을 만날 수 있을지 없을지 몰랐다. 그래서 대만에 가서 다시 붙어봐야겠다고 생각했다. 안 갈 이유가 없었다”고 했다.언어도 통하지 않는 혹독한 환경 속 김가영은 오롯이 포켓볼로 승부했다. 남다른 승부욕 속 류신메이에게는 설욕도 성공했다. 대만 진출 이후 6개월 만에 처음 류신메이를 이겼고, 1년 정도 지난 뒤엔 승률이 비슷해졌다. 2년 가까이 된 시점엔 오히려 류신메이보다 승률이 더 높은 선수가 됐다. 세계 챔피언의 영예도 안았다. 2004년과 2006년 잇따라 우승해 세계랭킹 1위 자리까지 올랐다. 세계 최초로 포켓볼 그랜드슬램의 역사도 썼다.태극마크를 달고 국제대회에도 나섰다. 2006 도하(카타르) 아시안게임에 나서 은메달을 목에 걸었다. 김가영은 “아시안게임 전에 한 나라에서 귀화 제의도 받았다. 훨씬 좋은 조건이었는데 한 마디로 잘랐다. 미국에서 시민권을 딸 기회 역시 신청조차 안 했다. 태극마크를 달고 애국가가 울려 퍼지는 것에 대한 자부심이 있었다”고 했다.그러나 대만에서 김가영은 결국 외국인 선수였다. 김가영의 실력이 급증한 건 곧 대만 당구계의 시기와 질투로 이어졌다. 특히 도하 아시안게임 직후엔 황당한 이유로 대만당구협회로부터 자격정지 징계까지 받았다. 대만과의 경기에서 한국 선수단의 요청으로 잠시 통역을 했다는 게 그 이유였다.김가영은 “비인기 종목이다 보니 아시안게임 때 통역이 따로 없었다. 한국과 대만의 경기 도중 한국 남자 선수들이 판정과 관련해 나에게 통역을 요청해 한국 선수들의 입장을 대신 통역해 준 적이 있다. 결과적으로는 심판 판정은 대만 선수에게 유리하게 나왔다”며 “그런데 그 판정 이후 승부가 뒤집혔다. 경기가 끝난 뒤 대만 당구계의 모든 화살이 돌연 나한테 돌아왔다. 결국 자격정지 2년의 징계를 받았다”고 했다.이어 김가영은 “대만에서 함께 활동했던 선수들이 누구도 나를 돕지 않았다. 그들에게도 민감한 문제일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현지 기자들도 내가 말한 것과는 다르게 보도했고, 인격모독성 내용까지 담겼다. 대만당구협회장에게 항의했지만, 결국 화살을 나한테 돌려야 자기들이 산다고 했다. 심지어 해외에서 이런 일을 겪고 있는데 대한당구연맹에서도 도와주지 않았다. 양쪽에 다 배신감을 느낀 것”이라고 했다. 자격정지는 6개월 만에 풀리긴 했지만, 마음의 상처는 깊었다. 포켓볼 선수에게 내려진 사실상 사형선고대만에서의 생활을 마무리한 뒤 김가영은 미국과 한국 등을 오가며 선수 생활을 이어갔다. 포켓볼 세계 최정상의 자리도 굳게 지켰다. 그러다 지난 2019년, 또 한 번의 시련이 또 찾아왔다. 이번에는 대한당구연맹의 ‘영구 제명’ 징계였다. 당시 새로 출범한 프로당구협회(PBA)의 초청을 받아 3쿠션 대회에 참가했다는 게 중징계의 이유였다.김가영은 “당시 와일드카드를 통해 단 한 번 PBA 3쿠션 대회에 참가했다. 그렇다고 PBA에 정식 가입한 것도 아니어서 서류상 문제가 있던 것도 아니었다. 그런데도 대한당구연맹에서는 ‘영구 제명’ 징계를 내렸다. 음주운전을 해서 사고를 낸 것도, 당구계에 막대한 피해를 끼친 것도 아닌데 그런 중징계를 내려진 것”이라고 했다.당시 새로 출범한 PBA와 대한당구연맹 간 ‘대립’의 본보기 징계라는 해석이 지배적이었다. 김가영도 “‘PBA로 가면 김가영조차 제명’이라는 걸 보여줌으로써 선수들이 PBA로 가지 못하도록 내린 징계였다고 본다. 세계선수권대회에서 몇 번 우승을 했든, 국위선양을 얼마나 했든 본보기로 징계를 내린 것”이라고 했다.특히 당시 PBA 3쿠션 대회에 참가한 것 역시도 그저 포켓볼과 나아가 한국 당구의 발전을 위한 결정이었던 터라, 김가영이 느낄 배신감과 허탈감은 더 컸다.김가영은 “포켓볼을 더 부흥시키고 발전시키고 싶었는데 결과적으로 쫓겨난 셈이다. 그때 대회에 참가한 것도 3쿠션의 발전을 위해서가 아니었다. 오직 ‘당구 선수들을 위해서는 프로가 생겨야 한다’는 단 한 가지 생각뿐이었다”며 “프로가 생겨야 당구로 먹고사는 사람들이 더 많아질 거고, 그래야 선수들이 갈 수 있는 길이 더 넓어질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대한당구연맹은 아마추어 단체라 (선수들의 생활엔) 큰 관심이 없었다”고 했다.이어 김가영은 “그동안 프로당구를 만들겠다는 단체들이 몇 번 있었지만 미심쩍었다. 하지만 PBA는 준비 과정이 믿을 만했다. 첫 대회인 만큼 대회 인지도가 있는 내가 참가해 힘을 실어주자는 생각이었다”며 “PBA에서는 시간이 걸리더라도 포켓볼 역시 프로를 만들겠다고 했다. 프로가 생겨야 당구에 대한 인식도 바뀌고, 나중에 포켓볼 종목에도 나쁜 일이 없을 거라고 생각해 참가하게 된 것이었다”고 덧붙였다.그런데도 돌아온 건 ‘영구 제명’이었다. 이 징계로 김가영은 포켓볼 선수로서 국내 대회 참가는 물론 국제 대회 참가의 길까지 모두 막혔다. 평생을 포켓볼만 해온 김가영에겐 사실상 사형선고였다. 김가영의 등록 말소와 관련해 청와대 국민청원까지 등장할 만큼 이슈가 됐으나, 달라지는 건 없었다.김가영으로선 자신의 선수 생활의 위기만큼이나 후배 선수 등 포켓볼계에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는 점이 더 안타까웠다.그는 “후배 등 포켓볼에 종사하고 계시는 선수분들이나 관계자분들에게는 마음 한편에 미안한 감정이 있다. 내가 배신한 것 같은 느낌도 없지 않아 있다”면서도 “언젠가는 돌아갈 거다. 포켓볼 선수로 돌아간다거나 대한당구연맹에 가겠다는 게 아니라, 포켓볼을 위해 내가 뭔가 할 일이 있을 때 돌아가겠다는 뜻이다. 포켓볼 쪽에 꾸준히 관심을 가질 것이라는 의미”라고 덧붙였다. 은퇴 기로에서 결심한 3쿠션 선수의 길대한당구연맹의 영구 제명 징계는 김가영의 인생 계획도 바꿔놨다. 사실 김가영은 포켓볼 선수 이후 지도자의 길을 준비하던 참이었다. 그는 “원래 마흔 살 정도까지만 선수 생활에 집중하고, 40대 초반부터는 지도자를 할 생각이었다. 대학원에 다닐 때 지도교수님께서도 ‘경기력도, 이론도 잘 돼 있는 사람이 체육계에서 인정받는다, 너는 가능하지 않느냐’고 해주셨다. 지도자를 해봐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한국도 포켓볼 강국이 될 수 있다’는 희망을 가지고 열심히 지도자를 준비하려다 제명 징계를 받은 것”이라고 했다.김가영에게는 두 가지 선택지가 놓였다. 계획보다 더 이른 포켓볼 지도자의 길, 그리고 3쿠션 선수로의 전향이었다. 포켓볼과 3쿠션은 엄연히 다른 종목인 데다, 적지 않은 나이에 새 종목으로 전향한다는 것 그야말로 큰 도전일 수밖에 없었다. 오랜 고민이 필요했던 이유였다.김가영은 “결정하는 데까지 정말 엄청 오랜 시간이 걸렸다. 사실 고민이 많았다. 30대 후반의 나이에 뭘 다시 시작한다는 건 상상도 안 해본 일이었기 때문이다. ‘내가 될까’ 싶기도 했다. 초보자 때의 기억과 느낌도 없었다. 포켓볼과 3쿠션은 큐 길이나 굵기, 공 크기, 당구대 높이 등 모든 게 다르다. 포켓볼을 칠 땐 최소한 내 실력에 대한 확신이 있었다. 그게 나를 지탱해 줬다면, 3쿠션은 나에 대한 믿음이 없었다”면서도 “그래도 ‘죽기 아니면 까무러치기다, 한 번 해보자’라는 결심이 섰다. 생판 모르는 걸 새로 시작하는 거니까 지도자와 병행할 수는 없었다. 그래서 대학원을 그만두고, 3쿠션 선수의 길을 걷기로 했다”고 말했다.3쿠션 전향 첫 시즌 6차 대회부터 첫 우승을 차지하며 화제가 됐다. 다만 두 번째 시즌엔 단 한 번도 정상에 오르지 못했다. 첫 시즌 우승 역시 ‘반짝 우승’으로 비쳤다. 김가영은 “첫 시즌에 왜 우승했는지도 모르고, 사실은 할 실력도 아니었다. (초창기다 보니) 전체적으로 선수들의 수준이 높지 않았고 운도 좋았다”면서 “두 번째 시즌에 혼란기가 왔다. 처음엔 그냥 열심히나 치자고 했다면, 3쿠션에 대해 조금씩 알게 되면서 더 어렵게 느껴지고 혼란이 오면서 여러 가지를 바꿨다. 이 과정에서 시행착오를 겪었다. 초반에 운이 좋게 포켓볼 스타일로 성적을 냈다면, 두 번째 시즌이 진짜 내 실력이었던 것”이라고 돌아봤다.그래도 ‘선수로서의 경험’이 많은 게 큰 도움이 됐다. 김가영은 세 번째 시즌부터는 매 시즌 2회씩 정상에 오르며 본격적으로 3쿠션에 적응을 마친 모습을 보였다. 그리고 이번 시즌엔 무려 4회 연속 우승을 차지하면서 프로당구 새 역사를 써 내려가기 시작했다. 이 과정에서 24연승을 달성하며 프레데리크 쿠드롱의 기록을 넘어 프로당구 남·여 투어 최다연승 신기록까지 썼다. 평생을 포켓볼을 치다 3쿠션에 전향한 지 5년도 채 안 돼 이뤄낸 눈부신 성과들이었다.김가영은 “선수 경험이 많았던 게 컸던 거 같다. 3쿠션에 대한 경험은 적어도, 승부사나 경기인으로서의 경험은 남녀 통틀어도 손가락 안에 들 거다. 곧 있으면 선수 생활만 30년 차가 되는데, 그 경험을 완전히 무시는 못 하는 거 같다. 공의 원리에 대한 이해도나 공을 다루는 건 아무래도 습득하는 속도가 빠르지 않았나 싶다”고 말했다.이어 “4회 연속 우승 등 이번 시즌 성적이 좋은 이유는 사실 지금도 잘 모르겠다. 3쿠션에 올인한다고 했을 때나 지금이나 훈련량이나 루틴이 거의 비슷하기 때문이다. 이번 시즌을 앞두고 대대적으로 수정하거나 뒤집어엎은 것도 없다. 조금씩 루틴을 수정하고 조절하기는 하지만, 전체적으로는 처음 3쿠션을 시작할 때와 똑같다”며 “그저 한 스텝씩 잘 성장해 나가고 있는 느낌”이라고 웃어 보였다. “오랫동안 잘하면 된다”…김가영이 따라 걷는 레전드의 길지도자까지 준비하며 청사진을 그려가던 포켓볼과 달리, 김가영은 아직 3쿠션 선수로서 목표나 향후 미래를 그리지는 못했다. 김가영은 “포켓볼은 너무 잘 아는 종목이니까 전체적인 계획이 그려지는데, 3쿠션은 아직 안 그려진다. 사실 몇 살까지 선수 생활을 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포켓볼과 달리 3쿠션은 선수 생명이 길다. 앞으로 어떻게 계획을 세워야 하는지도 모르겠다. 그저 계속 올인할 뿐”이라고 했다.그래서 더더욱 체력 등 자기 관리에 신경을 쓰고 있다. 특히 오프시즌 때는 당구 훈련보다 체력을 기르는 데 집중하고 있다. 김가영은 “오프시즌 때는 한 시즌을 잘 치르기 위해 체력 훈련에 신경을 쓴다. 당구 연습보다 운동을 더 많이 할 정도다. 그때 몸을 만들어놓고, 시즌이 시작되면 몸을 유지하는 정도로만 운동을 한다. 오프시즌 때는 필라테스와 웨이트를 많이 한다”고 했다.여기에 틈틈이 정신적인 스트레스 해소를 위한 취미 생활도 잊지 않고 있다. 최근에는 ‘프리다이빙’에 빠졌다. 김가영은 “동호회는 처음 가입해 봤다. 경기 때 다이버 분들이 응원 피켓을 들고 경기장에 와주신다. 사회 생활하면서 이렇게 좋은 분들을 만날 수 있지 싶을 정도로 좋은 분들을 만났다. 서로 윈윈(Win-Win)하고 있다. 당구장 평생 안 가보신 분들이 이제는 당구룰을 꿰고 계신다. 반대로 당구 선수들은 저 때문에 프리다이빙에 관심을 갖고 계신다”고 말했다.이어 “프리다이빙에 당구에 도움이 되는지 결론은 못 냈다. 다만 확실히 느끼는 건 있다. 열이 받거나 하던 게 잘 될 때, 긴장될 때 숨이 가빠지지 않나. 당구칠 때 역시도 호흡이 가빠지거나 흥분하면 안 된다. 호흡을 가라앉히는 게 좋은데, 프리다이빙이 도움이 되지 않을까 생각은 하고 있다. 기분 탓일 수도 있다”며 “취미 생활을 할 땐 갈 때부터 기분이 좋다. 잘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당구를 치거나 훈련할 땐 ‘늘 잘해야 돼, 실수하면 안 돼’ 이런 마음이라면, 취미를 할 때는 ‘재미있게 놀자, 못해도 된다’는 마음으로 간다. 스트레스도 풀리고, 다칠 일도 없다. 나쁠 게 없는 거다. 정신적으로, 신체적으로 건강하면 자기 관리는 끝”이라고 웃어 보였다.이처럼 김가영이 당구 실력뿐만 아니라 체력 등 자기 관리에 더욱 집중하는 이유가 있다. 아직 구체적인 계획은 세우지 못했지만, 결국은 오랫동안 꾸준히 잘하고 싶다는 마음가짐에서다. 여기에는 김가영이 유독 마음속에 담고 있는 레전드의 조언이 자리 잡고 있다. 과거 포켓볼 레전드 앨리슨 피셔(영국)가 김가영에게 직접 건넸던 조언이다.김가영은 “예전에 피셔에게 ‘나도 당신처럼 레전드가 되고 싶다’고 물은 적이 있다. 그는 ‘오랫동안 잘하면 된다, 잠깐 잘하면 그건 반짝 스타’라고 답해줬다. 그게 되게 기억에 많이 남았고, 지금도 늘 마음에 새기고 있다”고 말했다.이어 “오랫동안 잘하는 게 결코 쉽지가 않다. 다행히도 선수 생활을 하는 28년 동안 우승을 못한 해는 1~2년 정도밖에 안 된다. 그건 운이 아니라 제 노력의 결과였다. ‘오랫동안 잘하면 된다’는 말을 마음에 새기고, 노력하고 있는 결과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당구 여제' 김가영이 걸어가고 있는 방향과도 맞닿아 있다. 고양=김명석 기자 2024.11.22 16: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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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주운전이 앗아간 월드컵의 꿈, '거미손'에 총 쥔 유연수 "이제는 패럴림픽 향해" [IS 인터뷰]

"(축구에서) 못 이룬 꿈, 4년 뒤 로스앤젤레스(LA)에서 이루겠습니다."불의의 사고로 골키퍼 장갑을 벗은 유연수(26)가 공기소총을 손에 들었다. 다부진 체격과 뛰어난 운동 신경, 긴 리치(팔 길이)와 순간 집중력까지. 축구 골키퍼로서 그가 갖춘 재능이 사격 선수로서도 제격이었다. 한때 월드컵 무대를 누비는 날을 고대했던 유연수는 이젠 휠체어 위에서, 패럴림픽 '금빛 총알'을 쏘기 위한 여정에 나섰다. 20일 경기도 이천 장애인체육종합훈련원에서 열린 '기초종목 하계 스포츠캠프'에서 만난 유연수는 "축구를 그만두고 사격이라는 터닝포인트가 찾아왔다. 2028년 LA 패럴림픽 메달을 목표로 열심히 하겠다"라고 다짐했다. 유연수는 프로축구 K리그 제주 유나이티드 골키퍼였다. 축구 명문 포항제철중학교로 진학할 만큼 잠재력이 뛰어난 그는 이후 수비수에서 골키퍼로 전향했다. 부평고와 호남대학교에서 정상급 골키퍼로 성장하더니 마침내 프로팀 유니폼까지 입었다. 2020년 제주 유나이티드에 입단한 유연수는 K리그에서도 두각을 드러내며 조금씩 주전으로 성장하고 있었다. 하지만 불의의 사고가 창창했던 그의 앞길을 가로막았다. 2022년 팀 동료, 트레이너와 함께 차를 타고 이동하다 음주 운전 차량에 의해 교통사고를 당했다. 사고의 후유증으로 하반신마비 증상을 겪은 유연수는 휠체어에 몸을 맡기는 상황이 됐다. 결국 그는 그토록 좋아했던 축구 그라운드를 떠나야 했다. 갑자기 찾아온 은퇴. 2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사과 한마디 없는 가해자의 태도에 유연수는 한동안 신체적·정신적 스트레스에 시달렸다. 심신이 무너진 그는 스포츠와 점점 멀어졌다. 유연수는 카페 바리스타나 편의점 운영, 재활 센터 운영 등 다양한 미래를 그려봤다고 한다. 그러나 스포츠만큼 그의 가슴을 뜨겁게 하는 일은 없었다. 병원에 있던 탁구대에 눈길이 갔던 그는 아버지와 탁구를 치면서 자신을 다시 일으키기 시작했다. 그러던 중 소중한 기회가 찾아왔다. 지난해 12월, 유연수의 일화를 들은 대한장애인체육회 정진완 회장이 그를 찾아 장애인 스포츠를 권유했다. 유연수는 탁구를 해보고 싶다고 말했으나, 2000년 시드니 패럴림픽 사격 금메달리스트인 정 회장은 사격을 추천했다. 이후 종목 체험을 위해 장성원 국가대표 감독이 있는 세종 사격장을 찾은 유연수는 소총에서 재능을 발견했다. 그렇게 유연수는 사격 선수의 길로 들어섰다. 사실 유연수는 장애인 스포츠를 시작하면서 다양한 종목으로부터 러브콜을 받았다. 얼마 전까지 프로에서 뛰었던 운동 능력과 젊은 나이가 매력적이었다. 유연수는 "정진완 회장의 지원과 국가대표 감독의 일대일 지도 만큼 강력한 러브콜은 없었다"면서 "팀 스포츠보다 개인 종목을 하고 싶었다. 팀 스포츠는 아무리 잘해도 내가 주인공이 될 수 없다. 내가 노력한 만큼 결과물이 나올 수 있는 개인 스포츠를 택했는데 그게 사격이다"라고 말했다. 정진완 회장은 지난해 처음 유연수를 본 순간 "사격을 하면 잘할 것 같다"는 확신이 들었다고 전했다. 프로 무대 경험을 했기 때문에 신체 능력과 정신력이 좋다고 판단했다. 유연수는 "골키퍼는 승부차기 등 페널티킥 때 심리적 압박이 심하다. 나는 키커로도, 키퍼로도 승부차기에 강했다. 마인드 컨트롤에 자신이 있었고, 사격도 자신 있다"라며 환하게 웃었다. 패럴림픽 메달이라는 새로운 목표가 생긴 유연수는 오는 28일 프랑스 파리로 떠난다. 28일 개막하는 2024 파리 패럴림픽을 참관하기 위해서다. 언젠가 자신이 설 무대를 미리 볼 기회가 마련됐다. 유연수는 "스포츠는 현장감이 정말 중요하다. 패럴림픽 분위기를 읽고 적응해야 다음에 출전 기회가 생겼을 때 어색하지 않을 것 같다. 좋은 공부가 될 거 같다"라며 웃었다. 한편, 유연수는 지난 7월 상암 월드컵경기장 그라운드를 밟았다. 2024 쿠팡플레이시리즈 K리그 올스타 팀K리그와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EPL) 토트넘 홋스퍼의 경기 시축자로 신영록과 함께 나선 것이다. 오랜만에 축구공을 잡은 유연수는 "감회가 새로웠다. 경기장에 두 발로 서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며 "6만 관중 앞에 선 것은 처음이었다. 음주 운전을 막자는 마음을 관중에게 잘 전달한 것 같아 기쁘다"라고 말했다. 스포츠로 다시 일어선 유연수는 다른 장애인들에게도 희망을 심어줬다. 그는 "스포츠를 하면 몸도 건강해지지만, 대인 관계나 자신감도 좋아질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한 턱만 넘으면 넓은 세상이 있는데 그 한 발을 나오는 게 힘들다. 주변에서 많이 도와줘서 (장애인도) 스포츠를 통해 밖으로 나왔으면 좋겠다"라고 기대했다. 현재 유연수는 대한장애인체육회가 주최한 '2024 기초종목 하계 스포츠 캠프'에 참가하고 있다. 장애인체육의 차세대 유망주 발굴을 목적으로 개최된 이번 캠프는 스포츠 꿈나무 선수들이 대거 참가해 장애인 스포츠의 문을 두드렸다. 유연수는 "어린 아이들이 다양한 종목을 체험하고 재능을 찾아가는 좋은 기회라고 생각한다. 스포츠에 재미를 붙이고 스포츠를 통해 친해지는 모습이 보기 좋다. 앞으로도 이런 기회가 많아졌으면 한다"라고 말했다.이천=윤승재 기자 2024.08.21 06: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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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혜성 “극단적 다이어트로 35kg 나간 적도…이후 폭식증 찾아와” (‘세바시’)

방송인 이혜성이 대학 진학 후 극단적 다이어트와 폭식을 반복했던 경험담을 털어놨다. 지난 29일 ‘세바시 강연’ 채널에는 이혜성이 출연한 ‘인정 중독에서 벗어나는 법’ 편 영상이 게재됐다. 영상에서 이혜성은 치열했던 학창시절을 떠올렸다. 그는 서울대학교 경영학과 출신으로 2016년 KBS 43기 공채 아나운서로 입사했으나 2020년 5월 퇴사, 현재 프리랜서 방송인으로 활동 중이다. 이혜성은 대학 입시에서 목표를 이룬 뒤 오히려 깊은 공허감에 빠졌다고 털어놨다. 그는 “입학 후 매일 16시간 동안 의자에 앉아 있느라고 혹사당한 허리와 목을 치료하기 위해 열심히 병원을 다녀야 했고 무엇보다 정신적 공허함이 저를 압도했다”고 담담하게 말했다. 특히 그는 “그리고 진짜 많이 방황했다. 난 무엇을 위해 산 건가 싶었다”면서 “그 때 저는 모든 걸 쏟아부을 새로운 목표가 필요했다”라고 말했다. 그렇게 새롭게 설정한 목표는 다이어트와 외모 가꾸기였다고. 그는 무염 닭가슴살 한덩이와 오이를 학교에 가지고 다닐 정도로 극단적 다이어트를 감행했다. 이혜성은 “일반식 먹으면 살이 찔까봐 식사 약속도 잡지 못했다. 다이어트를 하면서 동시에 무리한 웨이트 트레이닝을 시작했다. 공부할 때처럼 독하게 악바리로 운동했다”고 자신을 돌아봤다. 극단적 다이어트 이후엔 폭식증이 찾아왔다. 이혜성은 “몸무게를 35kg까지 감량했는데 말이 안 되지 않나. 지속 가능한 무게가 아니다. 대학 생활을 시작한 지 반년도 안 돼서 폭식이라는 악연이 찾아왔다. 폭식은 극단적인 운동으로 이어졌다. 이 시기에 저는 운동을 한 번 시작하면 줄넘기는 만 번, 달리기는 20km씩 해야만 끝을 냈다”고 말했다. 이혜성은 이어 “엄마가 저를 걱정하셔서 폭식을 못 하게 하니까 제가 방 옷장 속에 도너츠 봉지를 숨겨두고 몰래 꺼내 먹다가 갑자기 너무 서러워져서 엉엉 운 적이 있다”며 “그날 카페에 가서 엄마에게 장문의 편지를 썼다. ‘내가 많이 먹는 이유는 식탐을 조절하지 못하는 사람이 아니라 마음이 공허하고 불안정한 것 같으니까 이 시기를 조금만 기다려 달라’고 했다”고 밝히며 눈시울을 붉혔다. 이혜성은 “중·고등학교 때는 좋은 대학에 가기 위해 달렸고, 대학에 가서는 좋은 외모를 갖기 위해서 달렸다. 졸업 시즌엔 KBS 아나운서라는 좋은 대학을 가기 위해 달렸다”면서 사회적 인정을 받기 위해 달렸던 자신의 모습이 ‘인정 중독’임을 언급했다. 그러면서 이혜성은 “행복도 성적순이 아닌데, 성공도 성적순이 아니더라”며 “인정 중독에서 완전히 자유로워지는 건 불가능할 수 있다. 그러나 저는 그 목표를 향해 달려가는 과정을 무시하지 않는다. 그 과정을 천천히 즐기면서 가려고 노력한다”고 말했다.그러면서 ““가끔은 멍 때리는 날도 가지려 하고 친구들과 빵 투어도 많이 다닌다. 가끔 식탐에 질 때가 있다는 걸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살이 찌면 건강하게 운동하고 건강하게 먹으면 된다”고 달라진 마음가짐을 덧붙였다. 박세연 기자 psyon@edaily.co.kr 2024.07.30 12:23
연예일반

‘시험관 시술’ 손담비 “기운 너무 없어서 기절…쉽지 않다”(‘담비손’)

가수 겸 배우 손담비가 두 번째 시험관 시술 진행 과정을 공개했다. 손담비는 26일 유튜브 채널 ‘담비손’에 ‘응원해 주셔서 감사드립니다’라는 제목의 영상을 올리고 첫 번째 시험관 시술 고백 이후의 이야기를 전했다.손담비는 “기운이 너무 없어서 기절을 했다”며 시험관 시술의 고충을 토로하면서도 힘을 내자며 긍정적으로 의지를 다졌다. 이에 남편 이규혁은 “(손)담비가 힘들지. 다들 나한테 물어보더라. 너는 뭐하냐고”라고 했고, 손담비는 “오빠는 힘을 주지 나에게. 육체적, 정신적인 건 같이”라고 화답했다. 손담비는 지난 19일 올린 ‘갑자기 살이 7kg 찐 이유’라른 제목의 영상에서 현재 시험관 시술 중임을 고백했다. 손담비는 “첫 번째 시험관은 실패했고 최근 다시 시작했다. 오늘이 주사 4일째”라고 밝히며 “안 됐을 때도 그렇게 좌절하지 않았다. 나도 나이가 있지 않느냐. 물론 기대는 안 했지만 속상하긴 했다”고 말했다. 시험관 시술을 선택한 이유에 대해서는 “난임은 아니었지만, 나랑 오빠 나이를 고려해서 시험관을 선택했다. 여러 가지를 느끼면서 공부하고 있다. 쉽지 않은 길”이라고 털어놨다.그러면서 “시험관 할 때 남편들이 정말 잘해줘야 한다. 우리 남편이 워낙 잘 챙겨주고 옆에서 서포트를 많이 해줘서 편안하다. 몸은 힘들고 정신적으로 조금 힘든데 그 정도는 참을 수 있다. 첫 번째는 실패했지만, 두 번째는 으쌰으쌰 하니까 기대 많이 해달라”손담비는 지난 2022년 전 스피드 스케이팅 국가대표 선수 이규혁과 결혼했다.박세연 기자 psyon@edaily.co.kr 2024.06.27 08:07
연예일반

손담비, 2세 위해 시험관 시술 “이번이 두 번째…7kg 이상 쪘다” (‘담비손’)

가수 겸 배우 손담비가 2세를 위해 시험관 시술을 시작했다. 19일 유튜브 채널 ‘담비손’에는 ‘갑자기 살이 7kg 찐 이유’라는 제목의 동영상이 업로드됐다.손담비는 해당 방송을 통해 “내가 시험관을 시작했다”며 “첫 번째 시험관은 실패했다. 최근 다시 시작했다. 오늘이 주사 4일째”라고 밝혔다. 이어 “첫 번째에 (임신이) 됐으면 좋았겠지만, 안 됐을 때도 그렇게 좌절하지 않았다. 나도 나이가 있지 않느냐. 물론 기대는 안 했지만 속상하긴 했다”며 “둘이 다시 간절히 원하면 언젠가 생기지 않을까 한다”고 말했다. 시험관 시술을 선택한 이유에 대해서는 “난임은 아니었지만, 나랑 오빠 나이를 고려해서 시험관을 선택했다. 여러 가지를 느끼면서 공부하고 있다. 쉽지 않은 길”이라고 털어놨다.그러면서 “시험관 할 때 남편들이 정말 잘해줘야 한다. 우리 남편이 워낙 잘 챙겨주고 옆에서 서포트를 많이 해줘서 편안하다. 몸은 힘들고 정신적으로 조금 힘든데 그 정도는 참을 수 있다. 첫 번째는 실패했지만, 두 번째는 으쌰으쌰 하니까 기대 많이 해달라”손담비는 또 시험관 시술로 몸무게가 7kg 이상 쪘다고 고백하며 “첫 번째 시험관을 할 때 너무 말라서 초반에 잘 안됐다. 그때 찌웠더니 인생 역대급 몸무게가 됐다”며 “호르몬 때문에도 살이 진짜. 보기 별로일 정도로 뱃살이 많이 찐다”고 고충을 토로했다.그러면서도 손담비는 “그런 것들 때문에 힘들어하시는 분들이 많은데 거울을 보지 마라. 옷으로 커버하면 된다”고 조언하며 “난 시작할 때 긍정적으로 마음을 먹었다. 살이 찌는 건 어쩔 수 없다”고 덧붙였다.한편 손담비는 지난 2022년 전 스피드 스케이팅 국가대표 이규혁과 결혼했다.장주연 기자 jang3@edaily.co.kr 2024.06.19 22:45
드라마

[정덕현 요즘 뭐 봐?]‘닥터 슬럼프’, 슬럼프에 빠진 이들을 위한 박신혜, 박형식표 처방전

치열한 경쟁과 도처에 위험이 도사린 사회가 주는 불안 탓일까. 최근 드라마들이 관심을 갖는 건 정신적인 문제들이다. ‘멘붕’이라는 신조어가 유행처럼 사용되고, ‘멘털 갑’, ‘멘털 관리’, ‘강철 멘털’ 나아가 ‘멘털 리셋’이라는 표현들이 나올 정도로 멘털은 우리 사회의 화두로 떠올랐다. 그래서인지 외과의사들 중심으로 그려지곤 하던 의학드라마들이 정신과를 소재로 등장하기 시작했다. ‘영혼수선공’이나 ‘조선정신과의사 유세풍’, ‘정신병동에도 아침이 와요’ 같은 드라마들이 그 사례다. 그런데 멘털에 대한 관심은 비단 의학드라마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웰컴투 삼달리’ 같은 작품을 보면 경쟁적인 도시의 삶에서 상처입은 주인공이 제주도에 내려와 그 곳 사람들과 지내며 사랑을 이뤄가는 과정을 보여주는데, 그건 일종의 멘털 치유 과정 그 자체다. JTBC 토일드라마 ‘닥터 슬럼프’도 마찬가지다. 물론 ‘닥터 슬럼프’에는 성형외과 의사 여정우(박형식)와 마취과 의사 남하늘(박신혜)이 등장하고 그들이 병원에서 겪는 일들이 그려지지만 그렇다고 의학드라마라고 보기는 어렵다. 이 드라마에서 의사라는 직업이나 병원이라는 공간은 하나의 배경에 가깝다. 드라마가 실제로 다루는 건 그것들이 아니라, 그 곳에서 상처받은 이들이 그간 잃었던 일상을 되찾으며 치유해가는 과정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굳이 이들이 의사라는 직업으로 등장하는 건, 다소 반어법적인 강조의 뉘앙스가 더해져 있다. 누군가를 치료하고 치유하는 의사들도 아플 수 있다는 걸 보여줌으로써 멘털의 문제는 이제 현대인이라면 누구나 겪을 수 있다는 걸 에둘러 알려주고 있다고나 할까. 이것은 또한 성공이라는 잣대로 선호하는 직업 1순위로서의 ‘의사’라는 직업의 허망함을 말해주는 것이기도 하다. 물론 진짜 인술에 뜻을 갖고 이 직업을 택하는 이들도 많지만, 성공하고 싶어 의사가 되는 이들도 적지 않은 세태가 아닌가. 학창시절부터 오로지 의대를 가기 위해 치열한 경쟁을 하고, 결국 의사가 되지만 그 곳에서의 경쟁 속에서 무너지고 난 후에야 비로소 잃어버린 것을 되돌아보는 ‘닥터 슬럼프’의 이야기는 그래서 우리 모두에게도 낯설지 않은 서사다. 잘 나가던 성형외과이자 인플루언서였던 여정우의 삶이 한 순간의 누명에 의해 망가지는 모습은 우리가 애써 성취했다고 여긴 것들이 얼마나 쉽게 무너질 수 있는가를 말해준다. 또 선배의사들에 의해 이용만 당하다 결국 우울증까지 갖게 된 남하늘은 경쟁적인 현실이 우리를 어떻게 파괴하고 있는가를 보여준다. 이들은 모두가 의심 없이 달려가는 막연한 성공을 향해 질주하게 되면서 오히려 일상의 행복들을 잃어가는 현대인들을 대변한다. 이런 전제를 깔아놓고 있어서인지 ‘닥터 슬럼프’는 사실상 액면이라고 할 수 있는 로맨틱 코미디의 요소요소들이 새로운 의미로 그려진다. 공부만 하는 모범생으로만 살아와 바다 한 번 가보지 못한 이들이 보는 바다가 남다르게 다가오고 연애 한 번 제대로 하지 못한 이들의 연애가 특별하게 느껴지며 나아가 떡볶이를 사먹고 노래방이나 오락실을 가는 이른바 ‘노는’ 일상조차 새로운 가치로 다가온다. 이들은 생존경쟁과 각자도생을 위해 치열하게 살아오던 삶에서 튕겨 나가 바깥에 놓이게 된 후에야, 자신들이 그토록 ‘노오력’해왔던 것들이 행복을 가져다주기는커녕 ‘우울증’으로 돌아오는 현실을 깨닫게 된다. 동시에 바깥으로 나오게 된 남하늘과 여정우가 동병상련으로 서로를 공감하다 사랑하게 되는 그 달달한 이야기는 그저 멜로의 차원을 넘어 우리 모두를 응원하고 위로하는 이야기로 다가온다. “잘못 산 것 같다”는 말에 “네 잘못 아니야”라고 해주는 말이 마치 아픈 이를 치유해주는 처방약처럼 예사롭지 않게 들린다.한때 멜로가 대중의 시선을 끌지 못했던 건 그저 사적인 사랑타령에 대한 현실과의 괴리감 때문이었다. 그래서 멜로는 언젠가부터 그 사랑의 이면에 놓인 사회적 맥락들을 가져오기 시작했다. 결국 우리 시대의 사랑은 더 이상 낭만적일 수만은 없고 사회적 현실과 더 밀접해졌다는 반증이다. 그 언제든 ‘슬럼프’의 덫이 곳곳에 놓여 있는 사회가 야기하는 불안과 상처들 속에서 우리의 사랑은 점점 더 위로와 응원에 가까워지고 있다. 정덕현 대중문화 평론가 2024.02.26 05:20
프로축구

[IS 상암] “김기동은 다르다는 걸 보여주고 싶다” FC서울 신임 사령탑의 자신감 [일문일답]

“최근 부진한 성적 탓에 선수들의 자존감이 떨어져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김기동은 다르다’라는 걸 보여주고 싶다.”김기동 FC서울 감독(52)은 3일 오전 10시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취임 기자회견에 참석, 취재진과 마주해 이같이 말했다. 서울 부임 후 첫 번째 공식 행사에서, 선수들과 팬들에게 당찬 포부를 전하며 찬란한 영광을 가져올 것이라고 강조했다.지난달 14일 서울의 제15대 사령탑으로 선임된 김기동 감독은 선수 시절 유공 코끼리·부천 SK·포항 스틸러스에서 활약했다. K리그에서만 501경기 출전하는 등 시대를 풍미한 미드필더 중 하나다. 지도자 커리어 역시 화려하다. 2013년 23세 이하(U-23) 축구대표팀 코치로 지도자 생활을 시작한 그는 2016년 친정팀인 포항으로 돌아와 새로운 도전에 나섰다. 본격적인 사령탑의 길을 걸은 건 2019년이었다. 김기동 감독은 당해 10월 포항의 지휘봉을 잡은 뒤, 그만의 특별한 커리어를 써 내려갔다. 김 감독은 5시즌 중 4차례나 파이널 A에 올랐다. 9위를 차지한 2021년에도 아시아축구연맹(AFC) 챔피언스리그(ACL) 준우승을 거머쥐는 등 놀라운 이정표를 남겼다. 상대적으로 자금력에서 열세인 포항이 꾸준히 눈에 띄는 성적을 남긴 건, 김 감독의 능력이 절대적인 지분을 차지했다는 평이다.김기동 감독은 부임 후 강상우(베이징 궈안) 송민규(전북) 팔로세비치·일류첸코(이상 서울) 등 매해 많은 선수단 변화를 겪었지만, 기대 이상의 성적을 남기며 선수 육성·관리 부문에서도 높은 평가를 받았다. 시즌 중 김기동 감독과 마주하는 상대 사령탑들은 김 감독이 보여주는 전술 변화에 혀를 내두르기도 했다. 김기동 감독의 포항은 지난해 마지막까지 ‘1강’ 울산 HD를 위협한 팀 중 하나였고, 대한축구협회(FA)컵 정상을 차지해 아시아챔피언스리그 엘리트(ACLE) 출전권까지 포항에 안겼다. 말 그대로 화려한 엔딩이었다.김기동 감독의 다음 행선지는 서울이었다. 서울은 김기동 감독을 제15대 사령탑으로 선임했다. 말 그대로 새로운 도전이었다. 서울은 지난 4시즌 연속 파이널 A 진출에 실패해 자존심을 구겼다. K리그 최고의 관중 동원력을 자랑하는 대표 구단이지만, 성적이 그에 미치지 못했다. 2016년 우승 뒤, 최용수·박진섭·안익수 감독 모두 ‘서울다움’을 보여주지 못했다.부담이 클 수밖에 없는 자리다. 김기동 감독 역시 이번 결정에 대해 “쉬운 선택은 아니었다”라고 돌아봤다. 하지만 이내 “주위에서 ‘포항이니까 통했던 게 아닐까’라는 목소리가 들려오더라. 신경 쓰진 않았는데, 나를 평가할 때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새로운 도전의 계기가 된 셈”이라고 설명했다.이어 “부담이 없다고 하는 건 거짓말이다. 하지만 설렘이 더 크다. 서울의 찬란한 영광을 되찾기 위해 노력할 것이고, 자신도 있다”라고 미소 지었다.한편 취재진은 김기동 감독에게 ‘상대해 본 서울은 어떤 팀이었고, 어느 부분을 바꿔야 할지’에 대해 물었다. 이에 김 감독은 “서울에 기술이 뛰어난 선수가 많다. 예전에 황의조·황인범, 지금 윌리안·기성용·조영욱 등 말이다. 우리가 경기를 지배하고 있더라도, 항상 부담스러운 팀이었다”면서도 “다소 아쉬움을 느낀 건 조직적인 부분에서였다. 기술로는 승리와 우승을 가져올 수 없다. 빨리 팀워크를 키워서, 팀이 하나가 되는 축구를 하려고 준비하고 있다”라고 힘줘 말했다.올해 목표에 대해선 ‘ACL 진출’을 외쳤다. 김기동 감독은 “주위에선 ‘6위만 해도 되지 않느냐’라는 말도 하더라. 나는 그거보다 높은 순위를 노린다. 지금 당장 우승을 논할 수 없지만, 올해는 ACL을 목표로 준비하고 있다. 그래야 구단의 가치도, 선수의 역량도 늘어나 좋은 팀이 될 수 있다”라고 강조했다.이번 동계 훈련에서 중점적으로 다룰 부분 역시 조직력이다. 김기동 감독은 “팀의 방향성에 대해 더 대화를 나눠야 할 것 같다. 조직 훈련에 더 공을 기울일 계획”이라고 말했다.특히 아직 잔류가 확정되지 않은 기성용에 대한 질문도 나왔다. 이에 김기동 감독은 “전화로 긴 대화를 나눴다. ‘서울의 기성용이고, 기성용의 서울이지 않느냐’라고 얘기했다. 서울에 대한 애정이 큰 선수다. 좋은 선택을 할 것”이라고 내다봤다.끝으로 김기동 감독은 선수들에게 “최근 스플릿 A에 가지 못해 자존감이 떨어져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이들에게 ‘김기동은 다르다’라는 걸 보여줘야 한다고 생각한다. 나를 믿고 도와준다면, 목표를 이뤄낼 수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다”라는 당찬 포부를 전했다.한편 서울은 오는 5일 구리 GS챔피언스파크에서 소집 훈련을 소화한 뒤, 9일 태국 후아힌으로 향해 2024시즌 담금질에 나선다.다음은 김기동 감독 일문일답. -서울 취임 소감은. “분명 쉬운 선택은 아니었다. 5년간 포항에서 부족하다면 부족하지만, 많은 성적을 냈고, 그러면서 올해 FA컵 우승도 했다. 이후 ‘변화를 줘야하지 않을까’라는 생각도 했다. 그런 가운데 서울에서 제의가 오면서 많은 고민을 했다.”“주위에선 연이어 성적을 내니까, ‘김기동은 포항이니까 가능하지 않았을까’라는 얘기가 나오더라. 신경 쓰진 않았는데, 나를 평가할 때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새로운 도전의 계기가 됐다. 마침 서울이 손을 내밀어줬고, 새로운 도전을 서울에서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부담감이 없다고 하는 건 거짓말이다. 상당히 있다. 하지만 새로운 도전에 있어서, 부담감보단 설렘이 크다. 잘 해낼 수 있다는 자신감이 컸기 때문에 서울로 왔다. 올 한해. 서울이 ‘찬란한 영광’을 되찾기 위해 노력할 것이며, 그럴 자신도 있다. 팬들에게 기쁨을 주고 싶다.”-이번 결정을 내리는 데 어떤 점이 가장 매력적이었는지, 그리고 제의를 받았을 때 어떤 생각이 들었는지 궁금하다.“(도전을) 포항에서도 할 수 있었지만, 이미 얘기했듯 주변에서 많은 분들이 나를 포항에만 적합한 지도자라고 생각하신 것 같았다. 나도 이제 그런 시선에서 벗어나, 새로운 팀에서 나의 능력을 펼칠 수 있고, 또 잘할 수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다. 서울이 나와 가장 어울릴 것이라 생각했다.”-서울 최근 관중 동원력 1위를 자랑하지만, 성적은 그에 미치지 못했다. 외부에서 진단했을 때 서울이 가장 먼저 바꿔야 할 점은 무엇인지, 그리고 ‘김기동의 서울’을 정리해 본다면.“어쨌든 관중이 많은 건 나에게 좋은 것 같다. 좋은 선수가 있고, 좋은 경기를 해야 팬들이 올 것이라 생각한다. 일단 서울이 가장 바꿔야 될 문제는 성적이다. 몇 년간 계속 좋은 성적을 내지 못했다. 서울은 한국의 리딩 클럽으로서 흥행을 이끌어야 하는데, 외부에서 봤을 때도 분명 아쉬운 부분이었다. 성적에 최대한 신경 써서, 서울이 좀 더 상위권에 있을 수 있도록, 팬들이 좋아하는 축구를 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서울에 기술이 좋은 선수가 많다고 평했다. 그렇다면 향후 어떤 변화를 줄 것인지 궁금하다. 선수 영입일지, 전술의 변화일지 설명해 달라. “서울과 경기를 하며 부담스러운 점은 기술이 좋은 선수가 많았다는 점이다. 예전에 황의조· 황인범, 현재 윌리안·기성용·조영욱 등. 그런 기술적인 선수들 때문에 우리가 경기를 지배하면서도 부담스러웠다.”“다소 아쉬운 점은 팀의 조직적인 부분이었다. 기술이 좋은 선수가 많으면, 팀에 도움이 되겠지만 승리와 우승을 가져올 수 없다고 생각한다. 팀워크를 키우고, 새 조합을 찾아 원 팀이 되는 축구를 하려고 준비하고 있다.”-올해 목표가 상위 스플릿은 아닐 거 같다. 구체적인 목표를 전한다면.“주위에선 서울의 최근 성적이 좋지 않았기에 ‘6위만 내도 되지 않냐’라고 한다. 하지만 나는 그거보다는 높은 순위를 노린다. 지금 당장 우승을 논할 수 없지만, 올해는 ACL을 목표로 해서 준비하고 있다. 그래야 선수, 구단의 가치도 오르고 더 좋은 팀이 되지 않겠냐는 기대를 하고 있다.”-기자회견 전날 팀의 베테랑이 많이 떠났다. 아직 잔류가 확정되지 않은 기성용, 고요한의 거취도 궁금한데, 향후 계획은 어떤지.“짧은 시간이었지만 구단과 많은 미팅을 통해 향후 변화에 대한 얘기를 나눴다. 몇 년 동안 성적이 안 좋으면서 어쨌든 감독님들만 책임을 지고 나간 상황이었다. 성적에는 서로의 책임이 있다고 생각한다. 변화가 필요하다고 생각했기에 최근 선수단 변화가 있던 것이다. 지금은 어느 정도 세대교체가 이뤄져 활력을 가져가야 할 생각과 기대를 갖고 있다. 두 선수, 이어 향후 선수 수급 등에 대해선 단장님과 소통하고 있다. 조만간 ‘좋은 선물을 주시지 않을까’ 기대하고 있다(웃음).”-포항 시절 서울과 맞붙은 경험이 많다. 함께하고 싶었던 선수, 눈여겨본 선수가 따로 있었는지.“그 선수들은 다 나갔다(웃음). 황의조·황인범 등 말이다. 서울을 상대할 때 전방 압박, 높은 위치에서의 수비를 노렸는데, 기성용 선수 때문에 공략하기 힘들었던 경험이 있다. 워낙 탈압박 능력도 뛰어나고, 빌드업 능력도 갖췄다. 이제는 같은 팀으로 할 수 있게 되지 않았나. 아마 거꾸로 전방으로 나가는 게 더 수월하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하고 있다.”-포항 감독 시절 동해안 더비 통해 울산을 상대로 승리한 경험이 있다. 반면 서울은 울산은 물론, 전북을 상대로 크게 고전했다. 올 시즌 다른 모습을 기대해도 좋을지.“전북과 울산을 상대로 승리한다면 분명 더 높은 위치에 갈 수 있다. 하지만 경기, 시즌을 준비하면서 ‘이 팀만 이겨야 겠다’라고 생각한 적은 없다. 한 팀 한 팀 이겨나가야 좋은 위치로 갈 수 있다. 분명 울산과 전북은 좋은 상대가 될 거라 생각한다. 전북, 울산뿐만 아니라, ,모든 팀을 이겨서 좋은 성적을 이루고 싶다.” -‘포항이었기에 그런 성적을 이뤘다’라는 평가에 대해 언급했는데, 이제 서울처럼 빅클럽에 갔을 때의 관리 역량에 궁금해하는 시선이 많다. 포항을 이끌었을 때의 지도철학에 덧붙여, 서울에선 더 고려 해야 할 점이 있을지.“일단 포항에선 선수들하고 가깝게 지내며 가족적인 분위기를 만들었다. 향후 계획을 아직 생각해 보지 못햇지만, 서울은 개인적인 시간이 많은 것 같다. 주위에선 ‘선수들끼리 친밀한 관계를 지속적으로 유지하지 못한다’라는 얘기도 들었다. 그런 부분에서 먼저 관여하고 싶다. 선수들과 수직적인 관계보단, 수평적인 관계를 원한다. 감독이 아닌 축구 선배로 다가가 편하게 지내며 고충을 들어주고, 그런 문제에 대해 해결해 주고 싶다. 지내다 보면 서로 간에 믿음이 생기지 않을까. 그런 믿음이 성적으로 이어질 거로 생각한다. 그런 준비를 하고 있다.”-선수 시절 발레리 니폼니시(러시아) 감독과 함께 하며 영향을 많이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어떤 부분에서 영향을 받았고, 그런 의견에 동의하는지“많이 얘기했지만 전술적인 부분에 있어 그 당시 현대 축구를 뒤처지지 않는 걸 중요시 해야 한다고 느꼈다. 그런데 가장 중요했던 건 소통이었다. 그 당시만 해도 감독-선수는 불편한 관계였다. 당시 선수들 입장에서 많이 들어주셨다. 때로는 과격할 정도로 의견 나누고 충돌했는데, 그런 부분을 아주 원활하게 소통하면서 지냈던 기억이 난다. 그런 것들이 도움이 됐다. 지도자 생활을 하면서도 그런 부분이 나의 큰 역량으로 이어진 것 같다.”- 포항 시절 어린 선수들 육성해 키워낸 선수가 많다. 아까 언급한 세대교체와 더불어, 서울에서 눈여겨본 선수가 있는지, 성장 가능성 있는 선수를 꼽는다면.“아직 출전이 적은 선수들은 데이터에 없다. 경기를 하면서 22세 이하, 강성진과 이태석과 같은 선수들은 기억이 난다. 이들은 앞으로 연령별 거쳐서 국가대표도 갈 선수라 생각한다. 같이 훈련하면서, 더 어린 선수를 챙겨볼 거다. 이들을 발전시키는 게 내 목표 중 하나다. 그래야 팀이 서로 경쟁하는 건강한 팀이 되지 않을까. 앞으로도 (선수들을) 지켜봐서, 성장시키도록 하겠다.”- 포항 관계자들은 ‘포항을 포항답게 만들어줘서 고맙다’라는 메시지를 전달했다. 서울에서도 서울답게 만들 준비가 됐는지, 감독님이 생각하는 서울다움은 어떤 것일까.“그런 자신이 없었다면 여기에 안 왔을 것이다. 그게 두렵고, 부담감이 컸다면 서울을 선택하지 않았을 것이다. 나는 자신감이 있기에 왔다. 서울다움이라는 건, 관중·성적·흥행 모든 면을 이끌어가야 한다. 내 책임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일단 성적이 좋아야 모든 것들이 이뤄진다. 일단 성적을 내기 위해, 성적이 좋아야 서울다움이 나올 것이다. 더 신경 써서, 정진하도록 하겠다.”- 단장님께 선물을 받길 원한다고 언급했다. 선수 영입할 때 원하는 스타일이나 주목하는 능력이 따로 있는지.“기본적으로 축구 스타일이 개인에 치우치지 않는 팀적인 축구를 원한다. 그런 부분을 생각하고 있다. 중원에선 볼을 길게 끄는 선수보단. 빨리 직선적으로 보내주고 정확하게 해줄 수 있는 선수를 원한다. 수비에선 터프한 선수를 바란다. 축구라는 게 밋밋하면 재미없지 않나. 같이 싸워주고, 부딪혀 줄 선수가 필요하다. 수비에선 와일드함, 중원에선 직선적인 플레이가 필요하다. 공격 쪽에선 빠르면서, 해결해 줄 수 있는 선수를 원한다. 개인의 뛰어난 역량보다도, 팀에 빨리 적응해서 우리의 스타일에 맞을 선수를 찾고 있다.”- 오는 9일 동계 훈련 떠나는데, 이번 겨울 중점적으로 심어주고 싶은 부분이 있다면.“체력적, 정신적인 것들은 프로선수가 갖춰야 할 기본이다. 그런 점에 대해선 얘기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한다. 일단 나도 처음 왔으니, 선수 조합에 대해 더 고민을 하고, 팀의 방향에 대해 선수들과 얘기를 해야 할 것 같다. 팀의 방향이 어디로 가고, 어떤 축구를 할지 말이다. 조직적인 부분에 훈련을 해야하지 않을까. 일단은 조직 훈련에 대해 많이 중점을 두어야 할 것 같다.”- 선수들에게 또 다른 의미가 될 것 같다. 선수들에게 전해주고 싶은 메시지가 있다면.“몇 년 동안 자꾸 스플릿 A를 가지 못해 선수들의 자존감이 떨어져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하지만 그런 부분에 대해, 선수들한테 ‘김기동이 다르다’는 걸 보여줘야 한다고 생각한다. 감독인 나를 믿었으면 좋겠다고 얘기를 해주고 싶다. 나를 믿고 따라와 준다면 (목표를) 이뤄낼 수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다.” - 서울 팬들 사이에선 김기동 감독의 부임을 많이 기다렸다는 얘기가 많다. 팬들에게 메시지 남긴다면.“다른 얘기를 하고 싶진 않고, 올 한해 서울 팬들이 정말 환호하고 웃음이 떠나지 않는 좋은 축구를 보여줄 수 있도록 하겠다.”- 바로 전날 2023 KFA 올해의 감독상 받은 후 더 발전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다고 했다. 스스로 목표가 있으니 서울을 택했을 텐데, 어떤 발전을 원하는지.“사실 도전이라는 건 포항에서도 계속해도 된다. 포항도 1년 1년이 도전이다. 하지만 그 안에서의 도전보단, 새로운 환경에서의 김기동을 보여주고 싶었다. 새로운 도전에서 성공을 이뤄낸다고 한다면, 또 새로운 도전이 나타날 거고, (도전을) 선택할 것이다. 이런 순환을 이어가기 위해선 공부가 필요하고, 발전이 이뤄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지금은 서울을 살리는 데 힘을 쓰겠다.”-기성용 선수와의 재계약에 대해 언급했는데, 어떤 얘기를 나눴는지. 그리고 서울에 포항 출신 선수가 많은데, 따로 나눈 얘기가 있는지.“기성용 선수하고는 전화 통화를 오래 했다. 빨리 계약을 했으면면 좋겠다고 했다. ‘서울이 기성용이고, 기성용이 서울이지 않냐’고. 빨리 계약을 해서 좋은 축구를 해보지 않겠냐고 얘기했다. 기성용 선수가 서울에 애정이 많다는 걸 느꼈다. 아마 좋은 선택을 하지 않을까.”“서울에는 임상협, 권완규 등 포항 출신 선수들이 있다. 내가 데려온 건 아닌데 와보니까 있더라(웃음). 올해 많은 활약을 못 했던 것 같은데, 올해 재기할 수 있는 그런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 이미 훈련을 하고 있는 걸로 알고 있다. (내가) 어떤 축구를 원하고, 어떤 스타일인지 알고 있을 것이다. 기존 서울 선수들한테 그런 부분에 있어 잘 이끌어 줬으면 좋겠다고 얘기를 나눴다.”-서울을 살리고 다음 스텝을 밟겠다고 언급했다. 서울을 살린다는 의미는 리그 우승인지, 우승컵이 될 수 있을지.“일단 (우승을)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있다. 당장 ‘올해 우승을 하겠다’보단, 올해 최대 목표는 ACL 목표로 스타트한다. 이후 상황을 보며 기회가 주어졌을 때, 분명히 우승할 수 있는 기회가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그런 기회를 잡아서 내가 서울에 있는 동안 우승 트로피를 들어 올리는 것이 개인적인 목표다.”- 포항 시절 유니폼, 트레이닝복 등에 디자인 관여를 했다고 알려져 있다. 포항과 서울의 팀 컬러가 비슷한데 이 점이 마음에 드는지 궁금하다. 이어 프런트, 단장님과 대화를 나눴을 때 어떤 느낌이었는지.“유니폼 색깔이 같아 마음이 편하다(웃음). 단장님과도 소통하고 있는데 편안하다. 동료 같은 느낌이다. 선후배 느낌도 난다. ‘이렇게 친해도 되나’ ‘이렇게 말을 편하게 해도 되나’ 생각이 들 정도다.”“앞으로도 소통을 하면서, 구단에서도 문의를 하면 언제든 할 의향이 있다. 경기장에서는 트레이닝 복을 많이 입는데, 상황을 봐서 좋은 곳을 알아봐서 잘 디자인해서 입어보도록 하겠다(웃음).”서울월드컵경기장=김우중 기자 2024.01.03 11: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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