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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야구

[IS 시선] 박찬호의 멋진 결단과 골든글러브 저조한 참석률

9명. 11열 열린 프로야구 골든글러브 시상식에 참석한 선수는 채 10명이 되지 않는다. 지난 2월 한국야구위원회(KBO)가 발표한 2023시즌 10개 구단 소속 선수는 신인과 외국인 선수 포함 총 589명. 골든글러브 시상식의 참석률은 전체 등록 선수 대비 1.5%에 불과하다. 시즌 뒤 고국으로 돌아가는 외국인 선수를 제외하더라도 시상식에 참석하는 선수가 손에 꼽을 정도로 적다.올 시즌 골든글러브 시상식은 유독 더 썰렁했다. 투수와 1루수 부문 수상자 에릭 페디(NC 다이노스)와 오스틴 딘(LG 트윈스)이 불참, 대리 수상이 이뤄졌기 때문이다. 후보가 28명으로 가장 많았던 투수 부문은 페디뿐만 아니라 모든 선수가 불참했다. 포수 부문 시상자로 나선 '불사조' 박철순(전 OB 베어스)이 가장 인상적인 투수로 '베어스 후배' 곽빈(두산 베어스)을 꼽으며 "곽빈 투수 (현장에) 나오셨나요"라고 말하는 모습에선 공허한 메아리가 느껴지기도 했다.데뷔 첫 3루수 골든글러브를 차지한 노시환(한화 이글스)은 수상 소감 대부분을 최정(SSG 랜더스) 얘기로 채웠다. 최정은 3루수 골든글러브를 8회 수상한 대선배. 노시환은 "최정 선배님이 계셨기에 따라잡으려고 노력했다. 선배님을 넘기 위해 올 시즌 정말 열심히 달려왔다. 너무 감사드린다"고 말했다. 최정이 시상식에 참석했다면 노시환의 멘트와 함께 더 멋진 그림이 만들어지지 않았을까. KBO리그에 필요한 '스토리'를 만드는 데 선수들의 노력도 필요하다. 그런 면에서 박찬호(KIA 타이거즈)의 결단은 박수받아 마땅하다. 유격수 부문 후보에 오른 박찬호는 수상이 불투명한 상태에서도 시상식 현장을 찾았다. 박찬호는 "2등의 품격을 위해서 왔다"며 "(수상이 유력한 오지환과) 끊임없이 (경쟁자로) 언급된 선수로서 자리를 빛내주면 어 좋은 거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120표(41.2%)를 획득한 박찬호는 154표(52.9%)를 얻은 오지환에게 밀렸다. 이날 부문별 2등 중 1위와 가장 근접한 차이였다.누구보다 속상하고 아쉬울 수 있지만 끝까지 시상식을 지키며 박수를 보냈다. 그런 박찬호를 지켜본 오지환은 "존경한다"고 화답했다. 최고 유격수 자리를 놓고 맞붙은 두 선수 사이에 '스토리'가 입혀졌다.골든글러브는 프로야구 연말 시상식의 피날레다. 선수들이 가장 받고 싶어 하는 상 중 하나다. 하지만 매년 참석률이 높지 않다. 한 구단 야구 관계자 "수상이 확실하지 않으면 선수들에게 참석을 권유하기 어렵다. 선수들도 민망해서 가기 꺼리기도 한다"고 말했다. 자칫 '수상자의 잔치'로 전락하면 시상식의 의미와 권위가 떨어질 수 있다. 선수들이 두고두고 곱씹어야 할 대목이다. 올해 박찬호가 보낸 박수에 주목해야 한다.스포츠1팀 기자 2023.12.13 05:30
메이저리그

위아래만 보던 '어썸 킴', 시선 바꿔준 코리안 로켓 "하성아, 나아간다 생각해"

"올라간다기보다는 꾸준히 나아간다고 생각했으면 좋겠다고 하셨다."김하성(28·샌디에이고 파드리스)은 지난 6일 메이저리그(MLB) 내셔널리그 골드글러브(GG) 유틸리티 플레이어 부문을 수상했다. 한국 선수 중 처음이었고, 아시아 내야수로 범위를 넓혀도 최초였다. 한국 야구 역사상 최고의 내야수라는 찬사가 부족하지 않은 성과다. 처음부터 최고는 아니었다. 김하성은 언제나 경쟁을 경험했고, 끝없이 성장한 끝에 정상에 섰다. 야탑고 시절에는 그의 후배 박효준이 더 주목받았다. 프로야구에는 신인 드래프트 3라운드 29순위로 입단했다. 김하성은 신인왕도 아니었다. 그러나 매년 더 나은 선수로 성장했고, MLB 진출 전 첫 30홈런을 치고 빅리그에 나섰다.언제나 수직으로 '우상향'해 왔던 김하성이었기 때문일까. 김하성에게 MLB 첫 시즌(타율 0.202 8홈런)은 좌절에 가까웠다. 160㎞/h를 넘나드는 강속구에 대처할 수 없어 원형 탈모까지 왔다고 스스로 고백했다. 매년 비상하던 김하성이 겪은 첫 추락이었다.지난 20일 골드글러브 수상 기념 기자회견을 연 김하성은 "평생 운동(야구)에는 업·다운만 있고, (내가) 올라가야 한다는 생각만 했다"며 "MLB 첫 시즌 큰 실패를 맛봤다. 커리어 통틀어 가장 힘든 시간이었다. 올라가야 한다는 생각만으로 야구하니 떨어질 때 감당이 되지 않았다"고 털어놨다. 시야를 바꿨다. 추락이 아닌 잠시 정차했다는 걸 알았다. 대선배 박찬호 샌디에이고 고문의 경험 어린 조언 덕분이다. 박찬호는 김하성보다 훨씬 많은 실패를 맛봤다. 김하성보다 빨리 MLB에 진출했고, 첫해부터 실패를 겪었다. 피땀 어린 노력 끝에 빅리그에 자리 잡았다. FA(자유계약선수) 이적 후 부진과 허리 부상으로 다시 흔들렸다. 포기하는 대신 노력했고, 목표했던 빅리그 통산 124승을 기어이 이뤄냈다.김하성은 "박찬호 선배님께서 올라간다기보다는 꾸준히 나아간다고 생각했으면 좋겠다고 말씀해주셨다"며 "떨어지는 게 아니라 잠시 멈췄다가 다시 나아가는 것이라 했다. 그 조언이 긴 시즌을 소화하는 데 큰 도움이 됐다"고 전했다.박찬호의 말처럼 김하성은 버텼고, KBO리그 때보다 느릴지언정 차근차근 적응하고 성장했다. 3년 차인 올 시즌 수비뿐 아니라 타격에서도 17홈런 38도루로 역시 유틸리티 플레이어 부문에서 실버슬러거 후보가 됐다. 매니 마차도, 페르난도 타티스 주니어, 잰더 보가츠, 후안 소토 등 쟁쟁한 올스타 선수들이 모인 샌디에이고에서 붙박이 1번 타자도 됐다. 멈췄다가 다시 나아간 덕분이다.차승윤 기자 chasy99@edaily.co.kr 2023.11.22 09:20
야구

[프로야구 40주년 올스타⑮]'국보 투수' 선동열

한국 프로야구 40년 역사를 대표하는 단 한 명의 에이스는 '국보 투수' 선동열(49)이다. 일간스포츠가 선정한 프로야구 40주년 올스타 선발 투수 부문에서 세대별(20~50대 이상) 야구인 10명씩 총 40명으로 구성된 투표인단 전원에 표를 받았다. 만장일치는 전 포지션 통틀어 선동열이 유일하다. '불세출의 투수' 故 최동원, '국민 타자' 이승엽조차 40표에서 3표씩 부족했다. 선동열은 저마다 다른 야구인들의 시각과 평가 기준을 모두 만족했다. 선동열은 아마추어 시절부터 한국야구를 이끌어갈 재목으로 기대받았다. 중학교 2학년이었던 1977년 소년체전에서 활약한 그는 당시 유일한 스포츠 전문지였던 일간스포츠에 유망주로 소개됐다. 투수로는 고교(광주일고) 3학년 때부터 이름을 날렸다. 제14회 대통령배 전국고교야구대회에서 팀을 우승으로 이끌며 대회 최우수선수(MVP)로 선정됐다. 이어 열린 봉황대기에서는 경기고를 상대로 노히트노런을 달성하기도 했다. 고려대 1학년이었던 1981년에는 초대 세계청소년선수권대회에 출전, 미국과의 1차 결승전에서 완투승과 결승 득점을 해내며 한국의 우승을 이끌었다. 대회 MVP도 그의 차지였다. 이듬해 서울에서 열린 제27회 세계야구선수권대회 일본과의 결승전에서도 완투하며 한국의 5-2 승리를 이끌었다. 당시 대표팀 투수진에는 최동원, 김시진 등 기라성같은 선수들이 있었지만, '막내'였던 선동열이 가장 빼어난 활약을 보여주며 대회 최다승리투수상과 MVP까지 차지했다. 세계선수권을 찾은 메이저리그(MLB) 스카우트들은 선동열의 공에 매료됐고, 공식적으로 영입 의사를 드러냈다. 이들의 안목은 틀리지 않았다. 선동열은 1983년 7월 미국에서 성사된 한·미 대학 올스타 교류전에서 수년 후 메이저리그(MLB) 대표 '홈런왕'으로 올라서는 마크 맥과이어와의 여섯 차례 맞대결 모두 삼진을 잡아내는 괴력을 선보였다. 선동열도 국제대회를 치르며 MLB 진출을 꿈꿨다. 세계선수권 우승으로 받은 병역 특례를 포기하고 3년 동안 병역 의무를 완전히 이행해 미국 무대에 진출할 계획도 세웠다. 하지만 바람은 이뤄지지 않았다. 군사정권 시절, 국가안전기획부(안기부)가 그의 대학 휴학마저 저지했다. 사실상 미국 진출을 막은 것. 만약 선동열의 의지와 계획대로 진행됐다면, 한국인 최초 빅리그 데뷔는 박찬호가 이룬 1994년보다 빨라졌을지 모른다. 선동열은 1985년 고향 연고 팀 해태 타이거즈(현재 KIA) 유니폼을 입고 한국 프로야구에 입성했다. 데뷔 시즌(1985) 후반기만 뛰고도 규정이닝을 채웠고, 평균자책점(1.70) 부문 1위에 올랐다. 신인상은 팀 동료 이순철에게 내줬다. 하지만 1986시즌, 39경기(262과 3분의 2이닝)에 등판해 24승 6패 6세이브, 평균자책점 0.99를 기록하며 리그를 평정했다. 그해 MVP와 골든글러브를 받았다. 선동열은 하체의 중심이동을 최대한 앞으로 끌고 간 후 공을 놓는다. 오른손 투수 기준으로 왼 다리가 떨어진 후 착지할 때까지의 시간이 매우 긴 편이다. 굽혀진 오른 무릎과 정강이가 지면에 거의 닿을 만큼 안정적이고 완벽한 밸런스를 보여줬다. 공에 체중이 온전히 실렸고, 그만큼 묵직하고 빠른 공을 던졌다. 이런 모습이 마치 폭격기가 이륙하는 모습처럼 보인다며 '무등산 폭격기'라는 별명을 얻기도 했다. 이 별명이 비단 투구폼만으로 널리 알려진 건 아니다. 선동열은 마운드 위에 있는 모든 순간 빛났다. 한국 프로야구에서 그보다 화려한 기록과 수상 이력을 남긴 선수를 찾기 어렵다. 11시즌(1985~1995) 동안 통산 367경기에 등판해 146승 40패 132세이브, 평균자책점 1.20, 탈삼진 1698개를 기록했다. MVP 3회(1986·1989·1990시즌), 투수 부문 골든글러브는 6회(1986·1988·1989·1990·1991·1993시즌) 수상했다. 평균자책점 타이틀은 7시즌(1985~1991)을 포함해 여덟 번이나 가져갔다. 그 중 4시즌(100이닝 이상 기준)이나 0점대 평균자책점을 기록했다. KBO가 발행하는 『KBO 레코드북』 투수 부문에서는 선동열의 이름이 없는 페이지를 찾기 어려울 정도다. 통산 최고 탈삼진율(경기당 9.28개) 1위, 통산 평균자책점(1.20) 1위, 단일시즌 '200이닝-200탈삼진' 2회, 역대 최다 투수 3관왕(승리·평균자책점·탈삼진 기준) 달성(4회), 한 경기 최다 탈삼진(18개), 연속 이닝 무실점(49와 3분의 2이닝) 1위 등. 그중에서도 선수 대비 승리기여도(WAR)는 범접할 수 없는 기록을 남겼다. 대체 선수보다 몇 승에 더 기여했는지 나타내는 WAR은 선수의 팀 기여도를 평가할 수 있는 지표다. 선동열은 통산 WAR 107.07을 기록, 역대 1위를 지키고 있다. 2위 양준혁(87.22)과 차이도 크다. 투수 부문 2위는 69.07을 기록한 송진우. 1986시즌에는 WAR 14.89를 기록했다. 단일시즌 역대 최다 기록이다. KBO리그에서 가장 최근 WAR 10.00 이상 기록한 선수는 40홈런-40도루를 기록한 2015시즌 에릭 테임즈(당시 NC 다이노스)다. 이후 6시즌 동안 명맥이 끊겼다. 선동열은 6시즌이나 10.00 이상 기록했다. 투수 분업화 개념이 희미했던 1980년대 중·후반, 선동열은 팀 승리가 필요할 때마다 선발과 구원을 가리지 않고 등판했다. 본격적으로 마무리 투수를 맡은 1993시즌 이전에도 꾸준히 시즌당 5세이브 이상 새긴 이유다. 해태가 리드를 잡은 경기에서 선동열이 불펜에 등장하면, 상대 타자들이 추격 의지를 잃는다는 말이 나올 정도였다. 그 시절 야구인들은 "선동열 한 명을 보유한 것만으로 해태는 만년 우승 후보였다"라고 입을 모았다. 팀을 정상으로 이끄는 선수가 최고로 인정받는다. 선동열은 개인 성적만 좋은 투수가 아닌, 타이거즈 왕조의 기둥이었다. 나아가 프로야구가 가장 뜨겁게 사랑받던 시기, '라이벌' 최동원과 야구팬에 행복을 선사한 영웅이었다. 셀 수도 없이 많은 명장면을 남겼다. 선동열은 30대 중반에 다가선 나이에 일본 리그에 진출, 소속팀 주니치 드래건스의 마무리 투수로 활약하며 한국 야구 위상을 높이기도 했다. 첫해(1996년)는 2군에 이어 교육리그(하이사이리그)까지 내려가는 시련을 겪었지만, 이듬해부터 한국야구 대표 투수다운 공을 던졌다. '나고야의 태양'이라는 별칭을 얻었고, 1999시즌까지 98세이브를 기록했다. 선동열은 정상에서 선수 생활을 마무리했다. 이후 지도자로 변신, 사령탑으로 삼성 라이온즈의 KS 우승을 두 차례 이끈다. 국가대표팀 감독까지 역임하며 야구인으로 모든 것을 이뤘다. 하지만 여전히 야구를 배우려는 갈증이 크다. 세이버메트릭스(야구를 통계학·수학적으로 분석하는 방법론)에 시선을 뒀고, 경영학과 인문학을 두루 접목해 전과 다른 시각으로 야구를 알아가고 있다. 선동열은 자서전 『야구는 선동열』을 통해 현재 MLB에서 뛰고 있는 류현진(토론토 블루제이스)을 자주 언급하고 칭찬했다. 이 시대의 아이콘은 분명 류현진이다. 하지만 프로야구 40년 역사를 아우르는 최고의 아이콘은 단연 선동열이다. 이번 투표에 참여한 야구인 대부분 선발 한 자리로 선동열을 꼽는데 "이유가 필요한가"라고 되물었다. 현역 투수 이용찬(NC 다이노스)은 "첫 번째 선택은 선동열 선배님이다. 같은 포지션인 대선배를 왜 뽑았는지 설명하는 자체가 말이 안 된다"라고 했다. SSG 랜더스 박종훈은 "설명이 필요 없는 당대 최고의 투수이시라고 생각한다"라고 했다. 안희수 기자 2022.02.02 05:59
야구

강백호, 공항서 '투머치토커' 박찬호 만나 비행기 놓칠 뻔

프로야구 KT 위즈의 강백호가 대선배 박찬호를 공항에서 만났던 사연을 풀어놓았다. 강백호는 지난 24일 방송된 E채널의 '노는 브로2'에 박해민(삼성) 박찬호(KIA) 등과 동반 출연했다. 강백호는 경기장에서는 보여주지 못했던 입담을 선보이며 웃음을 이끌어냈다. 지난해 도쿄올림픽에서 강백호는 경기 도중 팀이 패배하는 중에도 껌을 씹고 있는 모습이 중계 카메라에 잡혀 야구팬들에게 태도 논란을 일으킨 적이 있다. 당시 중계방송 해설자였던 박찬호 해설위원이 강백호의 태도를 지적했다. 강백호는 이를 유머로 풀어내며 자신을 "대한민국에서 껌을 가장 잘 씹는 남자"라고 소개했다. 또 강백호는 도쿄올림픽을 마치고 귀국할 때 공항에서 박찬호를 만나 40분간 잔소리를 들었다고 하면서 "비행기 시간이 임박했다는 말을 하고 겨우 빠져나왔다"고 돌아봤다. 이에 다른 야구인들이 "40분이면 짧게 끝난 것"이라고 반응했다. 이은경 기자 2022.01.27 15:04
연예

'당나귀귀' 박찬호·이영표·정재용, 투머치토커 주도권 빅매치

박찬호를 능가하는 최강의 투머치토커가 있다? 도쿄 올림픽 특집으로 18일 방송되는 KBS 2TV 예능 ‘사장님 귀는 당나귀 귀’(이하 ‘당나귀 귀’)에서는 박찬호, 이영표, 정재용 KBS 스포츠 국장 등 투머치토커 3인방의 숨 돌릴 틈 없는 토크 주도권 매치가 펼쳐진다. 이날 정재용 KBS 스포츠 국장은 올림픽을 앞두고 월드컵 레전드 이영표와 그의 뒤를 잇는 후계자인 조원희 해설위원을 격려하기 위해 점심 식사 자리를 마련했다. 축구 실력만큼이나 날쌘 '속사포 토커' 이영표와 '기자계의 투머치토커' 정재용 국장의 숨돌릴 틈 없는 대화가 이어졌고, 조원희는 대선배들의 이야기를 듣느라 식사를 제대로 할 수 없었다고. 여기에 해설 연습을 마치고 뒤늦게 합류한 원조 투머치토커 박찬호의 등장에 전현무는 "이러다 저녁까지 먹겠다"며 걱정했다. 하지만 토크 점유율 100%를 차지할 것이라는 예상과 달리 박찬호는 이날 따라 입을 꾹 다물고 좀처럼 대회에 끼어들지 못하는 낯선 모습을 보였다. 이에 김숙이 "박찬호 선수가 말하는 것 좀 듣고 싶다"는 바랐을 정도라는데. 박찬호를 반강제 묵언 수행하게 만든 최강의 투머치토커는 누구일지 궁금증이 증폭된다. 한편, '인간 문어'라는 별명이 있을 정도로 정확한 예측과 순발력 넘치는 해설로 많은 축구팬들의 사랑을 받아왔던 이영표는 생애 첫 올림픽 축구 해설을 준비하는 '해린이' 조원희에게 진심 어린 조언과 격려를 아끼지 않았다. 이런 가운데 이영표가 알려주는 축구 해설 꿀팁을 진지하게 경청하던 박찬호가 이를 곧바로 야구 해설에 적용했다가 식사 자리는 물론 스튜디오까지 웃음 바다로 만들었다고 해 그 내막에 관심이 쏠린다. 조연경 기자 cho.yeongyeong@joongang.co.kr 2021.07.17 21:51
야구

박찬호, 김하성에 조언…"샤워할 때 고참들 등 밀지 말아라"

김하성(26·샌디에이고)이 메이저리그(MLB) '대선배' 박찬호(48)의 든든한 지원을 받고 있다. 김하성은 현재 미국 애리조나주 피오리아 스포츠콤플렉스에서 소속팀 샌디에이고의 스프링캠프 훈련을 소화하고 있다. 23일(한국시간) 처음으로 샌디에이고 유니폼을 입고 훈련하는 모습을 알렸고, 24일에는 구단이 마련한 비대면 인터뷰를 통해 근황을 전했다. 김하성은 이 자리에서 "훈련은 한국이나 미국이나 비슷하다. 한국에서는 유격수를 맡았고, 미국에서는 2루에서 새로운 도전을 하고 있기 때문에 수비 훈련에 더 투자를 많이 하고 있다"고 했다. 새 동료들의 인상, 함께 호흡한 소감도 전했다. 포지션 경쟁자로 알려진 제이크 크로넨워스에 대해서는 "열정도 많고, 야구도 잘하는 선수 같다"며 "경쟁에 신경 쓰기 보다는 내가 할 일을 잘 준비해야 한다"고 말했다. 최근 샌디에이고와 기간 14년, 총액 3억 4000만 달러(한화 3772억) 장기 계약을 한 간판선수 페르난도 타티스 주니어에 대해서도 "좋은 선수인 것 같다. 왜 슈퍼스타인지 알 것 같다"고 했다. 매니 마차도, 에릭 호스머 등 팀 샌디에이고 주축 선수 이름을 꺼내며 "좋은 선수들이 많아서 훈련이 재미있다"며 반겼다. 김하성은 박찬호에게 받은 조언 내용도 전했다. 샌디에이고 구단 특별 고문인 박찬호는 김하성의 샌디에이고 입단을 도운 숨은 공신으로 알려졌다. 지난달 6일 진행된 김하성의 샌디에고 입단 화상 기자회견에 참관, 엄지손가락을 치켜들며 격려한 장면이 화제를 모았다. 김하성은 "박찬호 선배님과 최근 통화를 자주 하고 있다. '선수들에게 다가갔으면 좋겠다', '오버페이스하면 다칠 수 있으니 너무 무리하지 말아라. 시즌은 길다'는 조언을 해주셨다"고 말했다. 박찬호도 김하성의 조력자를 자처했다. 그는 24일 샌디에이고 지역 매체 '샌디에이고 유니온-트리뷴'과의 인터뷰에서 "김하성에게 '절대로 샤워할 때 고참 등을 밀지 말라'고 조언해줄 것"이라고 전했다. 20년 넘게 미국 생활을 하며 직접 경험하고 확인한 문화 차이에 대해 조언하겠다는 의미다. 박찬호는 LA 다저스에 입단하고 첫 미국 생활을 시작한 1994년 의사소통과 문화 차이의 벽을 실감했다. 김치 냄새를 질색했던 팀 동료들 때문에 마음고생을 했다. 훈련을 마치고 샤워실에 들어온 동료의 등을 밀어주려 한 것도 실제 경험이다. 미국인 입장에선 이해가 어려운 제안이었다. 박찬호는 "미국인들도 아시아 문화를 잘 이해하고 있다"고 말면서도 "경기장 안에서는 혼자 힘으로 해야 하지만, 밖에서는 가족처럼 도와줄 누군가가 필요하다"라고 했다. 이어 나는 김하성의 귀에서 피가 나올 때까지 내 얘기를 들려줄 생각"이라며 뜨거운 후배 사랑을 드러냈다. 박찬호는 예능 프로그램, 광고를 통해 '투머치토커(too much talker)'라는 별명을 얻었다. 안희수 기자 2021.02.24 10:39
야구

[이형석의 리플레이]박찬호·이승엽과 추억…'리틀 야구 출신' 오윤석이 맞은 꿈 같은 하루

소년은 밖에서 뛰어노는 걸 좋아했다. 동네 친구들과 야구와 축구, 농구를 하며 땀을 뻘뻘 흘렸다. 다니던 학교에는 운동부가 없어, 아버지는 '리틀 야구'를 제안했다. 그렇게 학업과 운동을 병행했다. 운동장에 모여 친구들과 야구공을 주고받으며, 그라운드를 마음껏 뛰는 날은 손꼽아 기다렸다. 소년이 초등학교에 재학 중이던 어느 날, 세계적인 스포츠용품 제조사가 '꿈나무 야구 교실'을 열었다. 이 자리에는 '코리안 특급' 박찬호(당시 LA 다저스)와 '라이언킹' 이승엽이 일일 코치로 참가했다. 그 외에도 박한이와 송승준이 함께 했다고 한다. 이들처럼 프로 선수를 희망한 '야구 꿈나무' 소년에게 평생 잊을 수 없는, 감격스러운 하루. KBO 역대 37번째 사이클링 히트(한 경기에서 단타, 2루타, 3루타, 홈런을 기록)를 달성한 롯데 오윤석(28)의 유년 시절 뜻깊은 추억이다. 그는 "당시 이승엽 선배님과 따로 사진도 찍었다. 행사에 참석한 대선배님께서 일일 레슨도 해주셨다"며 "'나도 저런 야구 선수가 되어야지'라고 다짐했던 추억이 떠오른다"고 회상했다. 그에게 '꿈 같은 하루'가 또 생겼다. 지난 4일 사직 한화전에서 데뷔 첫 만루 홈런을 포함한 사이클링 히트를 기록했다. 1번 타자·2루수로 선발 출장한 오윤석은 1회 말 첫 타석에서 좌중간 2루타, 2회 말 2사 2루에서는 좌전 적시타를 뽑았다. 3회 말 1사 만루에서 좌월 만루 홈런을 터뜨린 뒤 5회 말 무사 1루에서 가장 어렵다는 3루타를 때려 대기록을 완성했다. 역대 27번밖에 나오지 않은 진기록. 그 가운데서도 오윤석을 처음으로 만루 홈런을 포함해 사이클링 히트를 달성했다. 5회 이전에 사이클링 히트를 완성한 건 2017년 6월 7일 정진호(당시 두산) 이후 오윤석이 두 번째다. 일간스포츠는 10월 첫째 주 조아제약 주간 MVP로 오윤석을 선정 했다. 프로 데뷔 후 처음 상을 받은 그는 "선배님들의 수상 모습을 보며 부러웠다. '내게도 상을 받는 날이 올까?'라고 생각했다. 나와 관계없는 먼 이야기로 여겼는데 정말 기쁘고 감사하다"라며 "더 열심히 하겠다는 동기부여가 된다. 아직도 내가 달성한 게 맞나 싶을 만큼 믿어지지 않는다"라고 반겼다. 대기록 달성의 순간은 아직도 생생하다. 그는 "5회 3루타를 칠 때 숨이 차고 다리에 힘이 풀렸다. 잠시 후 나도 모르게 울컥해 한동안 머리를 땅에 박았다"고 떠올렸다. 타석에 들어서기 전까지 기록 달성조차 전혀 의식하지 못했던 그는 자신이 친 공이 우중간을 가르자 더그아웃에선 '달려~달려~'라는 선배들의 외침을 들었다. 그제야 오윤석은 1루를 돌며 '아~3루타만 추가하면 사이클링 히트를 달성하겠구나'라고 생각했다. 오윤석은 "(팀이 9-3으로 앞서) '여기선 죽어도 된다'고 생각하고 이 악물고 뛰었다"고 전했다. 대기록 달성 전까지 야구팬 사이에서도 '오윤석' 이름 석 자는 낯설었다. 진기록을 작성하면서 실시간 검색어 1위에 오르며 '깜짝 스타'로 떠올랐다. 그는 "가문의 영광이다. 그저 신기하다"라며 감격했다. 이어 "지금껏 하루 중 가장 많은 연락을 받은 것 같다"라며 "전화번호 변경 뒤 알려주지 않아 전혀 모르는 번호로도 많은 연락이 오더라"고 웃었다. 2020년 10월 4일. 사이클링 히트는 물론 오윤석이 개인 한 경기 최다안타(5개) 최다 타점(7개)을 기록한 날이기도 하다. 그는 "훗날 내 야구 인생을 돌이켜 보면 10월 4일이 가장 먼저 떠오르지 않을까 싶다"고 여겼다. 두 달 전 구단 영상을 통해 '한 경기 3홈런'과 '사이클링 히트' 중 어떤 것을 달성해보고 싶으냐는 질문에 그는 주저 없이 사이클링 히트를 꼽았다. 그는 "홈런 타자 유형은 아니어서 아마추어 시절부터 사이클링 히트 기록에 욕심이 있었다"라며 "사실 그 질문조차 전혀 기억하지 못하고 있었는데, 하늘에서 도와준 것 같다"라고 웃었다. 자양중으로 진학하며 본격적으로 '엘리트 야구'를 시작한 오윤석은 경기고 3학년 때 롯데 2차 8라운드(전체 59순위) 지명을 받았다. 그는 연세대 진학을 택했다. 4년 뒤 다시 참가한 신인 드래프트에선 전혀 이름이 호명되지 않았다. 오윤석은 "미지명 되자 '고교 졸업 후 프로에 갔어야 했나'라고 잠시 생각했지만, 당시에는 내 기량이 너무 부족해 보였다. 선택에 후회는 없었다"라고 돌아봤다. 롯데가 손을 내밀었다. 육성 선수로 입단했다. 2015년 꿈에 그리던 1군 무대를 밟은 그는 상무 야구단 제대 후 지난해 76경기에 출전했다. 많은 기회를 얻었지만, 타율 0.222(198타수 44안타)로 기대에 못 미쳤다. 퓨처스(2군)에서 올 시즌을 맞은 그는 최근 주전 2루수 안치홍의 부상으로 출전 시간을 늘려가더니 존재감을 키웠다. 6일 현재 46경기에서 타율 0.354를 기록하고 있다. 그는 "지난해 1군 분위기를 익히고 경험을 쌓았다. 올 시즌은 내가 기대한 것보다 잘해 놀랍다"라고 기뻐했다. 이어 "기회를 주신 허문회 감독님을 비롯해 1~2군 코치진에 감사하다"고 인사했다. 6일 감사의 의미를 담아 1~2군 선수단에 각각 피자 30판씩, 총 60판을 선물했다. 새 가족이 생겨 책임감이 커진 영향도 있다. 오윤석은 지난해 결혼했고, 올해 4월 첫아들을 얻었다. 그는 "우스갯소리로 '분윳값 버프' 덕분이라고도 한다"며 부끄러워했다. 오윤석의 매력은 득점권에서 빛난다. 주자가 있을 때(타율 0.396), 또 그보단 득점권(0.485)에서 성적이 훨씬 좋다. 오윤석은 "나도 신기하다. 사살 아마추어 시절에는 (찬스에서 약해) 주변으로부터 '간이 작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긴장을 많이 했던 것 같다"라며 "올해는 2군에서 하는 것처럼 냉정하게 판단하며 플레이를 할 수 있을까? 혹은 특정 상황을 가정하고 연습을 많이 했다"고 귀띔했다. 또 교체 출장 시 타율(0.214)보다 선발 출장 시 타율(0.374)이 훨씬 포다. 보완점은 수비다. 주 포지션이 2루수인 그는 올해 1루수, 3루수로 나선 적도 있지만 최근 안치홍의 부상으로 선발 기회를 얻고 있다. 242이닝 동안 수비 실책이 5개로 많은 편이다. 그는 "당장 오늘부터라도 더 많이 연습하고 보완해야 할 것 같다"고 꼽았다. '리틀 야구 선수'로 시작해 육성 선수 입단→백업까지 쉽지 않은 길을 견뎌온 그는 '늦깎이' 스타 탄생을 예고한다. 오윤석은 차분한 목소리로 "육성 선수로 입단하면서부터 항상 도전자 신분으로 훈련했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하루하루 주어진 상황에 최선을 다할 뿐이다. 이를 통해 롯데의 주전 선수가 되는 게 목표다"라며 "기록 달성으로 느낀 환희는 가라앉히고, 평소처럼 하루하루 준비해 나가겠다"라고 다짐했다. 이형석 기자 lee.hyeongseok@joongang.co.kr 2020.10.08 05:35
야구

‘아기 호랑이’ 박찬호를 아시나요

프로야구 KIA 타이거즈가 상승세로 돌아섰다. ‘코리언 특급’ 박찬호(46·은퇴)와 이름이 같은 내야수 박찬호(24)의 활약이 눈부시다. KIA는 26일 광주 기아 챔피언스필드에서 열린 KT와의 경기에서 17-5로 대승을 거뒀다. KIA 선발 조 윌랜드는 6이닝 7피안타·1실점의 호투를 펼쳐 시즌 4승을 거뒀다. 유격수 박찬호는 6타수 3안타·5타점을 기록했다. KIA는 이날 승리로 7연승을 달렸다. 지난 16일 김기태 감독의 자진사퇴로 분위기가 뒤숭숭했던 KIA는 김 감독이 물러난 뒤 상승세를 타고 있다. 김 감독 사임 당시 3할을 겨우 넘겼던 승률(13승 1무 3패, 0.302)이 어느새 4할대(21승 1무 31패, 0.404)로 올라섰다. 꼴찌였던 순위도 9위로 한 계단 올라갔고, 8위 KT와 승차는 ‘0’으로 줄었다. 고졸 6년 차 내야수 박찬호가 KIA 상승세의 주역이다. 공격이면 공격, 수비면 수비, 주루면 주루, 못하는 게 없다. 아직 규정 타석을 채우지 못했지만, 100타석 이상 들어선 KIA 타자 중 타율(0.329)이 가장 높다. 수비할 때는 2루수, 3루수, 유격수 어디에 갖다 놔도 임무를 충실히 해낸다. 실책도 3개 뿐이다. 빠른 발을 앞세워 2루타를 10개 쳤고, 도루는 팀내 가장 많은 10개다. 8, 9번을 맡았던 타순은 2번으로 올라갔다. 2014년 장충고를 졸업한 박찬호는 드래프트 2차 5라운드(전체 41번)로 KIA에 지명됐다. 고교 시절 청소년 대표에 뽑힐 만큼 재능을 보여 프로에 데뷔하자마자 1군에서 뛸 기회를 얻었다. 김기태 감독도 직접 지도를 하면서 애정을 쏟았다. 하지만 프로의 벽은 높았다. 데뷔 후 3년 동안 155경기에 출전했지만 통산 타율은 0.169에 그쳤다. 수비는 곧잘 했지만, 체격이 호리호리한 탓에 파워가 부족했다. 주전 유격수 김선빈이 군 복무로 자리를 비웠을 땐 주전을 노렸지만 결국 1군의 벽을 뚫지 못했다. 그는 병역의 의무를 다하기 위해 국군체육부대에 지원했지만, 이마저도 여의치 않았다. 결국 2017년 1월 현역병으로 입대했다. 박찬호는 수도방위사령부 제1경비단에서 군 생활을 했다. 다행히 같은 부대에 먼저 입대한 동갑내기 김호재(삼성 내야수)와 틈틈이 캐치볼을 할 수 있었다. 지난해 10월 전역한 그는 지난 겨울 스프링캠프에서 다시 야구를 시작했다. 4월부터 1군에서 자리를 잡더니 최근 펄펄 날고 있다. 팬들의 호응도 크다. 최근 구단용품 샵에선 박찬호의 이름을 새긴 유니폼이 모두 팔렸을 정도다. KIA 관계자는 “박찬호는 주전 선수가 아니여서 유니폼 수량이 많지 않았다”며 “5월 들어 그의 이름을 새긴 유니폼이 5배 이상 팔려나갔다”고 전했다. 박찬호는 입단 초기엔 이름 때문에 주목을 받았다. 한국인 최초의 메이저리거인 대선배 박찬호와 이름이 같기 때문이다. 그러나 포털 사이트에서 ‘박찬호’를 검색하면 요즘엔 KIA 박찬호가 먼저 나온다. 한자는 다르다. 투수 박찬호는 도울 찬(贊), 타자 박찬호는 빛날 찬(燦)을 쓴다. 등번호 4번을 쓰는 박찬호는 “나중에 야구를 잘 하게 되면 (박찬호 선배가 쓰던) 61번을 달고 싶다”고 했다. 박찬호도 최근 인터뷰에서 “야수 박찬호가 좋은 활약을 했으면 좋겠다”고 밝혔다. 온라인 일간스포츠 2019.05.27 08: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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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현진, 포수 실책으로 32이닝 연속 무실점 중단

류현진(32·LA 다저스)의 연속 이닝 무실점 행진이 중단됐다. '코리안 특급' 박찬호가 갖고 있던 기록 경신에 실패했다.류현진은 26일(한국시간) 미국 펜실베이니아주 피츠버그 PNC 파크에서 열린 2019 미국 메이저리그 피츠버그와의 원정 경기에 선발 등판해 1-0으로 앞선 2회 2점을 내줬다.류현진은 1회 말 공 7개를 모두 스트라이크로 잡는 등 삼자범퇴로 깔끔하게 출발, 연속이닝 무실점을 32이닝으로 늘렸다.2회 선두 타자 조시 벨에게 중견수 방면 2루타를 얻어 맞은 류현진은 후속 멜키 카브레라를 포수 앞에 떨어지는 땅볼로 유도했다. 하지만 포수 러셀 마틴이 3루에 악송구해 벨이 홈을 밟았다. 이로써 연속 이닝 무실점 행진이 멈췄다. 이어 류현진은 프란시스코 세르벨리와 콜 터커에게 연속 안타를 맞고 추가 실점했다.류현진은 2000년 9월 20일부터 2001년 4월 8일까지 두 시즌에 걸쳐 33이닝 연속 무실점 행진을 벌여온 '대선배' 박찬호의 기록을 넘어서지 못했다.기록 행진은 중단됐지만 류현진은 다저스 역대 최장 이닝 무실점 순위에서 11위에 자리했다. 그는 8이닝을 던진 지난 2일 샌프란시스코전 1회 1점을 준 이래 이날 2회 처음으로 실점했다. 이형석 기자 2019.05.26 10: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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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AG] 박찬호, 오재원과의 해프닝 사과…'미안하다!'

박찬호, 오재원과의 해프닝 사과…'미안하다!'2014 인천아시안게임 SBS 야구 해설위원 박찬호가 후배 오재원에게 사과 했다.지난 28일 저녁 인천 문학야구장에서 열린 2014 인천아시안게임 야구 결승전에서 박찬호는 오재원에 대해 언급했다.우리나라 대표팀의 금메달 확정 후 박찬호는 "금메달로 국민에게 기쁨의 선물을 주고 수준있는 야구, 박진감 있는 야구로 야구인들에게 또다른 즐거움을 줬다고 생각한다. 대견하다"고 후배들에게 감사함을 전했다.이어 그는 "후배를 힘들게 한 것 같다. 지금은 오해가 풀렸다. 팬들이 내 홈페이지에 당시 경기 장면을 캡처해 보내줬다"고 설명했다.앞서 박찬호는 지난 대만과의 경기 해설 도중 오재원이 타석에 서자 "나를 힘들게 했던 기억이 있는 선수이다. 당시 풀카운트 승부였는데 오재원이 발에 공이 맞았다고 해 파울로 인정됐다. 안 맞은 공이었다."며 2012년 경기 도중 생겼던 일에 대해 전한 뒤 "상대 선수를 존경할 줄 알아야 한다"라고 말했다.박찬호의 발언 이후 야구팬들의 비난이 오재원에 집중됐기 때문이다. 오재원은 박찬호 같은 대선배에게 이럴 수 없다며 어필했다. 발끈한 그는 "소식을 듣고 잠을 못 잤다. 박찬호 선배 앞에서 액션을 할 배짱도 없다"며 억울함을 호소했다. 이순철 해설위원 역시 "오재원 선수는 쿨한 성격이라 더 가벼운 마음으로 경기에 집중할 수 있을 것이다"라고 덧붙였다. 이날 야구 대표팀은 대만을 6-3으로 물리치고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박찬호 사과 소식이 전해지자 네티즌들은 "박찬호-오재원, 오해 풀려서 다행", "오재원, 억울하겠지만 앞으로 매너 플레이했으면", "박찬호, 잘못을 인정하는 모습 보기 좋다" 등의 반응을 보였다.온라인 일간스포츠 2014.09.29 09: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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