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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떼9' 김구라, "아내와 아이는 처가에, 혼자 빨래하면 아내가..." 짠내일상 고백

‘김구라의 라떼9’(라떼구)가 전 세계가 열광하는 한류의 시초, ‘K의 시작’에 대한 생생한 이야기를 들려줘 시청자들의 흥미를 한껏 자극했다. 지난 4일 방송된 ‘김구라의 라떼9’(채널S·LG유플러스 공동 제작) 3회에서는 MC 김구라와 특별 게스트로 초대된 신화 전진이 나서, 전 세계에 대한민국의 위상을 알린 ‘K의 시작’을 주제로 라떼 토크를 가동했다. 이날 김구라는 ‘마지막 MZ 세대’라고 주장하며 나타난 전진에게 “약간 우리 쪽인데, 세미라떼 아닌가?”라는 돌직구를 던졌다. 이에 전진은 “80년생이라 마지막 MZ 세대”라고 강조한 뒤, “라떼와 MZ 세대의 낀 세대로 다리 역할을 할 수 있지 않을까”라며 강한 의욕을 드러냈다. 이후 김구라는 한국 문화부터 가전제품들까지 전 세계인들이 열광하는, 코리아 저력의 출발점들을 9위부터 1위까지 차례로 발표했다. 이중, K-POP의 시초인 원조 한류 걸그룹 ‘김시스터즈’가 8위에 올랐는데, 1950년대 10대 소녀들로 결성된 김시스터즈는 나이를 넘어서 완성도 높은 무대를 선보여 미군들에게 폭발적인 반응을 얻었다고. 이후, 김시스터즈는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공연을 펼치는 등 ‘원조 한류스타’의 행보를 걸었다. 막간 ‘썰’로 김구라는 “당시 세계적 스타였던 엘비스 프레슬리가 김시스터즈의 첫째 김숙자에게 데이트 신청을 했었는데, 제작자였던 어머님이 반대해 만나지 못했다고 한다”는 비화를 방출했다. 이를 듣던 전진은 “만약 어머님이 반대하지 않으셨다면, 두 분이 결혼했을 수도?”라고 물었다. 김구라는 “그랬으면 ‘엘서방’ 되는 거지~”라고 받아쳐 폭소를 안겼다. 2020년 전 세계 매출 1위를 휩쓴 K-가전의 모태인 세탁기, 그중 시초인 ‘백조 세탁기’는 6위에 올랐다. 세탁기는 주로 냇가나 빨래터에서 손빨래하던 한국의 빨래 문화를 뒤집어놓은 혁신적인 가전제품이었지만, 당시엔 미비한 수도 보급과 비싼 가격, 세탁기에 대한 낯선 개념으로 흥행에 참패했었다고. 그러던 중, 세제 회사와 공동 마케팅을 진행해 ‘대박’이 나면서, 1984년도에 세탁기 보급률이 30%를 넘어섰고, 10년 뒤에는 91%까지 기록해 필수 가전제품으로 자리잡게 됐다. 한창 세탁기 이야기를 하던 김구라는 “현재 아내와 아이가 처가에 가 있어서 혼자 지내고 있다”면서 “집에서 혼자 빨래를 하면, 세탁기가 아내의 휴대폰과 연동되어 있어서 그런지, 아내에게 ‘여보, 빨래 끝났으니까 얼른 널어야지?’라는 연락이 온다”며 짠내나는 일상을 고백했다. 한국 패션계에서 최초 타이틀을 다수 보유한 남자 디자이너인 고(故) 앙드레 김은 5위에 랭크됐다. 故 앙드레 김은 1962년 ‘살롱 앙드레’ 의상실을 오픈하자마자, 국내 1호 남성 디자이너로 인기와 화제를 모았다. 특히 ‘세기의 결혼식’이었던 신성일X엄앵란 결혼식에서 웨딩드레스를 디자인해, ‘라떼 럭셔리 웨딩’의 아이콘으로 급부상했다. 故 앙드레 김에 대한 이야기를 듣던 전진은 “신화 활동 초기, 선생님과 마주쳤는데 그때 저를 보고 ‘반가워요, 전진 씨’라고 인사해주셨다. 신인인 제 이름을 정확히 말씀해주셔서 감사했다”고 추억을 떠올렸다. 이에 김구라도 “예전에 아들과 (앙드레 김) 부티크를 방문했었는데, 동현이를 보시더니 ‘천재’라고 칭찬하셨다. 동현이 옷을 맞춰주셨고, 지금도 가보로 보관 중”이라며 감사함을 전했다. 3위로는 박지성, 손흥민 이전에 유럽 축구의 벽을 뛰어넘은 아시아 레전드, ‘차붐(차범근)’이 올라왔다. 김구라는 2002년 한일 월드컵 당시 독일 대표팀의 주축 선수 ‘미하일 발락’ 선수가 “여기가 바로 차붐의 조국입니까?”라고 말한 일화를 전했다. 전진은 “우리가 아는 것보다 대단한 업적이 많으셨는데, 그걸 ‘라떼9’가 알려줬다. 그래서 ‘라떼9’는 10년은 가야 한다”고 극찬해, 제작진을 감동케 했다. 방송 후 시청자들은 “라떼 세대에 가까운 전진이 나와서 그런지, 김구라와 토크 핑퐁이 잘 되네요~”, “한류의 시초와 역사를 집중적으로 몰아 보니 대한민국이 더욱 자랑스럽게 느껴졌습니다!”, “김구라와 전진의 생생한 썰과 비하인드 스토리가 귀에 쏙쏙 들어와요”, “과거를 보면 현재가 보이고 다가올 미래를 준비할 수 있다는 ‘라떼9’의 오프닝 멘트, 너무나 공감 가는 한 회였습니다” 등 열띤 반응을 보냈다. ‘김구라의 라떼9’는 매주 수요일 오후 8시 채널S와 더라이프에서 만날 수 있다. 사진 제공=채널S, LG유플러스 2022.05.05 07: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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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IS] 이병헌·윤정희 등 아름다운예술인상 수상..안성기, 건강한 모습으로 참석

이병헌 윤정희 김동건 정혜선 유지인 금보라가아름다운예술인상 수상했다. 6일 오후 5시30분 서울 고덕동 올림픽대로변에 위치한 스테이지28 그린하우스에서 신영균예술문화재단(이사장 안성기)이 주최한 ‘제10회 아름다운예술인상’ 시상식에서 이병헌 배우가 올해 영화예술인상을 수상했다. 공로예술인상은 수상자로 선정된 윤정희 배우를 대신해 부군 백건우 피아니스트가 대리 수상했으며 선행부문인 굿피플예술인상은 김동건 방송인과 정혜선 유지인 금보라 배우 4명이 공동으로 수상해 각각 부문별 2000만원의 시상금과 대리석 상패를 품에 안았다. 아름다운예술인상 시상식에 이어 2부행사로 살아있는 한국영화의 역사이기도 한 신영균예술문화재단 신영균 명예이사장의 회고록 '엔딩 크레딧 –후회없이 살았다'의 출판기념회가 개최된 이날 행사에는 코로나19로 인한 사회적 거리두기 중심의 제한된 행사 공간으로 인해 수상 및 시상자를 포함해 90여명의 영화 연극인을 비롯한 문화예술 및 정관계 인사들이 참석했다. 정세균 국무총리가 참석해 축사를 한 이날 참석인사는 신영균 명예이사장과 평소 친분을 나누어 온 박관용 전 국회의장, 홍석현 중앙홀딩스 회장, 진선미 의원, 박양우 문체부 장관을 비롯한 정관계 인사, 문희 고은아 이순재 강부자 박정자 김용림 김수미 유동근 최수종 송강호 이정재 배우 등 연기예술인들이 자리를 함께 했다. 아름다운예술인상 시상식은 매년 영화 및 연극분야의 한해를 마감하면서 뛰어난 활동을 한 대표적인 예술인을 두고 5개 부문상(영화예술인상, 공로예술인상, 연극예술인상, 선행부문인 굿피플예술인상, 신인예술인상 또는 독립영화상) 수상자를 선정, 각 부문 2천만원 씩 총 1억원의 시상금과 상패를 수여해 왔다. 그러나 올해는 코로나19로 인해 공연, 상영작품의 제작 부진 관객 감소 등의 여파로 2개 부문에서 수상자를 내지 못하는 안타까움이 따랐다. 국내 일간 신문사의 문화예술 분야 현직 데스크인 중견 언론인들의 추천 투표로 선정한 올해 영화예술인상의 이병헌 배우는 1995년 영화 '런어웨이'로 시작해 '공동경비구역 JSA' '광해, 왕이 된 남자' '남한산성' 등 40여 편의 다양한 작품을 통해 탁월하고 폭넓은 연기자로 활동하며 많은 관객들의 사랑을 받았다. 지난해 신성일 배우가 시상식을 앞두고 타계, 아내 엄앵란 배우가 대리 수상한 공로연예인상은 올해 윤정희 원로배우를 선정했다. 1960년대 한국영화 중흥기에 트로이카 1세대의 배우로 충무로시대 인기의 중심에서 활동해 오며 2010년에는 '시'에 출연해 대종상 여우주연상을 받기도 했다. 1967년 '청춘극장'으로 시작해 '안개' '내시' '위기의 여자' 등 수백 편의 작품을 남긴 그는 백건우 피아니스트의 따뜻한 아내로 살며 일생을 영화 발전에 바쳤다. 그 동안 공로상에 최은희 윤일봉 남궁원 엄앵란 김지미 배우 등이 선정되었다. 선행 예술인에게 주어지는 굿피플예술인상은 1989년에 설립되어 전문 패션디자이너를 양성해온 민간 교육기관에 20여년간 장학금을 기부, 지원하며 한국 패션산업의 발전에 보이지 않는 공덕을 남긴 〈가요무대〉의 최장수 진행자이기도 한 아나운서 출신 김동건 방송인과 정혜선, 유지인, 금보라 연기인이 공동으로 선정되었다. 기부, 봉사활동 등 선행으로 귀감이 되어온 예술인을 선정하는 굿피플예술인 부문에는 그동안 김혜자, 션 정혜영 부부, 차인표 신애라 부부, 유지태 김효진 부부, 최수종 하희라 부부 등이 선정되기도 했다. 아름다운예술인상을 주최, 주관하는 신영균예술문화재단은 2011년 1월에 설립되어 매년 상하반기 두 차례씩 예술인자녀의 학비를 지원한 장학사업과 영화인재의 발굴을 위한 단편영화 제작지원사업, 한국영화의 미래인 어린이 영화체험 교육사업 등을 시행해왔다. 이날 재단은 지난 10년의 사업내역을 기록한 백서 ‘한국 예술문화 인재 육성의 굄돌이 되어’도 출간, 공개했다. 김연지 기자 kim.yeonji@jtbc.co.kr 2020.11.06 2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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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좋다' 강신성일 딸 "父, 정 떼려다 정 붙이고 가" 눈물

강신성일의 막내딸이 돌아가신 아버지 생각에 눈시울을 붉혔다. 13일 방송된 MBC '휴먼다큐-사람이 좋다'에는 지지 않는 별이 되다 故 강신성일 편으로 꾸며졌다. 아내 엄앵란은 남편을 떠나보내며 눈물을 흘리지 않으려 애썼다. 울면 망자가 못 걷는다는 말에 참고 또 참았다. 언제나 만인의 연인으로 살았던 강신성일이었다. 이에 강신성일과 엄앵란은 일찌감치 따로 살았다.딸 강수화는 "두 분의 생활방식이 전혀 달랐다. 아버지는 6시에 아침을 드셔야 했고 어머니는 12시에 아침 겸 점심을 드신다. 다섯 살 때부터 별거가 시작되면서 두 분이 같이 주무시는 걸 못 봤다. 그래서 다른 집 부모님들도 각방 쓰는 줄 알았다"고 운을 뗐다. 그러면서 2011년 강신성일의 자서전 출간 당시를 떠올렸다. "인터뷰에서 자꾸만 이야기하고 언론에서도 말 안 해도 될 것을 이야기하더라. 자서전 썼을 때도 인터뷰를 과거 이야기만 빼고 하라고 했는데 앞뒤 다 빼고 그 인터뷰만 나갔다. 그래서 발칵 대한민국이 뒤집혔다. 어머니랑 나랑 3개월 동안 사람들이 손가락질해서 밖에를 못 나갔다"고 설명했다. 돌아가신 아버지 생각에 강수화는 눈물을 멈추지 못했다. "정을 떼려다 정을 붙이고 가셨다"면서 울먹거렸다. 황소영 기자 hwang.soyoung@jtbc.co.kr 2018.11.13 2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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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의 예술인"..故신성일·김용화·유지태·김효진, 아름다운예술인상[종합]

고 신성일을 비롯한 영화인들이 올해의 예술인으로 선정됐다. 9일 오후 서울 중구 명보아트홀에서 제9회 아름다운 예술인상 시상식이 열렸다. 먼저 김용화 감독이 영화예술인 부문의 상을 받았다. 김 감독은 "상 이름 자체도 부담이다"라며 "'신과함께'를 비롯해 많은 영화를 만든 것은 아니지만, 매 작품마다 훌륭한 스태프들과 열정적인 배우들이 없었다면 만들지 못했을 것이다. 그분들을 대신해 받는 상이라고 생각한다. 앞으로도 재밌고 의미 있는 작품을 만들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또한, 연극예술인부문 상을 수상한 연극배우 전무송은 "56년 전 연극에 입문하면서 제일 먼저 마음속에 새겼던 것이, 아름다운 배우, 멋있는 배우, 훌륭한 배우가 되려면 어떻게 해야할지에 대한 숙제였다. 그런 배우가 되기 위해 달려왔는데, 아름다운 예술인으로 인정받았다. 정말 감사하다"는 소감을 밝혔다. 유지태, 김효진 부부는 굿피플예술인부문 상을 받았다. 무대에 오른 유지태는 "우리 부부가 이런 귀중한 상을 받아도 될는지 모르겠다. 앞으로도 더 열심히 살라고, 남들도 돌아보며 살라는 말로 알아 듣겠다"고 말했다. 이어 김효진은 "부부가 돼 좋은 일을 하니 기쁨도 두 배가 되는 것 같다. 앞으로도 사회에 관심을 갖고 주변을 돌아보며 살겠다"고 이야기했다. 또한, 독립영화예술인부문 상을 수상한 신동석 감독은 "영화를 찍으며 어려움을 몇 번 겪었다. 그때마다 신기하게도 영웅처럼 누군가 나타나 도움을 줬다. 덕분에 영화를 무사히 완성할 수 있었다"며 "수상하면서 새삼 깨달은 것이 있다. 영화에 헌신해준 선배님들이 안 계셨으면 한국영화는 성장할 수 없을 거란 사실이다. 그런 의미에서 그 분들에게 감사 드린다"고 말했다. 지난 4일 타계한 고(故) 신성일은 공로예술인 수상자로 호명됐다. 고인을 대신해 무대에 오른 아내 엄앵란은 "본인이 있었으면 얼마나 좋아했겠나. (신성일은) 죽을 때까지 자신은 영화인이라고 말했다. 돌아가실 때에도 손으로 허우적거리며 프레임을 맞춘다고 하며 돌아가셨다"며 "진심으로 감사드린다. 잘 받겠다"고 밝혔다. 아름다운 예술인상은 신영균예술문화재단이 영화와 연극 분야에서 돋보이는 활동을 한 예술인을 선정하는 시상식이다. 올해는 '신과함께'의 김용화 감독이 아름다운 영화예술인상 부문에, 연극 배우 전무송이 연극예술인 부문에, 고(故) 신성일이 공로예술인 부문에, 유지태-김효진 부부가 굿피플예술인 부문에, 신동석 감독이 독립영화예술인 부문에 시상자로 선정됐다. 박정선 기자 park.jungsun@jtbc.co.kr 2018.11.09 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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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예술인상' 엄앵란 "故신성일, 죽을 때까지 영화인"

배우 고(故) 신성일이 아름다운 예술인상 공로예술인상을 수상했다. 고인은 9일 오후 서울 중구 명보아트홀에서 열린 제8회 아름다운 예술인상에서 공로예술인상의 수상자로 호명됐다. 고인을 대신해 무대에 오른 아내 엄앵란은 "본인이 있었으면 얼마나 좋아했겠나. (신성일은) 죽을 때까지 자신은 영화인이라고 말했다. 돌아가실 때에도 손으로 허우적거리며 프레임을 맞춘다고 하며 돌아가셨다"며 "진심으로 감사드린다. 잘 받겠다"고 밝혔다. 폐암 투병 중이던 신성일은 지난 4일 타계했다. 생전 524편의 영화에 출연하며 한국영화사에 전무후무한 업적을 남겼다. 아름다운 예술인상은 신영균예술문화재단이 영화와 연극 분야에서 돋보이는 활동을 한 예술인을 선정하는 시상식이다. 올해는 '신과함께'의 김용화 감독이 아름다운 영화예술인상 부문에, 연극 배우 전무송이 연극예술인 부문에, 고(故) 신성일이 공로예술인 부문에, 유지태-김효진 부부가 굿피플예술인 부문에, 신동석 감독이 독립영화예술인 부문에 시상자로 선정됐다. 박정선 기자 park.jungsun@jtbc.co.kr 2018.11.09 19: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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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IS] 엄앵란 "故신성일, 울면서 보내고 싶지 않다" 의연한 작별

아내 엄앵란이 고인이 된 남편, 배우 신성일과 의연하게 작별했다. 엄앵란은 6일 오전 10시 서울 송파구 서울아산병원 장례식장에서 진행된 고 신성일의 영결식에서 유족들을 대표해 인사를 전했다. "많은 분들이 관심을 갖고 와주셔서 감사하다"고 말문을 연 엄앵란은 "가만히 앉아서 사진을 보니까 '당신도 늙고 나도 늙었네' 이런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이어 "이 세상 떠나면서 울면서 보내고 싶지는 않다. 누가 보면 날더러 '왜 안 우냐'고 한다. 그런데 울면 망자가 걸음을 못 걷는다더라"고 이야기했다. 또 엄앵란은 "신성일이 다시 태어나서 산다면 이젠 선녀같이 동경하며 그러고 살고 싶다"며 "부인들에게 잘 하라. 잘하면 기쁨이 온다"며 의연하게 이야기했다. 신성일과 엄앵란은 지난 1964년 세기의 결혼식을 올리며 부부의 연을 맺었다. 부부의 세월은 다사다난했지만, 인생의 동지로 서로를 돌보며 살아왔다. 신성일은 지난 4일 새벽 전남의 한 병원에서 타계했다. 향년 81세. 지난해 6월 폐암 판정을 받은 후 항암 치료를 받아왔고, 결국 병마를 이기지 못하고 숨을 거뒀다. 1937년 출생한 신성일은 한국영화계를 대표하는 스타이자 원조 미남 배우다. 1960년 신상옥 감독의 작품 '로맨스 빠빠'로 데뷔했고, 신상옥 감독으로부터 지금의 예명을 받아 본명 강신영이 아닌 신성일로 활동을 시작했다.이후 1964년 김기덕 감독의 '맨발의 청춘'으로 단숨에 스타덤에 올랐다. 당시 활동하던 배우들이 중후한 매력을 가졌던 것과는 다르게 신성일은 카리스마 있는 반항아 이미지로 사랑받았다. 청춘 스타로 자리매김한 후 '떠날 때는 말 없이'(1964), '불타는 청춘'(1966), '별들의 고향'(1974) 등 무수히 많은 히트작을 남겼다. 박정선 기자 park.jungsun@jtbc.co.kr 2018.11.06 1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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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IS] 엄앵란 "울면서 보내지 않겠다"..故신성일 영결식 엄수

배우 고(故) 신성일의 영결식이 영화계 인사들의 눈물 속에 엄수됐다. 6일 오전 10시 서울 송파구 서울아산병원 장례식장에서 진행된 고 신성일의 영결식이 치러졌다. 독고영재가 영결식의 사회를 맡았다. 개식사, 영정입장 및 운구, 묵념, 김두호 홍보위원장의 약력 보고, 추모영상 상영, 지상학 장례위원장의 조사, 오석근 영화진흥위원장의 추도사, 유가족과 영결식에 참석한 전원의 분향 및 헌화, 엄앵란의 유가족 대표인사, 독고영재의 폐식 선언으로 진행됐다. 장례위원장 지상학 한국영화인총연합회 회장은 "대통령 이름은 몰라도 선배님의 이름을 모르는 대한민국 국민이 없다. 선배님처럼 시대의 아이콘으로 불리는 대스타는 전에도 없었고 앞으로도 없을 것이다"라며 "선배님은 왕도 돼 보고 영웅도 돼보고 만인의 연인으로 살아보셨으니 이 세상 미련은 버리셔도 될 것 같다. 시련도 아픔도 있었지만, 선배님 같이 은총을 누린 인생이 어디 있겠나. 당신이 있었기에 우리는 행복했다. 같은 시대에 살아 행운이었다. 한국영화 역사의 전설이었고 신화였다"고 말했다. 또 그는 "'노병은 죽지 않는다. 다만 사라질 뿐이다'를 다음과 같은 말로 바꾸고자 한다. 큰 별은 사라지지 않는다. 다만, 육신의 죽음만이 있을 뿐"이라고 이야기했다. 추도사에 나선 오석근 영화진흥위원장은 "불과 한달전 부산국제영화제 레드카펫 위를 당당한 모습으로 걸어오시던 선생님의 모습이 떠오른다. '내가 여기 왔으니 걱정하지 말라'는 듯 모두를 챙겨 바라보던 눈빛은 영화인들의 무한한 든든함이었다"라며 고인을 추억했다. 이어 "선생님께서는 너무나 많은 추억을 두고 우리 곁을 떠났다. 500편이 넘는 수많은 영화들 속에 가장 아름다운 별이 됐다"며 "영화인으로서 후배들에게 힘이 돼주신 선생님. 영화만을 위해 살아가셨던 열정을 잊지 않겠다. 선생님께서 살아가신 영화를 치열하게 기억하겠다"고 말했다. 아내 엄앵란은 유가족을 대표해 조문객들에게 인사를 건넸다. "많은 분들이 관심을 갖고 와주셔서 감사하다"고 말한 엄앵란은 "가만히 앉아서 사진을 보니까 '당신도 늙고 나도 늙었네'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이 세상 떠나면서 울면서 보내고 싶지는 않다. 누가 보면 날더러 '왜 안 우냐'고 한다. 그런데 울면 망자가 걸음을 못 걷는다더라"며 "신성일이 다시 태어나서 산다면 이젠 선녀같이 동경하며 그러고 살고 싶다 부인들에게 잘 하라. 잘하면 기쁨이 온다"고 이야기했다. 신성일은 지난 4일 새벽 전남의 한 병원에서 타계했다. 향년 81세. 지난해 6월 폐암 판정을 받은 후 항암 치료를 받아왔고, 결국 병마를 이기지 못하고 숨을 거뒀다. 1937년 출생한 신성일은 한국영화계를 대표하는 스타이자 원조 미남 배우다. 1960년 신상옥 감독의 작품 '로맨스 빠빠'로 데뷔했고, 신상옥 감독으로부터 지금의 예명을 받아 본명 강신영이 아닌 신성일로 활동을 시작했다.이후 1964년 김기덕 감독의 '맨발의 청춘'으로 단숨에 스타덤에 올랐다. 당시 활동하던 배우들이 중후한 매력을 가졌던 것과는 다르게 신성일은 카리스마 있는 반항아 이미지로 사랑받았다. 청춘 스타로 자리매김한 후 '떠날 때는 말 없이'(1964), '불타는 청춘'(1966), '별들의 고향'(1974) 등 무수히 많은 히트작을 남겼다. 박정선 기자 park.jungsun@jtbc.co.kr사진=박세완 기자 2018.11.06 10: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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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순이, 故신성일 애도 "이 시대의 큰 별, 명복을 빕니다"

가수 인순이가 故신성일을 애도했다.인순이는 4일 자신의 SNS를 통해 "올 1월에 신성일 선배님과 딸 수화, 친구 은광 그리고 나. 맛난 식사하고 즐거웠던 때. 엄마도 사랑하고 나도 사랑하는 이 시대의 큰 별. 꼬맹이 때 결혼하신다고 울고. 지금은 멀리 가셨다고 울고. 선배님 기도합니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인순이 #신성일 #맨발의 청춘 #기도"라는 글과 함께 사진을 게재했다.공개된 사진에는 인순이가 故신성일과 나란히 서서 밝게 미소 짓고 있는 모습이 담겨있어 뭉클함을 안긴다.한편 신성일은 4일 오전 2시 25분 폐암으로 세상을 떠났다. 향년 81세. 빈소는 서울 송파구 서울아산병원 30호실에 마련됐으며, 유족인 아내 엄앵란과 고인의 자녀들이 자리를 지키고 있다.정여진 기자 jeong.yeojin@jtbc.co.kr 2018.11.05 1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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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성일 향한 엄앵란의 진심 “우리는 동지야. 끝까지 멋있게 죽어야해”

4일 영화배우 신성일(81)의 별세 소식이 알려지자 동료 배우이자 아내인 엄앵란(82)에게도 관심이 쏠린다. 엄앵란은 인생의 동반자로써 남편 신성일의 곁을 묵묵히 지켜왔던 것으로 전해졌다. 지난해 6월 폐암 3기 판정을 받은 신성일은 그동안 전남의 한 의료기관에서 항암 치료를 받아왔다. 당시 아내 엄앵란은 신성일씨가 무탈히 병원 치료를 받도록 병원비를 직접 마련하는 등 여러 방면에서 투병 생활을 뒷받침 했다. 부부의 막내딸 강수화(48)씨는 지난 3월 MBC 시사예능프로그램 '휴먼다큐-사람이 좋다'에 출연해 일화를 공개하기도 했다. 강씨에 따르면 당시 엄앵란은 신성일이 암 선고를 받던 날 말 없이 병원비를 부담했다. 강씨는 "아버지가 퇴원하시던 날, '얼마냐, 계산할게'라고 하시더라. 그랬더니 (엄마가) '내가 계산했다'고 하셨다"면서 "아버지가 입원하는 그 날, 엄마가 카드를 건네셨다더라"라고 두 사람의 대화를 전했다. 당시 신성일은 전화로 엄앵란에 대한 고마운 마음을 수줍게 전하기도 했다고 강씨는 밝혔다. 엄앵란은 오랜만에 받아 본 신성일의 전화에 "왜 감사 인사가 없었나 했다. 기다렸다"고 말했고, 신성일씨가 "고맙소"라고 짧게 답했다. 특히 엄앵란은 딸 강씨에게 "내 남편 신성일은 내가 책임져야 하고, 먹여살려야 하는 큰아들"이라며 "죽을 때까지VVIP특실에서 대우받고 돌아가셔야 한다. 작은 방에서 병원비도 없어서 돌아가시는 거 못 본다. 내 남편이니까. 난 그걸 책임 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 "네 아버지가 '돈 꾸러 다니면서 병원비 내고, 자식들에게 손 벌리는 배우는 싫다'고 했다"며 "우리는 동지야. 끝까지 멋있게 죽어야 한다"라며 남편에 대한 동지애를 드러냈다. 엄앵란 역시 올해 초 채널A '뉴스TOP10'과의 인터뷰에서 "신성일이 초라하게 죽을 수는 없다"며 "마지막까지 특실에서 지낼 수 있도록 병원비를 준비했다"고 직접 밝히기도 했다. "(우리 부부는) 톱스타들이 초라하게 죽었던 옛날 시대에 살았다. 내 남편은 그렇게 죽으면 안 된다"며 남편에 대한 애정을 드러냈다. 1960~70년대 최고 인기를 누린 고인은 데뷔작 '로맨스 빠빠'에서 처음 만난 엄앵란과 1964년 결혼했다. 당시 최고의 인기를 누리던 두 사람의 결혼식은 큰 화제를 모았다. 하지만 확연히 다른 생활 습관때문에 별거 아닌 별거를 하는 등 대중에게는 별거 부부로 알려지기도 했다. 이후 2016년 엄앵란이 유방암 수술을 받게 돼 20여 년 넘게 별거 생활하던 신성일이 집으로 돌아왔다. 두 사람은 다수 매체와의 인터뷰를 통해 각자 인생을 사는 동시에 평생의 동지로, 서로를 인정하는 삶을 살고 있다고 밝히기도 했다. 고인은 아내 엄앵란의 무조건적 지원에도 불구하고 4일 새벽 향년 81세의 나이로 숨을 거뒀다. 지난달 초 열린 제23회 부산국제영화제 참석은 고인의 마지막 공식 행사가 됐다. 온라인 일간스포츠 2018.11.04 1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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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이 영화인지, 영화같은 삶인지" 故최은희 92년 인생사

영화계 큰 별이 졌다. 원로배우 최은희가 92년을 일기로 지난 16일 별세했다. 92년의 세월은 그가 평생을 바쳐온 영화보다 더 영화 같았다. 1926년 경기도 광주에서 태어난 고인은 1943년 극단 '아랑'에 발을 들이며 배우의 길을 걷게 됐다. 21살이 되던 해인 1947년 영화 '새로운 맹서'로 데뷔했다. 당시 만난 김학성 촬영감독과 결혼했다. 이후 '밤의 태양'과 '마음의 고향' 등에 출연하면서 떠오르는 신예로 주목받았다. 그러나 한국전쟁이 발발하며 배우 최은희의 발목을 잡았다. 전쟁 동안 위문공연을 다니며 온갖 고초를 겪기도 했다. 그러던 중 남편과 이혼하고 신상옥 감독과 새롭게 인연을 맺었다. 영화 '코리아'를 통해 신 감독과 만나서 이후 23년간 130여편의 영화를 연출하고 출연했다. 최은희가 남긴 대부분의 명작들이 바로 신상옥 감독의 작품. '로맨스 빠빠'(1960) '성춘향'(1961) '사랑방 손님과 어머니'(1961) 등이 이들의 영화다. 고인은 '어느 여대생의 고백'(1958)으로 지금의 대종상인 제1회 국산영화제에서 여우주연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1950~60년대 최은희는 김지미, 엄앵란과 영화계를 삼등분했다. 당시 그는 신상옥 감독의 작품 '성춘향'으로 홍성기 감독이 아내 김지미와 찍은 '춘향전'과 경쟁을 벌였다. 이는 춘향 대결로 세간의 관심을 모았고, 최은희의 '성춘향'이 더 많은 관객을 모았다. 최은희는 1965년 대한민국 3번째 여성 감독으로도 한국 영화계에 한 획을 그었다. 이후 신상옥 감독과 이혼하고, 1967년부터는 안양예술고등학교의 교장으로 일하며 후진 양성에 힘썼다. 영화보다 더 영화같은 일은 1978년 일어났다. 홍콩에서 북한 공작원들에게 납북됐던 것. 같은 해 신상옥 감독 또한 납북되며 두 사람은 북한에서 재회했다. 이들은 북한 영화산업의 발전을 꿈꾸던 김정일의 요청으로 북한에서 작품 활동을 이어갔다. 최은희는 1985년 '소금'으로 모스크바 영화제에서 여우주연상을 수상, 한국인으로 최초로 해외영화제에서 수상하는 새 역사를 썼다. 이후 1983년 오스트리아 빈의 미국 대사관으로 탈출해 극적으로 탈북에 성공했다. 10년이 넘는 망명 생활을 거치다 1999년 영구 귀국했다. 1999년 귀국 후 노령에도 최은희는 끊임없이 영화를 향한 열정을 불태웠다. 안양신필름예술센터 학장, 동아방송대 석좌교수, 성결대 연극영화학부 명예교수를 맡으며 후배를 양성했다. 지난 2003년 대한민국영화대상에서 신상옥 감독을 대신해 공로상을 수상한 최은희는 "육신이 다할 때까지 뛰겠다"고 말했다. 그의 92년 인생사를 잘 표현해준 수상 소감이었다. 박정선 기자 park.jungsun@joins.com 2018.04.17 07: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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