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gma2024 ×
검색결과24건
프로야구

국감 타깃서 국대 단골로, 오지환 "WBC서 인정받고 싶다"

LG 트윈스 유격수 오지환(33)은 이제 국가대표 단골 멤버가 됐다. 5년 전 처음 성인 대표팀에 뽑혔을 때와 비교하면 위상이 크게 달라졌다. 이강철 야구대표팀 감독은 2023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야구 대표팀 명단을 지난 4일 발표했다. 오지환은 총 8명이 뽑힌 내야수 가운데 당당히 한 자리를 차지했다. 2018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AG), 2020 도쿄올림픽에 이어 성인 대표팀 3번째 대표팀 발탁이다. 그는 일간스포츠와 통화에서 "국가대표는 항상 책임감이 많이 따른다. 세계적인 수준의 선수들이 많이 모이는 만큼 더 재밌을 것 같고, 기대가 크다"라고 밝혔다. 그는 2022시즌 중에도 "WBC 대표팀에 뽑히고 싶다"고 욕심을 드러낸 바 있다.오지환은 2008년 캐나다 에드먼턴에서 열린 18세 이하 세계청소년야구선수권대회 우승 멤버였다. 당시 청소년 대표팀 주장을 맡아 리더십도 보여줬다.하지만 프로 무대에서 태극마크를 달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다. 아픔도 많았다. 프로 입단 10년 만인 2018년,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 대표팀에 선발됐다. 당시 대표팀은 금메달을 땄지만, 병역 특혜 논란으로 선동열 대표팀 감독이 국회 국정감사에 출석했다. 모두 오지환을 겨냥한 것이었다. KBO와 선동열 감독은 최종 회의 당시 근거자료(오지환 66경기 타율 0.300 4홈런 33타점) 등을 공개하며 오지환 선발의 정당성을 주장했다. 오지환은 3년 뒤 열린 도쿄 올림픽에 참가했다. 김경문 당시 대표팀 감독은 "오지환의 수비력이 가장 좋다"며 "훈련 기간에 아내가 둘째 아이를 출산했는데도, 바로 대표팀에 합류해 훈련하더라. 오지환이 정말 이 악물고 훈련했다"고 칭찬했다. 오지환은 연습 경기에서 왼쪽 목 근처가 찢어져 5바늘을 꿰매고도 다음날 경기에 출전했다. 올림픽 본선에선 손등 사구에도 경기를 끝까지 뛰는 부상 투혼을 발휘했다. 대회 주전 유격수로 활약하며 홈런 2개, 타점 5개를 기록했다. 이번만큼은 대표팀에서 꼭 좋은 추억을 쌓고 싶다. 오지환은 "2018년 아시안게임은 여러모로 아쉽다. 도쿄 올림픽은 메달을 따지 못했다. 잘 안 풀렸다"고 돌아봤다. 그러면서 "WBC는 야구 월드컵이지 않나. 엄청나게 큰 대회다. (평소 상대하기 쉽지 않은) 미국이나 쿠바, 베네수엘라 등 강팀과 겨뤄보고 싶다"라고 했다. 오지환은 지난해 142경기에 출장해 타율 0.269 25홈런 87타점을 기록했다. 30대 내야수로는 가장 많은 1167이닝(전체 6위)을 수비했다. 입단 14년 만에 처음으로 골든글러브를 수상, KBO리그 최고의 유격수로 인정받았다. 그는 "대표팀을 거치면서 점점 성숙해졌다. 한국 야구를 대표해 뽑혀 자부심이 든다"며 "그라운드에서 실력을 인정받고 싶다"고 말했다. 이강철 감독은 미국 메이저리그(MLB)에서 뛰고 있는 김하성(샌디에이고 파드리스)과 토미 현수 에드먼(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을 키스톤 콤비로 기용할 예정이다. 이 감독은 "상황에 따라 김하성이 3루를 볼 수 있다. 그러면 오지환이 주전 유격수가 된다"고 말했다.오지환은 "앞서 출전한 대회보다 (WBC) 수준이 훨씬 높다. 나도 선수로 뛸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위대한 선수의 플레이를 보는 것도 돈 주고 살 수 없는 중요한 경험"이라면서 "절대 긴장감을 늦출 수 없다. 누구보다 간절함과 책임감을 느끼고 열심히 뛰겠다"고 다짐했다. 이형석 기자 2023.01.06 17:01
프로야구

오지환 "은퇴하면 지도자 찾아 뵙고 죄송하다 꼭 인사"

"주전으로 나섰지만 '오지배'라는 타이틀도 얻고…. 정말 최악의 선수였는데…." 입단 14년 만에 황금 장갑을 품에 안은 LG 트윈스 오지환(32)은 아픈 기억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다. '최고 유격수'로 우뚝 선 뒤에 구단과 지도자, 팬에게 미안함을 먼저 전했다. 오지환은 지난 9일 열린 2022 골든글러브 시상식 유격수 부문에서 총 유효표 313표 중 246표(득표율 78.6%)를 얻었다. 득표율 78.6%로, SSG 랜더스 박성한(50표) KIA 타이거즈 박찬호(12표) 등을 가볍게 제치고 골든글러브를 수상했다. 입단 14년 만에 이룬 쾌거다. 오지환은 2009년 LG로부터 1차 지명을 받고 입단했다. 류지현 전 LG 감독 은퇴 후 차세대 유격수를 찾던 LG는 2008년 캐나다 에드먼턴에서 열린 18세 이하 세계청소년야구선수권대회 우승 멤버(주장)인 '대형 유격수' 오지환을 주목했다. 오지환은 입단 2년 차인 2010년부터 주전 유격수로 기용했다. 하지만 성장 속도가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 2010년 27개, 2012~2014년 동안에도 연 평균 20개 이상의 실책을 기록했다. 결정적인 상황에서 수비 실책이 잦아 경기를 지배한다는 의미로 '오지배'라는 불명예스러운 별명까지 붙었다. LG는 마땅한 대체자가 없어 그를 계속 기용했다. 오지환은 자신에게 주어진 기회가 당연한 것으로 여겼다. 그는 일간스포츠와 인터뷰에서 "어릴 때는 뭘 몰랐다. 구단은 선수를 키워야 하니 리빌딩 과정에서 실책 20개를 해도 (날) 계속 기용한다고 생각했다. 나도 경기에 나서는 게 마냥 좋았고, 실책하면 그저 '내 실력이 부족한가 보다'라고 여겼다"고 떠올렸다. 나이를 먹을수록 오지환의 생각도 바뀌었다. 오지환은 "20대 후반에 접어들며 '세상에 당연한 건 없다'고 느꼈다. 늘 나를 두고 논란이 많았다. 팀 성적 부진 속에 많은 감독님이 바뀌었는데, 그 한 가지 원인이 나인 것 같았다"고 돌아봤다. 이런 과정을 겪으며 오지환은 훌쩍 성장했다. 2016년 타율 0.280 20홈런 78타점으로 훨훨 날아올랐다. 2018년에는 처음으로 성인 대표팀(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에 뽑혔고, LG와 FA(자유계약선수) 계약까지 했다. 2020년 오지환은 개인 첫 3할 타율을 달성했다. 올 시즌엔 142경기에서 개인 한 시즌 최다 홈런(25개) 타점(87개)을 기록했다. 내야수로는 수비 이닝 최다 3위(1167이닝)였다. 넓은 수비 범위를 바탕으로 굉장한 호수비를 펼쳤다. 이닝 대비 실책(16개)은 적었다. 올 시즌엔 주장을 맡아 LG의 구단 역대 한 시즌 최다승(87승)을 이끌었다. 입단 14년 만에 최고 유격수로 평가 받으며 아픈 과거와도 확실하게 이별했다. 오지환은 "어쩌면 그저 그럴 선수가 될 뻔 했는데 류지현 감독님이 포기하지 않고 가르쳤다. 염경엽 감독님은 1군 데뷔 때 수비 코치였다. 염 감독님이 (2008년 LG) 스카우트를 맡은 덕분에 내가 LG에 입단했다"라고 감사함을 전했다. 이 외에도 류중일 전 LG 감독(2018~20년)과 이종범 1군 주루 코치를 언급하며 "좋은 지도자를 만난 건 내게 큰 복이었다"라고 덧붙였다. 오지환은 "LG는 내가 성장하도록 많은 기회를 준 팀이다. 또한 팬들께도 굉장히 감사하고 미안한 마음을 늘 가지고 있다. 언젠가 은퇴하면 (옛 지도자를) 찾아 뵙고 '죄송했다'고 꼭 말씀드리고 싶다"고 전했다. 이형석 기자 2022.12.13 14:30
프로야구

유격수 GG 도전 오지환, 류지현 14년 믿음 통했다…"날 포기하지 않아"

LG 트윈스 류지현(51) 감독과 유격수 오지환(32)은 서로에게 고마워한다. LG는 지난 24일 대전한화생명이글스파크에서 열린 한화 이글스와의 원정 경기에서 9-2로 승리했다. 류지현 LG 감독은 경기 뒤 "4회 말 오지환의 호수비로 상대 팀에 분위기를 넘겨주지 않았다. (오지환이) 승리에 결정적으로 기여했다"고 말했다. LG가 4-2로 앞선 4회 말 1사 1·2루에서 박상언의 안타성 타구를 오지환이 백핸드로 잡아내 병살타로 처리한 장면을 두고서였다. 이날 LG 구단 역사상 최연소 10승 고지를 밟은 이날 선발 투수 이민호(21)도 "오지환 선배님의 플레이가 정말 멋졌다"며 고마워했다. 류지현 감독으로부터 극찬을 받기 몇 시간 전, 오지환은 일간스포츠와 인터뷰에서 "류지현 감독님이 나를 포기하지 않으셨다. 정말 감사하다"고 말했다. 오지환은 경기고를 졸업하고 2009년 LG로부터 1차 지명을 받아 입단했다. 류지현 감독 은퇴 이후 차세대 유격수를 찾던 LG는 2008년 캐나다 에드먼턴에서 열린 18세 이하 세계청소년야구선수권대회 우승 멤버(주장)인 오지환을 주목했다. 잠재력은 뛰어났으나, 수비가 문제였다. 주전으로 처음 뛴 2010년 실책을 27개나 범했다. 2012~2014년 연 20개 이상 실책을 기록했다. 강한 어깨를 바탕으로 묘기 같은 동작을 보여줬지만, 어이없는 실책도 넘쳐났다. 결정적인 상황에서 수비 실책이 잦아 '오지배'라는 불명예스러운 별명까지 붙었다. LG는 마땅한 유격수 대체 자원이 없었고 오지환의 공·수·주 잠재력을 높이 사 계속 기용했다. 류지현 감독이 발 벗고 나섰다. 1994년 신인왕 출신의 류지현 감독도 KBO리그 명 유격수 계보를 잇는 한 명이다. 국가대표 수비 코치 출신인 그는 미국 유학을 마치고, 2008년 LG에서 코치 생활을 시작했다. 수비뿐만 아니라 작전과 주루, 수석 코치까지 모두 역임했다. 류지현 감독의 역할이 바뀌어도 오지환에 대한 기대는 그대로였다. LG 구단 관계자는 "오지환은 사실상 감독님이 키우셨다고 봐도 무방하다. 신인 시절부터 곁에서 계속 지도했다"고 귀띔했다. 이어 "감독님이 수비 코치가 아닐 때는 월권으로 비칠까봐 조심스러워하셨다. 그런데도 수비 코치에게 양해를 구해 오지환을 가르치실 만큼 굉장히 애썼다"고 말했다. 오지환도 동의한다. 그는 "내가 '오지배'라고 불릴 정도로 수비를 못했다. 어쩌면 그저 그런 선수가 될 뻔했다"면서 "류지현 감독님이 날 포기하지 않고 옆에서 알려줬다"고 말했다. 이제는 국가대표 유격수로 성장했다. 올 시즌에는 SSG 랜더스 신예 박성한과 생애 첫 유격수 골든 글러브를 놓고 치열한 다툼 중이다. 상대 선수의 주력과 타구 방향, 볼카운트에 따라 수비 위치를 스스로 결정해 움직인다. 24일 기준으로 오지환이 882이닝(전체 8위, 내야수 3위)을 뛰는 동안 수비 실책은 14개로 박성한과 같다. 그나마도 LG 2루수가 워낙 자주 바뀌어 호흡이 잘 맞지 않았고, 이를 메우려고 더 넓은 수비 범위를 책임지려다가 나온 실책이 많다. 그는 "류지현 감독님께 이론적으로 정말 많이 배웠다. 그게 머리에 쌓였고 몸이 반응한다"며 "감독님이 노하우를 많이 전수해 주셨다. 나도 (감독님에 대한 존경의) 마음으로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었다"고 돌아봤다. 전임 류중일 감독과 현 류지현 감독 모두 한때 최고 유격수로 활약한 터라 높은 눈높이를 맞추려고 더 애썼다. 오지환의 올 시즌 홈런포 폭발도 류지현 감독의 배려가 작용했다. 류지현 감독은 원래 오지환의 체력 부담과 타순 연결까지 고려해 9번 타자로 세우려 했다. 하지만 어느 날 오지환이 "앞 타순(2번)에 들어서거나, 9번 타자로 나서는 게 긴장감 유지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류지현 감독은 "내 생각과 선수의 생각이 다를 수 있다는 것을 그때 처음 깨달았다"고 말했다. 오지환은 올 시즌 5번 타자로 활약하며 벌써 개인 한 시즌 최다 20홈런(2016년) 타이기록을 달성했다. 결승타는 10개(공동 4위)로 상당히 많다. 오지환은 "늘 중심 타자가 되겠다는 목표를 가슴에 품고 있었다"며 "결과가 나오니까 타격이 정말 재밌다"며 웃었다. 올해 오지환은 LG의 주장이다. 그는 "개인 욕심을 버렸다. 감독과 코치, 선수단의 가교 역할에 충실해지려 한다"고 말한다. '홈런 치는 유격수'로, 주장까지 맡아 계약(2년) 만료를 앞둔 류지현 감독을 돕고 있다. 28년 만의 우승에 도전하는 LG는 안정적으로 2위를 사수하고 있다. 오지환은 팀이 이기면 주장 자격으로 가장 먼저 사령탑과 하이파이브를 한다. 류지현 감독이 오지환을 반갑게 맞는 장면을 자주 볼 수 있다. 이형석 기자 2022.08.26 08:42
프로야구

[IS 피플] 마이너 포수였던 '클로저' 김재윤의 WBC 도전

김재윤(31·KT 위즈)의 휘문고 재학 시절 포지션은 '포수'였다. 2008년 에드먼턴 세계청소년야구선수권대회 주전 포수로 허경민(두산 베어스) 안치홍(롯데 자이언츠) 등과 우승을 합작하기도 했다. 하지만 타격이 약한 탓에 2009년 신인 드래프트에서 낙방했다. 그가 눈을 돌린 곳은 미국이었다. 세계청소년야구선수권대회에서의 활약을 눈여겨본 애리조나 다이아몬드백스 구단과 15만 달러(1억9000만원)에 계약했다. 김재윤의 미국 메이저리그(MLB) 도전은 일찍 끝났다. 더블A도 밟아보지 못하고 진출 4년 만에 미국 생활을 접었다. 2012년을 끝으로 귀국, 곧바로 육군 1군사령부 의장대에서 병역 의무를 마쳤다. 그리고 2015년 신인 드래프트에서 신생팀 특별지명으로 KT 유니폼을 입었다. 입단 직후엔 조범현 당시 KT 감독의 권유로 포지션을 투수로 전환, 야구 인생의 터닝 포인트를 맞이했다. 포수 출신 조 감독은 "캐처(포수)를 해서 그런지 타자와의 수 싸움에 강하다. 볼카운트를 어떻게 해야 유리할지 알고 있는 선수"라고 했다. 김재윤은 KBO리그 정상급 마무리 투수다. 26일까지 시즌 20세이브를 기록, 고우석(LG 트윈스·27세이브) 정해영(KIA 타이거즈·23세이브)에 이어 세이브 3위다. 지난 24일에는 '3년 연속 20세이브'를 달성했다. 그는 "꾸준히 성적을 만들어냈다는 거에 자부심도 느끼고 기분도 좋다"며 "팀이 많이 이기면서 자연스럽게 (개인) 성적이 올라간 것 같다. 포수들도 워낙 리드를 잘해주는데 그걸 믿고 정확하게 던지려고 한다"고 몸을 낮췄다. 수년째 KT 뒷문을 책임지고 있는 그지만 유독 태극마크와 인연이 없다. 지난해에는 오승환(삼성 라이온즈)과 고우석에 밀려 도쿄 올림픽 무대를 밟지 못했다. 최종 엔트리 발표일 기준 리그 세이브 3위였지만 출전 기회가 닿지 않았다. 절치부심한 김재윤은 내년 3월 열리는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출전을 노린다. WBC는 올림픽, 아시안게임과 달리 MLB 사무국이 주관하는 국제 대회여서 현역 빅리거들이 총출동한다. 최정상급 선수들과 자웅을 겨를 수 있는 좋은 기회인 만큼 대부분의 선수가 뛰고 싶어한다. 김재윤도 마찬가지다. 그는 "기회가 되면 던져보고 싶다"고 포부를 밝혔다. WBC는 개인적으로도 큰 의미가 될 수 있다. 한국은 본선 1라운드를 비롯해 8강까지 일정을 일본 도쿄에서 소화한다. 만약 4강에 진출하면 무대를 옮겨 미국 마이애미 론디포파크에서 경기를 갖는다. 론디포파크는 현재 MLB 마이애미 말린스 구단의 홈구장으로 과거 말린스 파크라는 이름으로 불렸다. 김재윤이 국가대표로 론디포파크를 밟는다면 마이너리그 시절 이루지 못한 꿈을 간접적으로나마 이룰 수 있게 된다. 김재윤은 "당연히 욕심난다. 국가대표(태극마크)라는 걸 한번 달아보고 싶다"며 "(빅리그 구장을) 가서 구경만 해봤지 한 번도 밟아보지 못했다"고 말했다. 포수로 빅리그 무대에 도전했던 그가 10여년 뒤 투수로 빅리그 구장 마운드에 오른다면 감회가 새로울 수 있다. WBC 사령탑은 이강철 KT 감독이다. 누구보다 김재윤을 잘 알고, 가능성을 높게 평가하는 만큼 태극마크에 대한 기대가 더 커질 수 있다. 김재윤은 "뽑힐 수 있게 최대한 좋은 성적으로 (시즌을) 끝내는 게 첫 번째 같다. 가고 싶은 욕심은 크다"고 힘주어 말했다. 배중현 기자 bjh1025@edaily.co.kr 2022.07.27 15:06
프로야구

[이형석 리플레이] 청대 4번타자→잠실구장 지배 "14년 만에 타격 욕심이 생겼다"

2008년 캐나다 에드먼턴에서 열린 18세 이하 세계청소년야구선수권대회. 한국은 류현진(토론토 블루제이스)과 김광현(SSG 랜더스) 등이 나선 2006년에 이어 두 대회 연속 우승했다. 당시 성영훈(2009년 두산 베어스 1차지명)이 대회 최우수선수(MVP)로 뽑힌 가운데, 고교 4대 유격수로 평가받던 오지환(LG 트윈스)과 허경민(두산 베어스), 안치홍(롯데 자이언츠), 김상수(삼성 라이온즈)의 활약에도 이목이 쏠렸다. 당시 청소년 대표팀의 4번 타자가 바로 오지환이었다. 그는 결승타 2개를 포함해, 타율 .375 6타점 8득점으로 대표팀의 우승을 이끌었다. LG는 2009년 1차지명으로 입단한 오지환이 '대형 유격수'로 성장하길 희망했다. 오지환이 '공격 본능'을 마음껏 발산하고 있다. 14일 기준으로 올 시즌 61경기에서 타율 0.250 10홈런 35타점을 기록하고 있다. 가장 눈에 띄는 점은 홈런이다. KT 위즈 박병호(17개)가 홈런 부문에서 독주하는 가운데, 김현수(LG)·오재일(삼성·이상 11개) 등 공동 2위(총 5명)에 올라 있다. 쟁쟁한 홈런 타자 틈바구니에서 오지환은 공동 7위다. 2위 그룹과 불과 1개 차이다. 서울 잠실구장에서 그의 활약이 특히 돋보인다. 올 시즌 10개 구단 선수 중 잠실구장에서 가장 많은 7개의 홈런을 기록하고 있다. LG와 두산 선수 중 잠실구장에서 장타율이 0.457로 가장 높다. 두 번째가 두산 4번 타자 김재환(잠실구장 6홈런·장타율 0.438)이다. 오지환은 KBO리그에서 보기 드문 '홈런 치는 유격수'다. 어느 포지션보다 유격수는 수비가 훨씬 중요하다. 내·외야를 통틀어 처리하는 타구가 가장 많다. 수비 범위도 넓어 체력 소비가 크다. 오지환도 "항상 첫째는 수비라고 여겼다. 방망이는 덤이라 생각했다"라고 밝혔다. 하지만 청소년대표팀 4번 타자를 맡을 만큼 '한방'을 갖춘 오지환은 늘 장타 욕심이 있었다. 그는 "1군 선수는 모두 수비력이 뒷받침되기 마련이다. 내가 1군에서 살아남으려면 장타력이 꼭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더 절실했다"고 말했다. 오지환은 지난해까지 6차례나 한 시즌 두 자릿수 홈런을 돌파했다. 2016년에는 잠실구장을 홈으로 사용하는 유격수로는 최초로 한 시즌 20홈런을 달성했다. 올 시즌은 가장 빠른 페이스로 홈런을 추가하고 있다. 오지환이 국내에서 가장 큰 잠실구장이 아닌 다른 구장을 홈으로 사용했다면 지금보다 더 많은 홈런을 쳤을 것이다. 바뀐 자리가 오지환의 공격 본능을 깨웠다. 오지환은 최근까지 2번 또는 하위 타순에 배치됐다. 하지만 LG가 지난겨울 4년 총액 60억원에 FA(자유계약선수) 박해민을 영입해 2번 타자 고민을 해결했다. 오지환은 5번으로 상향 배치됐다. 오지환은 "5번 타자로 들어서면서 동기부여가 됐다. 야구 선수라면 누구나 꿈꾸는 중심 타선에 포진하려면 장타력이 필요하지 않나"라며 "동료들이 앞에서 잘해주니, 난 뒤에서 장타를 치면서 해결하는 역할을 하기로 했다. 좋은 동료들 덕분에 홈런이 나오고 있다"고 말했다. 올 시즌부터 주장까지 맡아 책임감이 커졌다. 선수단을 잘 이끄는 최고의 방법은 뛰어는 성과를 내닌 것이다. 그는 "팀에 영향력이 큰 선수가 되고 싶다"고 했다. 오지환은 올 시즌 결승타 9개로 부문 1위를 질주하고 있다. 14일 잠실구장에서 열린 삼성 라이온즈전에선 1-0으로 앞선 3회 말 3타점 2루타로 팀 승리를 견인했다. 그가 홈런을 때린 10경기 가운데 LG는 7경기를 이겼다. 그는 "예전에는 3안타를 쳐도 다음날에 다시 못 치는 날이 많았다. 타격에서 '퐁당퐁당'이 심했다"며 "올 시즌은 확실히 다르다. 상승세가 이어진다"고 반겼다. 김현수가 건넨 방망이 효과도 톡톡히 보고 있다. 오지환은 평소 무게 860~870g, 길이 33.5인치 배트를 썼는데 김현수가 건넨 것은 880~890g, 34인치다. 더 무겁고 더 길다. 그는 "웨이트 트레이닝 효과도 작용한다. 단순히 방망이 무게만 늘어나면 지칠 수 있어서 체력 훈련에 더 신경 쓰고 있다"고 설명했다. 오지환은 "입단 14년 만에 처음으로 타격 욕심이 생겼다"고 말한다. 스포츠1팀 2022.06.15 09:36
야구

'실패한 포수' 김재윤이 마운드에서 때려낸 인생 역전 만루홈런

첫 시작은 포수였다. KT 위즈 오른손 투수 김재윤(31)은 휘문고 재학 시절 '수비 잘하는 안방마님'이었다. 2008년 에드먼턴 세계청소년야구선수권대회에선 주전 포수로 허경민(두산 베어스) 김상수(삼성 라이온즈) 안치홍(롯데 자이언츠) 등과 우승을 합작하기도 했다. 하지만 현실은 차가웠다. 친구들이 하나둘 프로의 꿈을 이룬 2009년 신인 드래프트에서 낙방했다. 타격이 되지 않는 '수비형 포수'에 주목하는 구단이 없었다. 우여곡절 끝에 세계선수권대회에서 가능성을 높게 본 미국 프로야구 애리조나 다이아몬드백스 구단과 계약금 15만 달러(1억7000만원)에 사인, 혈혈단신 태평양을 건넜다. 김재윤은 미국에서도 실패했다. 수비가 안정적이고 어깨도 강한 포수였다. 하위 싱글A에서 뛴 2011년에는 도루 저지율 30%(저지 16회)를 기록했다. 문제는 역시 타격이었다. 마이너리그 최저 레벨인 루키리그에서 타율 2할을 넘기는 게 버거웠다. 결국 더블A도 밟아보지 못한 채 2012년을 끝으로 귀국했다. 곧바로 육군 1군사령부 의장대에서 복무, 병역을 해결했다. 김재윤은 2015년 신인 드래프트에 도전해 신생팀 특별지명으로 KT 유니폼을 입었다. '에드먼턴 친구들'이 각 구단의 주전으로 활약할 때 최저연봉 2700만원을 받는 신인으로 어렵사리 KBO리그에 첫발을 내디뎠다. 그의 야구 인생은 2015년 스프링캠프에서 바뀌었다. 당시 조범현 KT 감독은 김재윤이 투수로 대성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 김재윤은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분신이나 다름없던 포수 마스크를 벗었다. 마운드에 오른 김재윤은 180도 다른 선수가 됐다. 데뷔 첫 시즌인 2015년 42경기에 등판해 1승 2패 6홀드 평균자책점 4.23(44와 3분의 2이닝 70탈삼진)을 기록했다. 9이닝당 탈삼진이 무려 14.1개로 40이닝 이상을 투구한 불펜 투수 56명 중 1위였다. 포수 시절 쌓은 경험은 '투수 김재윤'의 좋은 무기였다. 주자를 잡던 강한 어깨에는 묵직한 직구가 장착됐다. 현역 시절 포수였던 조범현 감독은 당시에 김재윤을 보며 "캐처(포수)를 해서 그런지 타자와 수 싸움에 강한 모습을 보여준다. 볼카운트를 어떻게 해야 유리하게 가져갈지 알고 있는 선수"라고 평가했다. 전력분석 파트에선 "묵직하고 볼 끝이 좋다. 포수 출신으로 팔도 길어서 메커니즘도 뛰어나다. (긴 팔을 이용해) 공을 끝까지 끌고 가서 때려내기 때문에 릴리스 포인트가 앞에 있어 타자들이 반응하기 쉽지 않다"고 했다. 김재윤은 투구 레퍼토리가 단순하다. 직구와 슬라이더 비율이 80%를 넘는다. 포크볼 비율을 끌어올렸지만, 여전히 마운드 위에서 '투 피치'에 가깝다. 구종이 단조롭다는 건 단점이 될 수 있다. 그러나 김재윤은 정면승부를 피하지 않는다. 그의 우상이자 KBO리그 최고의 마무리 투수 오승환(39·삼성)의 전성기를 연상시킨다. 지난 15일 열린 두산 베어스와 한국시리즈(KS·7전 4승제) 2차전에선 진가를 제대로 발휘했다. 6-1로 앞선 9회 등판해 직구와 슬라이더만 던져 탈삼진 3개로 퍼펙트하게 경기를 끝냈다. 김재윤의 야구 인생은 굴곡의 역사다. '수비형 포수'로 실패를 맛본 뒤 막내 구단의 마무리 투수로 자리매김하기까지 많은 고난이 있었다. 이 기간 김재윤과 KT는 함께 성장했다. 김재윤은 지난 9월 KT 구단 최초이자 리그 역대 17번째로 통산 100세이브를 달성했다. 창단 첫 정규시즌 우승을 차지한 이강철 KT 감독은 지난 10월 "김재윤 덕분에 여기까지 왔다"고 했다. KS 1, 2차전에 모두 승리한 KT는 통합우승에 성큼 다가섰다. 7전 4승제 시리즈에서 1·2차전 승리 팀의 우승 확률은 89.5%(19번 중 17회)에 이른다. 타석에서 경험하지 못한 김재윤의 인생 역전 만루홈런도 초읽기에 들어갔다. 한편 KT는 17일 열리는 KS 3차전 선발 투수로 오드리사머 데스파이네를 예고했다. 데스파이네는 올 시즌 13승 10패 평균자책점 3.39를 기록했다. 수세에 몰린 두산은 아리엘 미란다를 내세운다. 미란다는 올 시즌 리그 평균자책점과 탈삼진 1위에 오른 에이스. 특히 225탈삼진으로 최동원(당시 롯데 자이언츠)이 1984년 세운 단일 시즌 최다 탈삼진 기록(223탈삼진)을 새로 썼다. 하지만 어깨 통증 문제로 10월 24일 잠실 LG 트윈스전 이후 공식전 등판이 없었다. 배중현 기자 bae.junghyune@joongang.co.kr 2021.11.17 06:00
야구

'동기'가 남다른 박건우, 개막 초반부터 펄펄

"우리 셋 중에 가장 잘하는 선수다." 허경민과 정수빈이 지난해 12월, 원소속구단 두산과 FA(자유계약선수) 계약을 마치고 가진 일간스포츠와 인터뷰에서 '입단 동기' 박건우(31)를 향해 남긴 말이다. 허경민은 "나와 수빈이가 한 발 먼저 FA 계약을 했기 때문에 (박)건우가 더 독하게 야구를 할 것"이라고 했다. 정수빈도 "건우가 가장 좋은 계약 할 것이다. 꼭 두산에 남길 바란다"라며 목소리를 높였다. 세 선수는 1990년생 동갑내기 친구다. 2008년 캐나다 에드먼턴에서 열린 제23회 세계청소년야구선수권대회 대표팀에 발탁되며 인연을 맺었고, 2009 2차 신인 드래프트에서 나란히 두산에 지명된 뒤 12년 동안 동고동락했다. 먼저 FA 자격을 얻은 허경민(7년 최대 85억원)과 정수빈(6년 최대 56억원)은 대형 계약을 따내며 과거 공적과 미래 가치를 인정받은 상황. 박건우에게는 큰 자극제가 될만하다. 박건우는 지난주까지 출전한 7경기 모두 안타를 때려냈다. 타율 0.393(28타수 11안타) 2홈런 6타점을 기록했다. OPS(출루율+장타율)는 1.128. 모두 두산 야수 중 1위 기록이다. 펄펄 날고 있다. 중요한 순간마다 좋은 타격을 했다. 지난 4일 열린 KIA와의 홈 개막전에서는 1-1 동점이었던 8회 말 1사 1·2루에서 상대 투수 장현식을 상대로 역전 우월 스리런 홈런을 때려냈다. 두산은 이 경기에서 4-1로 승리했다. 6일 열린 잠실 삼성전에서는 1-0으로 박빙 승부가 이어지던 4회 말 삼성 선발 백정현으로부터 솔로 홈런을 치며 점수 차를 벌렸다. 박건우는 지난해 주로 1번 타자(432타석)에 포진됐다. 올해는 3번 타자로 나서고 있다. 김태형 두산 감독은 1차 스프링캠프 초반부터 "박건우를 3번이나 5번 타자로 쓰겠다"라고 예고했다. 오재일(삼성)과 최주환(SSG)이 FA 이적하며 생긴 중심 타선의 공격력 저하를 막기 위해서다. 두산 4번 타자 김재환은 지난주까지 부진했다. 박건우가 장타력과 클러치 능력을 두루 선보이며 중심 타선 타자 역할을 충실히 수행했다. 올해는 팀 공격을 이끌어가야 하는 위치에 있다. 그런 박건우에게 두산을 향한 의구심은 '더 잘해야 한다'는 동기 부여로 작용했다. 그는 "시범경기를 치르며 이적한 선수들의 공백을 실감했다. '이전보다 전력이 약해졌다'는 평가도 잘 안다. 자존심은 상하지만 그게 현실이다. 더 열심히 해서 (두산이) 5강 안에 들어가는 게 목표"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중심 타선에 나서는 예년보다 타점을 더 많이 생산하겠다는 목표를 전하기도 했다. 안희수 기자 2021.04.14 06:01
야구

[신년특집]'20년 동행' 정수빈·허경민 "혼자가 아니기에"

"우리가 신년 특집이요? 설마 1면은 아니죠?" (정수빈)"1면 맞아요? 우리, 성공했네요." (허경민) 정수빈(31)과 허경민(31·이상 두산)은 인터뷰하는 동안 '우리', '함께'라는 단어를 자주 썼다. 둘은 과거를 돌아보고, 현재를 주시하고, 미래를 그리는 모든 순간에 '동행'했다. "서로에 대해 너무 좋은 얘기만 하면 재미없지 않겠느냐"며 낯간지러운 대화를 경계한 두 선수. 팀의 미래에 관해 얘기를 나눌 때는 "함께 가는 친구가 있어 다행"이라며 웃었다. 둘의 표정이 어쩐지 비슷했다. 정수빈과 허경민은 고교 졸업반인 2008년 운명처럼 만났다. 캐나다 에드먼턴에서 열린 제23회 세계청소년야구선수권대회 대표팀에 발탁되면서 인연이 시작됐다. 두산에서 함께 뛰고 있는 박건우도 마찬가지. 18세 소년들은 그 대회에서 미국을 꺾고 우승하며 기쁨을 만끽했고, 2주 뒤 열린 신인 드래프트에선 나란히 두산의 2차 지명을 받았다. 출발선이 같았던 건 아니다. 정수빈이 비교적 빨리 1군에서 스포트라이트를 받았지만, 허경민은 2군에서 인고의 세월을 보냈다. 처한 상황은 달랐지만, 서로를 응원하고 격려하며 함께 그라운드에 서는 날을 머릿속에 그렸다. 2015년을 기점으로 꿈은 현실이 됐다. 정수빈은 외야, 허경민은 내야에서 두산의 왕조 시대를 활짝 열었다. '대박'도 함께했다. 두 선수는 2020시즌이 끝난 뒤 나란히 FA(자유계약선수) 자격을 얻었다. 다른 구단의 영입 구애가 있었던 것도 비슷했다. 고심 끝에 선택한 건 2009년 프로 기회를 열어준 친정팀 두산이었다. 허경민은 최대 7년, 총액 85억원에 계약했다. 정수빈은 6년 총액 56억원에 도장을 찍었다. 일간스포츠는 2021 스토브리그 주인공이 된 허경민과 정수빈을 만났다. ▶목표는 장기 계약 성공 사례 -FA 계약 직후 '허경민이 귀찮을 정도로 연락을 많이 했다'고 언급했는데.정수빈(이하 정)="기분 좋은 귀찮음이었다. 계약을 고민하고 있을 때 경민이와 계속 연락했다. 집 앞에서 밥을 먹고 있으면 같이 먹자고 연락하더라. 그래서 함께 먹고 그랬다." 허경민(이하 허)="한 번은 혼자 밥 먹고 있는데 수빈이가 오더라. 서로 약속이 돼 있는 상태가 아니었다. '이 정도면 너랑 나랑 떨어질 수 없다'고 얘길 했다(웃음)." -둘 다 KBO리그 역사에 남을 장기 계약에 사인했는데.정="6년 이상 장기 계약이 거의 없지 않았나. 그런데 경민이가 두산과 계약(최대 7년)하면서 '구단에서 이 정도로 해줄 수 있구나'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 또한 장기 계약을 하면 좋겠다는 생각만 했다. 다른 것보다 경민이랑 함께 야구를 했고, (박)건우랑 셋이서 두산의 원클럽맨으로 남았으면 했다." 허="(동반 FA 잔류로) 함께 하는 건 정말 좋은데 책임감도 생긴다. 우리가 잘하지 않으면 이런 계약이 또 나오기 쉽지 않을 거다. 젊었을 때 FA가 된 선수들이 장기 계약을 따내는 게 어려울 수 있다. 나 혼자라고 생각하면 부담이 클텐데 고민을 나눌 수 있는 친구가 있어서 다행이다." -새로운 도전에 대한 고민도 많았을 텐데.정="한화 구단의 오퍼가 있었다. 한화에 가서 새로운 도전을 하고 싶은 생각도 컸다. 두산은 잘하는 선수들이 워낙 많아서 (나는) 주로 밑에서 받쳐주고, 뒤에서 밀어주는 역할만 했다. 이번 기회에 직접 끌고 가는 역할도 해보고 싶었다. 그렇게 하면 '야구 커리어도 더 높아지지 않을까'하는 생각도 했다. 그 상황에서 경민이와 많이 대화했고, 결국 생각이 바뀌었다. 두산에서도 좋은 조건을 제시해주셨다." 허="구단이 장기 계약을 제안한 건 그만큼 우리에 대한 믿음이 크다는 뜻으로 판단했다. 수빈이가 말한 '도전'도 충분히 이해됐다. 그 생각이 강하다면 팀을 옮기는 게 괜찮다. 하지만 두산도 선수들이 젊어지는 추세라서 그 도전을 여기(두산)에서 했으면 좋겠다고 했다. '네가 받은 두산 팬들의 사랑은 얼마의 가치가 있을까'라는 얘기도 했다." -어깨가 무거운 계약인데.정="경민이나 나나 본보기가 되고 싶다. 우리는 홈런을 많이 치는 타자가 아니다. 나 같은 경우엔 남들이 봤을 때 (개인) 성적이 특출나지 않는다고 생각할 수 있다. 홈런이 많거나 타율이 높지 않다는 평가를 인정한다. 하지만 수비를 비롯해서 정말 열심히 했다. 자신의 강점을 보여주면 좋은 결과가 있다는 걸 보여준 거 같다." -FA 계약 이후 달라진 게 있다면,정="마음이 안정됐다. 앞으로 걱정 없이 맘 편하게 야구할 수 있는 환경이 됐다. 심리적인 안정이 크다." 허="특별히 달라진 건 없다. 매 시즌 '조금 더 하자'라는 생각으로 준비했다. 조금 더 잘하고 싶고, 조금 더 좋은 성적을 내고 싶다. FA 계약은 야구 선수를 마쳤을 때 돌아보면 행복하겠지만, 지금은 치열하게 야구 해야 한다." ▶'에드먼턴 키즈' 비긴스-2008년 세계청소년야구선수권대회 이전엔 서로에 대해 잘 몰랐나.허경민="전혀 몰랐다. 대표팀에 소집된 후 인연이 시작됐다. 건우는 딱 봐도 서울 출신었다. 수빈이는 '저런 애가 어떻게 대표팀이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정말 머리카락이 짧았다. 유신고에 저런 선수가 있었나 싶었다. 체구는 작은데 정말 잘하더라." 정="난 당시 전국체전 대회를 뛰느라 대표팀 합류가 늦었다. 1차 소집과 2차 소집을 모두 못 갔다. 다른 선수들은 이미 안면을 튼 상태에서 운동하는데 나만 지각 합류했다. 하필 그때 삭발을 하고 있었다. 다들 '얘는 누구지'라고 생각했을 거다. 그때 팀(유신고)이 약체여서 전국대회 나가더라도 패하는 경우가 많았다. 콜드게임도 자주 당했다." -안치홍은 당시 "허경민과 김상수가 라이벌이었다"고 얘기했는데.허="겸손이 아니고 그 친구들은 나보다 기량이 한 단계 위였다. 내가 수비를 잘했다면, 다른 친구들은 공격과 수비에서 월등한 기량을 갖췄다. 평가는 감사하지만, (실력이) 정말 달랐다. 치홍이는 2루수, 상수는 외야수까지 봤다. 야구 센스나 감각이 달랐다. 지금 생각해보면 (함께했다는 게) 자랑스럽다." -스토리가 많은 대회였는데.(정수빈은 이 대회에서 올스타에 선정됐다) 정="준결승에서 내야 안타를 치고 헤드 퍼스트 슬라이딩을 하다가 손가락이 골절됐다. 다친 게 눈에 보일 정도였다. 다음 경기가 결승전이었다. 이런 경기를 뛰지 않으면 안 될 거 같아서 참고 뛰었다. 결승전까지 다 뛰고 우승까지 했는데 선수들이 우승 세리머니를 할 때 나는 병원에 가서 치료받은 뒤 혼자 방에 있었다(웃음)." -세계청소년야구선수권대회 우승의 의미가 있다면.허="그때가 청소년대표팀의 마지막 국제대회 우승 아닌가. 장난으로 '우리가 마지막 우승이 됐으면 좋겠다'는 얘기를 했는데 당시 이야기가 나오면 기분이 좋다. 대표팀에 뽑힌 것만으로도 기분이 좋았고 자부심을 느꼈다. 잘하는 선수들 틈에서 더 잘하고 싶은 마음이 컸다." 정="우승하고 프로에 갔다. 대부분 (그 대회를 뛴 선수들이) 잘됐다. 되돌아보면 추억도 정말 많고 벌써 10년이 넘었다는 게 감회가 새롭다. 사실 난 대표팀에 뽑힐 수 없는 조건이었다. 팀이 하위권이어서 운 좋게 뽑혔는데 '흙 속의 진주'였다(웃음)." -대회 우승 후 프로 지명에 대한 기대감이 커지지 않았나.허="당시 2차 지명을 기다리는 입장이었다. '어떤 팀에 갈까', '대학을 가야 하나'는 생각이 정말 많았던 시기다. 그때 지명받고 서로 축하한다고 개인 SNS(소셜미디어)에 글을 남기고 그랬다." 정="드래프트에 큰 관심이 없었다. 안 뽑혀도 무조건 신고선수(육성선수)로 갈 생각이었다. 운동하고 있는데 2차에 뽑혔다는 얘길 누가 해줬다. 당시에는 '2차 뒷순위에 뽑혀서는 프로에 가더라도 출전 기회를 잡기 어렵다. 차라리 대학을 가라'는 얘기가 많았다. 난 대학 갈 생각이 전혀 없었다. 프로에 가기만 하면 잘할 자신 있었다. 대학에 가면 4년, 군대 2년, 프로 자리 잡는 데 2~3년 걸린다. '야구 좀 하려고 하면 서른 살이 되지 않을까', '못하더라도 프로에서 해보자'고 생각했다." -에드먼턴 대회처럼 큰 경기를 뛴 경험이 프로 무대에서도 영향을 미쳤을까. 정="아무래도 큰 대회 경험이 중요하다. 그런 경험이 쌓이다 보면 (긴장을) 즐길 수 있다. 중요한 경기에서 긴장하고 부담을 느끼는 선수가 있다. 성격에 따라 그걸 즐길 수도 있는 것 같다. 출전 기회를 많지 얻지 못했던 선수들이 오히려 큰 경기에서 잘할 수 있다. 워낙 기대치가 높은 선수들은 잘해야 본전이기 때문에 거기서 오는 부담이 있다." ▶경쟁자, 그리고 동반자 -두산 입단 첫 시즌을 떠올려 본다면.정="나는 입단 첫해부터 1군에 안착했다. 운이 좋았다. 당시 김경문 감독님이 좋아하는 스타일이었던 것 같다. 마침 기회도 왔다. 주축 선수이셨던 이종욱 선배가 다치신 게 팀의 불행이었지만, 그 상황에서 출전 기회가 많아져 나를 알릴 수 있었다. 타이밍 덕분이었다." 허="나는 1년 차 때 2군에 있었다. 수빈이가 너무 멋있었다. 스무 살 선수가 1군에서 그토록 잘할 수 있다는 게 놀랐다. 더 잘해주길 응원했다. 또래 선수가 1군에서 잘하는 모습은 나에게도 힘이 됐다. 만약 수빈이가 못했다면 '프로의 벽이 그렇게 높은가'라고 생각하며 위축됐을 것 같다." -팀 내 입지가 달라지면 서로 멀어지기도 한다. 정="항상 경민이와 건우에게 '너희는 무조건 나보다 더 잘 된다'고 말했다. 두 친구의 실력이 나보다 월등하다는 것을 잘 알았다. 내가 먼저 1군에 자리 잡았지만, 결국 두 선수가 더 잘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아무래도 친구 하나가 먼저 앞서가면 마음이 편하지만은 않을 것이다. 내 말이 건방지게 들렸을 수도 있다. 그래도 그때 나는 '부러워할 필요가 없다'고 해줬다. 결국 내 말대로 두 친구가 더 잘하지 않나." 허="수빈이가 진짜 그런 말을 해줬다. 격려도 많이 받았다. 무엇보다 매 순간 세 친구가 함께 있었다는 자체가 가장 큰 힘이 됐다. 나는 군 복무 중 휴가를 나왔을 때도 수빈이네 집에서 잤다. (서로 다른 위치에 있었어도) 항상 교감했다." -둘 다 경찰야구단에서 복무했다.(허경민은 2010~11년, 정수빈은 2017~18년)허="수빈이는 까마득한 아래 기수다. 보이지도 않는다. 난 스물한 살 때 막내로 가서 고생 좀 했다. 수빈이는 들어보니까 좀 편안하게 한 것 같다. (전 두산 동료인) 민병헌 형도 내 후임으로 들어왔다. 내가 '교육'을 좀 하면 병헌이 형이 '우린 나가서도 본다'며 핀잔을 줬다. 물론 군 복무를 함께하며 더 친해졌다. 그 시간을 겪으면서 단단해질 수 있었다. 2군 생활을 겪어보지 않은 선수들은 잘 모른다. 늦게 핀 꽃이 오랫동안 지지 않는다." -두 선수의 야구 인생 전환점은 2015년 포스트시즌이 아닐까.(정수빈은 그해 한국시리즈에서 최우수선수에 선정됐다. 허경민은 안타 23개를 때려 단일 포스트시즌 최다 안타 신기록을 세웠다)정="그해 두산이 14년 만에 한국시리즈에서 우승했다. 이후 가을의 강팀으로 거듭났다. 개인적으로도 MVP를 수상했기 때문에 의미가 크다." 허="2015년 포스트시즌은 '두산이 가을 야구에서 잘한다'는 이미지를 야구팬에 심어준 계기가 됐다. 수빈이도 MVP를 수상했다. 그 경력은 은퇴 뒤에도 정말 큰 영광으로 남을 것 같다. 지난 얘기지만, 난 조금 아쉽다. 데일리 MVP에도 선정되지 못했다. 수상하고 싶으면 강하게 어필할 필요도 있다는 걸 느꼈다(웃음)." 정="솔직히 경민이가 포스트시즌에서 A급 활약을 했다. 시리즈 MVP도 경민이로 굳어지는 듯 보였다. 그런데 내가 5차전 7회 말에 3점 홈런을 치면서 (MVP 투표 표심이) 바뀐 것 같다. 'A+'급이 나와버린 거다(웃음)." 허="수빈이는 한국시리즈 1차전에서 왼 검지 부상을 당했다. 스토리도 있었다. 평생 남는 (수상) 기록이다. 그때는 '팀이 우승하면 만족한다'고 했지만 돌이켜 보면 진짜 아쉽다. 이제 현역 은퇴까지 단일 포스트시즌 최다 안타 신기록 재경신을 목표로 삼아야 할 것 같다(웃음)." -두산은 왜 강팀인가. 정="모든 선수가 백업부터 시작한다. 주전을 맡은 선배를 보고, 배우고, 그 선배처럼 되기 위해 노력한다. 나이가 들어 주전을 맡았던 선배가 은퇴하면 자연스럽게 그 길을 따라가던 선수가 자리를 물려받는다. 그런 문화가 있다. 경민이는 손시헌 선배, 나는 이종욱 선배를 롤모델로 삼았다. 이제 우리가 (후배들을) 끌고 가야 할 위치다. 후배들이 나와 경민이를 보며 따라와 줄 것이다. 자리도 넘볼 것이다. 이런 선순환이 이어진다면 두산은 더 강해지고, 앞으로도 계속 강팀으로 남을 것이다." 허="2015년 우승할 때, 젊은 선수였던 나와 수빈이가 조금은 (선배들을) 서포트를 했기 때문에 두산이 강팀이 됐다고 생각한다. 이제는 선배들 역할을 우리가 해야 한다. 두산도 (다음 시대를 이끌어갈) 젊은 야수들이 나와야 한다. 우리가 솔선수범하는 모습을 보인다면 좋은 영향을 미치지 않을까. 나 혼자라면 힘들 것이다. 그러나 수빈이와 건우가 있기 때문에 큰 힘이 될 것 같다. 안 그래도 요즘 팀의 미래를 위해 얘기를 많이 나눈다." ▶진정한 프랜차이즈 스타의 길-힘든 순간마다 서로에게 힘이 됐을 것 같다.정="건우까지 세 친구가 모두 못할 때가 있다. 그럴 때는 모여서 밥 먹고, 얘기하고, 가끔 맥주도 한 잔 마신다." 허="그 자리에서 했던 얘기가 있다. '너희가 있어서 외롭지 않다'고. 같이 못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웃음)." 정="맞다. 솔직히 같이 못 하고 있어야 공감대가 형성된다. 잘하는 애는 그냥 웃고만 있을 것이다." 허="두 명이 못하고 한 명이 잘할 때면, 그 한명이 다른 친구의 눈치를 보기도 한다. 잘하든 못하든 서로 위로하지만, 그것보다 같이 못 하고 있을 때 위안을 받은 기억이 더 남는다. 확실한 건 세 친구가 같이 있을 때는 두려움이 사라지는 것 같다." -서로에게 바라는 점이 있다면.정="경민이가 동기 중 가장 리더십이 있다. 실제로 후배들을 가장 잘 이끈다. 조금 더 잘 해줬으면 좋겠다. 나는 내 할 일을 하면서 솔선수범하는 모습으로 후배들에게 귀감을 주려고 한다. 경민이를 열심히 돕겠다." 허="수빈이가 책임을 회피하고 있다(웃음). 앞으로 6년 동안 이전보다 더 서로를 의지하게 될 것 같다. 지칠 때 일으켜주고, 힘들 때 토닥이며 힘이 돼줄 것이다. 6~7년 뒤 '마무리도 잘한 선수'라는 평가를 받아야 한다. 그러기 위에서는 일단 수빈이도 좋은 짝을 만났으면 좋겠다. (나처럼) 내조를 받으면서 야구를 하면 더 잘할 것이다. 함께 가족 여행도 가고 싶다. 그런데 둘(정수빈·박건우) 다 짝이 없다(웃음)." -이전과 다른 이미지를 만들고 싶진 않나.정="'잠실 아이돌'이라는 별명이 있다. 여전히 어색하다. 그러나 은퇴한 뒤에도 들으면 영광일 것 같다. 김원형 SK 감독님도 영원한 '어린 왕자'로 통하지 않나. 내가 하던 야구를 은퇴할 때까지 계속 보여주고 싶다." 허="나는 별명보다는 내 이름으로 불리고 싶다. 더 나이가 들면 할 수 없는 것들을 해내는 데 집중하겠다. 신체 능력은 당연히 떨어지게 마련이다. 야구를 가장 잘할 수 있는 나이와 위치에 있는 만큼 더 좋은 타구를 생산해서 더 좋은 기록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겠다." -프랜차이즈 스타가 갖춰야 할 덕목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허="프랜차이즈 선수는 한 팀의 이미지다. 은퇴하실 때까지 잡음 없이 훌륭한 기록을 남기신 박용택 선배가 LG의 이미지다. 한 팀에서만 뛰었다고 프랜차이스 스타라는 수식어가 붙을 순 없다. '팬들에게 정말 많은 사랑을 받았구나'라고 생각하면서 선수 생활을 마무리하고 싶다." 정="같은 생각이다. 박용택 선배처럼 기억에 남는 선수가 돼야 한다. '본인들의 역할을 잘해내며 두산에 헌신한 선수였다'고 인정받는 게 프랜차이스 스타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후배들도 그 길을 갈 수 있도록 이끄는 역할도 해야 한다." 배중현·안희수 기자 2021.01.01 05:58
야구

[김식의 엔드게임] 뛰고 구르고…에드먼턴에서 자란 작은 거인들

2008년 8월 5일 캐나다 앨버타주 에드먼턴 국제공항. 출국 수속을 돕던 직원이 깜짝 놀라 물었다. "뭐라고? 이 친구들이 어제 미국을 박살 낸 야구 선수들이라고? 정말 잘했어! 내가 수하물 수속을 도와줄게. 다들 비행기로 가서 편히 쉬어!" 당시 제23회 세계청소년야구선수권대회에 참가했던 18세 이하 한국 대표팀 선수들은 영문도 모르고 짐을 부쳤다. 그 직원은 까까머리 고교생들을 흐뭇하게 바라봤다. 대부분의 키가 170㎝를 겨우 넘었다. 하나같이 순하게 생긴 청년들이 세계 정상에 올랐다니 캐나다 공항 직원은 마냥 신기했던 모양이다. 12년 전 기자는 이 대회를 취재했다. 각국 선수단이 묵는 앨버타대 기숙사에서 이들과 숙식도 함께했다. 그 열흘이 '한국야구의 미래'와 동행하는 행운이었다는 걸 그땐 알지 못했다. 기숙사에서 마주치는 미국·쿠바 선수들은 (조금 과장하자면) 한국 선수들보다 머리 하나씩 더 컸다. 당시 쿠바 대표팀엔 야시엘 푸이그(188㎝) 같은 '거인'이 대부분이었다. 기숙사에서 쿠바 선수들은 틈만 나면 한국 선수들에게 말을 걸었다. 다 찢어진 자신의 배팅 장갑과 한국 선수들의 반질반질한 글러브·방망이를 교환하자는 제안이었다. 가격 차이가 10배 이상 나는 '불공정 거래'였지만, 한국 선수들은 꼭 필요한 장비를 뺀 대부분을 줬다. 말도 통하지 않는 경쟁자 였지만, 야구로 통하는 친구들이었다. 7월 26일 에드먼턴 텔러스필드에서 대회가 시작됐다. 기자실에서 경기를 보고 있는데, 캐나다 관계자가 말을 걸었다. "한국 야구는 정말 대단하다. 체격은 작지만, 빠르다. 강하고 영리하다. 8년 전 나는 바로 이곳에서 추신수를 봤다. 이번에는 또 어떤 선수가 나올지 기대된다." 그는 2000년 에드먼턴 대회에서 우승한 한국 팀을 똑똑히 기억하고 있었다. 2000년 우승 주역이었던 추신수·김태균·이대호 같은 거인이자 천재들이 2008년 대표팀에는 없다는 걸 그는 몰랐다. 기자의 눈에는 2008년 청소년 대표팀이 강해 보이지 않았다. 특히 유격수만 4명(김상수·안치홍·오지환·허경민)이라는 게 불균형하게 느껴졌다. 이들 4명은 서로 유격수를 차지하겠다고 가위바위보를 했다. 물론 장난이었다. 이종운 감독의 지시대로 허경민이 유격수, 안치홍이 3루수, 김상수가 2루수, 오지환이 1루수를 주로 맡았다. 외야에서는 정수빈·박건우가 열심히 뛰어다녔다. 그들은 작지만, 강했다. 촘촘한 수비와 빠른 주루를 바탕으로 탄탄한 팀워크를 만들었다. 강타 대신 연타로 점수를 뽑았다. 강속구보다 계투로 상대 타선을 막았다. 한국 대표팀은 준결승에서 쿠바(선수 일부가 대회 중 미국 망명하긴 했다)를 꺾고 결승에 진출했다. 경기를 치를수록 그들은 자신감을 얻었다. "우승할 수 있겠느냐"고 묻자 다들 "할 수 있다"고 답했다. 한국야구 특유의 '스몰볼'에 대한 확신을 갖게 된 것이다. 8월 4일 결승전. 0-0이던 2회 정수빈(현 두산)이 내야안타로 출루해 투수 보크와 도루로 3루까지 진루했다. 포수가 공을 빠뜨리자 그는 홈으로 쇄도, 선취점을 뽑았다. 3회에는 김상수(현 삼성)와 오지환(현 LG)의 안타로 추가점을 올렸다. 5회에는 김재윤(현 KT)과 정주현(현 LG)의 안타로 3-0을 만들었다. 이어 안치홍(현 롯데)의 3루타와 장영석(현 KIA)의 희생플라이도 나왔다. 선발 투수 성영훈(은퇴)은 완봉투로 7-0 완승을 이끌었다. 한국 선수들은 에드먼턴에 모인 또래 중 가장 작았다. 그러나 가장 열정적이었고, 영민했다. 미국과의 예선전서 3-4로 진 건 어쩌면 전략 같았다. 그들의 기량과 전략을 파악해 결승전에서 다시 만나 압도했다. 18세 '작은 거인'들이 합작한 멋진 추억이었다. 2008 베이징올림픽, 2009 월드베이스볼클래식에 앞서 소년들이 한국 야구의 특장점을 먼저 보여줬다. 이들 대부분은 고교를 졸업하고 프로에 입단했다. 같은 유니폼을 입고 깔깔거렸던 친구들의 궤도는 저마다 다르게 뻗었다. 프로에서는 안치홍·김상수가 가장 먼저 주전으로 도약했다. 야수층이 탄탄한 두산에 입단한 허경민·정수빈·박건우가 1군에 오르기까지는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서로 다른 길을 가지만, 이들은 매년 겨울 만나 '에드먼턴 동기회'를 열었다. 그중 누구는 먼저 주전이 되고, 억대 연봉을 받고, FA(자유계약선수) 자격을 먼저 얻었다. 그들 사이에서도 성공과 실패가 엇갈렸다. 그리고 몇 년 만에 반전도 이뤄졌다. 이 과정을 함께 거친 1990년생 친구들은 유독 끈끈하다. 서로를 인정했고, 응원했다. 체격·지명순위 등 '스펙'이 화려하지 않았지만, 대부분은 10년 이상 KBO리그에서 살아남았다. 12년 전 그들이 만든 팀처럼, 각자의 자리에서 치열하게 뛴 덕분이다. 이번 스토브리그에서 허경민과 정수빈의 FA 계약을 보니 옛날이야기가 떠올랐다. '에드먼턴 키즈'는 2년 전부터 FA 자격을 얻기 시작했다. 하필 시장이 썩 좋지 않을 때다. 그래도 여러 세대 중 가장 높은 평가를 받는 FA가 바로 이들이다. 허경민은 가장 늦게 주전이 됐지만, 올겨울 FA 최고 우량주였다. 그는 두산과 계약하자마자 친구인 정수빈을 쫓아다니며 "두산에 함께 남자"고 졸랐다고 한다. 결국 두산과 계약한 정수빈은 "나중에 박건우도 함께하자고 꼬셔보겠다"고 했다. 이어 정수빈이 덧붙인 말은 한결 같은 그의 플레이를 떠오르게 했다. "나는 은퇴할 때까지 수없이 넘어지고 구르고 싶다. 부상을 두려워하지 않고, 허슬 플레이를 하겠다." 그게 2020년 스토브리그에서 정수빈의 가치였다. 에드먼턴 키즈의 경쟁력이고, 한국 야구의 강점이다. 김식 스포츠팀장 2020.12.18 06:01
야구

2020년 황혼 세대가 된 2000년 황금 세대

2000년 캐나다 에드먼턴에서 열린 세계청소년야구선수권대회 결승전에서 한국은 미국을 꺾고 우승했다. 당시 대표팀은 고교 3학년 선수들로 구성됐다. 한국 프로야구가 출범한 1982년에 태어난 추신수(텍사스 레인저스), 이대호(롯데 자이언츠), 김태균(한화 이글스), 정근우(LG 트윈스·이상 38) 등이다. 프로 선수가 된 뒤로도 10년 넘게 한국 야구를 대표한 이들은 ‘황금 세대’로 불렸다. 한국 야구의 전성기를 이끌었던 선수들이 야구 인생의 황혼기에 접어들었다. 아직은 젊은 후배와 경쟁할 만하지만, 힘과 스피드가 예전 같지 않은 게 사실이다. 마흔 살을 앞둔 나이에 계약도 쉽게 풀릴 리 없다. 2020년, 이들은 야구 인생의 마지막 싸움을 시작하고 있다. 롯데의 호주 애들레이드 스프링캠프에서 훈련 중인 이대호는 벌써 얼굴이 까맣게 그을렸다. 휴식기였던 지난달 초 사이판으로 훈련을 떠나 3주 동안 몸을 만들었다. 평소 체중이 130㎏ 이상인 것으로 알려진 이대호는 사이판 훈련에서 15㎏을 감량했다. 지금도 숙소에서 훈련장까지 버스로 이동하지 않고 40분 동안 걷는다. 운동량을 늘리고 생각을 정리하기 위해서다. 이대호는 지난해 타율 0.285, 16홈런, 88타점을 기록했다. 나쁘지 않은 성적이지만, 그의 명성에는 미치지 못한다. 시즌 막판 2군으로 떨어지기도 했다. 롯데는 최하위로 추락했다. 그로 인해 롯데는 사장과 단장, 감독까지 바뀌었다. 롯데 소속 자유계약선수(FA)였던 손승락(38)이 계약하지 못한 채 은퇴하는 등 베테랑을 대하는 구단 분위기가 냉랭하다. 올해로 총액 150억원의 4년 계약이 끝나는 이대호도 내년을 장담할 수 없는 상황이다. 이대호가 어느 해보다 절박하게 시즌을 준비하는 이유다. 이대호는 “지난해 팀 부진은 내 책임이다. 올해는 내 성적도 중요하지만, 팀이 올라가야 한다. 기량은 아직 자신 있다. 지금까지 계약을 생각하고 야구를 한 적은 없다. 매 경기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대호는 날렵해진 몸으로 1루 수비까지 하고 있다. 올해도 지명타자를 맡을 전망이지만, 전준우 등과 번갈아 1루수로 나서겠다는 의지를 내보이고 있다. 자신이 수비까지 한다면 팀 공헌도가 높아질 거라 기대한다. 애리조나주 피오리아에서 한화 동료들과 훈련 중인 김태균도 비슷한 심정이다. 2000년 한화 입단 후 줄곧 중심타자로 활약한 김태균은 지난해 타율 0.305, 6홈런, 62타점에 그쳤다. 그도 이대호처럼 시즌 중 2군에 다녀왔다. 팀 내 최고 타율을 기록했지만, 기대치에 비하면 아쉬운 결과였다. 김태균은 지난 시즌 직후 FA 자격을 얻었다. 2년 계약이 이뤄질 거라 예상됐는데, 시장은 얼어붙었고 협상은 쉽게 풀리지 않았다. 지난달 말 캠프로 떠나기 직전 김태균은 “올해 좋은 성적을 내서 재평가받겠다”며 1년(10억원) 계약을 구단에 제안했다. 김태균은 “2018년 포스트시즌에 진출한 한화가 지난해 하위권(9위)으로 떨어졌다. 후배들과 함께 재도약하고 싶다. 타격 정확성은 자신 있다. 떨어진 장타력을 끌어올리기 위해 노력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82년생 친구들 모두 힘내자”며 웃기도 했다. 2013년까지 SK 와이번스의 전성기를 이끌다 한화로 이적한 정근우는 지난해 말 2차 드래프트 보호 선수(40명) 명단에서 빠졌다. 정근우는 자신의 포지션인 2루수를 정은원에게 물려주고 2018년부터 외야수로 뛰었다. 2루수 정주현(30)의 경쟁자를 찾고 있었던 류중일 LG 감독은 정근우 영입을 결심했다. 한화에서 정근우는 주전 경쟁에서 조금씩 밀렸다. 지난해 4위이자 올해 우승을 노리는 LG에서 뜻밖의 기회를 잡았다. 정근우는 “다시 2루수로 뛸 수 있다는 생각에 눈물이 났다. 예전 기량을 100% 찾을지는 모르지만, 열심히 하겠다. LG에 도움 주고 (야구 인생의) 마지막을 멋있게 장식하고 싶다”고 말했다. 베테랑 정근우는 젊은 후배로 구성된 캠프 선발진에 합류, 지난달 21일 일찌감치 호주 시드니로 날아가 훈련 중이다. 김식 기자 seek@joongang.co.kr 2020.02.11 08:50
브랜드미디어
모아보기
이코노미스트
이데일리
마켓in
팜이데일리
행사&비즈니스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