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일반
[일문일답] '조금 울고 싶었던' 양동근, 그가 말하는 '꿀잠' 같았던 17년
"정말 길고 좋은 꿈이었다. 꿀잠이라도 잔 것처럼, 너무나 꿈같던 시간이 지나간 것 같다." 코트 위에서 보낸 긴 시간, '선수 인생'이라는 특별한 드라마에 마침표를 찍으러 나온 양동근(39)은 울 준비가 되어 있었다. 현역 은퇴를 선언한 한국프로농구(KBL) 올 타임 레전드 양동근은 1일 서울 강남구 KBL센터에서 은퇴 기자회견을 열고 17년의 선수 생활을 마무리지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때문에 많이 힘든 시기에 발표하게 돼 죄송스럽고 감사하다"고 말문을 연 양동근은 "항상 은퇴라는 단어를 마음에 두고 경기에 나섰다. 어제 오늘 열심히 뛴 것으로 만족하자는 마음을 갖고 있었기에 은퇴에 대한 아쉬움은 그렇게 크지 않다"고 웃었다. 또 "선수로서 코트에 설 수 없겠지만 제게 주신 응원과 사랑, 그리고 보고 배운 부분들을 많이 공부해서 다시 코트로 돌아오겠다"고 '지도자 양동근'의 복귀를 약속했다. 이날 양동근은 기자회견에 동석한 박병훈 현대모비스 단장과 유재학 감독, 그리고 함지훈, 조성민 등 동료들에게 꽃다발을 받고 포옹을 나누면서도 자꾸 "울어도 되냐"고 물었다. 준비해 온 이별사를 품에서 꺼내면서도 "적어온 게 있는데 좀 울겠다, 죄송하다"고 예고했다. 그러면서도 농담을 곁들여 가며 자신의 농구 인생을 처음부터 돌이키고, 고마운 이들의 이름을 불러나가던 양동근이 끝내 눈물을 보인 건 가족에게 감사의 말을 전할 때였다. 그는 "어릴 때 굉장히 말을 안들었다. 부모님 말씀도 안듣고 공부 안하고 학원도 안 가고 농구시켜 달라고 졸랐다"며 "부모님의 희생이 없었다면 저도 이 자리에 없었을 것"이라고 얘기했다. 또 "시즌 중 아빠 역할까지 다 해준 우리 아내, 무득점을 하고 돌아와도 잘했다고 박수쳐 준 아들, 가족의 힘으로 마흔 살까지 잘 버틸 수 있었던 것 같다. 원동력이었다"고 가족에 대한 고마움을 전했다.. "농구를 하면서 가장 많이 했던 말이 Sorry, Thank you 였던 것 같다. 패스를 잘하는 가드가 아니니까 알아서 움직이라고 했는데 이해해주고 믿어준 우리 선수들에게 고맙다"고 선수들에게도 고마움을 전한 양동근은 "울산 팬들은 원정에서도 상대 홈팀 팬들보다 소리를 많이 질러주셨고, 홈에서는 그보다 더 큰 소리로 응원해주셨다. 그런 함성을 들을 수 있어 행복했고 앞으로도 그 함성을 잊지 않고 최선을 다하겠다"고 팬들의 마음을 달랬다. 다음은 양동근과 일문일답. Q. 선수 인생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은? 첫 번째 통합우승 때가 가장 기억에 많이 남는다. 그리고 아시안게임 금메달인 것 같다. 모든 순간이 좋은 기억으로 남아있다. 우리가 성적이 안 좋았던 시즌이던, 좋았던 시즌이던 제가 소속되어 뛰었기 때문에 좋은 기억으로 남아있고 아쉬웠던 적은 딱히 없다. 지금 이 순간이 오니까 모두 좋게 기억되고 모든 순간이 소중했던 것으로 기억에 남는다. Q. 지금에 와서 다시 돌이켜본다면 유재학 감독은 양동근에게 어떤 존재인지? 어렸을 때는 굉장히 냉정하시다는 생각을 했다. 시간이 지나면서 냉정함보다 정이 정말 많으시다는 걸 느꼈다. 또 감독님은 꼭 우리가 못 본 걸 질문하신다. 아직 선수라서 그런지 세세한 것까지 잘 안 보이는데 감독님은 딱딱 짚어주셔서 그 부분을 다시 보게 된다. 그런 부분들을 잘 배웠고 지금도 배우고 있다. 내가 이 자리 있기까지 만들어주신 분이다. Q. 은퇴 결정 내린 이유?은퇴 생각은 매년 FA 때마다 했던 것이다. 올해 은퇴를 결정하게 됐지만 작년에 은퇴했더라도, 어차피 내 결정이기 때문에 나쁜 결정을 했을 거라고 생각하진 않는다. 다른 팀 가드와 경쟁하고, 우리 팀 선수들과 경쟁해서 차지한 자리고 지금까지 해온 성과들로 뛰는 게 아니다. 그러나 지금은 나도 힘들고 경쟁력이 떨어져 은퇴 결심을 내린 것이지, 특별히 큰 의미를 둔 건 아니다. Q. 자녀들에게 자랑하고 싶은 경기가 있다면?우리 아들이 더 잘 알 것이다. 나보다 더 많이 본다. NBA뿐만 아니라 더 많은 경기보고 저에게 알려주기 때문에. 모든 경기가 다 자랑스러웠을 것이다. Q. 가족들과 상의는?은퇴는 늘 달고 살았던 말이기 때문에 집에서는 더 많이 했다. 은퇴할까? 하고 밥 먹듯이 얘기했으니까. 알고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내 결정 존중해줬고, 항상 준비해왔던 일이기 때문에 당황스러워 하지는 않았다. 이렇게 끝난 시즌이 아쉬울 뿐이다. 언제 은퇴해도 이상하지 않을 상황이었다. Q. 초·중·고, 대학교, 프로까지 많은 선수들과 상대해봤는데 마지막 한 경기 뛸 수 있다면 4명 누구랑 뛰고 싶나.답변 길어질 것 같은데…(웃음). 학창시절 때 같이 농구했던 선수들이랑 다시 한 번 뛰어보는 게 제일 재밌을 것 같다. 고등학교 때는 좋은 선수들이 워낙 많아서 저도 못 뛰었으니까. 1번은 (김)도수다. 도수가 같이 초등학교 때부터, 저 때문에 농구를 시작했으니까. 초등학교 때 느낌을 갖고 도수를 뽑을 것이고. 대학교 때로 치면 (조)성민이. 여기 와있어서 뽑는 건 아니지만(웃음). 성민이는 항상 내 마음 속에 있는 동생이고, 크리스 윌리엄스도 뽑겠다. 그리고 (함)지훈이는… 너무 많이 뛰어봐서 지겨워서 빼겠다. (이)종현이는 부상 때문에 좀 시간이 필요했던 선수기 때문에 뛰고 싶다. 아예 12명 채울 걸 그랬다. Q. 앞으로 계획과 어떤 지도자가 되고 싶은지?공부도 많이 하고 싶고, 또 쉬고 싶기도 했다. 코로나19 때문에 많이 힘든 상황이라서 아직 구체적으로 결정된 것은 없다. 유재학 감독님이 어떻게 지도하고 선수를 어떻게 이해시켰는지, 그런 부분을 지금도 배우고 있다. 더 많이 배워야 하기 때문에 어떤 식의 지도자가 되겠다는 건 아직 생각하기 어려운 부분이다. 저만의 색깔을 찾을 수 있는 지도자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Q. 역대 최고의 선수라는 평가에 대해?내가 최고라는 얘기는 한 번도 한 적이 없고 그렇다는 생각도 해본 적이 없다(웃음). 기사들 올라와서 보면 욕을 많이 하시더라. 나는 그런 얘기 한 적 없는데, 내색은 안하지만 속상하다. 선수들도 상처 많이 받으니 덜 미워해 주셨으면 좋겠다. 역대 최고… 최고라고 생각하진 않는다. 남들보다 열심히, 한 발 더 뛴 선수일 뿐이다. Q. 그렇다면 어떤 선수로 기억되고 싶은지.팬들에게는 '저 선수가 있을 때 믿음이 간다', '이기든 지든 저 선수가 한 번이라도 뛰었으면 좋겠다', '열심히 하는 선수'라는 기억으로 남고 싶다. 또 선수들에게는 저 형, 저 동생, 저 친구랑 뛰었을 때가 참 좋았구나 그런 생각 갖게 하는 선수로 남는다면, 성공한 농구 인생이 아닐까 싶다. Q. 등번호 6번 영구결번 사연이나 의미? 신인 때 백넘버가 3번 6번 남았는데 (유재학)감독님이 말씀하셨다. 왜 안 정하냐고. 그래서 3번 6번 남아서 고민 중이라고 했더니 '6번 해' 그래서 '네'하고 정했다. 알고 보니까 감독님이 6번 달고 선수 생활을 하셨잖나. 겉으로는 말씀 안 하시지만 '그래서 6번 주셨구나' 하고 생각했다. Q. 은퇴 투어 꿈꿔본 적은 없나?그런 꿈은 많이 꾼다. 그런데 속으로 '아, 올해까지만 하고 관두겠다' 이런 생각을 항상 해오기도 했고, 은퇴 투어는 내가 받아야 할 건 아닌 것 같다. 내가 그렇게까지 해야 할 선수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또 은퇴를 정해 놓고 뛰는 시즌은 어떨까 생각해봤는데 동기부여도 많이 안 생길 것 같더라. 그냥 꿈만 꿔봤다. 김희선 기자 kim.heeseon@joongang.co.kr
2020.04.01 17: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