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구
'한국인 최초 UCL 출전' 설기현 "손흥민, 월드컵 결승과 견줄만한 무대 밟은 것"..."우승하길"
"유럽 선수들 사이에서 유럽축구연맹(UEFA) 챔피언스리그는 월드컵과 동급인 대회로 여겨져요. 그런 대회 결승에 한국 선수가 나서는 건 대단한 일이죠." 설기현 전 성균관대 감독은 UEFA 챔피언스리그를 떠올리면 할 말이 많다. 그는 한국인 최초로 '별들의 잔치'로 불리는 UEFA 챔피언스리그 예선과 본선에 출전한 인물이다. 2001년 8월 9일 안더레흐트(벨기에) 유니폼을 입고 챔피언스리그 예선 3라운드 할름스타드(스웨덴)와 1차전에 나선 설기현은 2001년 9월 12일 대회 A조 조별리그 로코모티브 모스크바(러시아)와 1차전 후반에 교체 투입돼 본선에서 뛰는 기록까지 세웠다. 스타트를 끊었다는 자부심 이후 정상을 밟아 보지 못했다는 아쉬움도 갖고 있다. 설기현은 안더레흐트에서 총 두 차례 챔피언스리그 본선을 경험했지만, 조별리그를 통과한 적은 없다. 최근 서울 잠실의 한 카페에서 만난 설기현은 자신의 챔피언스리그 경험담을 들려주고, 또 이번 시즌 결승전을 앞둔 후배 손흥민(토트넘)에게 응원의 메시지를 전했다. 토트넘은 다음 달 2일(한국시간) 스페인 마드리드의 에스타디오 메트로폴리타노에서 리버풀(이상 잉글랜드)과 2018~2019시즌 UEFA 챔피언스리그 결승전을 치른다. 맨체스터 시티(잉글랜드)와 대회 8강 1·2차전에서 3골을 몰아친 손흥민은 선발 출전이 예상된다. 한국 선수가 챔피언스리그 결승에 오른 것은 박지성(당시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 이어 두 번째다. 설기현은 이런 손흥민이 대견하고 자랑스럽다고 했다. "챔피언스리그는 유럽 빅리그에서도 일부 강팀에 소속된 소수의 선수들에게만 허락된 무대라는 인식이 있다. 본선 출전 자체만으로 자랑스럽게 여긴다. 현지 팬과 언론의 관심도 월드컵을 넘어서서 한참 전부터 들썩들썩할 정도다. 그러다 보니 선수가 느끼는 부담감과 긴장감이 정규 리그나 자국 컵대회와는 비교할 수 없다. 손흥민은 압박감을 이겨 낸 것은 물론이고 소속팀을 결승으로 이끈 주역이다. 손흥민이 마지막 관문을 넘어 나의 꿈이기도 했던 챔피언스리그 우승 트로피를 들어 올리길 바란다." 광운대 시절인 2000년 벨기에 주필러리그 앤트워프로 건너가 유럽 생활을 시작한 설기현은 안더레흐트(2001~2004년·벨기에) 울버햄프턴(2004~2006년·잉글랜드)을 거쳐 2006년 레딩 유니폼을 입으며 꿈의 무대인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1부리그)에 입성했다. 이후 풀럼(2007~2009년)으로 옮겨 2년을 더 활약했다. 10년간 유럽에서 뛴 설기현이 가장 잊지 못하는 순간은 첫 챔피언스리그 출전이다."나는 2002 한일월드컵 직전에 유럽에 진출했다. 그때만 해도 유럽에서 뛴다는 것이 생소했다. 유럽 2년 차에 안더레흐트에 입단하니 챔피언스리그 예선에 나가는 팀이었다. 챔피언스리그는 유럽에서도 특별한 대회라는 걸 그때 처음 알았다. 벨기에에선 강팀에 속하고 나름 유럽 클럽 대항전에 자주 나서는 팀 동료들도 챔피언스리그는 긴장되는 경기라고 했다. 내 데뷔전은 어떻게 지나갔는지도 모르겠다. 적응하느라 정신없었다.(웃음)" 하지만 설기현의 첫 챔피언스리그 도전은 강렬했다. 안더레흐트는 2001~2002시즌 챔피언스리그 본선에서 레알 마드리드(스페인) AS 로마(이탈리아) 모스크바와 같은 조에 편성됐다. 레알 마드리드는 해당 시즌 우승을 차지한 팀이다. "말로만 듣던 레알 마드리드와 한 조가 됐다. 당시 레알 마드리드는 지네딘 지단·루이스 피구·라울 등 전설 같은 선수들이 즐비한 팀이었다. 원정경기를 치르러 갔는데 경기장부터 라커 룸까지 규모가 대단하더라. 안더레흐트도 나름 벨기에 국가대표 선수들이 뛰고 좋은 선수들이 많은 팀이었는데, 긴장한 게 눈에 보였다. 러시아 원정은 관중 분위기가 정말 살벌했다. 이제 막 유럽에 온 신예였던 내 눈에는 나라마다 경기장 분위기가 다른 게 신기했다."이후 설기현은 2003~2004시즌 한 차례 더 챔피언스리그 조별리그를 경험했다. "두 번째가 되니 여유가 좀 생겼다. 경기 전 챔피언스리그 주제가가 울려 퍼지는데 온몸에 소름이 돋더라. 기분이 참 좋았다. 그 후 레딩과 풀럼에서 뛰면서 프리미어리그 선수들에게는 챔피언스리그 출전 자체가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느꼈다. 당시 프리미어리그는 빅4라고 불리던 맨유·첼시·아스널·리버풀이 대회 출전권을 독식하고 있었다. 지금도 챔피언스리그 주제곡을 들으면 속에서 무언가가 막 올라온다. 축구의 본고장인 유럽 선수들 중에서도 아무나 들을 수 없는 노래라고 생각하면 전율을 느낀다." 설기현은 마지막 무대까지 올라온 손흥민이 정상에 오르기를 바란다. "나는 챔피언스리그 토너먼트와 결승을 경험해 보지 못했지만, 월드컵(2002년 대회 4강·이탈리아와 16강전 득점)을 경험한 덕분에 분위기는 알 수 있다. 손흥민은 특별히 조언할 게 없을 만큼 절정의 골 감각을 지니고 있다. 컨디션이 좋은 공격수는 상대 수비에게는 무서운 존재다. 리버풀이 익숙한 팀이라는 점도 손흥민이 강점을 발휘할 수 있는 조건이다. 올 시즌 트레블을 달성한 맨시티를 상대로 3골을 넣은 건 컨디션과 경험에서 나온 것이다." 그는 이번 무대는 선수 경력에도 정점을 찍을 수 있는 기회라고 내다봤다. "선수들에게 챔피언스리그는 기회의 장이다. 좋은 활약을 한 중소 리그 선수는 빅리그에 진출하고, 빅리그 소속 선수는 더 좋은 팀으로 가거나 몸값을 높일 수 있다. 손흥민은 지금도 좋은 팀에서 좋은 활약을 하고 있지만, 이번 기회를 통해 최고 위치까지 올라가길 바란다." 피주영 기자 akapj@joongang.co.kr
2019.05.27 07: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