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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일반

[이석무의 파이트 클럽] 프로레슬링에 진심인 사람들...그들은 왜 무모한 도전을 할까

“솔직히 어떻게 발전할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그래도 어쨌든 우리는 하고 싶은 것을 다 하면서 재밌게 놀 생각입니다.” 한때 프로레슬링은 한국에서 가장 인기 있는 스포츠였다. 적어도 1960~70년대에는 그랬다. ‘박치기왕’ 김일이 거구의 외국 선수들을 박치기로 쓰러뜨리는 모습에 다들 열광했다. 동시에 힘겨웠던 삶의 무게를 이겨내는 데 프로레슬링은 큰 힘이 됐다. 하지만 1980년대 신군부가 들어서면서 프로레슬링은 빠르게 쇠퇴했다. 안 그래도 ‘레슬링 쇼’ 논란으로 큰 몸살을 겪었던 프로레슬링이었다. 야구, 축구 등 구기 스포츠 프로 시대가 본격적으로 열리면서 국민들 기억 속에서 잊혀갔다. 김일이 2006년 지병으로 별세한 뒤 프로레슬링은 그의 수제자였던 이왕표가 2010년대까지 명맥을 이었다. 이왕표는 몰락하는 프로레슬링을 살리기 위해 고군분투했다. 하지만 그마저도 2018년 담낭암으로 세상을 떠나면서 한국에서 프로레슬링 시대는 저무는 듯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한국 프로레슬링이 완전히 끝난 건 아니다. 미국이나 일본처럼 수만 명의 팬이 모이는 으리으리한 대회를 열지는 못해도 어디에선가 선수들은 몸을 던지고 팬들은 환호를 보낸다. 지난달 30일 서울 도봉구 방학동에 있는 올스타디움이라는 곳에서 ‘AKW 더 인베이전’이라는 대회가 열렸다. AKW는 ‘전한국프로레슬링(ALL-KOREA WRESTLING)’의 약자다. 2021년 4월 공식 출범한 뒤 올해 4월 첫 대회에 이어 두 번째 대회를 개최했다. 공연기획홍보 전문가이자 열혈 레슬링 팬인 이해동(35·활동명 헤이든) 씨와 미국 출신 베테랑 프로레슬러 브라이언 레오가 공동 대표를 맡고 있다. 그냥 보더라도 대회는 초라하다. 헬스와 격투기를 겸업하는 체육관에 150~200명 정도 관중이 찾아와 경기를 관전했다. 물론 이들은 열렬한 마니아들이다. 미국이나 일본의 메이저 단체와 비교할 수 없는 수준이지만, 그래도 한국에서 프로레슬링은 열리고 있었다. 미국 WWE에서나 볼 법한 사다리나 테이블, 철제의자를 이용한 공격도 펼쳐졌다. 심지어 압정이 링 바닥에 깔린 가운데 그 위로 선수가 떨어지는 위험천만한 장면도 연출됐다. 현재 한국에서 프로레슬링을 산업이라 표현하기 어렵다. 선수들이 프로레슬링으로 먹고사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래서 다들 평소에는 본업에 열중한 뒤 틈틈이 시간을 내 프로레슬링을 연습하고 대회를 준비한다. 현재 한국에서 프로레슬링을 제대로 훈련받고 경기를 소화할 수 있는 선수는 대략 20명 정도라고 한다. 대회를 개최하고 단체를 이끄는 헤이든 대표에게 물었다. 왜 한국에서 주목받지 못하는 프로레슬링을 하는지. 공연 기획과 연출 분야에서 잔뼈가 굵은 그는 이렇게 말했다. “처음엔 그냥 제가 좋아하니까 막연하게 한번 해보자 생각했죠. 그동안 연국, 뮤지컬 등을 준비하면서 프로레슬링도 잘 만들면 재밌는 콘텐츠가 되지 않을까 기대가 되더라구요. 많지는 않지만, 어느 분야보다 콘크리트처럼 단단한 팬층도 있어요.” 헤이든 대표는 AKW 프로레슬링을 철저히 콘텐츠 비즈니스 측면으로 접근하고자 한다. 프로레슬링이 각본에 의한 스포츠 엔터테인먼트라는 것은 이미 다 아는 사실. 그렇다면 아예 더 재밌게 만들어 확실한 볼거리를 주자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이는 전세계적으로 큰 인기를 모으는 WWE의 방향과도 일치한다. “저희는 프로레슬러들을 단순히 선수가 아닌 아티스트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직접 아이디어를 내고 우리 콘텐츠를 오프라인(경기장)은 물론 온라인(유튜브, SNS)으로도 빛내주는 아티스트입니다. ‘온라인이든 오프라인이든 재밌게 만들어 보여주자’라는 생각으로 함께 힘을 모으고 있습니다.” 심지어 재밌는 콘텐츠를 위해 헤이든 대표는 자신의 실제 결혼식까지 이용했다. 결혼식이 한창 진행 중인데 악역 프로레슬러들이 방해하기 위해 난입한 것. 헤이든 대표 말에 따르면 결혼식에 참석한 하객은 물론 아내조차 이런 일이 벌어질 줄 몰랐다고 한다. 그 장면은 AKW 유튜브 영상에 고스란히 남아 있다. ‘아내에게 허락은 받았나’라고 질문하자 헤이든 대표는 “제가 아내한테 계속 잘해야죠”라며 고개 숙였다. 아직은 초보 단계다. 여전히 프로레슬링에 대한 편견은 흥행에 큰 걸림돌이다. 미국, 일본의 메이저 단체와 비교되는 점도 부담스럽다. 그래도 새로운 가능성을 위해 조금씩 앞으로 가려고 한다. “거창한 목표를 세우거나, 큰 성공을 바라는 것은 아니고요. 그냥 우리가 좋아하는 것을 재밌게 해보자는 마음으로 시작했습니다. 여러 사람이 힘을 합치고 아이디어를 모으면서 조금씩 반응도 나타나는 것 같습니다. 저희는 ‘제발 프로레슬링을 살려주세요’라고 부탁하지 않습니다. 대신 ‘재밌으면 팬들이 보러온다’는 믿음을 갖고 새로운 콘텐츠를 열심히 만들어볼 생각입니다.” 2022.11.04 07:00
스포츠일반

[이석무의 파이트 클럽] 프로레슬링은 어떻게 '현대의 신화'가 되었나

프로레슬링은 스포츠 엔터테인먼트다. 사전에 정해진 계획에 의해 경기가 진행되고 승패가 결정된다. 경기에 참가하는 선수들에게 승패는 큰 의미가 없다. 어떻게 하면 더 멋진 볼거리를 만들어 팬들을 즐겁게 할 것인가가 가장 중요한 가치다. 전 세계 최대 프로레슬링 단체인 미국 WWE의 ‘E’도 바로 ‘엔터테인먼트’(Entertainment)를 의미한다. WWE 이벤트는 마치 연극이나 콘서트처럼 처음부터 끝까지 철저한 각본에 의해 진행된다. 매주 방송이 되기 때문에 사랑과 우정, 갈등과 배신 등 주말 드라마 같은 스토리가 펼쳐지기도 한다. 그래서 WWE에서 직접 레슬링을 하는 선수만큼 중요한 역할을 하는 주인공이 프로듀서와 작가다. 선수들은 WWE에서 인정받으려면 레슬링도 잘해야 하지만 연기력도 갖춰야 한다. 오히려 뛰어난 연기력을 갖추고 마이크 워크라고 부르는 언변까지 겸비하면 더 큰 인기를 얻을 수 있다. 드웨인 존슨이나 존 시나, 데이브 바티스타 등 WWE 프로레슬링 선수 출신이 오늘날 할리우드에서 가장 주목받는 배우로 자리매김한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한국도 한때 ‘박치기왕’ 김일을 앞세운 프로레슬링이 최고 인기를 누리던 시기가 있었다. 하지만 1970년대 ‘프로레슬링은 쇼’ 폭로 이후 인기가 내리막길로 접어들었다. 오늘날은 몇몇 젊은 선수들을 중심으로 간신히 명맥을 잇는 수준이다. 전 세계적으로 보면 프로레슬링은 급성장하는 스포츠 사업이다. WWE의 지난해 전세계 매출은 무려 11억 달러(1조4324억원)에 이른다. 당기순이익도 1억8000만 달러(2333억원)를 넘어섰다. 미국 주식시장에 상장돼있는 WWE의 시가 총액은 54억 달러(7조330억원)에 달한다. 얼마 전 ‘불륜 스캔들’로 WWE 회장직에서 물러난 빈스 맥맨은 총 재산이 4조원이 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사실 미국 프로레슬링도 1970년대까지만 해도 크게 주목받지 못했다. 서커스단처럼 지역 행사장을 떠돌거나 술집 등에서 경기가 열리는 B급 문화로 무시당했다. 미국 밖에서는 프로레슬링이 아메리카 문화의 천박성을 보여주는 분야로 지적받기도 했다. 프로레슬링이 본격적으로 전성기를 맞이한 것은 1980년대부터다. 아이러니하게도 ‘스포츠’라는 가면을 과감히 벗어던지고 엔터테인먼트 요소를 전면에 내세우면서 큰 반응을 얻기 시작했다. 매주 방송되는 프로레슬링에 극적인 요소를 가미하자 팬들은 더욱 열광했다. 프로레슬링을 잘 모르는 사람들은 ‘짜고 치는 고스톱을 누가 보느냐’며 곱지 못한 눈길을 주기도 한다. 아이러니하게도 그런 요소가 오늘날 프로레슬링을 인기 스포츠 이벤트로 만들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WWE의 1년 중 최대 이벤트인 ‘레슬매니아’는 북미미식축구리그(NFL) 결승전인 ‘슈퍼볼’ 등과 더불어 미국 내 최대 스포츠 이벤트로 자리매김한 지 오래다. 필자가 현장에서 직접 관람했던 2019년 레슬매니아는 미국 뉴욕 메트라이프 스타디움에서 열렸는데 무려 7만명이 넘는 대관중이 운집했다. 몇 주 뒤 방탄소년단 콘서트가 열리기 전까지 해당 경기장 최다 관중을 기록한 이벤트(미식축구 경기 제외)였다. 대중들은 왜 진짜 스포츠가 아닌 프로레슬링에 열광할까. 세계적인 인문사회학자이자 기호학자인 롤랑 바르트(1915~1980)는 자신의 유명 저서인 ‘현대의 신화’에서 당시 B급 문화였던 프로레슬링에 대해 언급해 눈길을 끈다. 바르트는 프로레슬링을 ‘인간 희극’(ComedieHumaine)이라고 규정했다. 그는 “사람들이 레슬링에서 재현되는 고통을 구경하는 것은 고대 연극 주인공들이 연기하는 괴로움을 보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강조했다. 프로레슬링이 설령 조작된 스포츠라 하더라도 보는 사람들에게 진실의 문제는 크게 중요하지 않다는 것이다. 바르트는 “프로레슬링은 비극적인 가면을 온갖 과장된 행동으로 확대해 인간의 고통을 보여준다”며 “프로레슬러들은 현실의 정의나 규칙에서 벗어나 구속이 없는 새로운 세계의 문을 열어준다. 현실에서 느낄 수 없는 극한지대로 이끌어 관중들의 분노를 끌어낸다”고 말한다. 실제로 프로레슬링에서 펼쳐지는 기술이나 연기는 현실에서 일어나기 힘든 것들이 많다. 비현실적인 움직임과 스토리를 통해 사람들은 내가 살고 있는 곳의 불만과 고통을 잠시나마 잊을 수 있는 것이다. 그렇게 이해하고 본다면 프로레슬링은 단순히 만만하게 얕잡아볼 만한 콘텐츠가아니다. 프로레슬링을 ‘현대의 신화’라고 부르는 것도 결코 무리가 아니다. 2022.08.12 06:30
스포츠일반

어린이날, '차세대 이왕표'가 뜬다!...프로레슬링 대부 이왕표 후계자 발굴

한국 프로레슬링의 '차세대 이왕표'를 발굴하기 위한 빅매치가 펼쳐진다.이왕표는 다음달 5일 서울 화곡동 KBS 스포츠월드에서 2018 세계프로레슬링기구(WWA) 국제프로레슬링대회(경동건설산업 주관·대한종합격투기협회 주최)를 연다. 이번 대회엔 임준수(WWA 챔피언 타이틀 도전)·김민호(극동 챔피언 타이틀 매치) 등 특급 선수들이 대거 출전해 프로레슬링의 자존심을 세운다. 어린이 날에 열리는 대회인 만큼 다문화 가정과 불우이웃 어린이들을 초대해 장학금을 전달하는 이벤트도 마련했다. 또 온 가족이 부담없이 레슬링을 즐길 수 있도록 입장료를 받지 않는다. 한국프로레슬링연맹 총재를 맡고 있는 이왕표는 "우리 세대는 어린 시절 레슬링을 보며 꿈과 희망을 키웠다. 세월이 흘렀지만, 당시 감동을 재현할 만한 매치를 준비했다"면서 "선수 시절 어린이들에게 많은 사랑을 받았기 때문에 어린이날에 좋은 추억을 선물하고 싶었다. 모두가 공감할 수 있는 대회가 될 것"이라고 밝혔다. 전설의 프로레슬러 김일의 수제자 이왕표는 1975년 데뷔해 한때 WWA 헤비급 챔피언에 오르는 등 인기를 누린 한국 프로레슬링의 산 증인이다. 1980년대 이후 프로레슬링 인기가 쇠락한 가운데서도 이왕표는 2009년과 2010년 종합격투기 출신 밥샙과 타이틀전을 치르는 등 식지 않는 열정을 과시했다. 2013년 담도암 판정을 받고도 불굴의 의지로 이겨냈다. 병마와 싸우는 동안에도 레슬링 후배들만 생각해 왔다고 한다. 그런 이왕표에게 이번 대회는 남다른 의미가 있다. 한국 프로레슬링이 젊은 세대로 넘어가는 전환점에서 그는 자신의 후계자를 점찍을 예정이다. 이왕표는 "건강할 때 후계자를 정하고 차세대를 만들고 싶다"면서 "차세대 레슬러를 찾기 위한 대회라고 타이틀을 붙이고 싶다"고 말했다.어떤 선수가 '차세대'의 자격을 갖췄냐는 질문에 "나는 링 위에선 물론 암과 싸우는 과정에서도 '할 수 있다'는 희망을 주려고 노력했다"면서 "후배들도 그런 사명감을 갖고 '어떤 역경도 이겨낼 수 있다'는 메시지를 줄 수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번 대회를 지켜본 뒤 오는 10월 후계자를 지명할 예정이라는 이왕표는 "살아있는 한 한국 레슬링을 위해 달릴 것"이라고 다짐했다. 피주영 기자 2018.04.24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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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3억원 기부" '무한도전'의 사회·경제적 가치

'무한도전'이 단순 예능 프로그램이 아닌 것은 사회·경제적으로 미치는 영향을 통해 알 수 있다.예능 프로그램이 기부한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었다. 멤버들이 연중 프로젝트로 진행한 콘텐트를 시청자들이 구매할 경우 기부가 되는 기부의 새 방식을 제시했다. '이런 기부 방식도 있구나'라는 가이드라인을 제시한 셈이다.'어떤' 프로젝트를 통해 '얼마'가 모였고, 그것을 '어디'에 썼는지 정확히 표시했다. 기부금은 있지만 기부처는 모르는 투명하지 못한 기부 시스템과는 달랐다. '무한도전'이 지금까지 기부한 금액은 63억원이다.아이돌의 MD(팬 상품)는 대중화된 지 오래다. '무한도전'은 달력을 비롯해 다이어리·볼펜 등 다양한 상품을 만들어 판매했다. 판매금은 모두 기부했다.2008년부터 3년간 달력 만들기 특집을 해 왔다. 이후에도 방송으로 볼 수는 없었으나 계속해서 달력을 만들었다. 한때는 달력이 판매되는 날 홈페이지가 다운되고 품절 사태가 일어나는 등 그 파급력은 어마어마했다. 심지어 중고 가격으로 원가의 몇 배 이상에 거래됐다. 달력 판매 수익금으로 사회공헌 사업이 조성됐다.'웨딩버스' 특집은 긍정적인 기부 문화를 보여 줬다. 하하의 결혼을 앞두고 멤버들이 하하의 결혼식에 축의금을 얼마나 낼 것인지를 두고 게임을 했다. 유재석은 최종 숫자가 6580이었고 단위는 화폐가 아닌 쌀의 무게를 나타내는 '㎏'이었다. 방송 당시 유재석이 쌀 6.5톤을 기부해야 되자 포털 사이트 실시간 검색어에 '쌀 6.5톤 가격'이 올라오는 등 관심이 엄청났다. 하하의 결혼식을 앞두고 축의금이 아닌 쌀 기부라는 새로운 방향성을 또 알렸다.벼농사 특집도 빼놓을 수 없다. 부지를 선정하는 것부터 모내기와 벼 수확까지 1년이 걸린 장기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무한도전' 멤버들이 땀 흘려 거둔 '뭥미'는 불우한 이웃들에게 전달됐다.아예 기부를 주제로 특집을 꾸렸다. 200회 당시 '기부가 좋다'로 기부를 장려했고 2년마다 해 온 '무도 가요제' 때 발매한 음원과 공연 수익금 역시 사회 곳곳에 기부했다. 이 밖에도 크리스마스캐럴 음원·WM7 프로레슬링 대회 등 수익금 모두 좋은 곳에 쓰였다.문화평론가 이호규 교수는 "'무한도전'이 전 국민의 예능으로 자리 잡을 수 있었던 이유 중 하나는 기부다. 그전까진 기부가 문화로 직결되지 않았지만 '무한도전' 이후 인식이 많이 달라졌다. 예능의 좋은 기능을 잘 보여 줬다"고 말했다.김진석 기자 2018.03.30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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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하 취중토크①] "잭블랙 형 사랑…사대주의자는 아니고요"

하하(37)의 직업을 JTBC '투유 프로젝트-슈가맨'처럼 세대별로 물어보자. 초등학생들에겐 열이면 열 예능인이란 답이 나올 거다. 20대 이상 세대에서도 열의 아홉은 예능인이라고 답할 거다. 그만큼 MBC '무한도전', SBS '런닝맨'의 영향이 크다. 한때 별명이 '초통령' '하로로' '키작은 꼬마' 아니었던가.가뭄에 콩 나듯 나오는 다른 대답도 있다. 바로 '가수'란 직업이다. 사실 하하는 가수가 맞다. 2001년 '지키리'란 그룹으로 데뷔한 나름 중견 가수다. 현재는 회사 동료 스컬과 레게 장르에 흠뻑 빠졌다. 처음에는 빌보드 가수 스컬에게 묻어간다고 욕도 먹었지만, 이젠 레게 신에서 제법 인정받는다. 자메이카식 인사말인 '야만'을 대중에게 알린 게 하하다. 레게에 대한 사랑과 노력만큼은 '리스펙'하는 분위기다. 이번 취중 토크 역시, 29일 정오 발매되는 스컬&하하의 새 싱글 이슈로 계획됐다. 그럼에도 질문은 자꾸 예능 쪽으로만 치우쳤다. '무한도전'만 놓고 봐도 최근 방송가에서 가장 화제가 된 '정준하 쇼미더머니5' 사건부터 '무도' 팀의 우주인 프로젝트까지 물어볼 게 많았다. '유재석은 정말 무결점의 사나이인가'라는 질문과 '무도'에서 한동안 멀어진 정형돈·노홍철·길의 얘기도 호기심을 자극했다.졸지에 음악 얘기하러 나왔다, '무도' 얘기에 바빴다. 그래도 싫은 기색은 없었다. 그의 얘기에선 '무도'에 대한 걱정과 기대감, 예능인이란 직업에 대한 재미와 의무감을 느낄 수 있었다. 2시간짜리 하하의 만담 쇼였다. 그러다 음악 얘기를 꺼내니, 자세부터 고쳐 앉고 사뭇 진지해진다. 음악과 레게를 향한 순수한 열정이 느껴졌고, 더 발전할 여지가 있는 가수란 생각도 든다. 10년 뒤 대중에게 하하의 직업을 물었을 때, 어떤 대답이 나올까. 가수일까, 방송인일까. 재미있는 상상을 해 보면서 유쾌한 하하와 소주로 흠뻑 취했다. ▶ 역시 무한도전 얘기부터 해볼게요. 지난 10년을 돌아봤을때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은요."제가 막 프로그램에 적응하고 있을 때 위기가 왔어요. 프로그램이 곧 없어진다고 하더라고요. 그러더니 김태호형이 마지막으로 뉴질랜드 특집을 찍는다는 거예요. 그때 멤버들끼리 이런 얘기를 했어요. '야, 뉴질랜드 가서 제대로 한번 하고 우리 스타일대로 멋있게 끝내자'고. '그래, 항복이다. 시청률이 안나와서 우리가 졌는데, 마지막은 제대로 놀고 오자'라고요. 그런데 거기서 '롤링페이퍼'가 터지면서 프로그램이 '확' 올라가게 됐어요.비하인드 스토리인데, 형돈이 형과 제 어색함을 다루는 설정은 '논스톱3'에서 이진-조한선이 실제로 한번도 만난적이 없었던 점에서 착안한 것이었어요. 미국 시트콤 '프렌즈' 의 피비와 로스의 어색한 캐릭터에서도 아이디어를 얻었고요. 그러고보니 저와 형돈이형이랑 안친하다는 걸 롤링페이퍼에 쓴 것인데, 당시 미안했던게 그 일로 형이 '못 웃기는 개그맨'이 된거예요. 하하하. 당시 형돈이형이 원망 많이 했을텐데, 저는 진심으로 그때 형돈이형 캐릭터가 너무 좋았어요. 형돈이형도 참, 그 캐릭터를 받아들이는 것도 보면 천재죠. 안웃겨서 웃긴 사람이 누가 있을까요." ▶ 집 떠난 정형돈씨는 가끔 만나시나요."연락은 가끔 하죠. 아무래도 '마음의 병'이니까, 그 고통의 크기가 정확히 어느 정도인지 가늠이 잘 안돼서 지켜보기에 괴로워요. 단지 '아주아주 고통스럽다'는 것만 짐작하고 있는것이죠. 빨리 치유되서 제자리로 돌아오셨으면 해요." ▶ '무도'를 오래 했는데, 본인에게 있었던 가장 큰 위기는 무엇인가요."복귀때죠. 공익 제대 후 복귀해 보니, 판도가 달라져 있더라고요. 일단 진행이 굉장히 스피디하게 변화돼 있었고, '무한도전' 안에서의 관계도 다 바뀌어 있었어요. 당시 형돈이 형이 날라다니기 시작하고 있었고, 도통 제가 어떻게 해야하는지 모르겠더라고요. 아무리 열심히 해도 도움이 안되니까 힘들었어요." ▶ 10년간 최고로 꼽는 기획은요."저는 프로레슬링이요. 진심으로, 참을성이 뭔지를 배운 기회였어요. 그해 여름에 한 순간을 쉬지 못한것 같아요. 비가 와도, 태풍이 와도 뛰었어요. 목디스크에 허리도 다치고, 발목과 손목이 다 망가졌어요. 저뿐만 아니라 재석이 형도 아직까지 당시의 후유증을 이야기하세요. '이렇게까지 하나'라고 생각했을 정도 였으니까요. 다른 사람들이 들으면 '재수없다'고 하실수도 있겠지만, 정말 '무도니까' 참고 했어요." ▶ '무도 가요제'라고 생각했는데요."반대입니다. 제가 가장 어려워 하고 부담스러워 하는 기획이 가요제예요. 제 자신의 위치가 너무 어중간하고, 창피하고 작아진다고 할까요. 제가 제 스스로를 '저 가수입니다'라고 말을 못하겠어서 생기는 문제인것 같아요. 이를테면 길 형이나 희열 형만해도 예능을 하지만 음악 얘기가 나오면 떳떳하게 '가수'가 되는데 저는 그걸 못하겠어요. 아직은요." ▶ 우주특집도 최근 화제죠. 과연 갈수 있을까요."안그래도 많이 궁금해 하시는데, 테스트를 해서 통과하는 사람은 가는것, 이거 아니겠어요? 간단한 문제죠. 자격이 없으면 못가는 것이고요." ▶ '무도' 역사상 가장 큰 기획이 될수도 있을텐데요."솔직히 말씀 드릴까요. 저도 믿기지가 않아요. 그리고 전 겁쟁이라서, 무서워요. 제가 바이킹을 안타고 롤러코스터 안타는 이유가, 기계를 못믿거든요. 불안한건 못하겠어요. 영화 '데스티네이션'이 떠오르고요. 하하" ▶ 과거 한 드라마 작가가 '무도' 멤버들이 '예능에서 너무 우는거 아닌가'라는 비판을 하기도 했어요. 진짜 성격이 그런가요."그런 비판이 있을 수 있어요. 그런데 진짜 성격들이 그래요. 번지 점프 무서워하고, 떨려해요. 그래도 재석이 형이 그나마 열심히 하는데, 제가 잘 알지만 그 형도 오직 방송을 위해서 하는거죠. 그렇게까지 심장이 강한 형이 아닌데, 정말 어마어마한 노력입니다. 저 역시 자메이카 절벽에서 떨어지는데, '밑에 내 아들이 빠져서 구하러 간다'는 생각을 얼마나 되뇌였는지." ▶ 최근 방송을 보면서 멤버들이 10년쯤 되니, 조금 쳐지고 힘이 드나라는 생각도 들었습니다."열정은 그대로지만 힘이 빠진 부분도 있겠죠. 멤버 공백도 있고, 광희도 아직 적응 중이죠. 무엇보다 멤버들이 나이도 들었고요. 말이 나왔으니 말인데, 확실히 '무도'는 어려워요. 국내 예능중 시청자, 팬들이 가장 엄격하다고 볼 수 있죠. '무도'를 출연자 만큼이나 아껴주셔서 그런거라고 생각해요. 예를들면 잭블랙형 특집 이후 제가 '사대주의'라는 비판을 듣고 있어요. 하하하. 해외스타를 너무 '모셨다'는 의미겠죠.리액션이 적어도 지적을 당하고, 열심히 해도 사대주의라는 말이 나와서 참 어렵고 힘든 프로그램이죠. 그래도 그 당시엔 특급 게스트 모셨으니 배려 해주고 살려주는게 맞다고 생각했어요. 차라리 '하하 리액션 꼴보기 싫다. 저 자식 왜 오바냐'하면 겸허히 받아들이겠는데, '저 자식 사대주의가 있네'라고 하시니 맥이 풀리더라고요. 저 진짜 솔직히 말씀드리는 겁니다. 죄송해요." 2편에서 계속 [하하 취중토크②] "형돈·홍철·길…다 모이면 얼마나 좋을까"엄동진·박현택 기자사진=김진경 기자▶일간스포츠 페이스북 (https://www.facebook.com/isplus1) 에서 하하 취중토크 비하인드컷을 보실 수 있습니다. ▶관련기사 [하하 취중토크①] "잭블랙 형 사랑…사대주의자는 아니고요"[하하 취중토크②] "형돈·홍철·길…다 모이면 얼마나 좋을까"[하하 취중토크③] "태호 형이 진짜 알파고, 천재인데 냉정해" 2016.03.29 10:30
경제

‘박치기왕’ 김일 의식불명…생명 위독

박치기왕 김일(77)씨 가 위독하다. 김씨는 25일 새벽 갑자기 복통을 호소한 후 혈압이 급격히 떨어지고 심장박동마저 불규칙해지며 의식을 잃었다. 김씨는 투병 중인 서울 하계동 을지병원 중환자실로 옮겨져 치료를 받고 있지만 아직 의식불명 상태다.병원 관계자는 “25일 새벽 중환자실로 옮겨져 왔지만 혈압이 오르지않고 있다. 동공도 열려 있고. 심장박동도 불규칙해서 이 상태가 지속되면 위험한 상황을 맞을 수도 있다”고 말했다.김씨는 지난 10월 초부터 급격히 기력이 떨어지면서 거의 식사를 하지 못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여기에 임파부종· 심부전까지 심해져 소변도 제대로 보지 못하고. 빈혈증세까지 나타나 기력이 매우 쇠퇴해졌다. 병원측은 체중도 75㎏에서 70㎏으로 떨어졌다고 전했다. 이에 따라 병원측은 투석을 위해 최근 김씨의 목 뒤 혈관을 뚫는 수술을 두차례 시도했다. 투석 후 김씨는 한때 기력을 회복했고 지난 20일에는 서울 중림동 보덕사에서 삼중스님이 주관한 부처님 사리 봉양식에 참석하기도 했다. 한편. 김씨의 후계자 이왕표는 이날 새벽 김씨가 위독하다는 소식을 듣고 프로레슬링 관계자들과 함께 병원을 찾아 김씨의 상태를 지켜보고 있다. 정병철 기자 2006.10.25 09:45
야구

``찬호 정말 장하고 대견해…``

"야구 선수 중 박찬호를 가장 좋아한다." `박치기 왕` 김일 씨(78)는프로레슬링으로 세계 정상에 우뚝 섰었다. 그래도 그의 몸에는 레슬링 못지않게 야구를 좋아하는 피가 흐르고 있나 보다. "레슬링을 하지 않았다면 야구 선수가 됐을 것"이라고 분명하게 밝힐 정도다. `일간스포츠와 함께하는 일본 대장정` 나흘째인 2일 오후 WBC(월드베이스볼클래식) 제1라운드(아시아 예선.3~5일)에 출전하기 위해 도쿄돔호텔에 머물고 있는 한국 야구대표팀을 방문, 격려한 김 씨는 한동안 박찬호(33.샌디에이고)의 손을 꼭 잡고 놓지 않았다. 너무 늦게 만나 아쉽다는 표정을 지으며. 그가 박찬호를 좋아하는 까닭은 뜻밖에도 단순했다. "미국에서 야구 선수로 대스타가 됐지 않았냐"며 "한국 사람이 그렇게 되는 것은 정말 힘든데 장하고 대견스럽다"라고 말했다. 그 기세를 이번 WBC에서도 유감없이 발휘, "대만과 일본을 반드시 꺾어 줄 것"을 당부했다. 박찬호도 인생은 물론 스포츠 분야의 대선배에게 한껏 경의를 나타냈다. 레슬링 후유증 때문에 각종 합병증과 씨름하고 있어 분명하지 않은 그의 말을 한마디라도 놓칠세라 다소곳이 손을 모으고 경청한 뒤 "모든 경기에서 최선을 다하겠습니다"라며 투지를 불태웠다. 김 씨는 또 "선동렬 감독을 매우 좋아한다"고 밝히며 선 감독(대표팀 투수코치)의 손을 어루만졌다. 그는 "선 감독이 뛰는 경기는 놓치지 않고 보았다. 하지만 만난 것은 처음이다"며 즐거워했다. 선 감독도 "저도 어릴 때 경기하시는 모습을 많이 봤습니다"며 어릴 적 경외의 눈으로 쳐다봤던 거목을 직접 만나게 된 것을 감격해했다.■야구광이라 해도 좋아 김 씨의 `야구 사랑`은 대단하다. 이번 일본 방문에 동행한 부인 이인순 씨(60)가 "그분이 TV를 통해 보는 스포츠는 레슬링.야구.축구뿐이다"라며 "한때 국내 유명 선수들의 타율은 물론 투수 승수까지 줄줄 외우셨다"라고 전하는 데서도 엿볼 수 있다. 이날 만남을 지켜본 그의 후계자 이왕표 대한종합격투기협회 회장은 "대한민국 최고의 스타들이 (김일) 선생님께 예의를 갖추는 모습을 보고 이들이 진정한 스포츠맨이란 것을 느꼈다. 이들이 오늘 이런 자세를 보임으로써 자신들도 훗날 후배로부터 대우받는 것이 아닌가"라며 흐뭇해 했다. 이날 보고 싶던 야구 스타들을 만난 후 김 씨는 `야구의 추억`에 대해서도 떠올렸다. 그는 스승 역도산을 비롯, 안토니오 이노키.자이언트 바바(99년 1월 작고) 등 동문들과 틈만 나면 역도산체육관 근처 고라쿠엔경기장으로 달려가 야구를 즐겼다고 회고했다. 그에 따르면 바바는 1950년대 말 일본 명문 요미우리 자이언츠에서 활약했던 투수 출신이다. 야구에서 레슬링으로 종목을 바꾼 이유는 부상때문이었다. 목욕탕에서 미끄러져 넘어지는 바람에 팔목이 부러졌다.그때부터 바바는 팔꿈치를 굽히지 못해 결국 야구를 그만뒀다. 그리고 역도산 권유로 레슬링에 입문했다. 이노키도 바바 못지않게 야구를 좋아했다. 김 씨는 "브라질로 이민 가육상(투원반) 선수로도 자질을 보였던 이노키는 팔목과 어깨 힘이 워낙 좋아 야구를 해도 대성할 선수였다" 라고 말했다. 김 씨는 "나와 스승님은 타석에만 섰는데 홈런성 타구를 여러 번 쳤다" 라며 당시의 추억에 젖어들었다.도쿄=정병철 기자 사진 이호형 기자 2006.03.03 00: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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