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는 독특한 `코미디 3단계 시스템`을 구축해 놓고 있다. 신인 개그맨들은 일단 <개그사냥> 을 통해 데뷔한다. 공채는 물론이고 일반인들 가운데서도 오디션을 통과한 사람들에게도 문호가 개방돼 있다. 여기서 가능성을 보인 사람들은 <폭소클럽> 을 통해 무대 적응력을 높인다. 그리고 여기서도 인정을 받으면 드디어 메인 무대격인 <개그 콘서트> 로 진출한다.
<개그사냥> 의 전신은 KBS 위성채널을 통해 방송됐던 <한반도 유머 총집합> . 현재 <개그콘서트> 의 주축인 강유미.안영미, 경쟁 프로그램인 SBS TV <웃찾사> 의 문세윤 등이 이를 통해 배출됐다. 지난해 4월부터 방송을 시작한 <개그사냥> 은 아예 <개그콘서트> PD와 작가진을 심사위원으로 출연시켜 재능있는 신인들을 즉시 발굴할 수 있는 시스템을 갖췄다.
고-강 콤비는 <개그사냥> 이 배출한 첫번째 성공작인 셈. <개그사냥> 의 서수민 PD는 이들의 강점에 대해 "폭넓은 사회 경험을 한 뒤, 비교적 나이가 든 상태에서 데뷔했기 때문에 갓 스무살 안팎에 데뷔한 친구들에게선 결코 기대할 수 없는 내공을 갖고 있다"고 평가했다.
세일즈맨서 댄스강사까지 다양한경력
`안되겠니`는 물론이고 `형이 하는 말 오해하지 말고 들어` `대한민국에 안되는게 어딨니, 다 돼` 등 하는 말마다 유행어가 됐다. 요즘은 녹화장에서 `형이 하는 말`까지만 하면 방청객들이 일제히 `오해하지 말고 들어`라고 합창을 한다.
온라인 게임 라펠즈의 웹 광고 모델로도 캐스팅됐다. 라디오를 듣거나 다른 오락 프로그램을 볼 때 사방에서 쏟아지는 `안되겠니`를 들으면 본인들이 어지러워질 정도다.
물론 여기까지 오는 길이 쉽진 않았다. 고혜성이 살아온 이야기를 듣다 보면 `참 이렇게 다양한 경력을 가진 사람도 있구나` 하는 생각이 절로 든다. 공익근무요원으로 제대한 뒤 간판 제작사에서 일하다가 사다리에서 떨어져 1년을 쉬고, 컴퓨터 세일즈맨, 퀵서비스, 나이트클럽용 댄스학원 강사, 레크리에이션 지도자(자격증을 대체 언제 땄는지 모르겠다) 등으로 살았다. 여러 인터뷰에서 "얼마 전까지 백수의 생활 그 자체였다"고 말했지만 사실은 항상 뭔가 하고 있었다.
"그게 그거죠. 항상 일을 한다고 했는데 제대로 월급 받아 본 적도 없고, 일 벌여 놓고 놀 때가 더 많으니까요." 집안형편이 어려워 대학 진학을 포기했던 고혜성은 지난해 6월, 신인들이 출연하는 KBS 2TV <개그사냥> 의 오디션도 떨어졌다. 약 10일 지나 잊어버릴 만할 때 <개그사냥> 의 조예현 작가가 전화를 걸어왔다. `우수한 성적으로 합격한` 강일구라는 친구의 파트너로 당신이 적격일 것 같으니 꼭 나와달라는 얘기였다. 10분 넘게 통화를 하다 보니 마음이 풀려 어디 한번 해 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여기서부터는 강일구의 이야기. "제가 사실 성격이 좀 소극적이거든요. 처음부터 얘기해서 마음이 통하는 사람이 그리 많지 않아요. 그런데 혜성이 형을 만나서 30분 만에 `이 사람이라면 같이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구요."
이때 같이 시작한 개그맨 지망생이 60여 명. 하지만 지금까지 당시의 팀을 유지하고 있는 것은 이들 고-강 듀오밖에 없다. `현대생활백수`의 아이디어는 우연히 다가왔다. "레크리에이션 강사 선배 중에 `∼안되겠니` 하는 말투를 자주 쓰는 사람이 있었어요. 평소에도 재미있다고 생각했는데 저 말투를 개그에 써 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더라구요."
강일구의 뜻도 같았다. 깐죽거리면서 약올리는 백수 역할은 당연히 고혜성, 장난인 걸 뻔히 알면서도 전화를 끊어버리지 못하는 `착한 업소 주인` 역할은 강일구의 몫이 됐다. 중국집에서 자장면을 먹다가 마침내 첫회의 아이디어를 완성했다.
"일구야, 짜장면은 얼마냐?"(고) "4000원인데요."(강) "그거 말야, 2000원에 안되겠니?"(고) "에엣?"(강) "단무지는 안 줘도 되는데, 그럼 그릇 설거지 해줄게 1000원에 안되겠니?"(고) "아유 몰라, 다 먹어, 다 먹어."(강) "왜 그래 일구야, 형이 돈 벌면 나중에 비싼 짜장 곱배기 한번 시켜먹을게."(고)
첫회분을 만들어 놓고 둘이 실컷 낄낄거리고 웃다가 잠시 불안해하기도 했다. "야, 이거 우리만 재미있는 거 아니냐?" 하지만 <개그사냥> 에서 공개한 <현대생활백수> 첫회는 그야말로 대박. 당일 심사위원으로 왔던 <개그콘서트> 의 장덕균 작가도 눈물이 나게 웃다가 바로 다음날 이들을 <개그콘서트> 로 발탁했다.
고혜성이 생각하는 `현대생활백수`의 인기 비결은 철저한 리얼리티. 매주 수요일 <개그콘서트> 의 녹화를 앞두고는 몸가짐부터 달라진다. 월요일부터는 면도도 하지 않고, 머리도 감지 않는다. `백수로 지내 본 사람만 아는` 행동방식이 그대로 표현된다.
강일구의 눈에 비친 고혜성은 더 지독하다. "얼마 전, 라면에 간장을 부어 먹고 `아 짜다` 하는 장면이 있었는데 형이 잠깐 고민하다가 `아무래도 진짜 간장을 써야겠다`면서 정말 간장을 콸콸 따라 먹더라구요. 저걸 어떻게 먹나 싶었죠."
고혜성은 아이디어 회의를 위해 요즘도 `진짜 백수`인 후배들을 불러모아 밥이며 술을 산다. `예비군 몇년차셔요` 하는 등의 주옥 같은 멘트가 모두 이들의 공이다.
워낙 오래 고생을 한 탓인지 둘의 소망은 아직 소박하다. 고혜성은 `빨리 돈을 벌어 집 한칸 마련하는 것`, 강일구는 `혈압이 높으신 어머니 치료비를 마련하는 것`이 당면 목표다.
고혜성의 `미녀의 기준`은 KBS 강수정 아나운서. 이 말이 떨어지자 강일구가 잽싸게 "얼마 전 한 시상식장에서 강 아나운서를 처음으로 가까이서 실물로 보더니 얼굴이 벌개지면서 한마디도 못하더라"고 고자질한다. 고혜성의 반격. "야, 너는 우리 기사 스크랩보다 안연홍 씨 기사 스크랩해 놓은 게 더 많으면서 뭘 그래." 이번엔 강일구의 입이 꿀먹은 벙어리가 된다.
강일구의 우상이 최양락이라면 고혜성의 영웅은 유재석. 현역 MC 중에서 최고인 것 같단다. MC를 하기엔 너무 부스스한 것 아니냐는 말에 분기탱천(?)하는 고혜성. "저 요즘도 외부 행사 아르바이트를 하는데요, 넥타이 매고 나가면 사람들이 절대 못 알아봐요. 언제고 `현대생활백수`를 떠나게 되면 완전히 다른 모습으로 변신할 테니 두고 보세요." 이들은 팬들에게 꼭 당부하고 싶은 말이 있다며 일어서는 기자의 발목을 잡았다. "어린이 여러분! 절대 중국집이나 소방서에 전화장난 하지 마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