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하다. 아쉽지만 잘 싸웠다."
비록 졌지만 천지가 온통 "대~한민국"을 외치는 함성으로 뒤덮였다. 19일 낮 WBC(월드베이스볼클래식) 준결승 한.일전을 전후해 서울.인천.대구.인천.울산.수원.포항 등 전국 곳곳에서는 `폭주 기관차` 한국 야구대표팀의 승리를 기원하는 길거리 응원이 펼쳐져 한반도가 그 열기로 화끈 달아 올랐다. 또 스타들도 국내외에서 `극일`을 기원하는 응원전을 벌였다. 한민족이 한마음 한뜻으로 뭉친 하루였다.
■2002년의 감동이 그대로
서울에서는 시청 앞 서울광장.청계광장.잠실야구장을 중심으로 대규모 응원전이 펼쳐졌다. `한.일 월드컵의 성지` 서울광장에는 경기 시작 1시간 전인 오전 11시께부터 그날의 감격 재현을 기대하는 시민이 모여들면서 연예인의 공연과 함께 분위기가 서서히 들뜨기 시작했다.
응원은 야구 대표팀 공식 응원단으로 떠오른 `파란 도깨비` 회원들이 무대 정면에 자리잡고 주도했다. 사실상 승부가 결정된 뒤인 8회 초 비로 경기가 한동안 중단되자 응원 대열에서 이탈하는 시민도 눈에 띄였으나 대다수는 끝까지 남아서 목청껏 "대∼한민국"을 외쳤다.
하늘에서도 응원의 열기는 뜨거웠다. 대한항공은 이날 종합통제센터를 통해 전 세계를 운항하는 자사 소속 모든 항공기에서 한.일전 경기 내용을 실시간으로 중계해 이따금씩 터지는 한국 승객들의 함성에 외국 승객들이 깜짝 놀라는 촌극이 벌어지기도 했다.
이날 시민들과 함께 응원한 이명박 서울시장은 "아쉽긴 하지만 일본에 2승 1패 했으니까 아주 훌륭하게 싸웠다고 본다. 야구에서 4강까지 간 것이 월드컵 4강까지 연결될 수 있는 좋은 징조인 것 같다"라고 말했다. 시민들도 "일본의 오만한 콧대를 다시 한 번 꺾어 주길 기대했으나 4강전에서 패해 아쉽다. 그러나 잘 싸웠다. 우리 대한 건아들이 자랑스럽다"며 첫 야구 월드컵인 WBC에서 또 한 번 4강의 기적을 이룬 우리 선수단을 격려했다.
■야구.축구가 따로 없었다
지역 응원은 야구.축구 경기장 위주로 펼쳐졌다. 인천 문학.대구 시민.부산 사직야구장, 그리고 당일 홈 경기를 치른 수원.울산.포항.대구 축구경기장 등은 대형 전광판을 통해 한.일전을 생중계해 관중의 뜨거운 호응을 얻었다.
잠실야구장은 3만여 명, 인천 문학야구장은 2만 5000여 명이 입장해 실제 경기를 방불케 하는 함성으로 경기장을 뒤흔들었다. 프로야구 구단들은 입장객들을 위해 무료로 응원 막대 등을 나눠 주고 치어리더와 함께 응원을 도왔다. 잠실야구장 마운드에는 대형 태극기가 깔렸고, 홈 팀의 응원단장이 응원을 유도하는 가운데 "대∼한민국"을 외치며 경기 시작을 기다렸다. 야구 대표팀 유니폼을 본 뜬 `KOREA`라는 문구가 적힌 하늘색 티셔츠도 경기 시작 전부터 불티나게 팔려 나갔다.
김인식 대표팀 감독과 함께 4명의 선수가 대표팀에서 활약하고 있는 한화 이글스는 이날 열릴 예정이었던 SK 와이번스와의 시범경기를 아예 취소하고 대전 한밭야구장을 무료로 개방했다.
야구장과 축구장 외에도 경기도 고양 종합운동장.경남 마산 종합운동장.진주 경남도 문화예술회관 등 중소도시까지 대형 전광판이 설치된 곳곳마다 수천 명의 시민들이 나와 한국 선수단을 응원했다.
■스타들도 국내외에서 하나가 됐다
MBC는 19일 오전 9시부터 3시간 동안 시청 앞 광장에서 시민 2만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응원 특집쇼 <가자 결승으로> 를 펼쳤다. 이선희.태진아.싸이.심은진.송대관.장윤정.바다.하리수.노라조.노브레인 등 인기 가수들이 총출동해 화려한 축하쇼를 벌였다. 이선희는 이날 무대를 위해 급히 <아리랑> 이란 응원가를 만들어 와 한민족의 힘을 응집시켰고, 노라조의 조빈은 야구복을 입고 무대에 서 열띤 환영을 받았다.
SBS는 서울 목동 본사 로비에서 오전 10시 50분부터 1시간 동안 일반인을 대상으로 한 응원전 을 마련했다. 임성훈과 박은경 아나운서가 사회를 맡고 천명훈과 장영란이 게스트로 참석해 시민들과 응원전을 펼쳤다. 프로그램이 끝난 후 시민들은 대형 TV 앞에서 함께 힘을 모아 응원했다.
KBS도 10시 45분부터 50분 간 2TV를 통해 <특집 2006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 이란 프로그램을 마련해 그동안 하일라이트를 보여 주고, 서울 잠실야구장을 연결해 시민 인터뷰 등 간이 응원쇼를 마련했다.
샌디에이고 현지에서도 연예인이 합심했다. 강병규.서경석.쥬얼리.채연.구준엽.에픽하이 등이 스타 응원단을 구성해 현지 응원에 나서 목이 터져라 "대한민국 파이팅"을 연호했다.
■야구 열기에 도심이 썰렁
역사적 승부가 열린 이날 극장가는 평소와 달리 썰렁한 모습이었다. 이날 오전 용산CGV에는 영화를 보려는 관객들은 10명 정도밖에 눈에 띄지 않았다. 직원 이 모 씨는 "평소 같으면 휴일에는 대부분 매진이었다. 야구 경기가 치러지는 오후 3시 이전까지 예매율이 20~30%밖에 되지 않는다"라고 말했다. 삼성동 메가박스의 경우에도 오후 3시를 전후해 예매율이 20% 이상 차이가 났다고 한 직원이 전했다.
휴일을 맞은 시민들이 외출도 삼간 채 TV로 경기를 지켜보느라 시내 곳곳에는 차량 흐름이 뜸해졌고, 전국 대도시의 백화점.대형 할인점 등은 시민들의 발길이 뚝 끊겨 한산한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대신 대형 TV와 멀티비전이 설치된 시내 식당가와 주요 역.터미널에서는 어김없이 한국 대표팀을 응원하는 함성과 환호가 터져 나왔다. 서울역 관계자는 "보통 주말 KTX는 잔여 좌석이 없는데 11시 15분 부산발 KTX의 잔여 좌석이 650여 석이나 됐다"라고 뜨거운 야구 열기를 전했다.
또 경기 시간이 점심 시간과 겹치면서 음식 배달업체에 주문 전화가 몰려 아파트 단지와 주택가에는 피자.치킨.자장면 등 음식물을 배달하는 오토바이들이 쉴 새 없이 오갔다.
강인형 기자 yhkang@ilgan.co.kr
김민규 기자 mgkim@ilgan.co.kr이영준 기자 blue@jesnews.co.kr
사진=양광삼 기자 yks01@jesnews.co.kr 특집> 아리랑>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