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 프로기사 입상자들에게 병역특례 혜택을 주는 병무청의 국제 바둑대회 리스트 정리가 시급하다. 병역특례 대상 대회는 잉창치배·후지쓰배·동양증권배 등이다. 동양증권배는 이미 1998년 폐지됐다.
국내 남자 프로기사들이 특례혜택을 받기 위해서 단 하나의 대회에 목을 매야 하거나 올림픽처럼 4년을 기다려야 한다. 동양증권배는 없어진 지 9년이 지나도록 여전히 병역특례 대상 대회목록에 올라 있다.
▲병역혜택에 포스트 이창호 두각
1994년 대체복무제도에 바둑이 포함되면서 첫 수혜자가 탄생했다. 92년 제3회 동양증권배 우승자 이창호 9단은 95년 8월부터 98년 2월까지 한국기원 소속 공익근무요원으로 병역의무를 마쳤다. 첫 수혜자가 탄생하면서 이세돌·최철한·박정상·박영훈·조한승·목진석·송태곤 등 ‘포스트 이창호’를 자처하며 한국바둑을 이끌어가는 기사들이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했다.
이같은 바둑 열기에 힘입어 97년 삼성화재배와 LG배 세계기왕전 등 세계대회가 잇달아 탄생하기에 이르렀다. 그러나 동양증권이 외환 위기를 감당하지 못해 8회까지 마친 대회 개최 의사를 포기하면서 동양증권배는 역사 속으로 사라지고 말았다.
문제는 여기서 발생했다. 국방부는 다른 스포츠 종목 등과의 형평성을 고려해 3개 대회를 고수할 뿐 동양증권배를 삭제하지 않았고. 한국기원 측에서도 병역혜택이 3분의 1이나 줄었음에도 개선책을 세우지 않았다.
▲성취 대상 줄어 중국에 추월
성취 대상이 줄어들면서 한국 바둑도 조금씩 하강곡선을 그리기 시작했다. 최근에는 오히려 중국에 추월당하는 분위기다. 11회까지 마친 삼성화재배는 최근 뤄시허·창하오가 2년 연속 이창호 9단을 꺾고 우승컵을 가져갔다. LG배는 상황이 더 심각하다. 지난 2년 동안 결승 무대를 중국 선수들에게 내준 데 이어 이번 11회 결승에도 후야오위(중국)와 저우쥔신(대만)의 양안대결로 압축됐다.
두 대회 모두 병역특례 혜택이 없어 국내 기사들의 투지를 살리지 못했다는 분석이다. 병역혜택이 주어지는 후지쓰배나 잉씨배의 결과를 보면 잘 알 수 있다. 4년에 한 번씩 열리는 잉씨배에서는 2004년 최철한이 준우승을 차지했다.
그리고 후지쓰배는 98년 이후 한국 기사들이 우승컵을 휩쓸고 있는데. 이 가운데 결승 진출자 명단에 박영훈·박정상·최철한·송태곤 등 신예기사들이 이름을 올려 병역특례 혜택의 수혜자가 됐다. 삼성화재배나 LG배에서는 볼 수 없는 현상이다.
▲삼성화재배·LG배 추가 제시
사안이 심각해지자 한국기원은 2003년 부랴부랴 병역대체복무 인정 대회의 범위 확대를 요청하기에 이르렀다.
동양증권배를 삭제하고 대신 다른 대회를 추가하는 것은 주무부서인 병무청이나 한국기원 모두 긍정적인 분위기다. 문제는 삼성화재배와 LG배 중 어느 것을 선택하느냐 하는 것이다. 같은 해 출범한 두 대회는 대회 규모나 바둑계에서 차지하는 비중 등에서 우열을 가릴 수 없기 때문이다.
3년여의 고심 끝에 기원 측은 동양증권배와 잉씨배를 제외하고 삼성화재배·LG배를 추가하는 대안을 제시했다. 동양증권배는 당연히 삭제돼야 하고. 잉씨배는 4년에 한 번씩 열리기 때문에 매년 열리는 삼성화재배와 LG배로 대체하자는 것이다.
병무청과 한국기원의 무관심 속에 10년 동안 방치해 온 병역법 시행령은 늦은 감이 있지만 당장 바꿔야 한다는 지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