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의 재기 선수상 후보에 오를 만큼 성공적으로 시즌을 마쳐가고 있는 LA 다저스의 박찬호(35)가 21일(한국 시간) 다저스타디움에서 벌어진 샌프란시스코전에서는 갑자기 아웃카운트를 하나도 잡지 못하고 1안타 2볼넷 2실점으로 부진했다.
9월 들어 7경기 연속 무실점 행진을 이어오던 그였기에 혹시 피로 누적이나 어떤 이상이 온 것이 아닐까 궁금해 하는 팬들이 많았다.
조 토리 감독이 이날 5회 박찬호를 긴급 투입한 것은 그에 대한 큰 기대와 함께 좋은 투구를 해줄 경우 포스트시즌에서도 승리를 굳히는 경기에 최대한 활용하겠다는 시험으로 받아들여질 정도로 이례적이었다.
9승10패를 기록 중이던 일본인 선발 구로다가 5-2로 3점이나 앞선 5회초 샌프란시스코의 4번 선두타자 벤지 몰리나를 좌중간 2루타로 진루시키자 조 토리 감독은 기다렸다는 듯이 마운드로 걸어나오며 구심에게 교체를 통보했다.
박찬호는 4회부터 불펜에서 몸을 풀고 있었다. 교체 순간 다저스타디움 기자실에 있던 일본 기자들은 놀랐는지 "아!"하는 탄식까지 했다.
3점차 리드 상황에서 5회 선발 교체는 메이저리그에서 보기 쉽지 않은 장면인데 조 토리 감독은 구로다의 시즌 10승째 보다 추격해오는 2위 애리조나를 확실하게 따돌리겠다는 의지가 더 컸던 모양이다.
박찬호로서는 구로다가 선발승 요건인 5이닝을 못 채우고 교체됐기 때문에 효과적으로 2이닝 정도를 막아낸다면 시즌 5승째에 통산 118승째를 거둘 수 있는 절호의 기회가 온 것이다. 아울러 전날까지 93 1/3 이닝을 던지고 있었기에 100이닝을 채울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었다.
박찬호는 무사 1,3루에서 아론 로원드를 상대로 3구 연속 시속 154km(96마일)의 강속구를 던졌으나 컨트롤이 되지 않았다. 볼카운트 2-2에서 승부구로 던진 아웃코스 패스트볼을 구심이 스트라이크로 잡아주지 않자 급격하게 제구력이 떨어졌다.
경기를 중계한 폭스스포츠TV는 덕아웃에서 상황을 지켜보던 박찬호를 샌프란시스코 공격이 끝난 후에도 2번이나 비춰주었다. 화면 상으로 박찬호는 땀을 흘리면서도 무엇인가 이해가 되지 않는 듯한 표정이 역력했다.
이날 경기 후 흰색 트레이닝 복 차림으로 식사를 마친 박찬호는 스스로 마음을 진정 시킨 듯 "문제는 쓸데 없는 생각들이 떠오른 것이었다"고 밝혔다.
경기가 4시간 3분이나 소요돼 자정 가까운 시각에 서둘러 귀가하던 그는 "내 자신이 정말 쓸데 없는 생각을 했다는 사실에 스스로 화가 많이 났다"고 덧붙였다.
3타자를 상대하면서 포수 러셀 마틴이 2번이나 마운드에 오를 정도로 사인도 맞지 않았는데 어쨌든 복잡한 생각이 컨트롤 난조로 이어졌다고 했다.
조 토리 감독은 10-7 승리로 끝나자 박찬호의 부진에 대해 "누구나 항상 잘 할 수는 없다. 오늘은 그냥 하루 나쁜 날이었을 뿐"이라며 개의치 않는 표정이었다.
박찬호로서는 시즌 막판 가장 긴장되고 길었던 밤을 보내며 성적과 기록에 대한 욕심을 버리게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