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이런 상황까지 오지 않기를 바랐는데…"
9년 만에 배구 코트에 복귀하는 장윤희(41·GS칼텍스)는 조심스러웠다. 예전의 명성에 흠집이 나는 것도 그렇거니와, 자신 때문에 다른 한 명은 선수 엔트리에서 빠져야 하는 상황도 걱정스럽다. 그럼에도 "배구를 너무 사랑해서" "위기에 빠진 팀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기 위해" 장윤희는 어려운 결단을 내렸다.
장윤희는 여자 배구의 레전드다. 1988년 GS칼텍스의 전신인 호남정유에 입단, 호남정유의 92연승 신화를 작성하며 최우수선수상(MVP)를 5회나 수상했다. 호남정유와 LG정유를 거치며 슈퍼리그 9연패(1991~99년)도 이뤄냈다. 입단 첫 해부터 은퇴 직전인 2001년까지 14년 동안 공격종합 1위를 한 번도 놓치지 않았다. 국가대표로는 1994년 히로시마 아시안게임에서 금메달도 따냈다. 더이상 이룰 게 없는 그였지만 팀의 위기를 모른채 할 수 없었다.
선수로 복귀한다는 소식에 가족들은 걱정부터 앞섰다. "친정 부모님께서는 예전의 명성을 잃을까봐 (선수 복귀를) 말리셨어요. 신랑은 마흔이 넘는 나이에 운동하며 행여나 다치지 않을까 걱정해요"라고 말하는 장윤희의 표정은 진지해졌다. "그래도 큰 딸 (이)윤주는 엄마가 선수로 복귀한다니 들떠있어요. 주변에서 엄마가 대단한 선수였다고 하던 얘기를 직접 확인할 수 있으니까요"라며 그는 웃었다.
그의 복귀는 양날의 검이자 위험한 도박이다. 침체에 빠진 GS칼텍스가 분위기를 반전시킨다면 장윤희의 복귀도 큰 문제 없이 받아들여질 수 있다. 그러나 플레이오프 진출에 실패한다면 후유증이 남는다. 기존 선수들에 대한 믿음이 흔들려 마흔을 넘긴 장윤희를 데려왔다는 인상을 남길 수 있기 때문이다. 몇몇 배구팬들도 '얼마나 선수가 없으면 장윤희를 데려오나' '그동안 쌓아온 명성에 흠이 갈 수 있는 선택이 과연 옳은가'라며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조혜정 GS칼텍스 감독도 고민스러웠다. 조 감독은 "사실 나보다, (장)윤희보다 잘 하는 선수를 키워야하는 게 우리의 목표다. 윤희의 복귀는 어떻게 보면 배구계나 선수에게 모욕이 될 수도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전력의 부족한 한 부분을 메우기 위한 선택이다. 팀이 어려운 가운데 감독으로서 여전히 잘 할 수 있는 선수를 쓰지 않을 수 없었다"고 털어놨다. 그러면서 "선수들에게 좋은 자극이 됐으면 한다"는 바람을 나타냈다.
출전이 예상됐던 25일 인삼공사전. 장윤희는 끝내 코트에 나오지 못했다. 이날 GS칼텍스는 인삼공사를 3-1로 누르고 7연패에서 탈출했다. 유니폼을 입고 선수들과 함께 서서 경기를 지켜보던 장윤희도 승리가 확정되자 함께 기뻐했다. 조 감독은 장윤희를 출전시키지 않은 이유에 대해 "3세트 막판에 교체투입을 고민했지만 타이밍을 놓쳤다"고 설명했다.
장윤희는 경기 후 "오늘 경기에 나서고 싶었는데 아쉽다. 언제 투입될지 모르지만 코트에 들어가면 저를 위해 배구장에 오실 팬들을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아직도 그의 열정은 사그러들지 않았다.
오명철 기자 [omc1020@joongang.co.kr]